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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08화 (208/317)

누가 더 강한가?

라이가 기사단장의 발언에 주변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순간 모두가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진짜 바알’이라니? 

눈앞에 놓인 거대한 바알의 동체.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바알이 아니던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전승 그대로의 모습. 

수련자의 산에서 주변 도시들을 불사른 그 거대한 괴수를 바로 옆에 두고서, 황금 염소를 ‘진짜 바알’이라 칭하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아니, 애당초에. 

“바알은 오주력에 의해 죽었을 터인데?” 

잠자코 듣고 있던 황금 가면이 말했다. 

부활한 바알은 죽었으니까. 

심연 속에서, 오주력에 의해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라이가 기사단장은 작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심연에서 죽은 것은 껍데기다. 진정한 본체, 본질은 죽지 않았다.” 

“라이가.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열 두 번째 후견자가 바알의 본질이며, 그 본질적인 존재가 지금 이곳 제국의 심장부에 있다는 소리일진대?” 

멸망. 

그리고 사흉은 제국과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적이다. 

구제국이 그들로 인해 몰락하였고, 그 구제국의 가치를 계승한 국가가 신제국 아르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멸망과 사흉은 그들의 관점에서 마땅히 멸해야만 하는 존재. 

고로, 열두 번째 후견자가 사흉 바알이라면. 

‘죽여야 마땅하다.’ 

이 자리에서 없애야만 한다. 

사신교가 여신을 증오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이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라이가 기사단장은 쯧쯧 혀를 찰뿐이었다. 

“역시 샌님과는 대화가 안 통하는군.” 

“······ 그건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인가, 라이가?” 

황금 가면의 목소리에 살기가 비친다. 더 이상의 막말은 간과하지 않겠다는 뜻. 

다른 후견자들 역시도 라이가와 팔가 기사단을 향해 대놓고 적대적인 눈빛을 비췄다. 그리고 그건 팔가 기사단도 마찬가지. 

······ 두 집단의 사이가 생각보다 파국인 모양인데. 

‘용케 같이 회의를 진행할 생각을 했군.’ 

초대장에 적혀있던 내용대로 오늘 사신교의 간부들과 팔가 기사단은 함께 ‘회의’를 진행한다. 

무엇을 논의할지는 전혀 예상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집단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안건이라면, 결코 작은 건은 아닐 터. 

동시에 라이가의 눈이 재차 내게로 향했다. 

처음보다 더욱 ‘흥미 가득’한 눈빛으로.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게냐? 저 염소는 바알을 완전하게 ‘제어’한 것이다. 구제국의 가장 강성했던 네 가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라고 말하는 게다.” 

“······ 바알을 완전하게 제어했다, 고?” 

믿을 수 없는 눈초리로 황금 가면은 시선을 돌렸다. 

구제국조차 실패한 일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먼 과거, 구제국은 강성했다. 

지금의 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찬란한 문명을 지녔었다. 

온전한 땅과 풍부한 물적자원, 그리고 마법과 검이 꽃피우며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부족할 게 없던 그들은 신의 권위에까지 도전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사흉의 완전한 제어는 실패했다. 

‘전승 그대로의 사흉이었다면 토벌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오주력이 사흉 바알을 죽였다는 걸 확인했을 땐 의아함이 앞섰다. 

구제국조차 사흉을 죽이지 못했는데 어떻게 오주력 따위가 바알을 죽일 수 있겠나. 

백왕 산하의 시체 까마귀 따위가 말이다. 

진정으로 바알을 사냥할 정도의 괴물이라면 굳이 백왕 밑에 있을 이유가 없을 테니. 

사흉은 죽지 않는 불사신이다. 

라이가의 말마따나 오주력이 죽인 건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 허나 사흉의 제어방법은 이미 땅 속에 묻힌지 오래일텐데.”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여전했다. 

사흉의 완전한 제어? 

제어할 방법자체를 제국은 모른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내어 실현시켰는지 궁금증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 

라이가는 그 의문을 가볍게 해소시켰다. 

“‘라혼’ 가문의 관계자, 혹은 핏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테지.” 

“바알을 제어했다가 완전하게 몰락한 그 구제국의 가문 말이냐?” 

라이가 기사단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가, 데르시안, 아르혼, 그리고 라혼. 

구제국에서 가장 강성했던 네 가문. 

그중 가장 강력했던 황가 아르혼의 이름을 신제국은 계승했다. 

아르혼 황가를 지키던 팔가는 현재 기사단의 이름이 되었고, 가장 부유했던 구제국의 데르시안 가문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가장 부유한 자들이 그 이름을 가져갔지만, 유일하게 ‘라혼’만은 아무도 계승하지 않았다. 

가문의 이름과 바알을 제어했다는 이야기 외에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는 탓이다. 

누군가가 고의로 지워놓은 이름처럼. 

이어 라이가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입에 담았다. 

“존재할 리 없는 열 두 번째 정통의 보유자. 처음부터 염소의 탈을 쓴 채 나타났으며, 그 상징인 바알을 소환해내기까지했다.” 

“··· 그 모든 게 우연일 리는 없겠군.” 

“또한 바알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구제국의 네 가문 모두가 극비에 부친일. 그것을 성공케 했다면 마땅히 ‘라혼’가문과 관계되어있다고 봐도 되겠지.” 

······ 이야기가 멋대로 흘러가고 있다. 

어느새 저들은 나를 구제국의 네가문 중 하나인 ‘라혼’의 계승자로 여기고 있었다. 

‘바알 세트와 검선일기. 그것들 전부를 흡수하긴했지.’ 

‘어둠을 피우는 자’로 완성되며 바알 세트의 효능을 흡수했다. 아마도 그것을 ‘완전한 제어’라고 보는 모양. 

실제로 검선일기에 따르면 바알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었다. 

완전한 제어는 실패했다고 하긴 했지만. 

‘검선이 라혼 가문의 관계자였나보군.’ 

대화를 종합해보면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나저나 라혼이라. 

“하지만 ‘완전한 제어에 성공했다’는 말의 근거가 되긴 어려울 것 같은데?” 

황금염소가 되묻자 라이가 기사단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보인 ‘강’의 기운을 보고도 모르겠나? 검강은 오직 극에 다른 ‘숙련자’만이 사용 가능한 것이다. 이는 바알의 권능과도 관계되어있지.” 

“검강 사용자는 엘프들 중에도 있다.” 

“그 초식 짐승들이 사용하는 것은 진짜 검강이 아니다. 세계수가 내린 축복에 지나지 않아. 이 세계에서 현재 진정한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나 외엔 없다.” 

극도로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나지막히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없었지만, 이제 두명이 되었군.” 

“황금 염소가 내보인 게 진짜 검강의 기운이다?” 

“아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검강이다. 극한에 이르도록하는 바알의 권능이 그걸 가능케한 거겠지.” 

하지만 개중에는 은은한 비하의 의도도 담겨있었다. 

라이가 자신은 수련을 통해 경지를 이룩했으나, 내가 보인 검강은 바알의 권능에 의해 얻은 것이라는 의미였다. 

자신과 성질이 비슷한 검강을 내보인 것 자체가 바알을 완전하게 제어한 증거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 이상한 말은 아니다. 

‘저주받은 기천석을 부숴서 숙련작을 했으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 숙련도 경험치를 쌓아서 30레벨까지 올린 건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그게 ‘틀린 방법’이라 할 수는 없었다. 

도착지가 같다면 우직하게 직진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우회할 수도, 지름길로 갈 수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30레벨까지 가능케한 ‘지고의 검성’ 클래스는 내가 얻어낸 것이었다. 

심연 미궁에서 라일리와 지고룡의 인정을 받아내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나, 염소?” 

······ 라이가는 자신의 추론을 확신하며 내게 물었다. 

라혼 가문의 관계자라고 인정하길 바라는 듯싶었다. 

대체 저 근거없는 자신감은 뭘까.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만 같은 분위기. 

나 역시도 분위기에 탑승하면 그만인 일이지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무엇을 말이냐, 염소?” 

“제대로된 검강 사용자가 너뿐이라고 확신하느냔 말이다.” 

······ 나는 묻고 싶었다. 

저 오만함의 근거를. 

라이가는 전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의 오만함을, 부숴버리고 싶다. 

라이가는 여태껏 등장한 적 없는 초강자. 

속속들이 숨어있던 강자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지금. 

‘마치 벨런스 패치가 되어가는 것 같군.’ 

업데이트가 시작되며 벨런스 패치가 같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기준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기존의 강자들은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새로이 대두된 강자들이 모든걸 해내는 그림. 

란돌프도 신상 강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왜인지 이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빌헬름의 이름이 잊혀져간다.’ 

마치 빌헬름이 잊혀져가는 것만 같아서. 

게다가 라이가의 말은 틀렸다. 

내가 사용하는 검강이 진짜 검강이라면. 

······ 빌헬름이 사용한 검강 역시도 진짜 검강일 터이니. 

나는 오직 게임을 통해서만 빌헬름을 플레이했지만, 이 판게니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빌헬름은 전설의 이름이었다. 

“나 외에 또 있다는 말인가?” 

“빌헬름.” 

··· 잠깐. 

그 이름을 입에 담은 건, 내가 아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은 팔가 기사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정확히는. 

‘이자벨라?’ 

그녀가 빌헬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찰나 라이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빌헬름? 그가 나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하는 거냐, 이자벨라?” 

“······ 그렇습니다, 단장님.” 

“빌헬름은 ‘파편’에 의해 죽었다. 반면 나는 ‘파편’을 사냥하는 자다. 차이는 명백하지. 그가 나와 같은 수준이라곤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구나.” 

더욱이 놀라운 건 라이가의 태도다. 

그는 빌헬름이 마왕이 지닌 ‘멸망의 파편’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시 ‘버그’라고 여겼던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라이가는 멸망의 파편에 의해 일어나는 버그를 대처할 줄 안다.’ 

버그를 알고, 그 버그를 대처할 줄 아는 자. 

“게다가 이자벨라, 너는 빌헬름을 본 적이 없을텐데?” 

“보았습니다.” 

“보았다고?” 

“예.” 

이자벨라가 빌헬름을 보았다? 

‘그럴 리가.’ 

내 부캐릭터. 

사막여왕에 의해 사막에 갇혀있던 이자벨라다. 

빌헬름을 볼 기회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캐릭터를 방치한 뒤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막에 있었으니. 

심지어 빌헬름으로 사막을 찾았을 땐 이자벨라를 부캐로 육성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그럼 이자벨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내가 아는 이자벨라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섣불리 들통날 거짓말을 입에 담을 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호라.” 

라이가 기사단장의 눈에 다시금 흥미의 빛이 어렸다. 

그가 천천히 그물었다. 

“그렇다면 답해봐라. 빌헬름과 나,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진심으로, 진실만을 입에 담아야할 것이다.”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질문. 

그러나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말마따나 라이가는 세계관 최강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고, ‘파편’을 사냥하여 모으는 자였다. 

내가 보기에도 빌헬름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았다. 

팔가 기사단의 견습기사 노릇을 하고 있는 이자벨라. 그녀 역시도 라이가가 싸우는 모습을 분명히 지켜보았을 터. 

그녀는 고개를 들고, 라이가 기사단장을 바라보며. 

한 치의 망설임없이 답했다. 

“빌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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