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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19화 (219/317)

신의 살갗 혼종

단 일격. 

바투스가 공격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바투스의 목이 바닥을 구르게 되었는지도 말이다. 

“······.” 

발란 왕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히 검기 사용자 아니었던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강철보다 단단한 기운을 휘두르는 자. 

왕국의 축복이라 여겼던 생각이 고작 1분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저자가······ 프리드릭 왕의 가장 약한 기사라고?’ 

말도 안 된다. 

무언가 수를 부린 게 아니고서야. 

검을 뽑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폐하. 극에 이른 쾌검을 사용하는 자입니다. 발검(拔劍)을 쓰는 자는 무척 오랜만에 보는군요.” 

“··· 압둘라. 그대의 눈에는 보였단 말인가?” 

“예. 또한, 발검술은 한 번의 타격이 실패하면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그 한 번을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의 싸움일뿐. 바투스가 약해서 단번에 나가떨어진 게 아닙니다.” 

발란 왕의 직속기사인 압둘라가 자신있게 말했다. 

바투스의 패배를 너무 염두에 두지 말라고. 

서로가 모든 것을 건 일격필살의 대결이었을 뿐이다. 

약해서 나가떨어진 게 아니라. 

하지만, 그런 압둘라의 평가와는 반대로. 

“······ 형편없군.” 

프리드릭 왕의 평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표정은 역시도 한없이 무료했다. 

너무나도 예상대로의 전개. 

이래서야 대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규칙을 바꾸겠다. 토너먼트 형식이 아닌 생존의 형태로. 샬라를 죽이는 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하라. 너희가 선보인 다섯 기사가 샬라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 왕국은 존속할 이유가 없다.” 

“갑자기 이제와서······!” 

대결 도중 규칙을 바꾸겠다니. 

폭거다. 

이에 발란 왕도 한 마디 거들려는 찰나. 

“폐하. 오히려 잘됐습니다.” 

그의 직속기사 압둘라는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발란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되었다니?” 

“저 샬라라는 자의 기술은 이미 보았습니다. 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있느냐?” 

“예. 두 번째 대결은 반드시 승리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왕국의 기세가 살아납니다.” 

바투스가 너무 허무하게 죽었다. 

이래서야 오를 기세도 안 오른다. 

발란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둘라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는 강했으니까. 

‘단 한 명만 임명 가능한 왕의 직속 기사.’ 

이 한 마디면 압둘라의 강함이 증명되지 않겠나. 

오로지 한 명만 임명 가능한 직속기사의 자리에 압둘라가 있다. 

실제로 기사왕을 제외하곤, 그 누구보다 강했던 게 압둘라였다. 

세렝게티보다도 더. 

왕의 옆을 지켜야하기에 대원정에도 나서지 못했을뿐. 

압둘라라면 충분히 승리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발란 왕국이여 영원하라! 왕국에 승리를!” 

“압둘라님!” 

······ 무수한 함성 속에서, 천천히, 압둘라가 대결의 장으로 발을 옮겼다. 

이길 수 있을까, 없을까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과연. 샬라의 두 번째 상대는 왕의 기사인가.” 

프리드릭 왕이 작게 웃었다. 

저 미소의 저의를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이 퍽 재밌는 모양이다. 

‘이럴 때 빌헬름이 있었다면······.’ 

기사왕 빌헬름.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프리드릭 왕은 저러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감히 발란 왕국을 상대로 저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가 있던 당시를 회상하며 압둘라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때는 정말 두려울 게 없었다. 

아무도 발란 왕국을 무시하지 못했다. 

함께 전장을 누비며 푸른 초원을 달렸던 게 엊그제 같건만. 

이제, 빌헬름은 없다. 

그는 죽었다. 

압둘라는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 

왕을 지켜야한다는 핑계로.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압둘라는 반드시 대원정에 참가해 빌헬름을 지켰을 것이다. 

빌헬름을 지키는게 왕국과 왕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내가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없다. 

모두가 압둘라 자신을 찬양하지만, 왕의 기사라며 떠받들어 주지만, 압둘라는 안다. 

자신의 검은 빌헬름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평생을 수련했지만 빌헬름의 무력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압도적인 무위. 

실제로 빌헬름이 얼마나 강한가 직접 본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는 항상 겸허했으며, 실력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그라면 마왕조차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마왕을 상대로도 패배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 그런데 왜, 그는 돌아오지 못했을까. 

돌아오면 격하게 반겨주며 대원정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맥주 한 잔 들이키려 하였거늘. 

그의 실력으로도 마왕을 죽이지 못한 건가? 

그럼 마왕은 대체 얼마나 강한거지? 

인류는 놈을 상대로 이길 수 있긴 한 걸까? 

‘무서워서. 두려워서··· 세렝게티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세렝게티가 살아돌아왔다. 

빌헬름과 함께했던 측근 중 유일하게. 

하여, 물어보고 싶었다. 

빌헬름의 끝을. 그는 어떻게 죽었느냐고.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왕성의 그 누구도 물어보지 못했다. 

왕조차도 말이다. 

빌헬름은 왕국의 우상이었고, 영웅이었다. 

영웅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게다. 

“나는 왕의 직속 기사 압둘라다.” 

······ 상대를 마주한 압둘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대결이 끝나거든 그때 물어보면 될 일이다. 

왕국을 지키는 게 먼저였다. 

“샬라.” 

상대 기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성의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심장이 뛰는 매혹적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한 수 부탁하지.” 

끄덕! 

샬라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방비함 그 자체. 

자세는 바투스를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다. 

‘진공검.’ 

스으으으으으! 

압둘라의 검이 검기와 함께 미칠 듯이 요동친다. 

닿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진탕시키는 압둘라의 고유기술, 진공검이다. 

‘빌헬름을 상대하려고 만들어낸 기술이다만······.’ 

빌헬름을 이기려고 만든 건 아니다. 

그냥, 한 방 먹이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고안해냈을 따름. 

그 얄미운 얼굴에, 매일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것만 같던 녀석에게, 매일 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았던 빌헬름에게, 제대로 자신을 각인시켜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제 이 검을 선보일 대상은 이 세상에 없으니······. 

쩌릉! 

검이 울었다. 

동시에 압둘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샬라의 범위 안쪽으로 들어가자. 

스팟-! 

빛이 보였다. 

검을 뽑고 휘둘러 쪼갠다. 

하지만, 한 번 보인 발검은 실력자에겐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찌르르르! 

검과 검이 마주한 순간 전신을 울리는 공명음. 

빛과 같은 발검을 튕겨낸 압둘라는 검을 가슴팍 쪽으로 끌어당기고, 자세를 낮춘 뒤,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휘둘렀다. 

‘쉽게 움직이진 못할 테니······!’ 

진공검과 검을 맞댄 이상 깊은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곧바로 이어진 검격에 반응할 여유 따윈 없을 터. 

촤앙! 

······ 하지만, 튕겨나갔다. 

압둘라는 그대로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긴급하게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뭐에 당한 거지?’ 

어느새 왼쪽 어깨가 피에 젖었다. 

마치 날카로운 예기에 베인 것만 같이. 

일반적인 검이 아니다. 

“쌍검······?” 

샬라가 꺼낸건 매우 작은 검이었다. 

발검 사용자가 쌍검을 사용하는 건 처음 보았기에, 압둘라는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검은 방어의 용도로군. 발검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허나, 알았으며 됐다. 

저것 역시 두 번은 안 당한다. 

‘전부 파악했다.’ 

압둘라가 보폭을 짧게 가져갔다. 

상대의 범위를 확실하게 인지했고, 쌍검의 유무도 알았으니, 남은 건 승리다. 

샬라. 

그녀는 이제 자신을 이길 수 없다. 

······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압둘라 경께서 왜 저러시는 거지?” 

“가, 갑자기 멈추셨는데?” 

사람들의 의아한 목소리. 

샬라에게 다가가던 압둘라가 갑자기 멈춰섰기 때문이다. 

압둘라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몸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독!’ 

저 작은 검에, 독을 묻혀놓은 것이다. 

기사의 대결에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 

저딴건 기사가 아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독이라면 마력으로 몰아낼 수 있는 경지임에도. 

신경독. 그것도 마력으로 몰아낼 수 없는 강력한 것이다. 

스슥. 

곧이어 샬라가 움직였다.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 

샬라는 가볍게 압둘라의 목을 취하려 검을 휘둘렀다. 

채엥! 

혼신의 힘을 다해 압둘라가 움직였다. 

이를 악물며 검을 쳐내지만, 이미 움직임은 더없이 둔해진 상태. 

툭! 

결국, 압둘라의 왼쪽 팔이 잘려나갔다. 

······ 이길 수 없다. 

모든 경우를 상정하지 못한 자신의 패배다. 

이건 일반적인 기사의 싸움이 아니라, 왕국의 명운을 건 대결이었을진대. 

‘아.’ 

샬라의 검에 선홍빛 검기가 맺혔다. 

막을 수 없다······. 

그대로 샬라가 압둘라의 목을 베었다. 

촤악! 

그 순간, 

베어졌다. 

‘아니.’ 

··· 베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압둘라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 다음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 세렝게티?” 

세렝게티가 서있던 장소에. 

그녀의 권능, 위치 바꾸기가 발현된 것이다. 

그러나 세렝게티도 멀쩡하진 못했다. 

샬라의 검이 그녀의 가슴팍을 길게 베어놓았다. 

가까스로 치명상은 면했으나 출혈을 놔뒀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터. 

“왜···?”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압둘라가 질책했다. 

그러자, 세렝게티는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죽어선 안 됩니다, 압둘라 경.” 

“그대가 유일한 희망인데 왜······!” 

멀쩡한 상태로 싸워도 부족할 판국에, 상처를 입었다. 

세렝게티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말했다. 

“만나야할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만나야할 분? 

세렝게티가 말하는 게 설마······. 

허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대원정에서 죽었을텐데.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아아아아아아아! 

기운이 빗발친다. 

더없이 하얗고, 순백으로 가득한. 

바투스나, 압둘라가 보인 검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엄청난 기운! 

그건 마치 날개처럼 빛나며 세상을 오시하고 있었으니. 

그녀는 그 상태로 샬라를. 

샬라의 건너편에 있는 프리드릭 왕을 도발하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깁니다.” 

심연. 

한없이 어두우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장소. 

먼 옛날의 대륙이 삼켜져 수많은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곳이다. 

이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 란돌프님. 발란 왕국이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나는 이 심연 속에서 이자벨라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심연에 입장하자마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프리드릭 왕 때문에 그런가?” 

“그는··· 교만의 악마입니다. 제국이 밀어주는 자. 여신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와이저 후작과 세렝게티가······.” 

“괜찮다.” 

“예?” 

느닷없이 괜찮다 말하자 이자벨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이유는 뭐, 별 게 없었다. 

“세렝게티는 강하다. 그녀를 믿도록.” 

단순히 무력의 강함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세렝게티는, 모든 면에서 강했다. 

절대로 부러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위험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밝은 태양과도 같은 존재.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만에 하나의 경우에 다다르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 자신하시는군요.” 

“보험을 들어놨으니까.” 

“······?” 

여전히 모르겠다는 이자벨라의 표정. 

나는 피식 웃었다. 

제국 회의에서 교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해놨다.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무적의 보험을. 

지금은 그보다, 이 심연의 일이 더 중요했다. 

‘신의 살갗 혼종.’ 

······ 이 심연은 그놈의 영역이니까. 

과거 세렝게티를 만나러 간 와이저 후작가에서, 워프가 심연에 가라앉자 튀어나오려 했던 심연의 괴물이 ‘신의 살갗 혼종’이었다. 

메인 퀘스트 4 ‘암흑공간의 틈새를 메워라’와 함께. 

다행히 시간 내로 모든 워프의 작동을 멈춰서 ‘신의 살갗 혼종’이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만약 튀어나왔다면, 거기서 나는 죽었을 것이다. 

‘제주도 사건때 분명히 놈의 눈을 봤다.’ 

이후 심연에서 바알을 죽였을 때, 수많은 ‘심연의 거주자’들이 나를 관심있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놈의 눈이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그 괴물이 말이다. 

‘마치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눈이었지.’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놈은 나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신의 살갗 혼종’이 다음을 기약하며 당신을 두 눈에 담습니다.》 

메인 퀘스트 4를 완료했을 때, 그때부터 말이다. 

멸망의 파편을 갖기도 훨씬 전부터! 

심연의 주인이 굳이 인간을 눈에 담는다? 그런 건 처음 보았다. 

게다가 이번 심연도 마찬가지다. 

놈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 게 우연같지가 않았다. 

······ 신의 살갗 혼종. 

모든 혼종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 

놈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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