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31화 (231/317)

별빛, 영원의 란돌프

“감히······.” 

천마. 

별의 감옥에 이감되었던 그가 풀려났다. 

다시금 ‘신의 섬’에 흘러들어온 그는 짙은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감히 나의 천마도를 가져가다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오로지 천산의 교주만이 가질 수 있는 신기가 바로 천마도였다. 

그것을 웬 처음 보는 놈에게 빼앗긴 것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쿠릉! 쿠쿠쿠쿵! 

그저 살기를 흩뿌리는 것임에도 주변의 지형이 변했다. 

‘허나 지금쯤이면 죽거나 미쳤을 터.’ 

천마가 애써 살기를 억눌렀다. 

다시 아무것도 못 해본 채 ‘별의 감옥’에 이감될 수 없는 노릇. 

어차피 천마도를 가져갔다면 놈은 이미 죽거나 미쳤을 것이다. 

천마도에 잠든 악신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천마신공을 익힌 자 외에 다른 이가 천마도를 만지면 그것만으로도 전신이 부풀어 터지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미치광이 살성(殺星)이 되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던가. 

설혹 천마신공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인간임을 포기해야만 한다. 

뭐가 됐든 천마도를 가져간 놈이 멀쩡할 일은 없다. 

천마도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신의 살갗 혼종······ 네놈이 무슨 의도로 이딴 의식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섬에서 치러지는 모종의 의식. 

일견 오락처럼 보이지만 의도가 담긴 거대한 의식이었다. 

하여 ‘별빛’을 모으지 않았으나, 당해보니 알겠다. 

‘오냐. 승자를 바란다면 승자가 되어주마.’ 

최후의 승자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걸. 

그러기 위해선 ‘별빛’을 모아야 한다는 것도. 

별의 감옥에 이감된 천마는 나름의 규칙들을 숙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천마도를 강탈해간 놈의 정체 역시 알았다. 

‘네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주마, 끔찍한 흉조여.’ 

고작해야 끔찍한 흉조. 

멸종했을 터인 흉의 일족이 왜 심연의 바닥에 처박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천마도와 자신의 마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절대로. 

악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모든 색을 물들이는 검은색이다. 

그럴진대 이 인간은 물들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이다. 

자신보다 더욱 진한 검은색만이 물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순수한 악일지니!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 인간이 자신보다 악하다고? 

순수한 악으로서 평생을 살아왔던 그보다 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온갖 ‘악의 정점’으로 군림해왔건만. 

그럼 이 인간은······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러왔기에, 자신보다 더욱 진한 검은색이란 말인가! 

-네놈은··· 뭐냐? 

잠깐 다른 부류의 ‘악신’인가 생각해봤지만, 아니다. 

이놈은 악신이 아니다. 

그런 주제에 세상에서 가장 진한 검은색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마치 우주에 간혹 생겨나는 초중력의 구멍과도 같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무(無)의 세계. 

-인정할 수 없다. 네놈이 나보다 더 악하다는 것을! 

더없이 순수한 악. 

그건 자신이어야만 했다. 

악신인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영역을 침범당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생각이 바뀌었다. 죽거라. 

놈을 죽이고, 빼앗는 것. 

어차피 이곳은 그의 공간. 

만물이, 천태만상이 그의 손안에 있는 곳. 

이곳에서 놈은 자신을 결단코 이길 수 없다. 

의념을 담아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툭! 

곧이어, 정신이 스러졌다. 

머지않아 육체의 생기도 사라질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대가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쯧.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만, 조금은 아쉬웠다. 

이 인간의 재질은 정말로 뛰어났으니까. 

자신보다 더한 악을 지녔다는 건 인정할 수 없지만, 이 인간의 재능만큼은 확실했다. 

악신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란돌프의 육체를 살피곤 감탄했다. 

-천년무제라 칭해지던 역대의 천마들과도 비교가 안 되는구나. 

악신의 공부를 이으려던 천산의 천만 신도들. 

그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무재들만이 천마도에 도전할 수 있다. 

그렇게 수백, 수천 년간 이어져 왔으니 절세의 기재들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교가 안 된다. 

천재 중의 천재라 칭해지던 그 기재들도 이 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만년무제. 

아니, 그 이상인가? 

-본질은 인간이다. 아직 인간을 버리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라. 

악신은 란돌프의 정체성을 단번에 간파했다. 

여러 가지 성질로 겉을 가려놨지만, 그 본질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놈은 아직 인간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하기야 이 정도 자질을 지니고 있다면, 인간을 버리지 않아도 됐을 테지. 

인간을 버린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는지 상상조차 안 간다. 

-인간을 버린다면 천마신공을 대성할 수 있었을 터인데······. 

자신 외에 아직 역대의 어느 천마도 천마신공을 대성하지 못했다. 

그나마 현재의 천마가 가장 근접하긴 했지만, 대성까진 멀었다. 

허나 이놈의 자질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 자질을 현재의 천마에게 옮길 수 있다면······ 자신의 봉인은 완전하게 해제되리라. 

자신을 가둔 천마도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대법(大法)을 사용해야겠군. 

자질을 흡수하여 옮긴다. 

10할 전부를 옮기진 못하겠으나 충분하다. 

영혼을 먹어치우는 대법. 

악신이 란돌프의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하여 심장에 손이 닿은 순간. 

“······ 드디어 닿았다.” 

인간이 눈을 떴다. 

두근! 두근! 두근! 

멈춰있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악신이 인상을 구겼다. 

-분명히 죽었을 터인데······? 

심장이 멈췄다. 

영혼 역시 스러졌다. 

그게 전부 연기였다고? 

설령 연기라 할지라도, 왜?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죽은 척을 한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악신은 이윽고 알 수 있었다. 

-너··· 넌······ 이건······?! 

···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다는 걸. 

여러 가지 성질로 가려놨던 것들. 

본질인 인간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조차도 가림막에 불과했다. 

심장에 닿자 악신은 인간의 정체를 드디어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심장에 새겨진 수많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시작은 끔찍한 흉조였다. 

이어 어둠을 피우는 자가 되고, 사흉 바알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한낱 인간이 담기엔 너무 많다. 과하다. 넌······ 너넨 뭐냐?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멸망의 파편, 그리고 절망의 영혼까지! 

끝없이 튀어나온다. 

마치 생물처럼 움직이며 모두가 악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극에 이른 악(惡)들. 

게다가 유기체처럼 엮여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합쳐져 자신을 뛰어넘는 ‘지고한 순수악’이 된 것이다. 

이것들을 고작 인간이 엮어냈다? 

아서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악신은 몸을 움찔거렸다. 

인간에게서 투영된 것. 

란돌프가 아니다. 

그 너머, 이 몸을 움직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느껴졌다. 

-‘존재할 수 없는 존재’······.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그제야 악신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놈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없고, 나타나서도 안 되는 것! 

-탐욕의 악마······! 

【‘끔찍한 흉조’를 선택했습니다.】 

【‘끔찍한 흉조’가 지닌 ‘별빛’이 세팅되었습니다.】 

【아침 동안 공격력 76, 체력 70이 적용됩니다.】 

【‘끔찍한 흉조’의 대결 전적은 2승 0패 0무입니다.】 

‘밤의 악령’은 아침 동안 다른 참가자를 흉내 내야만 한다. 

그래서 이자벨라가 택한 건 당연히 끔찍한 흉조, 란돌프였다. 

란돌프라면 확실하게 선두에서 달려나가고 있을 테니까. 

‘태양이 떠 있을 동안 최대한 많은 도전자를 감옥에 이감시켜야 해.’ 

하지만 절대로 란돌프를 만나선 안 된다. 

만나는 즉시 자신이 가짜라는 게 들통날 테고, 그 순간 이자벨라는 소멸할 것이었다. 

하여 신중해야만 했다. 

지금쯤 란돌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상하고 움직여야만 한다. 

‘······ 벌써 2승. 역시 란돌프 님.’ 

단순히 모습만 변하는 게 아니라 이런 내용도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자벨라가 봄바람같이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상대로 란돌프는 게임의 핵심을 간파한 게 분명했다. 

고작 하루 만에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2승.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밤의 악령’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더 많았다. 

‘밤에만 얻을 수 있는 최상급의 별빛. 유일황제의 별빛을 지녔다는 건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셨다는 뜻이겠지.’ 

2승을 한 란돌프는 한차례 밤을 맞이하고, 유일황제의 별빛마저 가져갔다. 

즉, 아침이 된 지금은 어딘가에서 숨을 돌리며 자신이 얻은 것을 정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자벨라는 란돌프를 잘 안다. 

이미 일반적인 별빛의 세팅도 마쳤고, 대결도 치러서 악령에게 쫓길 일은 없으니 아침에는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더 확실하게 최상급의 별빛을 수거한 다음 단번에 몰아치리라. 

내일이 되어 다시 한번 ‘끔찍한 흉조’로 변해보면 더욱 일목요연해지겠지. 

그렇다면 이자벨라가 할 일은 간단명료했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 놈을 내가 제거해야만 한다.’ 

······ 그 가공할 괴물을 없애야 한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괴물은 오직 나아가며 승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모든 걸 먹어치운 뒤 태어나고자 발악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동시에. 

‘란돌프 님의 별빛을 내가 찾아놔야 해.’ 

별빛이 새겨진 지도. 

그곳에 반짝이며 빛나는 별빛들이 있었다. 

물론 밤의 악령은 별빛을 가질 수 없다. 

둔갑한 상대가 세팅해놓은 별빛을 흉내만 낼 뿐. 

그러나 별빛의 주인이 별빛을 갖도록 유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체가 발각되면 소멸한다고 했지, 소통해선 안 된다고 하진 않았으니까.’ 

란돌프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 따위로 새겨놓으면 그만이다. 

더불어 그 별빛에 다가오는 다른 침략자를 밤이 될 때까지 막으면 된다. 

그게 그녀가 란돌프를 돕는 길이었다. 

마음을 먹은 이자벨라는 지도를 살피며 란돌프의 별빛들을 찾아 나섰다. 

“아······!” 

그렇게 섬의 중심부에서, 한 개의 별을 찾을 수 있었다. 

【‘영원의 란돌프’ ★★★★★】 

【‘밤의 악령’은 새로운 별빛을 보유할 수 없습니다.】 

찾았다. 

이자벨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란돌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별빛! 

하지만 아직 찾기만 했을 따름이다. 

이걸 수많은 도전자들로부터 밤이 될 때까지 지켜내야만 한다. 

다른 도전자가 이 별빛의 이름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란돌프가 이 별빛을 취할 수 있게끔 해야만 했다. 

현재 란돌프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근처에 왔을 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별빛에 다가간 이자벨라가, 어떤 방식으로 표식을 해놔야 하는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영원의 란돌프’ 별빛이 지닌 기억을 살핍니다.】 

이윽고 별빛에 새겨진 기억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에 그려지더니 이내 현실감 있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이자벨라의 표정은, 기억이 진행될수록 점차 어두워졌다. 

마침내 별빛에 새겨진 모든 기억을 살폈을 때. 

“······ 아아.” 

이자벨라는 몸을 비틀거렸다. 

두 눈가가 가파르게 떨리고, 동공은 더할 나위 없이 확장되었다. 

안색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 마치 절대로 보아선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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