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이 최강인 이유
순간 라이가의 표정이 삽시간에 돌변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으니까.
그가 누구던가.
제국의 검이다.
하늘아래 적수가 없다고 자신하던 남자가 바로 라이가였다.
그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비교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언제나 압도적이었으므로.
그런데.
··· 그러할진대.
얼굴을 굳힌 라이가는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빌헬름이 나보다 강하다?”
“예.”
······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자벨라의 태도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다.
강한 확신.
마치 신념과도 같은 몸짓.
하지만 라이가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파편을 사냥하는 자신과, 파편에게 당한 빌헬름의 차이는 명확하다.
‘허.’
무엇보다 이곳은 제국의 심장부였다.
사신교의 간부들과 팔가 기사단 전원이 있는 자리!
이자벨라의 발언은 라이가 기사단장의 자존심을 무너트리는 중대사안이다.
또한 이자벨라는 팔가 기사단의 견습기사.
감히 견습기사 따위가 기사단장을 향해 검을 들이민 것과 마찬가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그러니, 모두가 납득할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저 느낌만으로, 어림 대중으로 꺼낸 말이라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이자벨라의 목이 될 터.
라이가의 시선에 이자벨라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 당연한 일이다.
이자벨라는 빌헬름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빌헬름의 후계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위해 나선 것이리라. 내 면을 세워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이어진 이자벨라의 말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빌헬름은, 마왕을 죽였습니다.”
“마왕은 살아있다. 대원정은 실패했고, 침공은 계속되고 있지.”
“‘파편’에 대처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관련된 지식과 ‘가호’가 없었기에 당한 겁니다. 무력의 강하고 약함과는 무관하게도.”
“설령 마왕을 죽였다 한들 그게 나보다 강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여전히 오만하다.
라이가는 자신도 마왕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그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대원정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에 나 역시도 의아한 게 사실이었다.
‘라이가 기사단장과 이자벨라는 그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빌헬름이 마왕을 죽인 것.
그리하여 파편에 당한 걸 본 건 세렝게티뿐이다.
세렝게티가 이 사실을 외부로 알릴 일은 없으니, 알고 있는 자는 나와 세렝게티, 마왕뿐이어야만 했다.
‘······ 아니, 더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알고 있는 게 셋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세렝게티를 살려 보낸 자!’
아아.
그래, 하반신이 잘려 움직이지 못하는 세렝게티를 말에 태워 영지로 보낸 자가 있다.
죽음이 확정된 상황에서 세렝게티를 살려 보낸 자.
하지만 그게 누구일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여덟 개의 지옥을 넘어 마왕성에 도착한 건 나와 세렝게티뿐이었으니까.
20만의 병사와 오백의 기사들도 전부 전부 죽었으니까.
심지어 모든 마족도, 지옥의 군주들도 죽였으니, 그곳에 있는 건 우리 셋이 끝이어야만 했다.
굳이 따지자면 여신 ‘피나’도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빌헬름의 별과 나를 살리고자 몸을 불살랐고.
‘우리 셋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체 누구지?
왜 그는 숨어있으면서 굳이 세렝게티만을 살려서 보냈을까.
마왕과 빌헬름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극도로 은신술을 갈고 닦았으면서, 위험을 무릎 쓰고 세렝게티를 살려냈다.
단순한 측은지심은 아닐 것이다.
세렝게티를 살려 보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살려 보낸 것이리라.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나와 세렝게티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사건의 전말을, 마왕을 상대할 당시의 상황을 내가 직접 전해 듣길 바라서라면?
세렝게티가 아니었다면 빌헬름이 진정으로 마왕을 죽였다는 사실도, ‘파편’에 의해 당한 것뿐이라는 사실도, 여신 ‘피나’가 소멸한 사실조차도 나는 몰랐을 테다.
이는 즉, 내가 ‘게이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였으며 빌헬름이 죽으면 ‘플레이어’로 재차 시작할 걸 확신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 밖에 누군가가 더 있다.
그게 누굴까. 대체 누가······.
“여신 ‘피나’가 자신의 몸을 던진 이유. 빌헬름이 온전한 상태로 마왕에게 흡수되었다면 새로운 ‘멸망’이 탄생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막지 못할 걸 여신 ‘피나’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지상최강의 남자니까요.”
마왕에게 몸을 헌납하기 직전.
여신 ‘피나’는 자신의 육체와 맞바꿔 빌헬름의 생명을 빼앗고, 별을 대륙에 흩뿌려놓았다.
그대로 빌헬름이 마왕에게 흡수되었다간 미래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공의 여신 피나가 소멸을 각오하고 벌인 일.
그 자체가 빌헬름이 최강이라는 증거다.
“이자벨라. 나는 그 발언을 허락한 적이 없다만······.”
라이가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도 관련된 내용을 전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잠깐. 여신 ‘피나’가 몸을 던져? 소멸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황금 가면이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여신을 증오하는 사신교의 무리.
여신 ‘피나’가 소멸했다면 마땅히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얕게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라이가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회의에서 내가 꺼낼 안건이 그와 관련된 것이다. 여신 피나의 소멸과 이후 대처에 관하여.”
시원하게 인정해버렸다.
“······!!!”
“······ 지금, 뭐라고?”
“하지만 여신교에선 아무 말도······!”
여신 피나.
그녀의 완전무결한 죽음을.
*
여신 피나의 신체가 처음 발견된 건 크람델의 지하다.
첫 번째 지옥의 군주, 망자왕 ‘아흐람’은 여신 피나의 눈을 통해 부활하였으며 더 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멸악의 거인을 비롯한 수많은 별 수호자들이 아니었다면 망자왕 아흐람의 진격을 막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왕과 주력들, 그리고 별 수호자들을 제외하면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더 없었다.
‘여신교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지.’
여신교도 여신 피나의 죽음을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던 걸까.
확실한 건 덕분에 제국조차도 피나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신교의 간부들도 몰랐다는 건 정말 아무도 몰랐다는 방증.
“··· 여신 피나는 죽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아. 마왕이 빌헬름을 온전하게 흡수치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는 건 순전한 이자벨라의 추측일 뿐이다. 아마도.”
만찬이 진행된 곳.
그곳에 라이가와 일곱 기사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나를 포함한 사신교 간부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라이가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마도- 여신 피나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야만 심연과 ‘멸망의 파편’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터이니.”
스스로 죽었다.
라이가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여신 피나가 자신을 희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 사실까지는 모르는 모양이군.’
대략적인 개요는 알고 있으나 깊지 않다.
같은 상황을 두고서 서로의 의견이 반대된다는 건 그만큼 관련된 지식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은거지?”
황금 가면이 물었다.
나도 같이 귀를 기울였다.
누구에게 전해들은 건지만 알 수 있다면 대비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라이가는 고개를 저었다.
“말해줄 수 없다. 다만, 피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만은 분명해졌다.”
“기회?”
“아아. 멸망의 파편들은 하나로 합쳐지려는 습성이 있다. 피나가 소멸한 것을 알았으니 마왕을 비롯한 파편 보유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흡수하고자 투쟁을 시작할 거다. 사흉이 하나, 둘 깨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안건은?”
“프리드릭 왕. 멸망의 파편 보유자이며 교만의 악마인 그에게 힘을실어주도록 하지.”
“지금보다 더 말이냐?”
“마왕보단 교만의 악마가 낫다. 그나마 말이 통하고, 거래를 할 수 있으며, 순수한 ‘재미’를 추구할 뿐인 녀석이니.”
“세력이 더 커졌다간 제국에도 위협이 될 텐데.”
······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하고 있는 거지?
아이언 왕국에 새로 등극한 왕.
프리드릭 왕이 멸망의 파편 보유자이며 동시에 교만의 악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제국은 그와 손을 잡고 있다니!
‘미친.’
미친놈들인가?
진짜로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칠죄종의 악마가 어떤 놈들이던가.
그들을 따르는 악마 숭배자들은 또 어떻고?
······ 물론, 나 또한 ‘탐욕의 악마’이긴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교만’의 약점은 내가 쥐고 있다.”
곧이어 라이가가 폼에서 무언가를 손에 쥔 채 꺼내놓았다.
두근! 두근! 두근!
그것을 본 사신교의 간부들은 두 눈을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심장?”
라이가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만의 심장이다. 놈과의 내기에서 이기고 얻은 전리품이지. 이게 내 손에 있는 한, 교만은 제국에 검을 겨눌 수 없다.”
“······ 좋다. 그토록 자신한다면, 투표로 부쳐보도록하지.”
황금 가면이 안건에 대해 수긍하며 다른 간부들을 쳐다보았다.
“교만의 악마, 프리드릭 왕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안건이다.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이 안건은 진행되지 않는다. 안건에 대해 이를 수긍하는 자는 손을 들도록.”
상대의 안건에 모두 동의해야만 진행된다.
이윽고 황금 가면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하나, 둘 다른 간부들도 손을 들기 시작했다.
11명의 찬성.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황금 가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반대한다.”
······ 나는 도저히 이 안에 찬성할 수가 없었다.
투신의 탑에서 질투의 악마 산샤를 상대해보니 알겠다.
악마들은, 상종할 게 못된다.
그들은 철저하게 상대를 타락시키는 자들이다.
산샤만 하더라도 투신 카라스를 타락시키고, 투신의 탑을 변질시켰으며, 그곳에 도전하는 모든 자들을 농락하지 않았던가.
겉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도록 뒤에서 은밀하게 수작을 부린다.
다른 악마라고 이와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
동시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황금 가면을 비롯한 사신교의 간부들의 시선이 따갑다.
라이가와 기사들마저도 같은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었다.
눈치가 그렇게 없냐는 듯, 어딜 끼어드느냐는 듯 차갑기 그지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내가 찬물을 끼얹었군.’
처음부터 어지간하면 서로의 안건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미 이야기가 끝난 듯싶었다.
여기는 그걸 그저 확인하기 위한 자리에 불과하고.
‘이런 상황을 답정너라고 하는건가.’
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와 같은 상황.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런 말을 전해들은 적도 없거니와, 전해들었다고 해도 수긍할 이유가 없다.
“반대를 한다고했나?”
그래서일까.
황금 가면이 재차 묻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선택을 바꾸라고 무언의 종용을 하고 있다.
확실히 웬만하면 둥글게 둥글게 가는게 더 나은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이들과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
사신교의 간부들과 팔가 기사단이 함께하는 자리.
도리어 이들을 이용해 더 큰 이득을 보는 게 현명한 일이다.
하여,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했다.
“이 안건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