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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51화 (251/317)

신의 섬

영국 런던,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 

컬리지 홀엔 수많은 신사들이 자리하며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 영국에서 한가락하는 정재계의 인물들. 

영국 왕실의 패권을 노리는 네 개의 파벌, 그중 핵심이 되는 자들이었다. 

‘저자가 그······.’ 

‘올리버?’ 

‘에딘버러의 왕자?’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즐기는 와중에도 그들의 눈은 한 남자에게 향해있었다. 

연회장의 외곽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 올리버에게로. 

영국은 여왕이 서거한 뒤, 세 개의 파벌이 서로를 견제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올리버가 등장하자 판이 뒤집혔다. 

물론, 등장할 땐 별다른 시선을 받지 못했다. 

후계 순위도 막바지에 뭐 하나 뛰어난 점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순식간에 다른 거대 파벌들에게 경종을 울릴만큼 강력한 세력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웃지 않는 남자··· 소문대로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군.’ 

‘유리심장이라는 소문은 와전된 거였나?’ 

수려한 외모와 달리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표정. 

일견 병약해보이지만 올리버는 이미 ‘철혈의 왕자’로 영국에서 유명하다. 

에딘버러를 요새화한 결정적인 인물로 말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에딘버러는 괴물에 의한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했다. 

올리버가 전면에 나서며 생긴 현상. 

이미 에딘버러에서 올리버의 위상은 절대적인 지경이었으니.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결단력, 그리고 강철의 심장을 지닌 남자라던가. 

“올리버님. 연회가 재미 없으십니까?” 

“······ 아주 재밌다, 멜슨. 웃고 있지만 독을 품고 있는 모습들이.” 

집사 멜슨의 물음에 올리버는 차갑게 답했다. 

허나 겉보기와 달리 진심어린 대답이었다. 

본래 이곳은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다. 

심장이 약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과거. 

현실을 포기한채 판게니아에서 허드슨으로만 활동하던 그때의 자신이라면 이 영국의 사자들 앞에 서는 건 어불성설 꿈도 못 꿀 일이었을 터. 

하지만 란돌프를 만난 뒤 모든 게 바뀌었다. 

‘세렝게티와 재회하고, 심장을 고치고, 현실과 마주하게 만들어주셨지.’ 

판게니아에서 그는 상인 허드슨이나, 현실에서 그는 영국 왕실의 후계자 중 하나인 올리버다. 

란돌프는 포기하고 있던 현실과 마주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모든 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멈춰있던 레벨이 오르고, 삶을 지속할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나아갈 확신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았다. 

“그나저나··· 좀 덥군. 조금 떨어져 있으면 안 되나?” 

하지만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밀착해 있는 건 멜슨만이 아니었기에. 

“안 된다.” 

“여왕께서 말씀하셨다. 지키라고.” 

거구의 남자들은 올리버의 호위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 

용신 하나의 수족이며 란돌프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마혈종이다. 

그들은 에딘버러의 요새화에도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문제는 과잉보호였다. 

‘저들은 내가 허드슨인 걸 모르니.’ 

마혈종이 올리버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체 때문이다. 

만약 올리버가 판게니아의 허드슨임이 밝혀진다면 여러모로 파장이 커질 여지가 있었다. 

괴물인 오주력의 미궁 도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인간. 

대척자의 입장에선 물고, 뜯기 좋은 소재이지 않나.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올리버가 허드슨으로 변신하는 일이 없게끔 만들어주는 게 그들의 사명 중 하나였으니, 이 과잉보호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올리버. 오랜만이에요.” 

그때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서 등장한 여인. 

“······ 메리 공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올리버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술을 맞췄다. 

여왕의 피를 진하게 이은 어린 공주. 

올리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흥미로 가득했다. 

“어릴 때 이후로 처음보는 것 같네요.” 

“예. 거의 13년만이로군요.” 

자세를 편 올리버가 무미건조하게 답하자, 메리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남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너무나도 달랐기에. 

아름답게 성장한 그녀를 그냥 지나칠 남자는 없었다. 

하여 그녀는 당돌하게 물었다. 

“제가 아름답지 않나요?” 

“아름답습니다.” 

“빈말이로군요.” 

“······ 빈말이 아닙니다.” 

“그럼 왜 제 편지에 답장하지 않았죠?” 

편지, 편지라. 

그야 받기는 했다. 

바로 휴지통에 구겨서 버리긴 했지만. 

왜 답장하지 않았느냐고? 

“저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결혼을 위한 편지였으니까. 

올리버의 의사는 상관 없는, 일방적인 정략결혼을 위한 편지 말이다. 

“제가 그 사람보다 못생겼나요?” 

“······.” 

“······ 이제는 빈말조차 못하는 건가요?” 

흘겨보는 눈빛. 

지금 올리버의 태도는 확실히 신사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세렝게티보다 못생겼군.’ 

사실이었으니까. 

설령 메리공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할지라도, 올리버의 눈에는 세렝게티 외엔 전부 못생겨보였으므로. 

그러자 메리 공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소녀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군요.” 

“죄송합니다.” 

“결투를 신청해요, 올리버.” 

잠깐. 뭐라고? 

“··· 제가 공주님과 말입니까?” 

“서로 대리인을 내세워 치러도 상관없어요. 다만, 패자는 승자의 부탁을 한 가지 무조건 들어줘야만 해요.” 

“그 부탁이 결혼이라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아니요. 저는 올리버, 당신의 진짜 정체가 궁금해요. ‘판게니아’의 정체 말이에요.” 

······ 과연.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나. 

모두가 올리버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나은 것도, 사람이 달라진 것도, 모두 각성자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있었다. 

허드슨임을 밝혀내서 매장시키겠다는 건지. 

올리버는 말했다. 

“저는 각성자가 아닙니다.” 

그러자 메리 공주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올리버. 당신은 각성자가 맞아요. 당신의 성 아래에 장기간 타차원으로 향할 때를 대비한 ‘생명유지장치’가 있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어요.” 

생명유지장치는 플레이어의 필수품이다. 

장기간 로그인을 한 상태에서 현실의 몸을 보호해줄 안전장치.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물건! 

심장을 위해 구비해둔 것이지만 지금 그 말을 해봤자 믿지 않을 터다. 

누가보더라도 올리버의 심장은 이미 다 나은 탓이다. 

이윽고 메리 공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란돌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저는 진실을 알고 싶어요.” 

“······.” 

이건 또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올리버가······ 란돌프?” 

“판게니아의 그 란돌프라고?” 

“미친!” 

웅성! 웅성! 

연회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소리를 높였다. 

이곳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모두가 암암리에 ‘란돌프’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란돌프를 찾고, 그의 인정을 받는 자가, 세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소문. 

허나 그 누구도 란돌프를 찾지 못했다. 

지구에서 그의 본체를, 진면모를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이가 없군.’ 

자신이 란돌프라니.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걸까? 

허나 성 아래에 숨겨둔 생명유지장치의 존재까지 알고 있다면, 아마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메리 공주의 칼날이 내게 향했다는 건, 란돌프님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증거다.’ 

올리버는 어느때보다도 신중해졌다. 

여기서 마냥 부정했다간 ‘박현명’이 수면위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제게 이만한 창피를 주고도 대결을 거절하겠다는 건가요, 올리버?” 

“······ 알겠습니다, 공주님.” 

무엇보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올리버가 대결을 받아드리자, 메리 공주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걸려들었어.’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었다. 

란돌프로 변신을 하지 않는 이상, 이 결투는 절대로 올리버가 이길 수 없는 탓이다. 

“좋아요. 그럼 저를 대신해 결투를 할 제 대리인을 소개하죠. 아일론 경!” 

“아일론?” 

“초월자 아일론······!”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다시금 연회장은 시끄러워졌다. 

초월한 각성자이며 수많은 침략에서 런던을 지켜낸 최강의 기사! 

이미 최상위의 랭커로도 이름이 드높은 자였다. 

‘어지간히 내 정체가 궁금한가보군.’ 

올리버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아일론을 선보였다는 건 메리 공주가 결투에 진심이라는 의미. 

허드슨으로 변신해봤자 이길 수 없는 진짜 초월자다. 

“나선다. 내가.” 

“아니다. 내가 나선다.” 

동시에 올리버를 대신해 두 호위가 서로 나서겠다고 싸워댔다. 

그 모습이 퍽 유치하지만. 

둘의 정체를 알고 있는 올리버는 이 신경전을 마냥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이 둘은 마혈종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들. 

‘열 개의 군단. 그 군단을 다스리는 군단장들.’ 

바로 일만 군집을 다스리는 마혈종의 군단장이었으니! 

“······.” 

“······.” 

“······.” 

이윽고 벌어진 결투의 향방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아, 아일론 경······!” 

메리 공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아일론. 

그 앞에는 올리버의 호위가 별 다른 상처 없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일론이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박살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올리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초월자를 압도하는 무력이라니······!’ 

저 정도의 강자를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싹텄다. 

‘진짜로······ 란돌프인가?’ 

올리버가 진짜 란돌프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나는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환경이 주변에 펼쳐졌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나의 방. 

한데,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우매한 종이 위대하신 신을 뵙습니다.” 

그 이유를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집에 있던 것이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님을 즉시 알아보았다. 

마혈종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마혈종이었다. 

“마혈종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냐?” 

“여왕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신이시여,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열 3위의 ‘검게 물든 알카르’라고 합니다.” 

칼날용신 하나가 나를 지키고자 보낸 마혈종인듯싶었다. 

검게 물든 알카르라. 

서열 1위와 2위는 이세라와 루카리아일 것이니, 그 둘과 하나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마혈종이라는 소리. 

“올리버가 아니라 나를 호위한다?” 

찰나, 알카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아······! 감히 저 따위가 위대하신 신을 호위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저는 그저 충실한 종일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를 제물삼아주시옵소서!” 

제물삼아 죽여달라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아니다. 강한 마혈종은 올리버를 호위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현재 서열 9위와 10위의 군단장이 그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왕님께서 판단하셨습니다.” 

대답을 듣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의 판단이 그렇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그동안 그 정도로 마혈종의 군세가 커지고 격이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보호벽이 필요없겠군.’ 

현실의 몸을 보호하는 이권. 

그게 없어도, 검게 물든 알카르가 있다면 어느정도는 괜찮을 듯싶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알카르의 기운은 강성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것보다도 급한 일이 있었다. 

검게 물든 알카르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내가 로그아웃한 가장 중요한 이유. 

‘··· 신의 섬이 지구와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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