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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11화 (211/317)

절대 검강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황제가 깨어나고 있으니 지체할 틈 따윈 없다는 듯이. 

‘······ 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은 세 개.’ 

나는 천천히 방을 나서며, 방금 전까지 진행된 회의를 떠올려보았다. 

회의에서 언급된 안건은 총 세 가지. 

첫 번째 안건은 교만의 악마 프리드릭 왕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 

두 번째 안건은 황금의 정령왕을 찾는 자에게 황제를 처음으로 알현할 기회를 주자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안건은 제국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대회’를 주최하자는 것이었다. 

‘제국의 화합을 위한 대회라.’ 

명분은 좋다. 

격동하는 세계. 

제국인들이 힘을 모으고 인재를 발굴하는데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 

한데, 대회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다. 

‘천하제일 무술대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군.’ 

이번 대회는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능력 있는 자. 재능 있는 자라면 단번에 인생을 역전할 기회. 

걸린 부상들도 내 예상을 아득하게 웃돌고 있었다. 

‘··· 빛의 길과 거룩한 빛.’ 

무려 두 개의 ‘유일등급’ 장비가 걸려있는 대회. 

그리그 걸린 두 개의 장비들 모두가 어쩐지 익숙한 이름들이다. 

‘······ 전부 빌헬름의 장비였던 것들이다.’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빌헬름이 죽고 해체된 여덟 개의 유일등급 장비 중 두 개의 이름이 난데없이 튀어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황금률 상점’에 분리된 재료들을 모두 제국에서 사들인걸까? 

플레이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그들이라면 황금률 상점을 이용하는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으니. 

“황금 염소님. 오늘은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알겠다.” 

토끼 탈을 쓴 시녀의 안내를 받아 궁에 마련된 숙소로 발을 들였다. 

마음 같아선 이놈의 황궁, 일 초라도 빠르게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위대한 달의 의지’가 이곳 황궁에 계신 날이다. 입성한 자들은 모두 궁에서 하루를 머물며 ‘위대한 밤’을 만끽하도록하지. 

회의가 끝나자 황금 가면이 말한 내용 때문이다. 

라이가 기사단장 역시도 별 말 없이 수긍한 걸 보면 연례행사와도 같은 일인 듯싶었다. 

‘만에 하나의 불상사를 대비하려고 병사들을 총집결 시킨 거였나.’ 

휘황찬란한 방의 내부. 

마련된 침대에 걸터앉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가공할 기운들. 

이제야 궁의 바깥에 병사들을 집결시킨 이유를 알 것 같다. 

······ 오늘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이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단순한 기싸움용 병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재미있군.” 

모든 상황을 종합한 나는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흥미로웠으니까. 

느껴지는 건 바깥의 병사들이 보내오는 마력만이 아니다. 

나를 향한 은밀한 시선들. 

모두가 서로다른 의도를 가진 채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황궁 내에 숨겨진 길이 있다.’ 

걸어오던 도중 히든 특성 ‘돌연변이’가 발동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 

히든 특성 없이는 볼 수 없고, 발을 들일 수 없는 길. 

황궁 내에 그런 장소가 있을 줄이야. 

‘설마 황제가 잠든 장소와 연결된 건 아니겠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확인해 봐야겠다. 

《‘그림자 발자국’을 착용합니다.》 

《‘민첩 수치(145)’에 따라 ‘특급 은신’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림자 발자국! 

웬만한 눈으로는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도록 사용자를 특급 은신시키는 망토. 

원래 가지고 있던 ‘그림자 망토’와 황금률 상점에서 구매한 온갖 재료를 ‘최초의 불’에 재련하여 ‘그림자 발자국’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미리 만들어두길 잘했군.’ 

제국으로 향하기 전. 

혹여나 이런 일도 생길까 싶어서 만들어두길 천만다행이다. 

나는 검게 물든 ‘그림자 발자국’을 착용한 채 유유히 방을 나섰다. 

《히든 특성 ‘돌연변이’가 작동합니다.》 

《숨겨진 길을 발견했습니다!》 

궁의 벽에 걸린 무수히 많은 그림들. 

그중 ‘사흉’이 그려진 그림 너머에 숨겨진 길이 있었다. 

《‘비밀통로(???)’로 입장했습니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업적 ‘황궁의 숨겨진 길’을 달성했습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배(800)로 획득합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벽 너머로 발을 들이자 보이지 않던 길들이 육안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 

물음표로 표시된 걸 보면 이런 길이 여기 하나만 있는 건 아닌 듯싶은데. 

‘무엇을 위한 비밀통로지?’ 

비밀통로를 만드는 이유는 많다. 

탈출을 위해서, 감시를 위해서, 무언가를 숨겨두기 위해서 등등. 

게다가 히든 특성 ‘돌연변이’로만 보고, 입장할 수 있는 길. 

무슨 용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물며 숨겨진 길로 향하는 벽에 ‘사흉’의 그림이 걸려있던 것도 못내 걸린다. 

휘이이이잉-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건가? 

찬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참을 걷자, 어느 순간 배경이 뒤바뀌며 너른 공간이 나타났다. 

‘언덕?’ 

어느덧 통로는 사라지고, 푸른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엔 거대한 ‘신록’이 있었으며. 

“역시 너는 특별한 존재였군.” 

······ 그 옆엔 ‘그’가 있었다. 

순간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왜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하지만 잘못 보았을 리도, 허상일 리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마주했던 자. 

그는 분명히. 

“···라이가 기사단장.” 

왜 그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그림자 발자국으로 은신한 상태임에도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나저나, 그도 ‘돌연변이’ 보유자였나? 

의아한 내 의문을 답해주듯 라이가 기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나 외에 이곳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건 처음있는 일이다. ‘돌연변이’의 특성을 지니고도 살아있는 인간이 또 있을 줄은 몰랐군.” 

“여기는 어디지?” 

“내 수련장이다. 아니, ‘우리’의 수련장이었지.” 

“우리?” 

“보아라.” 

라이가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다섯 개의 묘비가 있었다. 

“저 다섯명은 모두 ‘팔가’의 주인들이다. 정확히는 내 전대의 계승자들이지. 나는 그들의 힘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나를 완성하였다.” 

멸망의 파편을 사냥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몇 대에 걸쳐서 끊임없이 힘을 계승하여 완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가’의 이름은 내 대에서 끝날 수도 있다. 나의 힘을 계승할 정도의 쓸 만한 녀석은 도무지 보이질 않으니.” 

힘의 계승이라. 

아무래도 후계자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팔가 기사단은 모두 최강자들이다. 

제국 내에서 가장 재능있는 자들이었다. 

하여,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대회를 주최하는 이유와 관계되어있나?” 

“아아. 내 후계자가 될만한 쓸만한 녀석들을 찾고 있다. 데르시안 가문에서 한 명을 찾기는 했지만, 한 명으로는 부족하지.” 

······ 이자벨라를 말하는 것이다. 

그제야 왜 이자벨라가 팔가 기사단의 견습 기사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데르시안 가문으로 향했다가 우연찮게 라이가의 눈에 띄었나보군.’ 

확실히 이자벨라의 재능은 압도적이다. 

네임드 ‘요르문간드의 별’로 초월한 이상 그 이상의 성장은 보장되어 있는 셈. 

라이가는 그저 후계자를 찾으려고 그만한 규모의 대회를 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데르시안 폰 이자벨라. 데르시안 영애는 제국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알려져있다만······ 어떻게 너를 아는 걸까?” 

“······.” 

······ 들켰나? 

최대한 의연하게 연기했음에도 라이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나보다. 

이자벨라가 말했을 리는 없으니, 서로 눈을 부딪혔을 때 그 찰나의 미묘한 분위기를 잡아낸 게 분명했다. 

나는 내심 긴장한 채 라이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그러자 라이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기야 ‘신병’에 걸렸던 자들은 이상한 것들을 보고 듣곤 한다지. 지금 사신교의 간부들처럼 말이다.” 

라이가의 눈빛이 내게 닿았다. 

너 역시도 ‘신병’에 걸린 적이 있을 거라 확신하는 눈빛. 

이어, 그가 천천히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너는 기존의 간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꽤 괜찮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나보고 첩자 노릇을 하라는 말인가?” 

“어차피 너는 황금 가면의 눈밖에 났다. ‘라혼 가문’을 재건하려면 내 손을 잡는 게 여러모로 괜찮은 선택지일 터인데?” 

여전히 나를 ‘라혼 가문’의 후계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회의에서 대놓고 황금 가면의 반대편에 섰다. 

그러자 황금 가면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 취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진짜로 나를 지워버리려고 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라이가가 힘을 보태준다면 제국 내에서의 안전은 확보된다 봐도 무방하겠으나. 

“거절한다.” 

“그럴줄 알았다.” 

라이가가 피식 웃었다. 

대뜸 손을 잡았으면 도리어 실망했을 거라는 듯한 태도로. 

지금 손을 잡는 건 하책이다. 

그의 의도를 보다 완전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도 나를 모르지만, 나도 그를 모르므로. 

그때였다. 

스릉. 

라이가가 천천히 검을 뽑으며, 나를 향해 겨눈 채 말했다. 

“그거 아나? ‘돌연변이’ 보유자들은 서로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걸.” 

진짜 본론은 이것이었다. 

잔뜩 흥분한 눈빛. 

처음 바알을 소환하고 그가 내게 검강을 겨눴을 때부터 느껴졌던 호승심이, 현재에 이르러 극대화해 표출되고 있었다. 

당시엔 상황이 상황인지라 싸울 순 없었지만― 이곳은 우리 둘밖에 없는 장소다. 

우리 둘만이 닿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굳이 숨길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의미! 

‘진심이군.’ 

··· 아무래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스아아아아! 

강렬하게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검강. 

콰릉! 

검강과 검강이 부딪힐 때마다 세상이 격동한다. 

서로가 지닌 ‘강’을 나누며 마음껏 기량을 펼쳐냈다. 

‘강하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라이가의 강함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더불어 그가 전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놈은 강과 강의 대결을 원하고 있다.’ 

라이가는 서로의 무력이 아니라 지니고 있는 ‘검강’과 ‘검강’의 대결을 원하고 있었다. 

누가 더 강력한 ‘강’을 지니고 있는가. 

그래서일까. 

움직임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저 검강을 부딪히고, 또 부딪힐 뿐인 싸움. 

라이가는 내가 지닌 검강을 ‘바알의 권능’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검강’만이 세상에서 가장 지고지순한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상태였다. 

돌연변이의 능력 강탈은 핑계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라이가는 자신의 검강이 더 우수함을 내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까앙! 까아앙! 

‘흥미롭군.’ 

그런데 이 단조롭기 그지없는 강과 강의 대결이, 왜인지 즐겁다. 

잡념 따윈 필요 없이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싸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구도에, 어느덧 나는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검 숙련도’ 레벨이 상승합니다.》 

《검 숙련도가 31Lv을 달성했습니다.》 

《검 숙련도가 30Lv을 넘어 한단계 초월합니다.》 

《‘수련자의 산의 주인’으로부터 발생한 히든 퀘스트 ‘숙련도 레벨 초월(7)’을 완성했습니다!》 

《업적 ‘숙련도 레벨의 신화를 달성한 도전자’를 이룩했습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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