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12화 (212/317)

빌헬름의 기억

검강(劍剛)이란 무엇인가? 

게임에서 검강은 일종의 스킬 같은 것이었다. 

검 숙련도 30Lv을 달성하면 얻을 수 있는.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얻는 게 불가능한 전설 스킬 말이다. 

당연히 그 효능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피해량 50% 증폭! 

게다가 화려한 이펙트로 위압감을 선사하니 검강을 휘두르는 빌헬름은 절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빌헬름의 검강도 ‘순수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빌헬름도 순수하게 검 숙련도 30레벨을 찍진 못했지.’ 

애초에 숙련도 30레벨을 찍을 수 있는 클래스는 없다. 

지금 내가 지닌 ‘지고의 검성’ 클래스 외엔. 

빌헬름 역시 별과 장비, 도구 등의 힘을 빌려 한계 레벨을 확대했을 뿐이었으니. 

‘라이가 기사단장이 말하는 순수한 검강······ 추가된 한계 레벨 없이 오직 클래스만으로 검강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말하는 거다.’ 

이는 즉, 라이가 기사단장 역시도 ‘지고의 검성’과 비견되는 클래스를 지녔다는 의미였다. 

다만··· 그는 내가 ‘바알’을 완전하게 제어하여 한계 레벨을 돌파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 클래스가 ‘바알’ 그 자체라면 충분히 숙련도 최대치가 30레벨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클래스를 지닌 거지?’ 

그래서 궁금했다.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지고의 검성 외에 숙련도의 한계 레벨을 30까지 확장해주는 클래스가 또 있을 줄이야. 

하물며 검강을 펼쳐냈다는 건 30레벨까지 숙련도를 올렸다는 방증. 

그것도 외부적인 도움 없이, 순수한 수련만으로 그걸 가능케 했다는 뜻이었다. 

라이가 기사단장이 대체 얼마나 많은 검을 상대하고 휘둘렀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스킬이 아니다.’ 

하여 더더욱 흥미롭다. 

검강에 대해 깊이 고찰해본 적은 없었으므로. 

그동안 내게 검강은 그저 피해량을 늘려주는 유용한 스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까앙-! 

강(剛)과 강(剛)이 부딪힌다. 

아무런 기교 없는, 단순 무식한 타격. 

그러자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듯 둔탁한 소리가 났다. 

꽈아아앙! 

다시 한번 휘두르자 이번엔 폭발음과 함께 세상이 일렁였다. 

서로가 가격한 힘은 그대로인데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걸까. 

‘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검강을 이룬 마력의 균형이 일정하지 않은 탓이다. 

만약 모든 지점의 마력이 균일하다면 어딜 때려도 똑같은 소리만 나야 정상이다. 

검강은 결국 마력을 극도로 집약시켜 파괴력을 올리는 기술. 

막대한 마력을 쏟아부으니 균형을 이루는 일도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 내 균형만 미묘하게 다르다.’ 

부딪힐 때마다 나의 검강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라이가 기사단장의 검강에 비해, 내가 펼친 검강은 마력이 균일하게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여태껏 나는 검강을 쏟아붓기만 했다. 

단순히 스킬을 사용하는 감각으로. 

그러나 라이가에게 있어서 검강은 수련의 산물이었다. 

극(極)의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이자 자신의 격을 증명하는 형상 그 자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군.’ 

아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다.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의미를 담을 줄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검강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그 정도의 노력과 정성을 들이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스킬의 부류 중 하나로만 여기고 있었으니까. 

내가 별 노력 없이 검기와 검강을 다룰 수 있는 건 그저 특정 숙련도 레벨을 달성해서가 아니다. 

‘빌헬름.’ 

빌헬름을 플레이하고 빌헬름의 기억을 계승한 나였기에 그가 만든 길을 보다 쉽게 걸었을 따름이었다. 

내겐 게임이었으나, 빌헬름에겐 게임이 아니었을 터이니. 

‘검을 처음 쥐었을 때, 너는 무슨 기분이었지?’ 

··· 그래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빌헬름의 기분을. 그가 길을 만들고자 들인 노력을. 

그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므로. 

‘처음으로 검강을 발현시켰을 땐 어땠지?’ 

떠올려본다. 

시작과 끝을 다시 살피고자 나는 빌헬름이 만든 길을 역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보였다. 

빌헬름이. 

―마침내······! 

드디어, 보였다. 

―개 같은 신이여! 네가 만든 모든 세계를 불살라주마! 

진짜 빌헬름이. 

··· 쇠긁는 목소리. 

각고의 노력 끝에 경지를 이룬 빌헬름은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건 내가 플레이어가 되기 직전 인트로(Intro)라 여겼던 장면의 일부. 

빌헬름이 마왕에게 게임오버 당한 직후 보았던 회상의 한 장면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神)이 있다. 

대지의 여신 레아, 창공의 여신 피나가 대표적이겠지만, 그 외에도 신격을 지닌 신들은 두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빌헬름에게 그들은 진짜 신이 아니었다. 

‘신이란 전지전능하며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존재.’ 

빌헬름이 정의내린 신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신’들은 빌헬름의 기준에서 진짜 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멋대로 움직이는 자. 그가 진짜 신이겠지.’ 

스스로를 자각했을 땐 어느덧 검을 들고 있었다. 

적이라 여겨지는 모든걸 베어나가자 사람들은 그를 기사왕이라고 치켜세웠다. 

강제로 목적이 부여되고, 사명을 떠안게 된 운명. 

그 모두가 자신을 움직이는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빌헬름은 간헐적으로 자각할 때마다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간다. 

무력의 수위가 올라갈 때마다 자아 또한 강렬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체는 억압당한 상태. 

신은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명을 완수하면 자유를 얻는 건가?’ 

사명. 마왕을 죽이고 대륙의 평화를 되찾는 것. 

그 쓰임이 다했을 때 신은 그를 놔줄는지. 

그래도 자유만 되찾는다면 모든 걸 알고 행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강해져주마.’ 

빌헬름의 강렬해진 자아는 더 큰 힘을 갈구했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끊임없이 가상의 훈련을 이어나갔다. 

수없이 깨달음을 얻고 벽을 깨나가며 더욱 빠른 성장이 가능케했다. 

간혹 신의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육체를 움직일 수 있을 때면, 그는 더욱 완전무결한 ‘기사왕’을 연기하며 꿈을 키웠다. 

자유로이 세상을 누비는 꿈을. 

“마침내······!” 

그렇게 검기를 넘어, 검강을 완성했을 때. 

빌헬름은 격동했다. 

여태껏 얻은 깨달음과는 궤가 다르다. 

검강의 이해는 그의 자아를 한층 더 강해지게함은 물론, 마력의 근원과 진리에도 닿게 만들었다. 

각성(覺醒)이다. 

빌헬름은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다. 

‘검에 나를 담는다. 내가 신이 된다.’ 

그렇다. 

이 순환과 균형은 진정 신으로 완성되는 첫걸음이었다. 

완전무결한 강의 형태야말로 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그는 어떤 의미에선 신이라 칭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 닿을 수 있다.’ 

이제는 정말 사명에 닿을 것만 같았다. 

상대가 마왕이라 할지라도,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시에 빌헬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떠냐, 빌어먹을 신아. 

네놈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고자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 

끊임없이 연기하며 달성하고 있다. 

그러니, 답해봐라. 

··· 부디. 

제발 답해다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고. 

이 길의 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끝까지 침묵 하겠다면. 

“개 같은 신이여! 네가 만든 모든 세계를 불살라주마!” 

네가 만든 세계를 진짜 불살라버릴지도 모르니. 

빌헬름의 기억. 

검강을 발현했을 당시의 회상. 

순간 마치 나 스스로가 빌헬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증오하고 있었구나.’ 

다른 캐릭터들과 마찬가지였다. 

이자벨라나 아이작과 똑같이 자신을 멋대로 조종한 나에 대한 근본적인 원망을 갖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도 더. 

‘빌헬름은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이자벨라와 아이작은 조종당했을 때의 기억이 없다시피하다고 했다. 

신병에 걸린 이후 한참이나. 

아마도 내가 방치할 때까지 말이다. 

반면에 빌헬름은 달랐다. 

그는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걸. 

‘빌헬름이 강해진 건 나의 노력만이 아니었다.’ 

빌헬름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마왕 앞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이룬 노력은 어지간한 범인(凡人)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모든 걸 상실한 상태에서 오로지 강해지는 데에만 집중했으니까.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강에 대한 깨달음······ 신으로 완성되는 첫 걸음이라.’ 

이제는 알겠다. 

알 것 같았다. 

검강의 의미를. 

빌헬름이 부여한, 진정한 의지를.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이 바로 검강을 발현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환희는, 의미는 감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터. 

《‘검 숙련도’ 레벨이 상승합니다.》 

《검 숙련도가 31Lv을 달성했습니다.》 

《검 숙련도가 30Lv을 넘어 한단계 초월합니다.》 

《‘수련자의 산의 주인’으로부터 발생한 히든 퀘스트 ‘숙련도 레벨 초월(7)’을 완성했습니다!》 

《업적 ‘숙련도 레벨의 신화를 달성한 도전자’를 이룩했습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보상으로 유일등급 ‘아포칼립스’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숙련도 레벨이 상승했다. 

‘겨울(최후의 황혼)’에 의한 숙련도 최대레벨 확장. 

그로 인해 나는 검 숙련도를 35레벨까지 올리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30레벨 이후 어떤 식으로 변화를 맞이하는지 나는 모른다. 

레벨이 확장되었다고 한들, 30레벨을 넘도록 숙련도를 쌓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31레벨을 달성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유일 등급 아포칼립스라.’ 

수련자의 산에 오를 때 받은 히든 퀘스트. 

숙련도 상승률이 400%를 넘어가자 산의 주인이 내건 조건이었다. 

물론 처음 조건은 ‘숙련도 25레벨 달성’이었고, 레벨이 오를 때마다 계속해서 보상을 거절하자 퀘스트의 규모가 점차 커져간 것이다. 

그리하여 일곱 번째. 

거대한 재앙을 뜻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획득 기회를 얻었다. 

‘처음보는 이름이로군.’ 

게다가 내게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분명히 일전에 대륙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유일 등급 장비’의 이름을 보았을진대, 거기에도 저런 이름은 없었다. 

장비도 아니고, 신비도 아니라면, 저건 대체 뭘까. 

‘신비를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다. 달성 조건을 키울수록 보상이 좋아지는 구조야.’ 

확실한 건 보상의 등급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숙련도 레벨 32는 한 번도 달성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멈추는 게 맞다. 

괜히 도전했다가 달성하지 못하면 저 ‘아포칼립스’마저 날아가는 것이었기에. 

신비의 탑을 계속 도전할 때와도 전혀 다른 상황. 

당시와 같은 꼼수도 부릴 수 없다. 

하지만. 

‘거절한다.’ 

《도전자가 보상을 거절했습니다.》 

《퀘스트 규모가 증가합니다.》 

《히든 퀘스트 ‘숙련도 레벨 32 달성(불가사의)’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도전하고자 했다. 

지금 같은 기회는 또 없을 테니까. 

누군가가 보았다면 무모하다고, 왜 이렇게 미련하냐고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이 도전은 나의 첫 개척이자. 

‘······ 나는 너의 신이었구나.’ 

빌헬름의 신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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