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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50화 (250/317)

루시퍼의 절규 <10권 끝>

여태껏 수많은 규격 외(外)의 업적을 달성했지만. 

감히 단언하건대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 문장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메인 퀘스트 11’ 명예의 전당 순위가 변경되었습니다.》 

《1위 추산 10,000점. 란돌프》 

《2위 780점. 루시퍼》 

《3위 499점. 그라시아》 

《4위 400점. 바르무슈》 

《5위 360점. 민트초코맛있어요》 

······. 

모든 플레이어가 달성하고, 접하게 되는 명예의 전당. 

하지만 바뀐 순위를 목도한 플레이어들은 몇 번이고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리수의 점수가 공개됐으니까. 

“일만점······?” 

“추산? 이건 무슨 말이야?” 

“설마 시스템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건가?” 

“······.” 

버그나 오류는 아니다. 

여태껏 수많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저게 진짜 란돌프가 이룩한 점수라는 건 확실했다. 

하물며 ‘추산’이라는 단어는 이번일에 더욱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굳이 저런 단어를 붙여가며 전당에 내보였다는 건 그 정도의 일을, 상상을 초월하는 초과적인 업적을 란돌프가 달성했다는 뜻이므로. 

문제는 이번 명예의 전당은 무려 ‘메인 퀘스트 11’이라는 것이다. 

“심연 괴물 사냥, 맞지?” 

“··· 루시퍼가 ‘허망의 왕자’와 잔당들을 사냥하고 780점이었잖아.” 

“그럼 란돌프가 지배자급 괴물을 최소 15마리는 죽였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메인 퀘 10 민지 얼마나 됐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데?” 

혼란의 도가니였다. 

루시퍼의 점수를 열 배 이상 웃도는 건 정말 불가해한 일. 

루시퍼조차 수많은 희생을 자처하며 만들어낸 점수이건만. 

그리하여 다시는 깨지지 않으리라고 모두가 은연중 확신하고 있던 순위이건만! 

그게 깨졌다.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아니, 설령 여신이 살아돌아온다고 할지라도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수준의 업적이었으니. 

“전원 소집하도록!” 

“비상상황이다. 빨리 모여!” 

“판게니아에 지각변동이 생길 거다. 뭐가 변하는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최대한 눈을 떼지 말고 살펴봐!” 

“뭐라도 좀 알고 있는 놈 없어?” 

“정보부 이 새끼들은 뭐 하는 거야!” 

세계는 난리가 났다. 

특히 지도자급의 플레이어들은 더더욱. 

현재 지구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영웅회가 몰락하는 와중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이 왕임을 자처하며 세력을 일으켰다. 

그동안 영웅회에 눌려있던 강자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 지금 이 ‘변화’는 막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판게니아에도, 지구에도. 

‘영웅회는 그동안 은연 중 란돌프를 외면했다. 터부시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란돌프를 찾아라!’ 

‘먼저 란돌프를 찾는 사람이 승리자다!’ 

영웅회는 그동안 ‘란돌프’의 이름 자체를 눌러버리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새로이 등장한 왕들은 필사적으로 란돌프를 찾아내, 연을 만들려고 했다. 

란돌프는 세계의 왕이 되는 데 관심이 없는 게 확실했으니까. 

적어도 ‘란돌프’의 이름을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보증 수표는 없을 터.

그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란돌프의 선택을 받는 자가, 이 세계의 왕이 된다.’ 

그동안은 무언가의 착오, 혹은 오류로 애써 이해하려 했으나. 

애당초 ‘란돌프’란 미지(未知)를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불신한 짓이었다. 

미지와 신비, 이해할 수 없는 우주와 같은 진리. 

그것은 배척하고 무시할 게 아니라, 

경외하고 또 경외하며 떠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란돌프는 그런 존재였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란돌프를 찾는 이유였다. 

······ 신의 선택을 받는 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세계를 이끌 황제가 될 터이니. 

“······.” 

다크스타는 건물의 옥상에 올라 지상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래, 나도 팬텀교에 가입하도록 하지. 

메인 퀘스트 11. 

란돌프가 루시퍼의 점수를 넘어선다면, 팬텀교에 가입하겠다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 어이가 없군.” 

다크스타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리고 말았다. 

1만 점이라니. 

명예의 전당에서 다섯 자리 숫자는 난생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진짜 심연왕이라도 사냥한 건가······.” 

심연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만 같은 점수. 

도저히 믿기지가 않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라시아는 거절했지만, 루시퍼도 천사상을 빼앗겼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로인해 다시 균형이 맞춰졌다는 것. 

천사상을 빼앗긴 루시퍼는 이전처럼 나대지 못할 것이었다. 

스윽. 

다크스타가 품에서 두꺼운 서류첩을 꺼냈다. 

‘흑요가 내게 줄을 서며 준 것.’ 

구미호 흑요. 

영웅회의 맴버이며 그동안 다크스타와 루시퍼의 사이에서 간을 보던 요망할 여자다. 

그리고 전당의 순위가 바뀐 즉시, 흑요는 다크스타를 찾아와 이 서류첩을 건넸다. 

‘죽은 마스터의 일지.’ 

바로 죽은 ‘마스터’가 남겨놓은 일지. 

그것도 루시퍼는 모르는 비밀일지. 

100장이 넘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마스터 녀석. 그라시아보다 더 간절하게 란돌프를 찾고 있었군.’ 

······ 바로 란돌프에 관한 일지였다. 

마스터는 집착하다시피 란돌프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라시아가 ‘히드라곤의 핵’을 얻으려는 것과는 달리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그라시아보다 더 란돌프에게 ‘근접’했다는 사실이다. 

스르륵. 

서류첩을 넘기며, 100장이 넘는 종이의 모든 내용을 천천히 읽은 다크스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한국으로 가야겠군.” 

김하나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그리고 동시에 다크스타는 생각했다. 

········· 어쩌면 진짜로 팬텀교에 입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안 돼······!!!” 

루시퍼는 절규했다. 

천사상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천사상에 깃들어 있던 빛이, 명예의 전당 순위가 바뀐과 동시에 사라진 탓이다. 

“네가 어떻게 나를 떠나갈 수 있단 말이냐······!” 

빛이 사라진 천사상. 

더 이상 천사상에서 ‘축복의 천사’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천사를 위해 이룩해놓은 업적이었건만. 

수많은 희생을 각오하고, 달성한 메인 퀘스트였건만! 

그게 한 순간에 뒤집혔다. 

그것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점수의 차이로. 

“으아아!” 

콰직! 

루시퍼는 천사상을 부숴버렸다. 

안에 깃든 천사가 없는 이상, 이건 필요없는 껍데기에 불과했으니. 

꾸륵! 꾸르륵! 

곧이어 모든 축복이 사라지자 루시퍼의 육체가 변형하기 시작했다. 

이마 위에 두 개의 뿔이 솟고, 꼬리가 길게 늘어나며 육체는 새까맣게 변화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루시퍼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악마가······ 아니다. 나는······!” 

존재의 부정. 

그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천사는 그를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주는 축복을 내렸다. 

단순히 외형만이 아닌, 모든 인식과 사고마저도 바꿔 버리는 절대적인 축복. 

허나 축복이 사라졌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아니야, 아니야······!” 

꾸르륵! 

다시금 인간의 형태로 변한다. 

하지만 그저 형태에 불과했다. 

더 이상 루시퍼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악마라고 자각해버린 순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악마의 저주가 또 다시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자유다!’ 

얼마만에 맛본 자유던가. 

그 자유를 이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이 세계의 정점에 서서, 절대자로 군림하는 꿈. 

비록 원치않게 떨어졌으나 지구는 그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천사의 축복만 있다면 말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면서도······!” 

게다가 루시퍼는 그 천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천사는 없다. 

란돌프에게, 빼앗겼다. 

빠드드득! 

루시퍼는 부서지도록 이를 갈았다. 

‘아직은, 괜찮다.’ 

오랜 시간 쌓여 있던 축복이 단번에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 

허나 몸에 쌓인 축복이 완전히 증발하는 순간, 루시퍼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오로지 분노밖에 없는 악마로. 

모든걸 부숴버리고 싶어하는 괴물로. 

연민이나 사랑과 같은 감정 따윈 일절 없는 최악의 형태로! 

“란, 돌, 프······!!!” 

분노의 악마는 울부짖었다. 

압도적인 보상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히든피스가 발동하며 ‘온전한 황금률 10개’를 얻은 것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인데, ‘히든 탈리스만 큐브’와 함께 ‘신의 섬’과 ‘거룩한 별’, 특수한 ‘탈리스만’의 선택지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축복의 천사, 업적점수 일만 점,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1만 시간. 진짜 미쳐버렸군.’ 

역대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보상이 쏟아지다 못해 넘쳐 흐를 지경이다. 

하물며 보상 하나하나가 유일등급 뺨을 후려칠 내용들이었으니. 

‘참가자들의 이름이 들어간 탈리스만. 이런건 처음 보는데.’ 

무엇을 골라도 엄청난 옵션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한 탈리스만들. 

하물며 나는 ‘태고의 갑옷’까지 지녔다. 

‘······ 태고의 갑옷은 탈리스만의 능력을 1.5배로 상향시키지.’ 

여기에 ‘히든 탈리스만 큐브’도 얻었다. 

숨겨진 조합을 가능케하는 특수하고 특별한 큐브일 터. 

사용하기에 따라 어마어마한 시너지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여 고민이었다. 

무엇을 골라야하나. 

무슨 탈리스만이 나와 맞을까? 

고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니 신중해야만 했다. 

‘이름은 곧 증명이다. 탈리스만의 형태로 이름이 정제되었다는 건, 그 이름의 영향력을 장비가 강하게 받는다는 뜻이지.’ 

탈리스만은 장비를 강화하는 보석이다. 

기존 장비에 없던 특수한 옵션을 새겨넣어 더욱 빛나게 해주는 보물.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옵션을 더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장비의 장착 옵션을 낮춰주거나, 같은 류의 탈리스만을 추적하는 능력이나, 장비가 가진 특정한 특성, 혹은 저항을 올려주거나, 장비의 모든 옵션을 바꿔주거나······. 

제대로 조합하면 장비의 성능을 배로 올려줄 수 있는 게 바로 ‘탈리스만’이었다. 

또한, 특정 이름이 붙은 탈리스만은 관련된 내용을 증폭시켜준다. 

‘참가자의 특징. 태고의 갑옷에 어울리는 이름.’ 

아마도 참가자의 특징이 담긴 탈리스만이리라. 

그리고 내가 탈리스만을 박아넣을 장비는 태고의 갑옷이다. 

태고의 갑옷의 성능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탈리스만이어야만 한다는 소리. 

6개의 탈리스만 홈, 장착한 탈리스만이 1.5배의 증폭된 능력을 지니고, 형태 변형 능력, 최소 물리내성 50%, 물리 피해 210% 반사, 레벨비례 전체 관통력과 태고의 절망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말도 안 되는 갑옷. 

지금도 말이 안 되는데, 이 갑옷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탈리스만은 무엇이 있을까. 

‘확실한 게 하나 있기는 하군.’ 

기억을 떠올린다. 

참가자들의 특징을, 그들의 능력을. 

오로지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그들의 정보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천축의 고래’ 탈리스만을 선택했습니다.》 

변형의 능력을 지닌 천축의 고래. 

그녀의 탈리스만도 필시 비슷한 옵션을 지녔을 것이다. 

그때였다. 

다시금 내앞 떠오른 문구. 

《‘축복의 천사’가 깃들 기물을 선택하십시오. 기물에 따라 ‘축복의 천사’는 보다 강력한 축복을 내립니다.》 

《‘축복의 천사’는 오랜시간 바깥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564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축복의 천사’는 영영 사라집니다.》 

재촉하듯 기물의 선택을 바라고 있다. 

축복의 천사가 담길 그릇을 정해야만 끝이 난다는 듯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나타나선 1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정하라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499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387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284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나 역시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란돌프’를 기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혹시나 몰라서 나 자신을 택하자 이와 같은 말이 떠올랐다. 

··· 무엇을 그릇으로 삼아야 되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뛰어난 것. 

역시 태고의 갑옷이나 겨울(최후의 황혼)에 깃들게 해야할까? 

아니면 그릇으로 삼을 만한 또 다른 무언가가 나한테 있나? 

《10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고민하는 사이, 순식간에 시간은 10초 안으로 다가왔다. 

《6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4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2초 안에 결정해야만 합니다.》 

《1초······.》 

《‘축복의 천사’가 깃들 기물로 ‘신의 섬’을 선택했습니다.》 

《‘신의 섬’에 ‘축복의 천사’가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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