축복의 천사
상태창을 살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별의 계승자
직업(Class) : 지고의 검성
<능력치>
레벨 : 9
힘 : 146(114+32)
체력 : 144(112+32)
민첩 : 145(113+32)
지능 : 144(112+32)
성력 : 233(190+32)
<부가 능력치>
자연 재생력 : 11,200%
전체 관통력 : 34.3(23.3+11)%
저주 관통력 : 15%
저주 반사 : 30%
저주 유지시간 증가 : 30%
숙련도 효율 : 900(450+450)%
전체 경험치 획득률 : 200%
<특이사항>
1 : ‘별의 계승자 - 별 4개(모든 능력치+20)’ 보유
2 : ‘초월한 바알 세트’와 육체가 융합되어 관련 능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다시 해당하는 부위에 새로운 장비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3 : ‘영원의 란돌프’ 효과로 순수능력치가 보정되었습니다.
4 : ‘바알의 핵(멸망의 조각)’을 심장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5 : ‘망자의 왕’ 스킬로 순수능력치 힘(2)과 민첩(1) 성력(3)이 오른 상태입니다.
6 : 지고의 유일급 ‘겨울’ 사용자(모든 능력치 10상승, 모든 패널티가 50% 경감)
7 : ‘태고의 갑옷’ 레벨비례 전체 관통력 +9%
8 : ‘무한의 그릇’ - 능력치 상한 해제, 능력치 상한 해제에 따른 부작용 제거
9 : ‘탈각’ - 자연재생력 대폭 상승, 경험치 획득률 2배
<활성화된 컬렉션>
《‘빛의 옥좌’ + ‘겨울(최후의 황혼)’ = ‘눈부시게 시린 자리(전체 관통력 2%)’》
《‘최초의 불을 옮긴 자’ + ‘겨울(최후의 황혼)’ = ‘최초와 최후(모든 능력치+2)’》
<숙련도>
활 10Lv, 달인의 경지
검 32Lv, 검강 해제(피해량+60%)
+‘겨울(최후의 황혼)’에 의해 검 숙련도 레벨상한 35Lv까지 증가
* 30레벨 이후 피해량 5%씩 증가
“······.”
몸이 떨렸다.
전율이 오르는 걸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의 말조차 필요 없을 만큼,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모든 게 그대로였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나의 상태.
능력치를 비롯한 옵션들마저도 변한 게 없다.
··· 문을 열어 무한의 그릇을 얻고, 탈각에 이른 사실마저도 말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딱 하나.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사실만 사라졌다.’
······ <특이사항>에 적혀 있어야 할 문구 한 줄이 사라졌다.
천마신공이 6성에 다다라 1.6배의 성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글귀.
심지어 1.6배가 오른 성력은 ‘순수능력치’로 분류되어 앞자리에 더해져 있었다.
이 역시 ‘영원군주’의 말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모든 게 사라진다고 하였지만 막상 사라진 건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내용 하나뿐.
‘영원군주도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영원군주도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는 자기자신을 버렸다.
하지만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 자리를 되찾았을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남고 합쳐지며, 필요없다 여겨지는 부분만이 떨어진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 천마신공을 익힌다면?’
설마 지금의 성력을 기준삼아 능력치가 증폭하는 걸까?
190의 배율로?
1성만 익혀도 무려 19가 오른다.
10성에 다다르면 380이 되는 것이다.
나를 지웠던 란돌프가 ‘신의 살갗 혼종’에게 힘을 부여받은 상태일 때도 그 수준까지 미치진 못했을 터인데.
‘나는 구결을 알고 있다.’
천마신공의 구결을.
기대 반, 설렘 반의 느낌으로 다시 한 번 외워보았다.
그러자.
《‘천마신공’을 익힐 수 없습니다.》
······ 아. 역시 안 되나.
몸 자체가 거부하는 것 같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그런 기분.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확인했다.
<활성화된 히든 특성>
【허무】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비스트 로드】
【황금의 은총】
【돌연변이】
【탐욕】
【진리의 눈】
【하이드루이드의 대자연】
【마혈종의 신】
【영원의 신】
【천상(天上)】
본래 ‘영원군주 란돌프’가 있어야할 자리에.
군주와 란돌프가 사라지고, 대신 ‘신’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마혈종의 신과 같이.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자리에 올랐다는 의미.
하지만, 이러한 일들도 ‘신의 섬’에서 벌어진 일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축복의 천사’가 ‘신의 섬’에 깃듭니다.》
천사(天使).
천사란 무엇인가.
신의 사자, 대변자 정도로 정의되는 게 ‘천사’라는 존재다.
하지만 그간 판게니아에는 천사가 등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악마나 마족 따위는 무수히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천사’가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가 어떠한 형상을 하고 능력을 보일지 다소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한데.
《‘신의 섬’에 잠든 ‘영원족’이 깨어납니다.》
《‘영원족’에게 ‘축복’의 효과가 부여됩니다.》
《‘신의 섬’이 ‘지구’와 연결됩니다.》
영원족(永遠族).
영원히 살아가는 불멸의 종족.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생명체가 아니었으므로.
섬 전체에 퍼져나가는 씨앗들.
산과 나무, 돌과 풀에 얹혀진 새하얀 씨앗은 곧이어 풍성하게 스스로를 부풀리며 주먹만 한 어린아이의 형상을 만들었다.
“······ 요정, 이군요.”
함께 신의 섬에 들어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자벨라가 말했다.
이자벨라가 보기에도 저 모습은 분명히 ‘요정’이었을 테니.
판게니아에도 일찍이 존재하여 ‘몬스터’로 분류되는 것들.
-우리를 일반적인 ‘요정’으로 취급하지 마라. ‘영원족’은 ‘페어리 드래곤’으로도 진화할 수 있다.
신의 살갗 혼종이 말했다.
‘페어리 드래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페어리 드래곤’은 가장 강력한 용족으로 취급받는 신비의 종이다.
그러니까 요정족이 아니라 용족이라고 봐야한다.
그것도 용족 중에서도 전설이나 신화로만 회자되었던, 일반 용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력하고 현명했던 존재.
한 마디로 저 씨앗들 전부가 ‘페어리 드래곤’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저 숫자가 전부 ‘페어리 드래곤’이 된다면 제국조차 압도할 수 있으리라.
‘영원군주가 왜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이곳을 지키려 했는지 알겠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
감히 ‘신의 섬’이라 불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멸망에게도 위협이 될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본래 ‘철혈군주의 심장’으로 히든 특성화 하였던 것.
다른 ‘문’들도 이만한 가능성을 지녔다면, 상상만으로도 아득했다.
그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군. 우리 ‘영원족’은 오래도록 시간을 먹고 자라야만 하는데······.
신의 살갗 혼종이 고개를 갸웃했다.
축복의 천사 덕분일까.
영원족의 성장 속도가 이상하리만큼 빠르다.
물론 전부 빠른 건 아니다.
나와 가까운 영원족일수록 성장이 더뎠다.
게다가 내 주변으로는 왜인지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견디기 힘들어하는 느낌.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축복의 천사’가 그대들을 퇴장시킵니다.》
《‘영원족’의 온전한 육성을 위한 특단의 조치입니다.》
《‘완성된 자’는 섬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 섬의 주인인 내가, 섬에서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
내가 퇴장 당한 이유.
그리고 신의 섬과 연결된 지구.
두 사이에 연관관계를 찾고자 나는 로그아웃했다.
“······ 굉장한 적응력이로군.”
후루룩!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예전 여자친구인 김서연과 김하나를 만났던 그곳이다.
카페는 여전히 사람으로 붐볐지만 위치만 같을 뿐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확장공사를 했는지 내부가 커지고 인테리어도 바뀌었다.
카페 이름은 ‘신의 커피’가 되어있었고, 카페에서 일하는 내부인들 전부가 인간이 아닌 ‘마혈종’으로 대체된 상태였다.
“예. 위대하신 신의 의지에 따라 저희는 모두 ‘인간’과 동화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검게 물든 알카르가 내 옆에 서서 정중히 답했다.
오로지 나 때문에 모든걸 바꾸었다는 말.
백보 양보해서 모습과 어투, 양식 등이 인간처럼 변한건 이해하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무슨 돈으로 건물을 산 거냐?”
이 건물 전체가 마혈종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아니, 이 건물만이 아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 건물들 전부가 마혈종의 관리하에 들어가 있었다.
“‘용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팔았습니다.”
“······ 그렇군.”
용맥의 안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일종의 마력핵이다.
원체 강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용맥이니, 그 안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조차도 마력을 띠는 물건이 된다.
게다가 판게니아의 마력핵은 현실로 가져올 수 없다.
마력핵을 구하는 방법은 침입한 괴물을 죽여 그 핵을 빼앗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지구에서 마력핵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판매한 돈으로 주변 일대의 건물을 모조리 사들였다는 말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로군.’
의도는 뻔하다.
오로지 나 한 명을 지키려고 전부 이곳으로 온 것이다.
검게 물든 알카르의 군단 전체가 은평구로 들어왔다.
인간과 동화되어, 전혀 의심받지 않은 채.
“어떻게 한 거지?”
하지만 분명히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강력한 관찰계나 간파의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가 본다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혀 의심받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을 터.
“모두 루카리아 님 덕분입니다. 지상에 나온 마혈종 전부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환각계’의 축복을 걸어주셨습니다.”
아아.
비로소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루카리아의 능력이라면 초월한 플레이어도 간파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검게 물든 알카르’는, 척 보기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을 것만 같다.
지금에야 평범한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니······ 평범하진 않나?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마, 마음에 안 드십니까? 위대하신 신이시여, 눈을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이 불신한 놈은 당장 제물이 되겠나이다!”
······ 왜 대머리지?
차마 묻지 못했다.
그러기엔 이놈의 반응이 너무나도 격렬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멋있다는 소리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반응 하나하나가 격한 놈이었다.
‘그나저나.’
나는 시선을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반대편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
-우리의 영웅, 대한민국의 영웅, 박태우 님 사랑합니다!-
-경) 유적도시 룬델라, 대한민국과 함께합니다! (축-
국회의원 선거라도 하는 줄 알았다.
박태우가 은평구에 후보로 나와서 선전하는 줄 말이다.
박태우.
한국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영웅연합의 연합장.
이세라가 침략했을 당시, 박태우가 루카리아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유적도시 룬델라를 선물한 적이 있다.
나는 턱을 쓸었다.
‘신의 섬과 연결된 워프를 찾아야만 한다.’
지구와 연결된 신의 섬.
하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완성된 자’는 출입을 할 수 없다는 문구.
신의 섬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 것이다.
‘···특정 레벨 이하, 혹은 특정 조건을 아직 만족하지 못한 자.’
당장 떠오르는 조건은 이 두 가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은 당연히.
‘저곳으로 가봐야겠군.’
박태우가 연합장으로 있는 영웅연합 주변일 것이다.
*
한국, 영웅연합의 본부.
건물 내부에 위치한 넓은 사무실 안에서, 한 여인이 권태로운 눈빛으로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압!”
“히야아압!”
두 남자가 겨루는 모습.
애들 장난과도 같은 대련을 보며 여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처참하군.’
칠군주 바사라.
일곱번째 마계의 군주인 그녀는 현재 지구에서 유희를 즐기는 중이었다.
영웅연합에 가입한 뒤 박태우의 명령에 따라 신입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보는 심사위원직을 맡고 있었다.
한데, 이 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료했다.
수준미달.
심사는커녕 한숨만 나올 처참한 재능의 소유자들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빌헬름이여. 너의 세계도 보잘 것 없구나.’
판게나아가 아닌 지구.
전혀 다른 생태를 가진 이곳의 인간들에게 약간의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나.
······ 빌헬름과 같이 빛나는 존재는 그 어느 세계에도 없는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