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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07화 (207/317)

사흉(四凶) 바알의 주인

······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팔가 기사단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는 여성. 

분명히··· 이자벨라다. 

자신의 근원. 

데르시안 가문에서 찾아온 이자벨라 폰 데르시안과 함께 사라졌던 게 엊그제 같건만. 

허드슨을 통해, 분명히 그렇게 전해 들었건만. 

‘이자벨라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데르시안 가문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본인의 자리를 되찾으려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자벨라가 팔가 기사단과 함께하고 있단 말인가? 

‘······ 돌아갈 곳이 팔가 기사단을 아니었을진대.’ 

잊고 있던 기억. 데르시안 가문에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으려던 게 아니었나. 

그리 여겼기에 찾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의 행보를 궁금해하지도 않았었다. 

한데······ 지금 이곳에서의 조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팔가의 문장. 견습 기사.’ 

하물며 이자벨라는 팔가 기사단의 견습기사인 듯했다. 

어깨에 팔(八)에 수놓인 갑옷을 입은 것은 같으나, 다른 정규 기사들과 달리 가슴팍에 ‘팔망성(八芒星)’이 없다. 

그러한 기사들이 뒤쪽열에 몇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 전원이 견습인 것 같았다. 

자세히 보면 정규기사들의 팔망성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제국의 상징은 황금 오망성이다. 그런데 왜 팔가 기사단은 팔망성이지?’ 

문득 든 의문이다. 

제국 최강의 기사단. 

황제의 최측근이라면 당연히 아르혼 제국의 상징을 사용해야하지 않나? 

판게니아에서 오망성은 성스러운 별의 상징이다. 

그리고 육망성은 구제국 ‘6각’을 비롯한 대영웅들에게 수여되는 영광이었다. 

한데 팔망성이라니. 

생각해보니, 나는 팔망성과 관련된 설정을 판게니아에서 본 적이 없다. 

팔가 기사단만의 독자적인 특징이라 봐야할는지. 

“······.” 

찰나. 

이자벨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자벨라의 표정과 눈빛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설마 지금 내 모습을 못 알아본 걸까? 

‘그럴 리가.’ 

내심 고개를 젓는다. 

단언컨대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끔찍한 흉조의 모습을 그녀가 모를 리가. 

설령 다른 형태로 변신했다 한들 그녀는 알아보았을 것이다. 

가장 오랜기간 나를 옆에서 보필해온 자가 그녀였으니. 

‘그저 모른 척하고 있다.’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이곳이 제국의 심장부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내가 서로를 알고 있다는 걸 팔가 기사단의 단장인 라이가가, 혹은 황금가면이 알게 된다면 그 즉시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었기에. 

필사적으로 모른척하며 외면할 따름이었다. 

“흥미롭군.” 

그때였다. 

라이가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나를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동시에. 

“······!” 

“······!” 

팔가 기사단 전원의 눈에 이채가 뗬다. 

아니, 팔가 기사단만이 아니다. 

황금 가면을 포함한 열 한명의 사신교 간부들. 

그들 역시도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저 ‘바알’을 소환한 정통의 주인이라서 그런건지. 

“단장께서······ 흥미를······!” 

······ 잠깐. 바알 때문이 아니었나? 

라이가를 가장 옆에 서있던 남자. 

그가 작게 감탄하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거룩한 신의 기적을 마주한 불신자마냥.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차례 나를 살핀 라이가가 턱을 쓸며 말했다. 

“만물을 살피는 나의 그릇으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파악 되지 않는다. 파악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단순한 흥미만이 아니다. 

놈은 내가 지닌 ‘관찰 불가’를 즉시 꿰뚫어보았다. 

아니, ‘관찰 불가’를 가능케하는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 반지’의 이해를 넘어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바로 나. 란돌프에 관한 파악. 

“정녕 그것이 너의 본모습인가?” 

······ 역시나. 

라이가는 즉시 내 본질에 관한 의문을 입에 담았다. 

현재 나는 ‘태고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태고의 갑옷이 가진 ‘형태 변형’의 성질을 이용하여 황금 염소가면을 만들고, ‘끔찍한 흉조’로 변신하여 더욱 큰 위압감을 주고 있는 상태다. 

사신교의 간부들도 이상해하지 않았던 것을, 나를 처음보는 라이가가 단번에 꿰뚫어보았다-. 

으쓱. 

“그딴게 중요한가?”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서 ‘본모습’만큼이나 가치 없는 것은 없으므로. 

얼굴을 가리고, 정체를 숨기는 자들은 이곳에 즐비하지 않은가. 

당장 사신교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면과 탈을 쓴 채 절대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자들. 

그들부터가 이미 ‘본모습’과는 거리가 멀진대. 

“하! 그것도 그렇군.” 

내 말의 뜻을 이해한 라이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말로 부질없었으니까. 

허나 그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툭. 

한 발자국 다가온 라이가가 천천히 검을 꺼내들었다. 

슈아아아아! 

그러자 황금의 빛이 라이가의 검을 휘감았다. 

‘검강.’ 

확실하다. 

저 황금 빛의 기운은 검기가 아니라 틀림없이 검강(黔剛)이다. 

검 숙련도 30Lv을 달성해야만 피울 수 있는 지고의 기운! 

나를 제외하고 또 다른 검강 사용자는 처음보았다. 

“···!!!” 

몇몇 사신교의 간부들이 라이가를 적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바로 앞에 선 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라이가가 눈을 빛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너에게서 나와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파악할 수 없고, 관찰이 불가하나, 그럼에도 가릴 수 없는 강자의 냄새 말이다.” 

······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 

같은 맥락이다. 

말인 즉슨, 라이가와 같은 괴물이 ‘강자’라고 여길 정도로 나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 

허나 단순히 그런 의미만으로 검강을 꺼내들진 않았을 것이다. 

저 행동과 말에 담긴 진정한 뜻. 

스으으으. 

조용히. 

라이가의 그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정숙하고, 푸르며, 정갈된 검강이 내 신체를 둘러쌌다. 

“역시···!” 

순간 라이가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과 내가 같은 검강 사용자라는 걸, 라이가는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확신은 못했지.’ 

직접 검강을 구사하며 내가 증명하기를 기다렸다. 

관찰 불가와 내 히든 특성들을 여전히 꿰뚫지는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후 이어진 라이가의 발언은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열두번째 후견자여, 네 녀석이 ‘진짜’ 바알이로구나.” 

“······!!!” 

“·········!!!” 

사흉(四凶). 

먼 옛날, 아직 지상이 존재하던 시절 세계를 파멸로 이끈 멸망의 네 괴수들. 

압도적인 크기와 무력으로 세계를 전율시킨 거대한 괴물들. 

사흉의 모습은 대륙 곳곳에 아직도 남아서 전승되고 있었다. 

과연 그게 진실일까? 

정말로 인간들이 사흉을 봉인한 것일까? 

‘구제국의 가장 강성했던 네 가문은 사흉을 이용해 전쟁을 벌였다. 팔가, 데르시안, 아르혼, 그리고 라혼.’ 

지금의 이름들은 모두 구제국에서 계승한 것.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이 사흉을 제어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그 결과 자멸했다. 

제국은 붕괴되었으며 세계는 멸망의 손에 떨어졌다. 

모든 게 멸망의 계획이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사흉의 힘을 남용한 결과. 

그렇다면 남은 사흉은 누가 봉인했을까? 

6각이 봉인했다느니, 다른 선인이나 천상인이 봉인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꽤 있지만. 

‘사흉은 스스로 봉인된 것이다.’ 

라이가는 진실을 알고 있다. 

멸망의 파편을 모으는 그만이 가장 진실에 접근해 있었다. 

말마따나 사흉은 누군가에게 봉인된 게 아니다. 

그 괴물들을 봉인할 수 있는 존재가 존재할 리 없으니까. 

그저 스스로를 봉인한 뒤 세계에서 증발하듯 사라진 것이었다. 

여신 레아가 자신을 희생하여 멸망을 막자, 다시금 깨어날 멸망을 기다리며 그들은 깊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사흉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는 건 곧 멸망이 등장한다는 것.’ 

사흉의 출현은 멸망의 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 나타난 건 바알이다. 

수련자의 산에서 등장한 괴수의 출현에 모든 도시가 술렁였다. 

라이가는 다른 멸망의 파편을 추적 중이었기에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의아했던 건 사실이다. 

‘바알이 심연에 가라앉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바알과 같은 괴물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다니. 

그도 그렇지 않은가. 

‘심연의 주인이 어떻게 심연에 가라앉을 수가 있단 말이냐.’ 

심연을 다스리는 자. 

심연의 주인 중 하나인 바알이 심연에 가라앉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 껍데기가 힘을 되찾고자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힘을 잃은 채 부활했기 때문에.’ 

부활한 게 ‘껍데기’뿐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바알의 본질. 

본격적인 힘이 담긴 그릇은 함께 부활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무엇이든 극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능.’ 

껍데기는 필시 신들조차 우러러본 그 권능을 담지 못했으리라. 

반쪽만으로 세상에 나타났으니 힘을 갈구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남은 반쪽, 그 권능은 어디에 담겼을까. 

‘······ 열 두 번째 후견자.’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관심은 없었다. 

그래봤자 후견자다. 

사신교의 늙은 괴물들과 같은. 

팔가 기사단과 사신교는 물과 기름 같았다. 

결코 섞이지 않고, 섞일 수 없는 조합. 

애초에 라이가는 저 노괴들이 황궁에 있는 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존재하지 않았던 12번 째 후견자가 나타났다고 한들 라이가와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그럴진대. 

‘똑같은 반푼이인 줄 알았다만.’ 

눈앞에서 마주한 저놈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다른 후견자들과 같은 ‘관찰 불가’ 현상. 

그래.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후견자라면 으레 갖고 있는 특성이니까. 

문제는 자신의 ‘느낌’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미치도록 흥미롭다. 

마주한 순간 닭살이 돋았다. 

자신과 같은 강자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존재라니! 

‘관찰 불가’는 그야말로 상세한 수치를 관찰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눈대중, 느낌이나 직감마저 제어할 순 없다. 

그리고 라이가는 만물을 보면 알 수 있는 절대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관찰 불가만이 아니다. 내 직감마저 파훼하는 현상을 지닌 자.’ 

이건 단순한 능력이 아닌 현상(現象)으로 봐야할 것 같았다. 

‘저건 처음부터 모호하기 그지없는, 알 수 없는 것으로 태어난 존재인 거다.’ 

그냥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를 재단하고 알아보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알 수 없고,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저 형태조차도 본질적인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하여 물어보았다. 

그게 너의 본모습이냐고. 

-그딴 게 중요한가? 

열 두 번째 후견자, 황금의 염소는 자신의 물음을 가볍게 받아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듯. 

이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본질 따윈 중요하지 않다.’ 

··· 그렇다. 

놈의 본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 존재 그 자체다. 

존재만으로도 라이가의 경중을 울리는 자가 이곳 제국의 심장부에 있다는 것. 

이 상황. 

이 현상. 

‘믿기지 않다만, 믿을 수밖에 없겠군.’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제국의 심장부에 소환된 바알의 껍데기. 

그 껍데기를 소환하여 휘두르는 자. 

‘극한으로 검의 기술을 연마한, 오직 나만이 사용 가능한 강의 기운.’ 

그것마저도 손쉽게 사용해내는 사용자라면······. 

마땅히 권능을 지녔다 봐도 되지 않겠나. 

아니. 

고개를 저은 라이가는 진심을 다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 그야말로 바알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할 터.’ 

저 황금의 염소는 그야말로 사흉(四凶) 바알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할 듯싶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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