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46화 (246/317)

고귀하고 고결한

이자벨라가 ‘비밀’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우연히 발을 들여선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였을 뿐이다. 

어두컴컴한 지하. 

빛한점 들지 않는 그곳의 철창 안에서 피골이 상접한 여인을 보았다. 

오랜시간 씻지도 않은 듯 뒤엉킨 머리카락, 그리고. 

뚝, 뚝. 

두 눈에선 고름이 떨어졌다. 

초점 없이 죽어버린 눈동자. 

“넌······ 아홉 번째로구나.” 

이윽고 여인이 앙상한 손을 뻗어 이자벨라의 뺨을 만졌다. 

겁을 먹은 이자벨라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긴 어디고, 저 철창 안의 여인은 누구인지. 

“내 동생. 하지만······ 너도 실패작이야.” 

실패작? 

무엇을 실패했다는 건지. 

곧이어 여인은 몇 마디를 더 뱉어냈다. 

하지만 생기 없는 목소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말을 제외하곤. 

“밖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렴. 그게 차라리··· 행복할 테니까.” 

······ 죽는게 행복할 것이라는 말. 

어딘가 자신과 닮아보이는 사람이 내뱉은 죽음이라는 단어는 이자벨라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살고싶진 않아?” 

“죽고싶단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다른 동생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건 아마도 너일 거야. 

여인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이자벨라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몸을 숨긴 직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언제 죽을까?’ 

그때부터였다. 

죽음을 기다리기 시작한 게. 

데르시안 가문의 아홉 번째 복제품이자, 비밀을 알아버린 실패작. 

그 말로는 어차피 정해져 있을 터이니. 

별로 두렵진 않았다. 

왜인지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들과, 실망한 눈빛들. 

하지만 이자벨라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팔려갔다. 

사막여왕에게. 

··· 지하에서 보았던 여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할 것이라는 그 말. 

이자벨라가 도착한 곳은 지옥이었으니까. 

이곳은 밤낮이 없다. 

파이살메르에 마련된 거대한 지하공동. 

그곳에서 수많은 아이들은 살아남아야했다. 

“아악!” 

“아파, 아파!” 

“살려줘!” 

끊이지않고 들려오는 비명.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 

“알아? 여긴 심연과 일정부분 접해있대.” 

“······ 소노라.” 

이자벨라는 시선을 돌려 위를 바라보았다. 

백발의 아름다운 소녀, 소노라. 

여왕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아이. 

어쩐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복제품. 

“그래서 적응하지 못한 개체는 저렇게 발버둥치다가 혼종이 되는 거야. 여왕님의 은혜를 제대로 입지 못한 불쌍한 짐승들.” 

“······.” 

“반면에 우리는 적응했어. 더 강해졌지. 이자벨라, 우리는 나갈 수 있어. 이곳에서.” 

소노라는 자신과 달리 긍정적인 아이였다. 

약간 나사가 빠져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 중에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한 게 저 모습이었으므로. 

··· 이곳은 지옥이었다. 

적응하지 못한 아이는 괴물로 변했다. 

괴물로 변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공격하고, 죽이고, 먹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살기 위해서 괴물을 죽인 뒤 그 괴물의 살점을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밝은 미래 따윈 없어, 소노라.’ 

이자벨라는 차마 이 말을 내뱉지 못했다. 

같은 복제품이지만, 둘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랐기에. 

이자벨라는 데르시안 가문에서, 소노라는 이곳에서 길러졌다. 

이자벨라는 자신이 복제품이라는 걸 알지만 소노라는 알지 못한다. 

어딘가 닮았다고만 생각할 따름. 

결국 사막여왕에게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이자벨라만 알고 있었다. 

허나 사막여왕에 대한 소노라의 믿음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기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런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강하게 무언가를 믿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을 터. 

“구아아아악!” 

“······ 아르난. 결국 저 아이도 괴물이 됐구나.” 

아르난은 이 지옥을 5년 넘게 버틴 아이였다.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멀쩡해보이던 소년. 

그리고 오래 버틴 만큼, 괴물이 되면 더 압도적으로 강해진다. 

소노라를 제외하면 아무도 손을 못댈 정도로. 

실제로 괴물이 된 아르난은 순식간에 다섯 아이를 죽이고 먹었다. 

결국 소노라가 검을 들었다. 

그리곤 이자벨라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다. 

“다녀올게, 이자벨라. 넌 쉬고 있으렴.” 

아이들 중 가장 강한 소노라. 

가장 찬란하며, 빛나는 아름다운 소녀. 

그녀가 괴물이 된 아르난을 상대하다 부상을 입었다. 

“아르난 녀석······ 제법이던데?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고 있었어.” 

작은 생채기에 불과하지만, 소노라는 농담을 던졌다. 

소노라는 언제나 아르난을 무시했다. 

더 실력을 갈고 닦으라고 의지를 부채질하였다. 

괴물이 된 아르난은 그간 숨겨둔 기술을 사용해, 소노라에게 부상을 입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르난! 널 먹고 우리는 더 강해질 거야. 넌 우리의 안에서 살아갈 거야. 맹세할게, 너를 잊지 않겠다고.” 

벌써 수백번은 반복된 의식. 

아이들은 괴물이 되어 죽은 아르난의 살점을 뜯어먹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마음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소노라. 너······ 피가.” 

“괜찮아. 걱정하지마.” 

소노라가 급히 상처를 가렸다. 

그러나 이자벨라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피가 붉은색이 아닌 걸. 

소노라는 괴물이, 혼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노라는 밝게 웃어보였다. 

“느껴져. 곧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땐 너도 같이 가는 거야, 이자벨라. 우린 서로가 분신 같은 존재니까. 약속이야.” 

하루가 다르게 소노라의 상태는 나빠졌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도 안 되는 강대한 마력으로 버티고 있을뿐. 

“······ 죽여야 돼.” 

“괴물이 되기 전에 죽여야 돼.” 

“소노라가 괴물이 되면 우린 다 죽을 거야.”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소노라의 변화를. 

아르난을 상대하며 상처를 입은 이후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는 걸. 

“너희들, 다 잊었어? 소노라가 없었으면 이미 우린 다 죽었을 거라는 걸!” 

이자벨라가 아이들을 막아섰다. 

이대로 소노라를 넘겨줄 순 없었다. 

소노라가 없었다면 이미 이곳을 끝장 났을 테니. 

“죽여야 돼.” 

“막으면 너도 죽일 거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미쳐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이미 미쳐있을지도 모르겠다. 

스릉. 

이자벨라는 검을 들었다. 

소노라의 검. 

괴물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괴물이 되면, 그 괴물의 뼈를 갈아서 검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이자벨라는 제대로된 검이 없다. 

소노라의 검은 아주 오래전에 괴물이 된 친구의 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소노라는 자신의 뼈로 검을 만들어줄까? 

살점을 먹고, 피를 마셔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여봐. 어차피 오래 살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는 너의 안에서 살아갈래, 소노라. 

내 하나뿐인 친구. 

··· 내 하나뿐인 동생. 

나는 생각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온통 시체뿐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앞이 보이지 않는다. 

피. 이건 내 피인가? 

슥슥 닦아내자 시야가 돌아왔다.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 모두가 죽었다. 

나와 소노라를 제외하곤. 

“소노라, 괜찮아. 우린 반드시 이곳을 나갈 거니까.” 

“여긴······ 한 명만 나갈 수 있어, 이자벨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소노라가 말했다. 

그동안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듯. 

눈을 뜨자, 소노라의 두 눈은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다. 

절반은 이미 괴물이 된 것이다. 

“이자벨라. 너라면··· 넌 나보다 강하니까, 틀림없이 앞으로의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괴물이 되기 전에······ 날 죽여줘. 난, 나는··· 아.” 

뚜둑! 뚜두둑! 

몸이 뒤틀린다. 

목이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이고, 뼈가 이곳저곳을 뚫듯이 기괴하게 움직여댔다. 

아니야. 

아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소노라가 괴물이 되다니. 

한 명만 나갈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소노라여야만 했다. 

“··· 내가 죽을게.” 

내가 죽고 소노라, 네가 바깥으로 나가는 게 맞아. 

어차피 나는 오래 살 생각이 없었거든. 

-밖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렴. 그게 차라리··· 행복할 테니까. 

그날, 지하에서 보았던 여인이 했던 말. 

그 말 그대로였다. 

차라리 죽는게 행복하다. 

내가 살아서 나가봤자 불행하기만 할 것이다. 

내가 죽고, 소노라가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소노라의 검을 들었다. 

죽을 생각으로. 

목을 그어 단번에 죽을 셈이다. 

그렇게 주저하지 않고 검을 내리그으려던 그때였다. 

치직! 치지직! 

세상에 노이즈가 꼈다. 

그리고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메인 퀘스트 1, ‘생존’이 시작되었습니다.》 

《‘생존’하십시오!》 

이후, 내 기억은 사라졌다. 

《메인 퀘스트 1, ‘생존’이 시작되었습니다.》 

《‘생존’하십시오!》 

여긴 또 어디지? 

“스타팅 포인트는 분명히 사막도시였는데?” 

컴퓨터 화면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막도시로 설정했는데 전혀 사막같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 탓이다. 

“그리고 저건 뭐야? 시작하자마자 혼종이 왜 나타나?”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혼종. 그것도 일반 혼종이 아닌 더 상위의 혼종이다. 

레벨 1의 캐릭터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상대할 수 없는 괴물! 

“··· 경험삼아 대충 만들었더만. 이래서 사막도시로 스타팅 포인트를 설정하면 안 된다는 건가.” 

스타팅포인트로 절대로 지정하면 안 되는 곳. 

칼츠만 사막에 떨궈지면 그냥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키우는 게 낫다. 

하물며 눈앞의 혼종은 아무리 신들린 컨트롤의 소유자라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나는 재빨리 보유한 장비부터 체크했다. 

“오, 희귀 등급 뼈의 검? 난이도가 높아서 그런지 무기가 좋네. 이거면 가능할지도?” 

유효한 타격만 줄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갖고 있는 재능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혼종은 아직 완전하게 괴물이 되지 않았다. 

뚜둑! 뚜두둑! 

몸을 풀었다. 

불가능을 넘어선 도전. 

언제나 이런 도전은 대환영이었기에. 

“어디 한 번 놀아보자.” 

딸칵! 

씽긋 웃으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 

죽음이 확정된 미래. 

허나, 나는 미래를 바꾸는 자다. 

생존률 99.9%의 사나이. 

이 기록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구아아아아-! 

장장 두 시간의 사투 끝에. 

혼종이 쓰러진다. 

비명을 내지르고, 천천히 죽어갔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의 승리. 

“아······.” 

모든 기억을 살핀 이자벨라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기억이란 참 애매모호하다. 

확실하지 않은 기억은 제멋대로 재조립되기 마련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기억은 거짓이 됐다. 

나름의 합리화를 위하여 스스로 최면을 건 것이다. 

“내가, 계약을······.” 

계약을 했다. 

파랑새와. 운영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존재와. 

어차피 죽을 터이니, 살기위해 이 몸을 걸어보겠다고. 

그래서 죽음이 확정된 순간 이자벨라는 몸을 빼앗겼다. 

그리고 계약대로 살아남았다. 

실낱같은 희망. 

아니, 실낱보다도 더 적은 가능성에 의해. 

“······ 소노라.” 

결국 자신이 죽인 것이다. 

이 몸 한 번 건사해보겠다고 친구를 죽인 것과 같았다. 

죽고 싶었다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더 살고 싶었던 게다. 

누구를 탓할까. 

누구를 원망해야겠나. 

모든 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일어난 일. 

박현명은 그저 자신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내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욕할 수는 없으리라. 

-내 사랑스러운 아이야. 박현명, 그 남자는 너를 위해 ‘마혈왕’을 스스로 자신의 몸에 가두었단다. 

요르문간드가 말했다. 

사막여왕의 진짜 의도. 

마혈왕을 소환하기 위한 의식! 

이자벨라는 그 의식을 막고자 오염원을 자신이 받아들였다. 

-초월하며 그의 이름을 각성했음에도, 증오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는 마땅히 죽음을 감수했단다. 

하지만 마혈왕은 소환되지 않았다. 

소멸했다. 

란돌프에 의해. 

그것이 사실 란돌프가 아닌, 박현명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모든 걸 알고서도 그는 이자벨라를 구했다. 

진실을 알게되면 돌아설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란돌프가 죽으면, 박현명도 죽는단다. 하지만 지금의 란돌프는 박현명이 아니야. 새롭게 탄생한 존재, 혹은 저게 진짜 란돌프의 모습일 지도. 그러니 이제··· 선택하려무나. 너를 죽이고 그를 살릴지, 그를 죽이고 너를 살릴지. 

선택할 시간이었다. 

이자벨라는 다시금 박현명을 보았다. 

그의 기억, 그의 이야기를. 

‘고귀한 인간성.’ 

‘고결한 도전정신.’ 

오직 그 두 가지로 점철된 한 인간의 모습을. 

이자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미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과거엔 한 번 실패했지만. 

자신을 살리고 소노라를 죽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런 계약 없이, 온전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니까. 

“돌아오세요. 그리고······ 고마워요.” 

사막여왕을 죽이고, 여왕의 의도마저 모두 실패하게 만들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으리라. 

문득 소노라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혼종이 되어 죽기 직전. 

그녀는 말했다. 

-행복해야돼, 이자벨라. 꼭. 약속이야. 

이자벨라는 미소지었다. 

행복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더이상 미련은 없었다. 

스아아! 

이자벨라의 몸이 조금씩 흐려져간다. 

그녀는 틀림없이, 소멸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다시 소노라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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