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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18화 (218/317)

일격필살

“실로 오만한 놈입니다!” 

“당장 죽여야 합니다!” 

“고작 여섯! 반면에 오늘 왕성에서 대기 중인 병사만 오천입니다. 충분히······!” 

프리드릭 왕이 떠나간 이후. 

궁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요구일뿐더러, 그 거들먹거리는 태도라니!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고작 여섯 명이다. 오천의 병사가 여섯을 죽이지 못할 리가 없지 않나. 

‘세렝게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이에서 와이저 후작은 고개를 돌려 세렝게티를 바라봤다. 

그러자 세렝게티는 표정을 굳힌 채 고개만 저어 보일 따름이었다. 

12레벨에 1성의 초월자인 그녀조차도 조금 전 보았던 자들의 기세에는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어. 세렝게티가 저럴 정도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데.’ 

와이저 후작은 세렝게티를 잘 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게 그녀였고,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마다하지 않고 돌진부터 하는 순백의 기사였다. 

그런 세렝게티가 대놓고 고개를 젓는 건 도저히 상대를 가늠할 수 없는 경우뿐이다. 

대체 얼마나 강한 자들이기에? 

란돌프와 함께하며 인간계에선 더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진 세렝게티 아니던가. 

“······ 내일 다섯의 기사가 나서야 한다면 누가 좋겠소? 마땅한 후보가 있나?” 

왕좌에 앉아, 이마를 부여잡으며 발란 왕이 말했다. 

성녀 세아가 나타났을 땐 방법이 있겠다 싶었지만 정작 그녀를 본 프리드릭 왕은 시큰둥했다. 

설마 위협이 전혀 통하질 않을 줄이야. 

왕의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가신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폐하! 대결을 받아들이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러면 놈은 발란 왕국을 더욱 우습게 볼 것입니다!” 

“부디 재고해주시옵소서!” 

왕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재고를 하라고? 

재고(再考). 

그러니까, 다시 생각하라? 

“경들은······ 진정 생각이 없는 건가?” 

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발란 왕이 입을 열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아이언 왕국은 벌써 마흔 개가 넘는 영지를 소유했고, 당장 기동할 수 있는 기사만 오백이 넘는다. 병사의 규모는 오만에 다다르며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온 정예들이지. 경들은 우리 발란 왕국이 뭐 하나 나은 게 있다고 보는가?” 

“그러니까 프리드릭 왕을······.” 

“뮨 왕국이 멸망한 이유를 모르나 보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상황이었소.” 

“하지만 그건 소문 아닙니까?” 

발란 왕은 고개를 저었다. 

뮨 왕국은 아이언 왕국에게 멸망한 비운의 국가이다. 

말마따나 풀 한 포기, 사람 한 명 남기지 않고 몰살당했다. 

전쟁이라 할 것도 없이 워낙 빨리 끝났는지라 대체 어떻게 멸망한 건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발란 왕은 알고 있다. 

“프리드릭 왕은 다섯 기사와 함께 뮨 왕국으로 향했고, 그들도 대결을 제안받았소.” 

“대결에 응했습니까?” 

“아니, 암습을 시도했지. 그리고 다음 날, 뮨 왕국은 사라졌소.” 

“······.” 

동시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뮨 왕국의 규모는 발란 왕국과 비슷하다. 

그런 왕국이 하루 만에 쑥대밭이 되어 사라졌다면······ 발란 왕국 역시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발란 왕은 허투루 말을 하지 않는 자. 

그가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면 그건 진실일 터. 

“그러니 추천해보시오. 내일 대결에 나설 다섯 기사는 누가 좋을지. 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첫 대결은 기선제압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굳이 하나를 뽑는다면 당연히 우리 왕국 최고의 기사 바투스가 가장 먼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아, 바투스라면 실로 믿을만하지. 사이엔 공작.” 

사이엔 공작이라 불린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전 가주가 한때 8영웅이라 불리었던 막심에게 암살당한 뒤 새로 가문을 세습한 게 그였다. 

곧이어 공작의 옆에 있던 기사 바투스가 어깨를 쫙 편 채 고개를 들었다. 

왕국 제일을 다투는 기사. 

그라면 이견이 없었다. 

“··· 아무리 그래도 세렝게티 경이 낫지 않을는지요? 순백의 기사는 대원정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패배하고 몰살당한 원정은 입에 담지도 마시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의견도 있기는 했지만, 젊은 사이엔 공작은 가시 발린 말로 끊어냈다. 

자신의 기사가 선공으로 나서서 프리드릭 왕의 기사를 쓰러트린다면, 왕국에서의 입지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막심 따위에게 암살당했다는 불명예는 깨끗하게 씻기리라. 

무엇보다 8영웅에 속해있던 막심을 받아줬다가 생긴 불상사기에 대원정이란 단어 자체를 사이엔 공작은 멸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전 아버지에게 전해 듣기로, 대원정에서 돌아온 세렝게티 경은 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전성기의 무력을 과연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부터 드는군요.” 

“······ 세렝게티 경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이엔 공작.” 

와이저 후작이 즉시 받아쳤다. 

대원정에서 살아 돌아온 세렝게티는 불구가 된 상태였다. 

마왕의 저주에 걸려 의식조차 없는 상태. 

그때만 생각하면 와이저 후작은 얼굴이 붉어졌다. 

창피해서. 

늙은 사이엔 공작 따위에게, 딸인 세렝게티를 팔 뻔했으니까. 

영지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만약 란돌프와 허드슨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때 젊은 사이엔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세렝게티 경이 나의 바투스보다 강하단 말인가, 와이저 후작?” 

“기사왕께서 바투스 경이 아닌 세렝게티 경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소?” 

“기사왕? 기사왕 빌헬름? 아아, 한때 발란 왕국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건 적이 있긴 했지. 하지만 그를 믿은 결과는 어땠나? 우리에게 뭐가 남았지? 당장 후작만 하더라도 500명의 기사를 잃었을 텐데?” 

발란 왕국이 쇠퇴한 결정적인 이유. 

왕국의 명운을 걸고 진행한 대원정 때문이었다. 

와이저 후작도 전력을 다해 육성한 500명의 기사를 잃었다. 

발란 왕과 다수의 귀족 모두가 뼈아픈 손해를 보았다. 

‘그래도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닐진대.’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기사왕 빌헬름. 그를 통해 왕국은 막대한 이득을 취했었다. 

아무런 자원도 나오지 않는 땅덩이에서 그나마 ‘기사의 천국’이라 불리며 인적자원이라도 끌어당길 수 있었던 건 모두 빌헬름 덕분이었다. 

지금도 그의 후광에 따라 많은 인재들이 충원되는 중이었다. 

뿐만인가. 

발란 왕국에 적재되어있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준 것도 그였다. 

단순히 손익을 따지자면 왕국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 

본래 뮨 왕국은커녕 주변 왕국들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던 약소 왕국이 이곳이었으므로. 

와이저 후작의 표정이 한층 더 굳었다. 

“왕국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기사왕 덕분이었다는 걸 잊은 건······.” 

“··· 그만.” 

바로 앞에 적을 놔두고 내분만큼 꼴 사나운 게 어디 있으랴. 

결국 발란 왕이 나서서 둘 사이를 중재시켰다. 

“바투스가 선두로 나설 것이다. 두 번째는 나의 기사 압둘라가. 그리고 세 번째 순서로 세렝게티가 좋겠군.” 

“······!” 

와이저 후작이 경직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와 반대로 와이저 후작과 세렝게티를 바라보는 젊은 사이엔 공작은 한껏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바투스. 

사이엔 공작가의 가장 강한 기사이며, 왕국 전체로 보아도 적수가 없을 정도로 검을 갈고닦은 달인이었다. 

한때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와 함께 자주 이름이 언급되며 비견되긴 했지만. 

‘내가 더 강하다.’ 

인정할 수 없었다. 

고작 여자 따위. 

신체적으로 보나, 검에 할애한 시간과 노력으로 보나, 자신이 세렝게티보다 뒤쳐질 게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왜 기사왕 빌헬름이 자신이 아닌 세렝게티를 대원정에 데려간 것인지 바투스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옆에 둘 여자라도 필요했나?’ 

겉으로는 지고지순한 기사왕 흉내를 낸다지만, 원래 그런 놈이 더한 법이었다. 

더 음흉하고 속을 알 수가 없다. 

자신을 데려갔다면 그토록 쉽게 대원정이 무너지진 않았을텐데. 

‘오늘이야말로 내가 더 뛰어남을 증명해주마.’ 

순백의 기사? 

기사왕? 

다 옛 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왕국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투스 세 글 자를 목 놓아 부르짖으리라. 

고작 여자 따위에게 밀린 내가 아니다. 

후우우우. 

그리 생각하며 바투스틑 검을 쥔 채 숨을 가다듬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다. 

왕도 귀족들도 병사들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증명해줄 것이다. 

“발란 왕, 머리가 장식은 아니었나보군.” 

“······.” 

프리드릭 왕. 

그는 대결에 나선 왕국을 보며 한차례 손뼉을 쳤다. 

만약 암습이라도 하려 했다면 지금 이곳은 불바다가 됐을 테니까. 

이어 프리드릭 왕의 눈이 바투스에게 향했다. 

“그러나 보는 눈은 없는 것 같군. 선두로 가장 강한 자를 내보낼 줄 알았더니······.” 

“바투스 경은 왕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그래? 그럼 나는 가장 약한 기사를 내보내야겠군. 샬라.” 

툭. 

그러자 전신 갑주를 입은 외소한 체구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데려온 다섯 기사 중 가장 약한 자. 

‘여자?’ 

바투스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졌다. 

저 체구는 아무리 봐도 여자다. 

미묘하게 튀어나온 듯한 가슴팍과 틈 사이로 보이는 얇은 목선. 

무엇보다 눈. 

저 색기 가득한 눈은 절대로 남자일 수가 없다. 

‘여자 따위를 선두로 보내다니. 미쳤군.’ 

감히 자신을 상대로!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실망이다. 

프리드릭 왕이야말로 보는 눈이 없는 자가 분명했다. 

어이가 없지만, 도리어 잘됐다. 

세렝게티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누가 더 우위인지. 

바투스가 검을 들었다. 

‘나는 더 강해졌다.’ 

스아아아아! 

곧이어 검에 맺히는 푸른색의 기운. 

“거, 검기!” 

“바투스 경이 검기를 펼쳐내다니!” 

“오오오오-!” 

그 선명한 검기의 출현에 왕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검기란 강자의 증명과도 같은 것. 

진정한 검의 달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것을 바투스가 발현해낸 것이다. 

“왕국의 경사입니다!” 

“검기 사용자라면······ 이길 수 있습니다!” 

“바투스 경 만세!” 

모두가 하나되어 목청을 높였다. 

바투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 마음껏 외쳐라. 

내 이름을! 

예상한 반응에 바투스는 양쪽 어깨를 으쓱했다. 

검기 사용자는 대륙을 통틀어도 많지 않았으니. 

슬쩍 시선을 돌리자, 발란 왕의 눈빛에도 깊은 온정이 담겨있었다. 

‘나를 위한 무대로군.’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 

남은 건 승리뿐. 

“미안하지만, 빨리 끝내야겠다.” 

바투스가 자세를 잡았다. 

한 발을 내딛었다. 

어차피 곧 죽을 여자. 다정하게 인사치레나 할 생각은 없었다. 

후아아아앙! 

검기를 최대로 발현시켜, 땅을 발판삼아 돌풍처럼 뛰어들었다.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겠지만 나를 원망하진 마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 

감히 반응조차 하지 못하리라! 

이윽고 바투스의 검이 상대의 목에 닿았다. 

동시에. 

툭. 

털썩!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어······?” 

“이게······ 어어?” 

“왜······?” 

“어떻게 된 일이야?” 

떨어진 것을 본 모든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분명히 공격을 한 건 바투스일진대. 

······ 어째서 바투스의 목이, 바닥을 굴러다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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