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33화 (233/317)

당신을 죽이고 싶습니다. (1)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라! 

기존 백성전의 기조와는 전혀 다른 존재의 출현. 

하지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순수의 성좌는 ‘가장 높은 별’이 되었던 자. 

모든 성좌가 바라고 마지않는 꿈을 실현한 자였으므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순수의 성좌가 출현한 뒤 시작된 다른 성좌들의 변화를. 

이제는 예전처럼 미온적으로 인간들을 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나를 통해 알게 되었을 테지. 선택한 인간의 성장이 성좌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은 상상 이상이라는 걸.’ 

성좌들은 모두 집필자 란돌프를 탐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란돌프는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만이 구독한 상태. 

란돌프의 성장은 그를 성장시켰고, 더욱 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백성전의 모든 성좌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모두 란돌프의 이야기가 그를 윤택하게 만든 덕분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란돌프의 가치가 이 정도였던 건 아니다. 

‘성좌의 지대한 관심은 인간을 빠르게 성장시킨다. 그러니 제 2의 란돌프를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보군.’ 

대부분의 성좌는 제 2의 란돌프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자질이 있는 인간을 선택하고, 구독하며 강화시키는 중이다. 

몇몇 성좌는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간섭하며 성장을 독려하고 있다. 

그간 보였던 성좌들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행태. 

심지어 극소수의 성좌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사도 계약’을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인간을 자신의 사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과열된 경쟁구도지.’ 

전쟁이 따로없다. 

다른 성좌가 키운 인간을 죽이려는 자도 있었다. 

아니면 어떻게든 강탈하여 계약하려 들거나. 

마치 영광스러운 존재로서의 자각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래선 제 2의 란돌프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란돌프는 모든 성좌의 관심에 의해 가파르게 성장한 것이었으니. 

“자질이 있는 존재를 키운다. 그것이 성좌의 존재이유다. 란돌프는 훌륭하지만,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그 하나에만 목매기엔 아깝지 않나?” 

순수의 성좌. 

그가 다가와선 말했다. 

떠보는 건지, 진심인지 모를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란돌프는 더 강해질 거다.”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처음부터 보아온 란돌프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으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래, 강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현재 란돌프가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 

“게다가 그대의 별빛이라면 다른 인간을 키우는게 더 효율적일텐데?” 

···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란돌프의 레벨은 9.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경험치에 막혀 더 이상 레벨업이 불가한 상태다. 

아직 강해질 여지가 남아있는 건 분명하고, 여러 방식으로 무력을 키우고는 있으나, 가장 중요한 레벨이 밀린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웠다. 

레벨이 오르거나 초월할 때의 이야기만큼 성좌를 빛나게 해주는 요소는 없었다. 

고로, 란돌프의 이야기는 단순히 ‘효율’만 따져본다면 극악에 가깝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인간들도 두루 키우는 게 낫지 않느냐고 순수의 성좌는 묻고 있는 것이다. 

“······ 꺼져라. 네놈과 나눌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는 대화를 원천 차단했다. 

놈의 미혹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놈이 백성전에 필요한 존재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흠. 그대의 선택이 정답이길 진심으로 바라지.” 

어깨를 으쓱한 순수의 성좌가 자리에서 멀어졌다.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궁금한 건 많았다. 

놈의 방식과, 놈이 키우고 있는 존재와, 진정한 놈의 정체 따위가. 

다른 백성전의 존재에 대해서. 

그러나 관심을 접었다. 

지금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에게 ‘순수의 성좌’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란돌프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했나?’ 

······ 과연 저 모습을 봤다면, 란돌프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더라면,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그가 시선을 옮겼다. 

이후 란돌프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었으니까. 

【‘웨폰 마스터의 별빛’을 찾았습니다.】 

【공격력 4, 체력 4】 

【‘웨폰 마스터의 별빛’을 착용했습니다.】 

【‘별의 기억’이 완성되었습니다.】 

【보유한 모든 ‘별빛’의 공격력과 체력이 1씩 증가합니다.】 

【공격력 총합 40, 체력 총합 40】 

【숨겨져있던 ‘별빛’이 지도상에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별빛을 찾은 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부 다 찾아도 60이 안 된다?’ 

자신을 ‘별의 감옥’으로 이감시킨 끔찍한 흉조의 공격력과 체력은 각각 60이었다. 

마찬가지로 별빛을 전부 모으면 자신 역시 그 수치에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거늘. 

전부 모았음에도 그에 한참 못 미치는 40이라. 

‘내가 가진 여덟 개의 히든 특성. 놈은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보유했다는 말인가?’ 

신의 섬에 도착하고 반나절도 안 되던 시기. 

밤이 되기도 전이라, 숨겨져 있던 별빛을 찾지 못했을 때였다. 

당연히 자신과 똑같이 일반적인 별빛만 모았을 테고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공격력 60과 체력 60이라는 수치였다. 

원정 대결이 펼쳐진 순간 보인 숫자였으니 틀림없었다. 

‘나보다 많은 히든 특성이라······.’ 

천마가 턱을 쓸었다. 

끔찍한 흉조. 

놈이 자신보다 많은 ‘히든 특성’을 지닌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단순 수치만으로도 1.5배다. 

그럼 자신보다 1.5배 많은 히든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인지.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최소 12개의 히든 특성을 갖고 있다는 거냐?’ 

······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열쇠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히든 특성은 12개가 한계다. 

그것도 이야기만 전해질뿐 모두 가진 자는 없었다. 

누군가가 갖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적어도 그는 본 적이 없다. 

그럴진대······. 

이 공격력과 체력의 차이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숨겨진 조건을 만족한 것이겠지.’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 섬은 본인이 지닌 ‘별의 기억’을 따라가는 장소. 

빠르게 별의 기억을 완성한 뒤 다른 도전자들을 꺾는 게 요지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숨겨진 별이 있고, 규칙이 있으며, 보물 또한 존재한다. 

그 ‘숨겨진 무언가’를 찾는 자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건 당연한 일. 

끔찍한 흉조는 분명히 ‘숨겨진 무언가’를 찾은 것일 터였다. 

“쯧.” 

천마는 혀를 찼다. 

신의 살갗 혼종이 파놓은 의식을 따라가주려 했거늘, 이래서야. 

‘밤이 되면 놈을 찾는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이다. 

밤. 

규칙에 따라 저녁이 되면, 어차피 대결은 펼칠 수 없다. 

전투를 벌이면 ‘밤의 악령’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악령이 찾아오기 전에 놈을 죽이고 자리를 뜨면 그만 아닌가? 

간단한 일이다. 

이쪽이 더 천마의 적성에 맞았다. 

‘천마도는 나의 것이다.’ 

무엇보다, 천마도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천마도는 오로지 천마만이 쥘 수 있는 무구. 

그런데 허튼 자가 쥐었으니 지금쯤이면 그 대가를 고스란히 받고 있을 터. 

정신이 나간 광인을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 

천마는 얌전히 밤이 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밤의 악령’들의 변신이 풀렸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밤의 악령’은 넷입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자벨라는 동굴의 입구로 다가갔다. 

어느덧 밤이 됐기 때문이다. 

【변신이 풀렸습니다.】 

【‘밤의 악령’이 되었습니다.】 

화아아아악! 

전신에서 일어나는 검은 기운. 

악령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자벨라는 천천히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양손엔 피가 흥건했다. 

모두 이자벨라 자신의 피였다. 

“나는 여전히······ 나약하군.” 

한낱 미혹에 흔들렸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별빛이 보여준 기억. 

그게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이곳은 심연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다. 

그러니······ 거짓일 것이다. 

자신과 란돌프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그딴게 진실일 리가 없지 않나. 나를 조종한 게 란돌프님이라니······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니······.” 

이자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시작된 부근부터, 그녀의 삶은 지옥이었다. 

뱀 공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던가. 

사막여왕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이, 오로지 살아남고자 뼈가 부서져라 발악을 해왔다. 

몸이 성한 날이 없었고, 자신의 의지를 지운 채 한낱 인형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영문도 모른 채로.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원망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란돌프 때문이었다니. 

란돌프가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며, 저 몸도 그저 조종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 아서라.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백보, 천보를 양보해도 정말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란돌프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건 다른 것을 조종하는 조종자가 보일 수 없는 태도다. 

그러니, 이 모든 건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심연의 수작이 분명했다. 

란돌프는 빌헬름의 후계자다. 

세렝게티가 직접 인정한 사실이었다. 

고로······ 란돌프가 ‘신병’을 유발하는 존재일 리는 없었다. 

‘흔들리지 말자, 이자벨라.’ 

저딴 저질스러운 유혹에 흔들리는 것 자체가 아직 자신이 나약하다는 증거다. 

이자벨라는 고개를 털어냈다. 

더는 흔들려선 안 된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밤의 악령이 왜 여기있지?” 

누군가가 동굴의 앞으로 나타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를 본 즉시 이자벨라의 동공이 커졌다. 

‘천마!’ 

악령들은 도전자들의 정보를 미리 어느정도 숙지할 수 있었다. 

나타난 남자는 천마였다. 

······ 이건 기회다. 

천마를 떨어트릴 절호의 기회! 

참가자들 끼리는 대결을 펼칠 수 없지만, 밤의 악령은 밤에도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공격력 500, 체력 500이라는 무적의 수치로 말이다. 

지금 대결한다면 필승이다. 

마음을 먹은 이자벨라가 움직이려 할 때였다. 

고오오오오-! 

쿵! 쿵! 쿠르릉! 

수풀을 헤치며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거체를 본 이자벨라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무덤의 주인!’ 

고대의 골렘. 

심연의 지배자이자 절대자인 골렘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함께 나타났다. 

그것도 굉장히 공격적인 기세로. 

천마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란돌프를 노리는 것일 터. 

누구를 노리는 거지? 

······ 동시에 두 명과 대결을 펼칠 수는 없다. 

만약 무덤의 골렘이 란돌프를 노리는 것이라면 최악의 상황이다. 

천마를 노리려고 움직이면, 그 빈틈에 무덤의 주인이 란돌프를 죽일 테니. 

“움직이지 않는군. 아니, 동굴을 지키는 건가?” 

천마가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가? 설마 소멸을 각오하고 동굴 안의 존재를 지키는 건 아니겠지?” 

저들은 밤의 악령이 누구인지 모른다. 

허나 이자벨라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렴풋이 눈치챈 듯싶었다. 

이자벨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마따나, 아침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둘 다 죽는다. 

그녀도, 란돌프도. 

무덤의 주인과 천마가 싸우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 둘은 동굴의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란돌프만 노릴 생각이다. 

왜? 

‘란돌프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자들이구나!’ 

란돌프가 취한 2승이 저 둘인 모양이다. 

잃은 것을 되찾고자, 란돌프를 죽이고자 밤에 찾아온 것이다. 

천마와 무덤의 주인이 싸울 일은 없다는 의미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자벨라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하지? 

······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앙! 

마치 폭격처럼, 하늘 위에서 내리꽂은 거대한 검 한 자루. 

정확히 천마를 노리며 폭발했다. 

“쿨럭!” 

바닥에 먼지와 함께 가라앉은 천마가 터져나간 마력의 폐해에 한움큼 피를 토해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본능적으로 강기를 두르지 않았다면 온 몸이 두동강 날 뻔했으니. 

자신의 호신강기를 뚫고 내상을 입혔다. 

그 정도의 괴물은 더 깊은 심연에도 거의 없건만.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 위로 시선을 옮겼다. 

“넌······ 네놈은 누구냐?” 

다그닥, 다그닥. 

하늘 위에 떠오른, 청염의 불꽃을 피우는 말 한 마리. 

그 말을 탄, 검은 용의 형상이 새겨진 갑주와 투구를 착용한 남자가 한 명. 

그는 세상을 오시하듯 느긋하게 하늘에 올라 천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그를 보자마자 이자벨라는 전율했다. 

저 청염의 말을 탄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괴물인지도 말이다. 

··· 그는 정복하는 자였다. 

유일무이하며 전무후무한 지배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가라앉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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