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별의 계승자
직업(Class) : 지고의 검성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름과 직업.
이 두 가지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건 이 다음 부분이었다.
<능력치>
레벨 : 9
힘 : 146(114+32)
체력 : 144(112+32)
민첩 : 145(113+32)
지능 : 144(112+32)
성력 : 233(125+108)
······ 순간 잘못 본건가 싶었다.
앞자리가 다른 능력치가 있었으니까.
‘성력 233?’
가히 버그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
누군가가 봤다면 ‘치트키’나 ‘핵’을 썼다며 거품을 물 광경이었다.
성력은 마력이 전환된 것.
마력은 곧 그 존재의 ‘격’과도 맞물려 있었으니, 가라앉은 황제를 비롯한 심연의 지배자들이 나를 왜 ‘멸망’으로 착각했는지 알 것 같다.
‘이 정도로 능력치가 급격하게 상승할 수가 있는 건가?’
단순 증가치만 봐도 성력 75가 상승했다.
그 어떤 버프도, 축복도, 이 정도 수준의 증가율을 보이진 못한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엄청난 수준의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다른 능력치를 아예 증발시키는 수준의.
그러니, 나는 다급히 상태창을 읽어내려갔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부가 능력치>
자연 재생력 : 11,200%
전체 관통력 : 34.3(23.3+11)%
저주 관통력 : 15%
저주 반사 : 30%
저주 유지시간 증가 : 30%
숙련도 효율 : 900(450+450)%
전체 경험치 획득률 : 200%
“······?”
진짜 버그인가?
버그가 아니면 오류가 난 게 맞는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보는 나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니.
‘만 천 이백?’
4,000%에 육박했던 자연재생력이 갑자기 10,000%를 돌파했다.
2.5배가량이 상승한 셈이다.
뼈가 부러져도 반나절이면 원상복구될 수준의 경이로운 재생력이었다.
단순히 상처의 회복만 빠른 게 아니다.
‘육체가 손실되어도 복구된다.’
자연 재생력의 무서운 점은, 특정 지수를 넘어서는 순간 말 그대로 ‘재생’시켜버린다는 것이었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팔과 다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나리라.
바퀴벌레······ 그 이상 가는 생존능력을 획득했다.
뿐만인가.
‘전체 관통력 30%를 넘어서는 건 나도 처음보는군.’
성력이 가파르게 상승하여 전체관통력이 미칠 듯이 늘어났다.
방패나 갑옷의 방어력을 거즘 무시하는 처사.
1%가 소중한 전체 관통력이건만, 그게 무려 34.3%다.
‘저주받은 기천석도 한 방에 때려부수겠는데.’
저주받은 기천석을 힘겹게 때려부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수준의 전체 관통력이라면 한 방에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30% 이상의 전체 관통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인간 중엔 없을 터였다.
라이가도 30%에 도달하진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도 말이 안나올만큼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체 경험치 획득률이 생기고, 숙련도 효율이 두 배가 됐다.’
아마도 경험치 획득률이 숙련도 효율도 두 배로 올려준 듯싶었다.
숙련도 역시 경험치의 일종이었으므로.
다만, 숙련도의 효율을 올려주는 옵션은 있어도 전체 경험치의 획득률을 올려주는 옵션은 처음봤다.
‘경험치 획득률이야말로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지.’
레벨 10.
그 이상으로 향하려거든, 반드시 이 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과도 차원이 다른 경험치 필요량에 의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레벨 10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9레벨을 찍는 것도 힘겨웠는데, 10레벨은 필요경험치가 무려 10배다.
그건 내가 1레벨부터 9레벨을 최소 열 번은 찍어야 10레벨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진짜············.’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지금의 감상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미쳤다.
아니, 아니다.
미쳐버린 수준을 넘어섰다.
‘······ 예술이군.’
변화 하나하나가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나는 이제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건지 확인하고자 ‘특이사항’을 살폈다.
<특이사항>
1 : ‘별의 계승자 - 별 4개(모든 능력치+20)’ 보유
2 : ‘초월한 바알 세트’와 육체가 융합되어 관련 능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다시 해당하는 부위에 새로운 장비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3 : ‘영원의 란돌프’ 효과로 순수능력치가 보정되었습니다.
4 : ‘바알의 핵(멸망의 조각)’을 심장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5 : ‘망자의 왕’ 스킬로 순수능력치 힘(2)과 민첩(1) 성력(3)이 오른 상태입니다.
6 : 지고의 유일급 ‘겨울’ 사용자(모든 능력치 10상승, 모든 패널티가 50% 경감)
7 : ‘태고의 갑옷’ 레벨비례 전체 관통력 +9%
8 : ‘천마신공’ 6성(순수 성력의 1.6배 상승)
9 : ‘무한의 그릇’ - 능력치 상한 해제, 능력치 상한 해제에 따른 부작용 제거
10 : ‘탈각’ - 자연재생력 대폭 상승, 경험치 획득률 2배
‘······ 이래서였나.’
1번부터 7번까진 기존의 특이사항이다.
8번부터 10번까지가 새로 추가된 특이사항이었다.
천마신공 6성.
그로 인한 성력의 1.6배 상승!
한데, 부작용이 없다.
‘무한의 그릇이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완전하게 제거했다.’
악을 받아들이기 쉬운 체질이 되고, 한계를 넘어서면 폐인이 되도록 만드는 천마신공이다.
그 외에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부작용’이 존재할 것이다.
악신이 파놓은 함정이 틀림없이 있을 터.
그런데 ‘무한의 그릇’에 의해 한계가 없어졌다.
그 외의 다른 부작용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 사실을 알면 악신이 땅을 치고 통곡하겠군.’
나는 힐끔 천마도를 내려다보았다.
꽁꽁 숨어버린 악신.
-얘 이상해.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데?
그러자 ‘겨울’이 말했다.
나한테는 안 들려도, 비슷한 부류의 ‘겨울’은 악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내가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완전히 제거했음을 악신도 눈치챈 것이다.
작게 미소를 지었다.
‘6성이라.’
한계가 해제되며 천마신공의 성취가 급격히 늘어난 모양인데, 이대로면 대성까지도 무리없이 달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마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천마는 내가 천마신공을 익혔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겠지.’
천마신공을 익히긴커녕 악신에게 잡아먹혔으라 확신하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나는 악신에게 잡아먹히지 않았고, 도리어 악신이 판 함정을 돌파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을 취했다.
나는 다음 문구로 이동했다.
‘컬렉션과 숙련도.’
상태창의 확인도 점점 끝이 보이고 있었다.
<활성화된 컬렉션>
《‘빛의 옥좌’ + ‘겨울(최후의 황혼)’ = ‘눈부시게 시린 자리(전체 관통력 2%)’》
《‘최초의 불을 옮긴 자’ + ‘겨울(최후의 황혼)’ = ‘최초와 최후(모든 능력치+2)’》
<숙련도>
활 10Lv, 달인의 경지
검 32Lv, 검강 해제(피해량+60%)
+‘겨울(최후의 황혼)’에 의해 검 숙련도 레벨상한 35Lv까지 증가
* 30레벨 이후 피해량 5%씩 증가
다른 것들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하나.
‘히든 특성.’
<활성화된 히든 특성>
【허무】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비스트 로드】
【황금의 은총】
【돌연변이】
【탐욕】
【진리의 눈】
【하이드루이드의 대자연】
【마혈종의 신】
【영원군주 란돌프】
【천상(天上)】
이상 열 네가지.
영원군주의 심장과, 영원의 란돌프가 합쳐지며 하나가 줄어들었다.
그 외엔 딱히 특이점은 없으나.
‘히든 특성의 순서······ 천상은 여전히 마지막에 있다.’
의문이 생겼다.
이곳 ‘신의 섬’에 들어와 별빛을 모으며 히든 특성의 ‘순서’가 어떠한 역할을 한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모든 확인이 끝났다.
‘완벽하다.’
이보다 완벽한 상태창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아직 ‘영원군주 란돌프’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특성이 합쳐진 것이니만큼 알아가는 재미는 보장되어 있었기에.
“넌······ 뭐냐? 어떻게 심연의 괴물들을 물린 거지?”
돌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라이가.’
죽어가는 걸 주워오긴 했지만, 용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허나 여전히 상태는 좋지 못했다.
지금도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라이가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내가 두렵나보군.”
“······ 허. 내가 너를 두려워한다고?”
라이가는 부정했다.
허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혼란해하고 있다.
동시에 나를 두려워하는 중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하는 라이가.
하지만 그의 기준에서도 나는 미지, 혹은 신비 그 자체일 테니.
나는 가볍게 말했다.
“살고 싶지 않나?”
“······ 오문을 개방했다. 마지막 오문은 생명을 담보로하는 것. 게다가······ 마력이 모이질 않아. 난 머지않아 죽을 거다.”
라이가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죽음을.
가만히 놔두면 죽기는 죽을 테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의 죽음을 용인할 수 없다.
라이가에겐 알아내야할 게 많았으니까.
‘마력이 회복되는 족족 먹어치우는 무언가가 있다. 육안으로도 안 보일 정도로 작은 벌레. 건드려선 안 되겠군.’
가라앉은 황제가 다루는 작디 작은 벌레.
그게 라이가의 육체 안에서 마력을 먹어치우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건 건드려선 안 된다고.
“죽기 전에 알려다오. 네놈의 진짜 정체를.”
“넌 죽지 않는다.”
“··· 글쎄. 그게 가능했다면 전대 팔가의 주인들도 죽지 않았겠지.”
전대 팔가의 주인들도 오문을 개방하고 죽었다는 듯.
이미 체념한 얼굴이다.
“이대로면 팔가의 계승이 너의 대에서 끊기겠군.”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겠군.”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살 수 없다고······.”
“내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라이가를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동시에 라이가의 눈빛이 작게 흔들렸다.
곧이어 그가 입을 열었다.
“······ 뭐하는 놈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나를 살리려는 이유가 뭐냐? 우리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을 텐데.”
한바탕 서로 죽이려고 한 사이다.
그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했다.
나는 느긋하게 조건을 꺼내놓았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다. 내가 너를 살려낸다면 무엇이든 내 부탁 하나를 들어주기로 약속해라.”
“부탁이라······.”
“참고로 이 부탁은 네가 했던 모든 ‘맹약(盟約)’의 상위에 있는 약속이다. 할 수 있겠나?”
그러자 라이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모든 맹약.
황제, 혹은 팔가와 했던 것들보다 더 상위의 약속이라니.
“미친놈이 따로없구나. 내 목숨이라도 필요한 거냐?”
“선택해라. 이대로 죽을지, 아니면 살아서 팔가의 대를 이을지.”
“··· 제국을 배신하라는 약속이라면 나는 할 수 없다.”
“걱정마라. 네 신념에 위배되는 일은 아닐 터이니.”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멸망의 파편.
그 파편의 ‘버그’를 이겨내는 방법!
그거만 알려주면 된다.
이자벨라는 ‘가호’라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
라이가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 한 번 해봐라.”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라이가가 말했다.
전대 팔가의 후인들도 모두 실패한 일.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가했던 일을, 내가 어떻게 해내겠느냐는 듯이.
‘나 혼자선 불가능하겠지.’
라이가의 상태는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섰다.
별의 축복이나 엘릭서로도 저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저 벌레.’
마력을 먹어치우고 있는, 가라앉은 황제의 벌레.
저 벌레는 단순히 마력을 교란하고 먹어치우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라이가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에도 필시 도움이 될 터.
문제는 가라앉은 황제를 어떻게 설득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방법은 있다.’
그러나 내게 불가능은 없었다.
*
다음날.
라이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화, 황제······ 폐하······!”
생각보다 빠른 재회.
그의 앞에 가라앉은 황제가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가라앉은 황제에게 라이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며.
스아아아아!
청염을 불태우며 겁박을 했다.
나는 개의치 않으며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걸 찾으러 왔나?”
“······.”
꺼낸 물건은 작은 물병이었다.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찬 물병.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이게 무엇인지 나는 안다.
“너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이 안에 들어있더군.”
“······.”
“알아들었으면 거래를 하지.”
나는 재차 작은 물병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 물병을 얻게 된 경위는 간단하다.
단물 다 빠진 천마도를 천마에게 돌려준 뒤 물병을 받았다.
동굴 앞에 가라앉은 황제가 있었던 까닭이다.
처음부터 그는 나를 찾은 게 아니라 이 물병을 지니고 있던 천마를 찾았던 것이다.
“······ 무엇을 원하느냐.”
이윽고 가라앉은 황제가 말했다.
···무엇을 달라고 해야할까.
라이가의 치료? 그건 정말 부수적인 것이다.
물병에 들어있는 것의 가치를 안 이상 고작 라이가의 치료로 만족할 순 없었다.
천마는 물병의 가치를 몰라서 거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가라앉은 황제는 갖게 해줄 것이다.
이 물병은 가라앉은 황제의 가장 소중한 것이었으므로.
그와 동시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동일 인물이 아니로군.’
그 노인.
······ 나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그 노인은, 가라앉은 황제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