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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14화 (214/317)

진정한 절망

나는 탐욕한다. 

탐욕은 끝을 모르는 욕심. 

그것은 정해놓은 선을 부수고 뭉개며 한계를 무시하는 힘일지니. 

너무나도 강력한 탓에 신들조차 시기했던 무한한 권능이노라.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할 대상조차 없기에, 감히 모든 죄악 중 가장 강력하다 아니 할 수 없을 터. 

고로, 나는 탐욕한다. 

탐욕하고, 또 탐욕하며, 완전무결한 순수에, 궁극에 도달하고자 하노라. 

허나 그것은 신(神)이 아니고, 악(惡)조차 아니며, 보다 근원적인 진리에 가까운 것. 

진리의 문 너머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나는 탐욕할지니. 

모든 신들이여! 

머나먼 옛 존재들이여! 

그리고 멸망이여! 

너희는 감히 나의 탐욕을 멈출 수 없다. 

-탐욕의 서(書)- 

툭! 

프리드릭 왕. 

그가 호화스러운 마차 안에서 낡은 서적을 덮었다. 

“폐하.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바로 앞에 앉은 늙은 기사의 말에, 프리드릭 왕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말이냐?”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 마음에 걸린다, 라.” 

프리드릭 왕은 가만히 마차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발란 왕국의 거대한 성이 비추고 있었다. 

교만.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우롱하고 비웃으며 티끌로 여기는 자. 

모든 죄악 중 극도로 ‘재미’를 추구하는 그가 무언가를 마음에 걸려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허나······.’ 

··· 못내 걸리는 게 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면 거짓이리라. 

물론 발란 왕국 따위는 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끝없이 휘젓고 있는 것. 

‘탐욕. 놈이 부활한 건 틀림없다.’ 

세계에 존재하는 일곱 악마들. 

질투는 아마도 투신 카라스에 의해 죽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듯 탐욕이 부활했다. 

하지만 탐욕의 부활은 교만으로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차라리 다른 악마가 나타났다면 납득이라도 했을 텐데. 

“일곱 악마에 대해 알고 있느냐?” 

“폐하와 비슷한 존재들 말입니까?” 

늙은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는 프리드릭 왕이 교만의 악마임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이언 왕국 최강의 기사이자, 교만이 수없이 별을 먹인 괴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까지 알고 있지?” 

“태초부터 존재해온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의 일곱 죄악. 그 욕망이 형상화한 것이 일곱 악마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는 건 대부분 이 정도일 것이다. 

악마는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는다. 

하여 인간이 아는 악마에 대한 지식의 총량은 형편없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뒤에서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신들의 눈에 띄면 귀찮아지니까.’ 

천적. 감히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신들은 악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악마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이유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신들은 악마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신이 ‘멸망’에 의해 소멸하거나 신격을 잃었으니, 악마들도 마음대로 하늘을 올려다본다지만. 

‘멸망의 출현 이전은 신들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풀었다. 

인간은 신의 기술로 말미암아 검과 마도를 꽃피웠고, 수많은 금단에도 손을 대었다. 

그 활발한 교류와 발전 속에서 악마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나약한 짐승과 인간의 몸속에 숨어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만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인간의 궁극적인 지적 허영과 같은 것들이 신과의 교류로 인해 채워지자, 인간의 욕망을 먹고 사는 악마들의 힘은 극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악마가 숨죽일 때. 그놈만은 달랐지.’ 

하지만 딱 한 놈.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악마가 있었다. 

‘········· 탐욕.’ 

놈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며, 

그를 단죄하고자 달려드는 신이 있다면 호쾌하게 웃으며 정면에서 맞섰다. 

실로 악마같지 않은 악마였다. 

그래서일까. 

신들도 탐욕만은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이르러선 바로 앞에 있어도 보고도 못본 척 지나갈 정도였다. 

그야말로 별종 중의 별종. 

교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 

놈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무(武)의 궁극! 

‘그딴 게 재밌나?’ 

재미없다. 

정말 미치도록 지루한 녀석이었다. 

솔직히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마 다른 악마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멸망이 출현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지.’ 

멸망의 출현은 악마들에겐 축제와 같았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괴신과 악마는 궁합이 좋았다. 

그로 인해 악마들은 잃었던 힘을 되찾아, 더 이상 숨어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악마들에게 멸망은 좋은 친구다. 

하지만 탐욕에겐 아니었던 모양이다. 

‘탐욕은 여신들에게 봉인되었다. 그렇게 봉인된 상태로 멸망과 맞서고 사라졌다.’ 

자세한 내막은 그도 모른다. 

다만, 멸망의 앞에 나타난 탐욕은 두 여신, 레아와 피나에게 봉인된 상태였다. 

탐욕은 힘을 잃은 상태에서도 멸망에게 도전했고, 그 뒤 소멸했다고 알려졌다. 

멸망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탐욕을 살려둘 리 만무하니······. 

‘완전하게 소멸한 게 아니었던가.’ 

분명히 소멸했어야 한다. 

하지만 탐욕은 부활했다. 

그것도 전혀 예상 외의 순간에. 

‘누구의 몸으로 부활한 걸까.’ 

턱을 쓸었다. 

그것까진 알 수 없다. 

다만, 이것도 의아한 건 사실이었다. 

탐욕은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신과 같았던 놈. 

신들조차 포기한 불가사의한 존재다. 

그래서 만에 하나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나는 틀림 없이 빌헬름이 탐욕인 줄 알았다만······.’ 

라이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성되어가고 있다.’ 

더는 대충 상대할 수가 없다. 

이제는 단순한 강과 강의 대결이 아니었다. 

죽고 죽이는 투쟁. 

숨 쉴 틈도 없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아마도 염소가 ‘저것’을 완성한 뒤로부터일 것이다. 

도저히 신경을 다른데 둘 수가 없는 것은. 

‘강의 기운을 한 번 더 압축시켰다. 저건 필시 검환(劍丸)······!’ 

검의 끝에 둥그렇게 맺힌 기운! 

초고도로 집약시킨 검강의 기운을 한 번 더 압축시킨 형태다. 

영롱한 보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크기는 엄지손톱 정도에 불과하나 그 안에 갇힌 두려운 위력은 굳이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터지는 순간 반경 수십 미터는 가볍게 증발하리라. 

말 그대로 ‘증발’이다. 

그 범위 안에 있다면 자신의 목숨도 위태하다. 

‘팔가의 초대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검환은 신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힘이다. 신들도 죽일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꿀꺽! 

라이가는 처음으로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그러나 검환은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다. 

염소 역시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 서로 죽여보자는 것이냐?’ 

단순한 강과 강의 대결은 끝났다. 

저걸 자신의 앞에 내놓은 순간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마찬가지. 

이곳에서 저런 게 터졌다간 신록을 비롯한 팔가의 모든 게 날아갈 건 자명한 일. 

즈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라이가의 검강이 거대해졌다. 

마치 거인의 무기처럼 비대해지며 세상을 찢어발길 듯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든 걸 도륙내는 절멸의 검. 

심연의 주인들도 두려워하는 라이가의 비기! 

콰르르르르릉! 

휘두르며 부딪히는 순간 우레가 치듯 세상이 시끄럽게 떨렸다. 

‘타격이 있다.’ 

검환 사용자라도 자신의 본심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건 불가하다. 

그 증거로 검을 맞댄 염소의 오른팔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꺾였다. 

하지만. 

라이가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반사효과······.’ 

염소와 마찬가지로. 

아니, 염소보다 더 기이한 형태로 자신의 팔이 꺾여있었으니까. 

뭐지, 이건? 

단순한 반사효과라고 하기엔 피해가 너무 크지 않나. 

‘피해를 배로 반사 시킨다. 그러나 내 타격은 그러한 반사효과를 무시할진대.’ 

··· 어이가 없었다. 

피해를 반사시키는 효과를 지닌 건 분명해보였지만, 라이가 역시 ‘피해 반사를 무효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저 반사의 효과가 자신의 무효화 효과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런 게 있을 수 있는 건가? 

‘뿐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타격이 적어. 이놈은 관통 효과도 어느 정도 저항하는 능력을 지녔다.’ 

······ 관통력은 모든 능력 중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이다. 

라이가의 관통력은 모든 갑옷과 방패를 무시할 수준. 

하지만 염소는 달랐다. 

관통력 저항을 지닌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정말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느낌이 잘못됐을 리는 없으므로. 

‘········· 어이가 없군.’ 

피해를 배로 반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관통력 저항을 지녔다니. 

이는 바알에게도 없는 능력이다. 

이놈··· 대체 뭐 하는 놈일까? 

‘놈을 죽이면 나도 죽는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긴장감은 아주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긴장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이건만. 

그래서, 재밌다. 

자신의 갈증이 드디어 풀어질 것만 같아서. 

마른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오냐. 죽여주마.” 

라이가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검을 쥔다. 

휘두른다. 

막고, 베고, 찌르는 일련의 동작들. 

이전에는 빌헬름의 기억에 의존할 뿐이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빌헬름 그 자체가 되고, 넘어서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부족하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이건 빌헬름을 넘어선 게 아니라고. 

그를 넘어서기엔 너무나도 많은 게 부족하다. 

그 너머를 엿보긴 하였으나, 온전히 담아내기엔 시간이 걸릴 듯싶었다. 

<‘태고의 갑옷’에 의한 관통 저항이 발동합니다.> 

<‘태고의 갑옷’에 의한 피해 반사 210%가 적용됩니다.> 

<출혈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이대로는 내 앞에 선 자를 이길 수 없다. 

역부족이다. 

물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것. 

여기까지가 내 한계임을 인정하고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하여 저 ‘빌헬름’이라 칭해지는 보상을 얻게 된다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거절한다.’ 

아직 멀었다. 

나는 탐욕한다. 

더 많은 힘을. 

더 많은 가능성을! 

설령 그 끝에 죽게 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검환을 이루기 위한 마력이 부족합니다.> 

<지속적으로 체력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주의! 출혈을 멈추지 않으면 사망합니다.> 

<주의! 마력을 모두 소진하면 사망합니다.> 

멈추라는 경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멈추면 그 또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의식이 멀어지고, 두 발을 딛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지만. 

멈추지 않는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나는 나아갈 것이다. 

쩌적! 

그 순간이었다. 

라이가의 검이 염소의 탈을 때렸다. 

이 탈은 태고의 갑옷이 형상을 변형한 것. 

본래라면 절대로 파괴되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쩌저적! 

그것이 둘로 조각나며 깨지기 시작했다. 

쿵! 

그리하여 탈이 부서지고 바닥에 떨어지자. 

“이건 또······ 뭐냐······?” 

내 두 눈에, 라이가의 경악한 두 눈이 보였다. 

경악하며, 동시에 두려워하는 눈빛이. 

그리고 그 이유를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착용자의 상태가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태고의 갑옷’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 ‘태고의 절망’이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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