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교
CK방송국.
디맨션 워리어 전담 기자실.
다크서클이 만연한 김하나의 얼굴을 보며 서정아가 물었다.
“김원, 요즘 통 잠을 못 자나 봐? 무슨 일 있어?”
그러자 김하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알잖아요. 제보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는 거······.”
“음, 그러게. 영웅회가 망했다는 게 사실인가 보네?”
“예. 기정사실인 것 같아요. 더 이상 워리어들이 영웅회의 눈치를 안 보는 걸 보면.”
8영웅회.
그들은 현재 지구에서도 ‘거짓된 8영웅’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막힌 둑이 터지듯 디맨션 워리어들의 제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게 가능케 했던 사건의 발단은 타차원, 판게니아다.
발란 왕국의 왕과 대원정을 이끌었던 빌헬름의 측근 세렝게티가 공식적으로 그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에서의 영향력은 그대로일 텐데? 잘못했다간 암살 당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서정아의 의문은 일견 타당한 것이었다.
판게니아에서 8영웅회는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여신교를 비롯한 거대 집단들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금을 요구받고 있는데다, 상단들과의 거래도 끊겼다.
그들의 영광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된 도시민들은 도시를 떠났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륙의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는 상황.
허나 지구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수많은 디맨션 워리어와 강자들을 보유한 최강의 집단.
막대한 자금력과 무력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곳이 8영웅회였으니.
“내부적으로 분열이 있는 모양이에요.”
김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동시에 서정아의 동공이 커졌다.
“내부분열? 그게 무슨 소리야?”
“다크스타와 루시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구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
“헐, 대박. 완전 특종감 아니야? 김원은 누가 이길 거 같아?”
“음, 글쎄요. 지금은 그거보다 다른 일이 더 바빠서요.”
“뭐?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다고??”
서정아가 어이없다는 듯 김하나를 쳐다봤다.
8영웅회의 몰락과 내부분열!
관련 기사를 쓰기만 해도 특종은 따놓은 당상이다.
게다가 김하나는 8영웅회와 관련된 기밀을 많이 알고 있었다.
아마도 최초로 그라시아와 인터뷰를 한 기자이기 때문이리라.
뿐만인가.
제주도 소실 사건 때 김하나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게 암암리에 디맨션 워리어들 사이에는 알려져 있었다.
그로 인해 철저한 익명보장과 함께 김하나에게 ‘특종’을 제보하는 디맨션 워리어의 숫자는 이미 상당한 지경.
만약 8영웅회와 관련된 칼럼이나 기사를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올해의 퓰리처 상조차 수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다는 거야?’
서정아의 눈에 궁금증이 가득찼다.
곧이어 그녀의 눈이 김하나의 수첩으로 향했다.
“설마 ‘란돌프’ 관련?”
“······ 예.”
“에휴, 이 사람아. 그야 란돌프도 대단한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딱히 지구에서 뭘 한 것도 없는 사람 취재해서 뭐 어쩌려고?”
란돌프라는 이름은 이제 지구에서도 유명하다.
지구에서 딱히 뭘 해서 유명한 건 아니다.
디맨션 워리어들의 언급에 의해 유명해졌을뿐.
특히 최근들어 ‘란돌프’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어서였다.
-디맨션 워리어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역시 그라시아나 다크스타겠죠?
-당연히 란돌프 님이죠.
-예?
-그분께서 모든 시련을 끝내면 지상에 강림하시어 세계를 구원할 겁니다. 팬텀교 만세!
······ 이런 식이었다.
어느 인터뷰를 진행해도, 관련된 내용을 물으면 항상 ‘란돌프’가 나왔다.
그로 인해 디맨션 워리어들 사이에선 란돌프를 신으로 모시는 ‘팬텀교’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란돌프는 지구에 나타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가 정말로 지구를 구원할까요?
-헤라클레스도 열 두 개의 과업을 달성하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분께서도 완성되기 전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팬텀교 만세!
팬텀교 만세를 부르짖는 그들은 하나의 의식처럼 양 손가락 끝을 모아 큰 원을 만들었다.
그 손모양은 팬텀교만의 시그니쳐,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이쯤되자 기자들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중 한 인터뷰가 세계적으로 화자되었다.
-란돌프는 대체 어디서 무슨 과업을 하고 있는 겁니까?
-란돌프 님께선 현재 11번째 과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과업······ 디맨션 워리어들이 한다는 과업과 같은 건가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저희가 나무를 본다면 그분은 산을 보고 들어버리는 분이니까요. 과업의 이름만 같을 뿐 하늘과 땅, 아니, 우주의 차이가 있습니다.
-11번째 과업은 어디서 진행되는 거죠?
-심연.
-시, 심연이라면······! 분명히 한국의 제주도 소실 사건 때도 비슷한 단어를 본 것 같은데요.
-예, 마스터가 살아있을적에 공식적으로 선언했었죠. 제주도는 심연에 가라앉았다고.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제주도를 소실 시켰던 괴물과 같은 괴물들이 우글대는 그 심연에, 지금 란돌프가 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신거죠?
-심연의 괴물을 사냥하고 계실겁니다.
-설마 제주도를 소실시키려했던 바알과 같은 괴물은 아니겠죠?
-글쎄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저희는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란돌프 님께선 항상 모든 전사들의 예측을 뛰어넘으셨다는 겁니다.
-예측을 할 수 없고, 예측을 해봤자 그 모든걸 뛰어넘는다······?
-예. 그럼에도 모든 전사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과연 란돌프 님이 심연에서 어떤 괴물을 사냥할지. 그리고.
-······?
-란돌프 님은 지구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닙니다. 타 차원에서 괴물들이 지구를 침략하지 못하게끔 ‘원천차단’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첫 침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 전적으로 란돌프 님 덕분입니다.
-······?! 자, 잠깐만요. 첫 번째 침략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많았죠.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언급을 안 한 걸로 아는데요.
-그야 란돌프 님 혼자서 ‘망자왕 아흐람’을 죽였으니까요. 당시엔 저희들도 믿지 못했습니다. 뭔가의 오류 같은 거라고 생각했죠. 그게 가능하리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언급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해당 인터뷰와 동영상은 불과 3일 만에 1억 뷰를 달성하며 전 지구적으로 화제가 됐다.
란돌프에 관한 인식이 완전히 뒤바뀐 사건.
그간 거짓된 영웅들에 의해 감춰진 진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과연 감춰진 진실이 저것 하나뿐일까?
‘너무 많아.’
김하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특히 대원정과 란돌프와 관련된 것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야.’
의도적으로 대원정을 폄하하고, 란돌프를 깔아뭉개고 있다.
관련된 사실들이 세상에 나오면 절대로 안 된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대원정과 란돌프를 감추려는 걸까?
‘단순히 대원정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참가했다고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야.’
그것도 큰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보다 더 들켜선 안 되는 진실이 있다.
들켰다간 회생불가의 타격을 입을 진실이.
‘어쩌면······ 마왕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몰라.’
만에 하나, 그들이 마왕과 관련되어 있다면?
대원정을 방해한 걸로도 모자라 아예 원정군을 팔아넘겼다면?
타차원의 개방, 지구로의 침략, 그 모든 것들의 시작은 ‘대원정’이다.
대원정의 실패 이후 두 세계간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원인이 사실 8영웅회에게 있다면?
‘악당이 구원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격이지. 절대로 용서 못 해.’
김하나는 란돌프에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8영웅회와 대원정에 관해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파고들면 들수록, 8영웅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들이 저질러 온 거짓말들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시름에 잠긴 김하나의 표정을 보며 서정아가 물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8영웅회에 집중하지?”
“그럴까요?”
“음?”
갑작스러운 반응에 서정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김하나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8영웅회에 인터뷰 요청, 해야겠어요.”
“뭐?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메이저 언론사 인터뷰도 전부 거절하고 있다던데, 과연 받을까?”
“받아들일 거예요. 둘 중 하나는.”
“······?”
“저들이 지금 다급하게 찾고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지 저는 알고 있거든요.”
“······???”
*
어두운 밀실.
비밀리에 이루어진 회담.
다크스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반대편에 앉은 김하나를 바라봤다.
“······ 그라시아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다크스타와 루시퍼는 그라시아를 찾고 있었다.
내부가 정확히 둘로 분열된 상황.
그라시아를 다시 영입하는 자가 영향력을 가질 건 당연지사였으니.
이후 내부를 결속하고 다시 힘을 키우려면 일단 루시퍼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다크스타의 물음에 김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지만, 그 전에 먼저 물을 게 있어요.”
“뭐지?”
“란돌프가 빌헬름인가요?”
“······ 그런 소문이 있긴 하지.”
“확답을 원해요.”
다크스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란돌프가 빌헬름이라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
플레이어들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의 증거는 없는 상황.
툭. 툭.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던 다크스타가 끝내 입을 열었다.
“맞다. 우리도 최근에야 확신하게 됐다만.”
“그렇군요.”
김하나의 표정이 편해졌다.
이제야 모든 게 들어맞는 기분.
“그라시아는 어디있지?”
“루시퍼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나요?”
“그라시아만 있으면······ 젠장, 솔직히 그라시아가 있어도 반반이다. 그러니 말해라. 그라시아는 어디있지?”
다크스타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중에겐 절대로 보이지 않는 모습.
상상 이상으로 몰려있다는 증거였다.
“루시퍼가 그렇게 강한가요? 현재 영웅회의 주인은 그쪽인 걸로 아는데.”
“마스터도, 나도 얼굴마담일 뿐이다. 놈은 뒤에서 모든 걸 조작한다. 우리는 놈의 의도대로 움직였을 뿐이야.”
이러려고 약한 모습을 보인 건가?
불쌍한 척, 구정물에 담근 발을 조심히 빼내려고 말이다.
다크스타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대로 루시퍼에게 영웅회가 넘어가면 지구는 파멸할 거다. 루시퍼는 실제로 교만의 악마와 손을 잡은 놈이니까. 원정군도 팔아넘긴 놈이 지구라고 안 팔아넘기겠나?”
“······ 대원정과 루시퍼가 관계가 있다는 건가요?”
굳이 묻지 않아도 술술 분다.
그만큼 그라시아의 행방이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모든 죄의 값을 루시퍼에게 돌려 회생할 생각인 게 분명했다.
김하나는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추악할 수가 있을까.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이미 말을 다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루시퍼는 악마와 계약했고, 대원정의 실패와도 긴밀하게 관계가 있노라고.
“그라시아와 둘이 힘을 합쳐도 5 대 5라고 했는데, 루시퍼는 얼마나 강한거죠?”
“······ 대체 몇 개나 질문할 생각이지? 하여간 루시퍼의 정확한 무력은 아무도 모른다. 놈이 지닌 ‘천사상’ 때문에 싸움을 걸 수가 없으니까.”
“‘천사상’이요?”
“그래. 그게 있는 이상 이길 순 없다. 하지만 질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그라시아가 필요한 거다. 아니면··· 란돌프가 과업에서 루시퍼를 뛰어넘든가.”
“과업이라면··· 현재 진행 중인 11번째 과업을 말하는 것이겠군요.”
“잘 알고 있군. 루시퍼는 11번째 과업에서 심연의 지배자 중 하나인 ‘허망의 왕자’를 사냥하고 천사상을 얻었다. 전사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일화지.”
“허망의 왕자라······ 란돌프가 심연에서 그 이상가는 괴물을 사냥한다면요?”
“불가.”
다크스타는 확신했다.
이에 김하나가 의아해하자 다크스타가 첨언하였다.
“물론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심연은 혼자서 어찌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필요한 곳이다. 하물며 심연의 지배자를 사냥하는 건 한 국가가 명운을 걸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판게니아에서 심연을 공략할 여력이 되는 곳은 제국뿐이다.
그러나 제국이 란돌프를 도와 심연을 공략할 리가 없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고, 소수로 공략하려면 막강한 조합이 필요한데.
‘팔가 기사단이라도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다크스타가 혀를 찼다.
황제의 검이라는 팔가 기사단이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허망의 왕자’ 이상의 괴물은 심연에서도 좀처럼 없다.”
“그럼에도 해낸다면요?”
그러자 다크스타가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이제 보니 란돌프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여자였군. 그 이상을 해낸다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래, 나도 팬텀교에 가입하도록 하지.”
*
쿵! 쿵!
거대한 굉음.
라이가가 눈을 떴다.
‘으음······.’
하지만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육체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탓이다.
겨우 곁눈질로 눈만 돌릴 수 있었다.
‘염소?’
그런데 근처에 익숙한 얼굴이 있다.
··· 염소다.
더욱이 놀라운 건 자신이 타고 있는 것이었다.
‘바알······?’
정통의 사신으로 바알을 소환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걸 탈것마냥 타고 있을 줄이야.
고대의 제국에서도 사흉을 타고다녔다는 기록은 없다.
바알을 탈것으로 부리는 자는 염소가 유일할 것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오오오.
··· 옆에서 묘한 소리를 내는 골렘.
‘무덤의 주인······?!’
무덤의 주인이 대체 왜 염소와 함께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그 상황에서 염소가 자신을 구한 건가?
대체 어떻게?
가라앉은 황제와 천마.
수많은 심연의 지배자들이 함께 있는 곳이었건만.
‘꿈인가?’
라이가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