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흉물스러운 악신
“······.”
이자벨라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을 넘자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파도가 일렁이는 망망대해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섬 하나.
모래사장, 끝이 보이지 않는 숲, 그리고 뭉툭 솟아오른 거대한 산.
그 외엔······.
“뭐야, 너도 왔냐?”
“도망친 줄 알았던 견습이 여기 있네?”
······ 팔가의 기사들.
기존의 참가자들 외에, 문을 넘어 들어온 건 그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모두 라이가 기사단장을 전적으로 따르는 강자들이다.
숱하도록 심연을 드나든 탓에 정신이 나가버린 진짜 괴물들.
“그나저나 그 그림자 녀석, 뭐지?”
“심연의 존재다.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중개자 같은데.”
“황금 고블린 같은 건가?”
“아, 황금 고블린인 줄 알았으면 일단 죽이고 볼 걸 그랬군.”
이들도 그림자를 본 모양이다.
이후에 이어진 말들도 왜인지 익숙했다.
“그림자 녀석, ‘너의 왕이 승리하려거든 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지.”
“우리의 왕은 라이가 단장님뿐이다.”
“당연한 소리.”
“라이가 단장님 외에 다른 놈이 왕이 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 그들은 라이가를 왕으로 만들고자 문을 넘어왔다.
이들은 오로지 라이가 기사단장만을 따른다.
설령 상대가 황제라 할지라도, 그들에겐 라이가 기사단장의 말 한마디가 우선이었다.
제국에 충성하는 황제의 직속 기사단은 변질한 지 오래다.
팔가 기사단은 이미 라이가의 개인 무력집단이 되어있었다.
“그럼 다른 놈들을 우리가 죽이면 되겠군.”
“어디 보자. 그중엔 ‘염소’도 있겠지, 아마?”
“빌어먹을 염소 놈. 감히 단장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하다니.”
“음. 가장 먼저 죽여야겠군.”
이자벨라는 숨을 죽였다.
이들이 염소라고 부를만한 이는 한 명뿐이었다.
란돌프.
사신교의 간부인 그가 대열에 합류했을 때부터 팔가의 기사들은 은연중 란돌프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왜 란돌프가 ‘파편 사냥’에 함께하는 건지 라이가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구실이 있겠는가.
사신교의 간부이자 경쟁자를 제거할 이 상황이 도리어 팔가 기사단에겐 행운처럼 다가왔을 터.
“그런데 견습. 넌 염소를 두둔하지 않았나?”
“······ 맞아. 라이가 단장님보다 빌헬름이 강하다고 했지?”
“쯧, 불충도 이런 불충이 없군.”
기사들의 시선에 이자벨라에게 닿았다.
그들의 눈엔 살기가 짙게 서려 있었다.
이곳은 심연.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
‘······ 위험해.’
저들이 달려든다면 죽은 목숨이다.
절대적인 신뢰로 라이가를 따르는 그들에겐, 당시 이자벨라의 발언은 세상에서 가장 불충한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답해봐라. 빌헬름과 나, 누가 더 강한지.
라이가의 물음에 이자벨라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으니까.
-빌헬름입니다.
그때의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삽시간에 냉랭해진 분위기.
라이가의 표정만큼이나 기사단의 살기는 가공할 정도였다.
·········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녀는 똑같이 답할 터였다.
백 번, 천 번을 돌려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을 말했을 뿐이므로.
허나, 이들은 아니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염소’를 돕고자 두둔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심연에 들어올 때도 너와 염소만 사라졌지.”
“처음부터 둘이 작당하고 있던 건 아닌가?”
“역시 사신교의 끄나풀이었군.”
제멋대로 떠들어댄다.
항변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억지라고, 아니라고 해봤자 저들은 듣지 않을 터이니.
스릉. 스릉.
그들은 검을 뽑으며 천천히 이자벨라를 둘러쌌다.
이자벨라도 검을 뽑으며 응수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
정면으로 대결한다면 자신이 승리할 확률은 0이다.
심연의 지배자들조차 사냥하는 진짜배기 괴물들이다.
도망칠 길 따윈 없다.
약간의 가능성이라면,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것.
‘좁혀오기 전에 치고 나간다.’
기사들은 순식간에 탈주로를 제거했다.
이 상태로 좁혀온다면 답이 없는 상황.
이자벨라가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하여 이내 치고 나가려 할 때였다.
스윽. 스으윽. 스으으윽.
··· 동시에 뒤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무언가가 바닥을 쓸며 기어오고 있다.
‘······ 뭐지?’
소름이 끼쳤다.
그것도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소름이다.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꿈쩍할 수가 없었다.
“어?”
“저건 무슨······ 아악!”
“위험··· 컥!”
······ 뭐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들.
앞을 바라보자, 기사들의 두 눈엔 경악이 가득했다.
“아아······.”
“쳐다보면 안 된다······!”
“태, ‘태어나지 않은 존재’······!!!”
그들은 뒤에서 습격해온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숱하게 많은 심연 속 지배자들을 처리해온 기사들.
그들조차도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
이자벨라는 떨리는 손을 그대로 입가로 가져갔다. 숨소리가 비집고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강제로 차단했다.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이자벨라는 고개를 든 채 눈을 떴다.
··· 눈을 뜨자 하늘은 어느덧 어둑어둑했다.
수많은 별, 그리고 달.
보자마자 알았다.
저 별은 모두 ‘천공에 떠오른 대륙’들이라는 걸.
심연에선 천공의 대륙들이 마치 별처럼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칠 듯이 떨려대는 심장.
숨을 크게 들이마신 이자벨라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 다.’
이자벨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 보인 광경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으니까.
‘······ 다 죽었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죽었다.
팔가 기사단의 기사들.
그들이 누구던가?
제국 최강의 무력집단이다.
라이가 기사단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어디 내놔도 ‘최강’소리를 듣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도저히 현실감이 없었다.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그야말로 학살의 현장이다.
저항은커녕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한 것 같다.
곳곳에 널린 살점들.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시체들은 마치 무언가에 짓눌리고 뜯긴 것처럼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당했다는 방증이다.
대륙 제일의 기사들이 별반 반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괴물이라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이자벨라뿐이다.
‘절대로 등을 돌려 쳐다보면 안 되는 괴물.’
등을 돌리지 않고, 눈을 감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자벨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런 괴물이 이 섬에는 대체 몇이나 있는 걸까?
········· 그 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생존결과에 따라 ‘밤의 악령’으로 선정되셨습니다.】
느닷없이 떠오른 문구.
그런데 밤의 악령이라니?
그녀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문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밤의 악령’은 총 넷입니다.】
【‘밤의 악령’은 밤이 되면 공격력 500과 체력 500을 지닙니다.】
【‘밤의 악령’은 밤이 되면 탈출한 ‘죄수’들을 찾아, ‘별의 감옥’으로 이감해야 합니다.】
【‘밤의 악령’은 자신이 이감시킨 ‘죄수’의 특정한 기억을 살필 수 있으며, 아침이 되면 모든 ‘죄수’ 중 한 명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이때 둔갑한 ‘죄수’의 별빛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밤의 악령’은 태양이 떠 있을 때 ‘원정 대결’에서 패배하거나, 혹은 ‘죄수’에게 둔갑한 사실이 밝혀지면 소멸합니다.】
【‘밤의 악령’들은 서로를 알 수 없으나, 태양이 떠 있을 때 ‘원정 대결’을 통해 상대를 ‘소멸’시킬 경우 일정 공격력과 체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단, ‘밤의 악령’끼리는 서로 둔갑한 사실을 밝혀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최후의 죄수’와 ‘최후의 밤의 악령’이 남게 되면 ‘밤의 악령’은 ‘죄수’의 모든 걸 갖거나, 빼앗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수가 두 명’인 상태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모든 ‘밤의 악령’은 소멸합니다.】
【기억을 살피고, 연기하고, 속여서, 승리하십시오.】
모든 문구를 살핀 이자벨라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 란돌프님.”
······ 적혀있는 대로라면, 그녀와 란돌프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
더럽고 흉물스러운 악신.
겨울의 표현대로였다.
천마도에 깃든 ‘그것’은 진정으로 역겹기 그지없었으니까.
-인간을 먹어라.
-피를, 살점을, 심장을, 내장을!
-부모를, 자식을, 친구를!
-잡아먹는 거다.
-전부 먹어 치워서 수라가 되어라.
-천살성(天殺星)의 아이야!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천마도의 기억은 한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됐다.
하늘을 죽이는 별.
그 운명을 타고난 아이.
천마신공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천마도에 깃든 악신!
아이를 낳은 산모는 그 즉시 죽었으며, 아비 또한 아이에게 산 채로 뜯어먹혔다.
살성을 타고난 아이는 어느 정도 성장하자마자 마을의 모든 이들을 죽이고, 살점과 심장을 뜯어먹기에 이르렀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는 몇 개의 나라를 멸망시켰다.
······ 순수악이다.
오로지 악하기 위하여 태어난 괴물이었다.
그렇게 천산에 들어간 순수악은 이내 떠받들어져, 천마(天魔)라고 불리게 되었다.
-내 힘을 갖고 싶으냐?
-나의 힘을 계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포기해라.
-인간임을 포기한 자만이 천마신공을 이을 수 있다.
천산의 수많은 신도가 그의 힘을 떠받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하고, 순수하며, 악했기에, 그의 힘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할 순 없으니.
그처럼 오롯이 악한 인간은 없었다.
-인간임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전부 먹어치울 수 있겠느냐?
하여, 초대 천마이자 악신은 내게 묻고 있었다.
자신처럼 모든 걸 먹어치우는 순수악이 될 수 있겠느냐고.
현재 ‘별의 감옥’에 이감된 천마는 심연의 존재가 되며 인간임을 포기했다.
적어도 그 정도 각오가 아니면, 자신의 힘은 이을 수 없다는 말이다.
확실히.
나는 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 불쌍한 놈이로군.”
더럽고 흉물스러운 악신.
이놈은, 진정 불쌍한 놈이라고.
-불쌍하다고? 내가 말이냐?
악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만물을 오시하는 강자.
하늘 아래 적수가 없다 전해지던 최강의 존재!
그런 자신을 불쌍히 여길 이가 얼마나 있을까.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면 몰라도.
“그래, 더럽게 불쌍하구나.”
하지만 나는 즉답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온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
태어나자마자 죽은 산모.
그로 인해 마음에 병이 든 아비는 놈을 짐승처럼 길렀다.
돼지우리에 가둬둔 채로 정을 주지 않았다.
결국, 짐승과 같이 자란 아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비를 죽이고 마을을 몰살시킨 것이다.
후에 떠받들어졌으나 아이에겐 인간과 같은 측은지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진 측은지심. 그게 놈에겐 없었다. 인간이라면 응당 갖고 있어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인간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신이라 불리었다.
너무나도 두려워서.
태어났을 땐 짐승으로.
죽을 땐 신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악신은 인간으로 취급된 적이 없다.
이 얼마나 불쌍한 놈인가.
-······ 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불쌍하다?
악신도 자신을 상대로 이런 취급은 처음인지 어이가 없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놈의 위협은 내게 아무런 위압도 주지 못했다.
-오냐. 끝까지 그리 생각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악은 더욱 비대해졌다.
몸집을 키우고, 환상을 보여주며, 나를 좌절케 만들려고 했다.
인간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수많은 절망들!
악신인 그가 겪었던 모든 ‘악’을 내게 투영시켰다.
-인간을 버려라. 오로지 힘만을 갈구하는 것이다.
설령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그의 악은 버틸 수 없다.
천마도에 잠든 자신을 깨울 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인간을 고집하면 정신이 오염되어 자멸하는 길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인간을 버리고, 악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놈이 살 수 있는 길이었다.
게다가 악신인 그가 보건대, 이놈의 자질은 제법 뛰어났다.
그러니 받아들여라.
자신을.
악을.
······ 한데.
-······ 왜 물들지 않는 거냐?
이 인간은, 자신의 악에 물들지 않는다.
여전히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의 공간.
만물이, 천태만상이 그의 손 안에 있는 곳.
하물며 모든 것을 물들이는 검은색이 바로 악신이었다.
그런데 물들지 않는다.
그리고 검은색에도 물들지 않는 색은 하나뿐이었다.
········· 자신보다 더욱 진한 검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