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여신의 아이 <9권 끝>
성운을 마시는 별.
이자벨라가 지닌 ‘요르문간드의 별’처럼 네임드의 별이며, 그중에서도 특출났던 별의 이름.
‘이해가 안 되는군.’
나는 천천히 턱을 쓸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캐릭터가 죽으면 지니고 있던 모든 별은 판게니아의 대륙에 무작위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이곳 심연이 아니라.
심연에 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 심연이 어디 보통 심연이던가.
라이가가 ‘파편 사냥’을 위해 끌고 온 곳이며, ‘신의 살갗 혼종’이 주인으로 있는 장소다.
이 모든 게 그저 우연일까?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때 돌연 듯이 이자벨라가 운을 띠었다.
여태까지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말하지 않은 것.
주춤거리는 태도로 보아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인 듯한데.
“말하지 않은 게 뭐지?”
“일전 심연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혹시 ‘성운을 마시는 별’인가?”
“······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별이 맞는지······.”
확신이 없는 표정이다.
잠시 기다리자 이자벨라가 이어서 말했다.
“란돌프 님. 별은 여신의 신체가 조각난 것 아닙니까?”
“맞다.”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정상적인 별은 여신 ‘레아’의 것뿐이다.
32개로 나누어진 그녀의 신체 부위 말이다.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별’들이 추가되어 난립하는 상황이지만,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별은 32개의 별밖에 없었다.
곧이어 이자벨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본 ‘별’은 조각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별은 없다.”
“분명히 보았습니다. 제게 말도 걸었습니다. 기사왕을 애타게 찾고 있노라고······.”
“······?”
심연에 떨어진 별이 기사왕 빌헬름을 애타게 찾는다?
그러나 별은 조각난 신의 신체 부위다.
성운을 마시는 별 또한 마찬가지.
조각나지 않았다면, 그건 별이 아니라 신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할 터.
‘신이 나를 찾는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의문투성이다.
심연에 정상적인 신이 존재할 리도 없거니와, 왜 하필 이자벨라에게 말을 건 것인지.
이자벨라가 본 게 정말 성운을 마시는 별이 맞기는 한 걸까?
그때였다.
수우우욱!
눈앞으로 빛의 무리가 나타나며 두 개의 문이 등장한 건.
“문?”
말 그대로 ‘문’이었다.
열고, 닫는 문(門).
두 개의 문은 닫혀 있는 상태였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찰나, 눈앞으로 메시지 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여 ‘별 찾기’가 시작됩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오른쪽 ‘문’으로, 원하지 않은 분은 왼쪽 ‘문’으로 입장하십시오.》
《현재 참가자 - ‘라이가’, ‘폭풍의 배율자’, ‘무덤의 주인’, ‘가라앉은 황제’, ‘별 부수는 자’, ‘태어나지 않은 존재’, ‘천축의 고래’, ‘천마’》
······ 창의 내용을 읽자마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참가자의 이름 중에는 왜인지 익숙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있는 심연의 주인들. 그리고 태고의 존재들······!’
잘못 보았을 리 없다.
폭풍의 배율자와 무덤의 주인은 가장 유명하고 강한 심연의 주인들이었다.
천축의 고래와 천마는 태고용신이 말했던 태고의 존재들이 확실했고.
모두 등장한 적은 없지만, 등장하는 순간 세계를 요동치게 할 초강자들이었으니.
대체 어떤 조건을 만족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왜 이만한 존재들이 ‘별 찾기’에 동참한 걸까.
별 찾기.
이름 그대로 별을 찾고자 모인 것이라면, 위험하다.
이곳에 있는 별은 ‘성운을 마시는 별’이었으므로.
‘그들 모두가 성운을 마시는 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왜?
기사왕 빌헬름을 대표하는 별이라고는 하지만 그들과는 관계가 없을진대.
물론 저들이 노리는 게 ‘멸망의 파편’일 수도 있다.
저들 모두가 ‘파편 보유자’라면 다른 파편을 흡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허나, 공교롭다.
시기와 장소 모두가.
왜 하필 내가 심연에 입장했을 때 ‘별 찾기’가 시작된 건지.
‘내 입장이 조건 중 하나였나?’
······ 모르겠다.
라이가나 이자벨라의 말을 들어보면, 파편 보유자들이 이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예는 없었다.
그러니 단순하게 파편 하나로 모여든 건 아닐 터다.
하여, 침음을 삼켰다.
도합 8명의 참가자.
그중 단 한 명도 만만한 자가 없었기에.
“이자벨라. 너는 빠져라.”
“하지만······!”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나는 확신을 담아서 무정하게 말했다.
이자벨라는 강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다.
지금 저 자리에 꼈다간, 백 퍼센트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
그녀의 죽음을 독려할 순 없지 않은가.
이윽고 이자벨라가 두 눈을 치켜떴다.
“제가 약해서입니까?”
“그래.”
“······.”
즉답에 이자벨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참가자의 이름 중 단 한 명도 이자벨라보다 약한 존재는 없었다.
결국, 숨을 크게 들이마신 이자벨라가 다시 입을 뗐다.
“······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확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
두 눈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변했군.’
그동안 이자벨라는 자신을 찾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뱀공주’로 살아갔던 나날들.
나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자 즉시 떠났다.
이후 다시 사막도시 파이살메르로 돌아가선 여왕이 되었으며, 거기서도 그치지 않고 데르시안 가문을 찾아가 신병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그러한 ‘자아 찾기’가 마침내 마무리된 모습이었다.
여태까지 내 곁을 계속해서 떠나기만 했던 이자벨라였건만.
기다린다는 말.
진정으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찾은 사람밖에 없으므로.
물론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 반지에 새겨진, 강제로 말을 듣게 하는 ‘신앙신언’으로 돌려보낼 수는 있겠지만······.
“그럼 기다리고 있도록.”
기다린다고 하니, 기다리라 하였다.
나 역시 반드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정말로 저 ‘별 찾기’의 목적이 ‘성운을 마시는 별’이라면, 추호도 남에게 내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저건 내 것이다.
나의 별이었다.
끼이익.
나는 지체 없이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 무슨 일이 있어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뒤에서, 이자벨라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메인 퀘스트는 몇 단계까지 있는 거야?
플레이어 톡에 불쑥 올라온 질문.
간혹 올라오는 질문이긴 했지만 모두가 정확한 답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도 모름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도달할 수 있는 메인 퀘스트는 10단계까지 일걸?
-10단계 이후도 있어?
-대부분 ‘광룡 아인하사르의 시련’에서 쓴맛보고 포기하지
-아인하사르 개X끼!
-그래도 ‘용신 아인하사르’로 바뀌고 뭔가 변하지 않았을까?
-똑같음. 다시 도전해봤는데 이놈 그냥 이름만 바뀐거고 그대로 미친 용이야
-으, PTSD온다.
아인하사르의 시련에서 고배를 마신 사람들이 욕으로 한가득 도배를 해 놨다.
9단계까지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도 어찌 저찌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10단계부터는 그 내용과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어쩔 수 없이 10단계에서 포기한 플레이어가 수두룩했다.
-그럼 11단계는 뭔데?
-‘심연 괴물 사냥’이다. 심연 속 괴물 사냥하는 게 퀘스트 내용임
-헐... 미친. 심연에 들어가야 한다고?
-맞음 ㅇㅇ
-그럼 심연에 들어가서 약한 괴물 한 마리만 잡고 나와도 됨?
-됨. 그런데 그렇게 안 하지. 11단계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순위가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누가 그런 짓을 하겠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게 11단계부터라고 들음
-보상이 아예 달라지니까...
-다 사이좋게 약한 괴물만 잡고 나오면 안되나? 그럼 똑같이 좋은 보상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무한 경쟁 사회에서 그게 되겠냐 이 순진한 놈아?
-아, 생각해보니 란돌프도 11단계 도전 중이지 않나?
란돌프의 이야기는 언제나 플레이어 톡에서 떠오르는 뜨거운 감자였다.
당연히 11단계의 진입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플레이어는 많았다.
-심연의 주인들 중 한 명 정도는 죽이고 나오겠지?
-심연이 장난인 줄 아냐. 거긴 판게니아랑 아예 다른 세상이야
-그나마 제국이 심연 땅 복구하는데 열성적이긴 한데, 제국 아니면 엄두도 못 내는 게 심연이야
-대원정 수준으로 꾸리는 게 아닌이상 란돌프도 심연 정복하긴 쉽지 않을걸? 그래서 제국 아니면 힘들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거고
심연의 원정은 그야말로 왕국의 명운을 걸고 행하는 일이다.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아르혼 제국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심연의 원정이었다.
그리고 그만한 규모의 원정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 ‘심연 원정’이 꾸려졌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심연의 중간보스 정도 잡고 나오겠지
-메인퀘 11 민 애들 중에 심연의 주인 잡은 사람 한 명밖에 없음
-그라시아?
-아니, 루시퍼.
-루시퍼? 그 영웅회 중 한 사람 아닌가?
-맞아. 대대적으로 공략해서 알 사람들은 다 알음
-‘허망의 왕자’ 공략했지, 아마?
-그거 원정대 다 죽고 루시퍼만 살아왔다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고
-하여간 혼자 행동하는 란돌프가 심연 주인 공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 심연 속엔 온갖 게 다 있으니까
혼자, 혹은 극소수로 행동하는 란돌프가 심연 공략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아무리 강해도 심연의 공략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심연.
거기서 버티며 그곳의 주인에게까지 다다르려거든 수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마계도 심연의 일부분이라는 주장이 있으니, 말 다했지 뭐
-그나저나 영웅회 어떡하냐. 큰일난 것 같던데
-살길을 모색해야지. 마도의 탑이랑 손잡지 않을까?
-우웩. 진짜 끼리끼리네
-그걸로 되겠냐? 여신교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야할 판국이더만
-여기저기 러브콜 돌리고 있다매? 우리 길드에도 연락왔었음ㅋㅋㅋㅋ
-어 우리돈데
-가라앉는 배는 타는 거 아니랬다
-꼴 좋다. 판게니아에서 세력 약해지면 지구에서도 볼장 다 본거지 뭐ㅋㅋㅋㅋㅋㅋㅋ
-꿀잼!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교만에게 손을 빌려야 되나?”
어두운 방.
타락한 검은날개의 천사상 앞에 선 루시퍼가, 턱을 쓸며 고민에 빠졌다.
영웅회는 사상초유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그나마 떠오른 자는 교만, 프리드릭 왕.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놈은 도리어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겠지.’
약해진 걸 알면 이리처럼 달려들어 뜯어먹을 놈이다.
놈의 손을 빌리려는 순간 더없이 추락시키리라.
‘다른 방법이라면······ 이것뿐인데.’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상을 바라보았다.
‘메인퀘스트 11의 보상.’
이 타락한 천사상은 그가 심연을 공략하여 얻어낸 것.
명예의 전당 1순위에 기록되어 강탈한 것이었다.
이 타락한 천사상을 이용하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었다.
‘···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여태껏 사용하지 않고 아껴두었다.
타락한 천사상의 안에 갇혀있는 신성.
이건 진짜였으니까.
오직 메인퀘스트 11단계의 1위만이 가질 수 있는 것.
2위로 밀려나는 순간 신성은 사라진다.
하여 더욱 고민이었다.
‘란돌프가 내 점수를 넘어서면 타락한 천사상의 신성은 놈에게로 넘어간다.’
메인 퀘스트 1부터 10까지 죄다 1위를 기록한 란돌프다.
모든 점수를 갈아치우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11단계부턴 다르다.
심연은 장난이 아니다.
그가 해치운 ‘허망의 왕자’도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원정을 실행하여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
심연은 세력이 없다시피 한 란돌프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설령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세력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란돌프가 허망의 왕자 이상 가는 심연의 주인을 처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 넘어설 수 있을 리가.’
그래. 넘어설 수 없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루시퍼는 강하게 부정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천사상의 표면을 조심히 매만졌다.
“여신의 아이야. 너는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