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21화 (221/317)

221.꼬맹이들

각성자 커뮤니티, 플레이어 톡. 

그곳에 한차례 거센 태풍이 불었다. 

-영웅회 애들 좆 된 거 같은데? 

-왜?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알지? 대원정에서 빌헬름 측근으로 있던 기사 중 한 명 말이야 

-알지. 유명하잖아. 절대 배신하지 않는 NPC로 

-맞아 세렝게티 꼬시려고 도시 두 개 갖다 바친 놈도 있었지 아마? 

-아, 아슬란 상회에 그 아저씨? 

-세렝게티 고용 전쟁 일화 말하는 거지? 

-근데 빌헬름 측근들은 다 죽지 않았나?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그녀는 이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NPC였다. 

와이저 후작가의 무남독녀라는 확실한 배경과 압도적인 성장 가능성을 지닌 기사. 

아름답고, 청렴하며, 그녀에 대한 영주민의 소문은 이미 ‘신의’로 똘똘 뭉쳐있었기에 세렝게티가 성인이 되었을 땐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졌다. 

그녀를 고용하거나, 혹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륙 3대 상회인 아슬란 상회의 주인이 세렝게티를 얻고자 도시 두 개에 달하는 거래를 제안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렝게티는 기사왕 빌헬름을 택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주인으로 말이다. 

이후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신의를 지켰다. 

-지금 발란 왕국에서 세렝게티가 대원정의 진실을 밝히는 중. 대놓고 영웅회 애들이랑 마도의 탑 현자들이 배신했다고 저격함ㅋㅋㅋ 

-미친. 살아있었어? 

-살아있다 뿐이냐. 날아다니던데. 프리드릭 왕이 키운 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중이야 

-프리드릭 왕이 키운 기사들이면 미친놈들이잖아 

-이거 사실이면 파장 장난 아니겠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렝게티가 직접 말한 거면... 

-팝콘 예약ㅋㅋㅋ 

-사이다도 추가요! 

-이야 마도의 탑 현자들이랑 6영웅회 애들이 뭐라고 변명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ㅋㅋㅋ 

-변명은 무슨 머리부터 박아야지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끝임? 세렝게티가 정확하게 뭐라고 함? 

-뒤는 좀 이상하긴 해. 빌헬름이 마왕을 죽이긴 했다는데? 

-엥? 전멸하고 마왕한테 다 죽은 거 아니었음? 

빌헬름은 죽었다. 

확실하게. 

그의 유품이 분해되어 ‘황금률 상점’에 올라온 것을 모두가 보았다. 

허나 만약 마왕을 죽였다면 빌헬름은 살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빌헬름과 측근 중 돌아온 건 세렝게티뿐이었다. 

그것도 대원정이 한참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타난 것이다. 

모순된 상황들의 연속. 

사람들은 혼란할 수밖에 없었다. 

-어? 잠깐. 다시 로그인 좀 할게. 저 사람 뭐야? 

-뭔데? 무슨 일인데? 

-...썰 풀어주던 애 어디 갔냐? 

-발란 왕국 왕성 아니야? 

-지금 왕성인 사람? 

-아나. 궁금해 미치겠네! 

··· 이상한 심연이다. 

들어온 즉시 심연의 주인인 ‘신의 살갗 혼종’이 내게 관심을 두었다는 걸 메시지 창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지만, 이후 마땅한 후속 조치는 없었다. 

침입자가 들어왔다면 응당 상대해줘야 하건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혼종구역이면 혼종이라도 보여야 할진대. 

나한테 따로 원하는 게 있는 걸까?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심연의 독이 없다······.’ 

심연은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침입자를 오염시킨다. 

오랜 시간 머물 경우 자아가 무너지고 몸이 뭉개지며 혼종이 되거나 죽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발을 들인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저 망망대해와도 같은 길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 

“왜 팔가 기사단에 있는 것이냐?” 

한참을 걷다가 물었다. 

그러자 이자벨라가 답했다. 

“데르시안 영애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거기까진 들어서 알고 있다. 이후 같이 데르시안 가문으로 떠났다는 것도.” 

제국의 경매에서 마주한 데르시안 영애. 

신병이 걸린 이자벨라를 대신하여, 영애가 된 소녀. 

그녀가 이자벨라를 찾아온 건 전적으로 나 때문이었다. 

물론 원래는 나를 찾아오게 되어있었지만, 하필이면 이자벨라와 맞닥뜨린 것이다. 

“예. 그녀는 자신이 저의 대역이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신병’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신병’이라······.” 

“판게니아의 극소수 주민들이 걸리는 ‘신의 병’, 마치 몽유병처럼 마음대로 누군가에게 몸을 조종당하는 병입니다. 저와 아이작, 발테가 그러했듯이.” 

완전하게 파악을 끝낸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것이지만. 

이자벨라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또한 제국에선 신병에 걸린 자들을 대신할 대역을 세웁니다. 대역은 평생 자신이 대역인 줄 모르고 살아가지요.” 

“그럼 신병에 걸린 자는?” 

“영원히 기록에서 지워버립니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저 닮은 사람 취급이 끝입니다.” 

완전한 말소.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신교의 간부들은 모두 신병에 걸린 자들이라 했다만.’ 

그럼 그들은 대역을 쓰지 않은 건가? 

하기야 ‘정통’의 계약은 신병에 걸려야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들을 보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한 것 같았다. 

하여간에. 

“그럼 돌아가봤자 소용이 없었을텐데?” 

데르시안 가문으로 돌아간 이자벨라는 난데없이 팔가 기사단의 견습이 되었다. 

기사단장인 라이가 역시도 이자벨라를 데르시안 가문의 자식으로 알고 있었고. 

“데르시안 영애는······ 죽었습니다.” 

“······?” 

······ 뭐? 

잘못 들은 건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악착같이 삶을 갈구하던 여자 아니던가. 

살기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며 복종을 외치던 영애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죽었다고? 

이에 내가 의아한 눈빛을 던지자, 이자벨라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데르시안 가. 그들은 자신의 치부를 파고드는 영애를 죽이고, 저를 ‘지하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곳은, 그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못볼 것을 보았다는 얼굴이다. 

사막의 여왕인 그녀가 이런 모습을 할 정도라니. 

온갖 상황을 다 겪은 이자벨라가 경악할 정도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거기서 뭘 본 거지?” 

꿀꺽. 작게 침을 삼킨 이자벨라가 천천히 말했다. 

“인체실험, 대역의 생산, 세뇌······ 저는 세뇌된 척 데르시안 영애를 연기하며, 라이가 기사단장을 통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만······.” 

미친.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친놈들이 따로 없었다. 

데르시안 가문은 제국 제일의 거부(巨富)들이다. 

그들이 지하에서 비밀리에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국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으니, 대놓고 덮어주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이자벨라는 세뇌가 완료된 척 죽은 데르시안 영애를 연기했고, 그리하여 라이가의 눈에 들어 팔가 기사단 견습생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데 지하감옥에서 사신교에 관한 이상한 대화를 들었습니다. 간부인 황금 가면이 사실 빌헬름의 ‘대역’이라는······.”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황금 가면이 빌헬름의 대역? 

황금 가면이 신병에 걸린 게 아니라, 신병이 걸린 빌헬름을 대역했다? 

아니, 그 전에, 빌헬름이 제국 출생이라고? 

그것도 황제의 피를 이은? 

곧이어 이자벨라는 나를 똑똑히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황제의 피를 이은 정통한 후계자는 황금 가면이 아닌 빌헬름이라는 이야기를요.”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이게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흘러가는 개소리에 불과할 가능성이 더욱 컸다. 

허나 절대로 가벼이 넘길 수도 없는 사안이다. 

이걸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가면을 벗겨봐야겠군.’ 

가면의 너머. 

만약 황금 가면이 빌헬름과 닮은 얼굴이라면, 보다 확실해질 터.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그 가면을, 억지로라도 벗길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후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로 라이가와 팔가 기사단을 따라다니며 이자벨라가 본 것들. 

파편을 사냥하는 라이가와 ‘가호’에 대해서였다. 

“멸망의 파편은 외부로 드러날 때 ‘이상현상’을 일으킵니다. 라이가는 그걸 ‘버그’라고 했습니다. 그 ‘버그’에 대항하기 위해선 ‘가호’가 필요하다는 말도.” 

“가호?” 

빌헬름이 강하냐, 라이가 기사단장이 강하냐의 논쟁을 벌일 때. 

그때 이자벨라는 분명히 ‘가호’에 대해 언급했다. 

“예. 다만, ‘가호’를 얻는 법은 라이가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가 인정한 ‘제자’만이 ‘가호’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요.” 

“그래서 견습기사로 계속 있던 게냐?” 

“··· 맞습니다.” 

이자벨라가 수긍했다. 

아마도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남아있던 모양. 

그나저나, 제자라. 

라이가는 팔가의 힘을 계승할 제자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재능있는 자들을 한데 모으고자 대회까지 열었다. 

‘참가해야겠군.’ 

······ 아무래도 대회에, 참가해야겠다. 

보상보다 저 ‘가호’를 갖는 게 훨씬 중요했으니. 

염소 탈 외에는 아직 노출된 게 없으니, 들키지만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란돌프님.” 

“음?”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보험’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세렝게티가 걱정되느냐?” 

“······ 예.” 

이자벨라는 세렝게티와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성격은 백팔십도 다르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아무리 세렝게티가 강하다 해도 프리드릭 왕 역시 진짜 괴물이다. 

걱정이 되는 건 당연지사.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자식들을 보내놨다.” 

“자식······ 이요?” 

이자벨라의 두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어디 숨겨둔 애가 있었냐는 듯한 눈빛. 

여태껏 자식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여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답해주었다. 

“녀석들이 나를 아버지라 부르더군.” 

진짜 피를 이은 아이는 아니지만. 

그 두 아이를 떠올리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루카리아. 어떻게 할까?” 

“아버지······께서 위험할 때만 개입하랬어······.” 

“아버지가 아니라 주신님! 그새 까먹었어?” 

“그, 그치만······.” 

두 아이. 

이세라와 루카리아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루카리아가 눈물을 흘리려하자, 이세라는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하나 여왕님께서 당부하셨잖아. 입에 담는 칭호는 중요한 거라고. 루카리아, 주신님께 계속 어리광만 부릴 셈이야?” 

두 아이는 용신 이세라와 루카리아의 심장으로 말미암아 부화소에서 태어났다. 

하나 여왕과 란돌프를 따르는 충실한 ‘오버로드’로 말이다. 

용신의 심장과, 용신의 격을 고스란히 이은 종의 초월체로! 

“아, 알겠어······.” 

“좋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겠지?” 

“어떻게 해야되는데?” 

루카리아의 물음에 이세라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벌써 열 번은 넘게 설명해줬건만. 

루카리아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다. 

“··· 자. 저 여자가 위험해지면 우리가 나서는 거야. 네가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세뇌하면, 내가 ‘세렝게티’인 척 하고 나설게.” 

“저 악마는 세뇌가 안 통할 거 같은데······.” 

이세라가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확실히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악마가 한 마리 있었다. 

이후 그 악마와 두 눈이 마주치자, 이세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럼 저 악마부터 처리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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