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가 기사단
이렇게도 허망할 수가 없었다.
두 번이나 연속해서 ‘식사’의 기회를 모두 박탈당하게 될 줄이야.
이전과 같은 실수를 만회하고자 철저하게 준비했음에도 결과는 같았다.
‘······ 어이가 없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과는 명명백백했다.
‘위대한 달의 의지’가 내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저 정통은, 우리의 정통과는 너무 다르다.’
······ 부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막무가내로 하는 부정은 아니었다.
황금 염소의 정통은 그들과 계약한 정통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므로.
존재할 리 없는 12번째 정통인 것부터가 그랬다.
하물며 오늘 본 변신한 모습.
저건 정통이라기보단, 정통이 소환하는 사신 아닌가.
‘사신은 정통의 그림자다.’
굳은 일을 도맡아해주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
사냥개이자 소모품이다.
당연히 정통이 사신의 모습을 할 이유가 없다.
한 마디로.
‘가짜다. 진짜 정통이 아니다.’
사신을 소환하지 못하는 정통은, 정통이 아니다.
정통일 수가 없다.
이전에는 속았으나 이제는 속지 않는다.
황금 가면의 발언에 모두가 동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만약 ‘정통’이 아니라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농락한 게 되고, 당연히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진짜 ‘정통’이라면 당연히 사신을 소환할 수 있을 테니까.
‘어디 한 번 해봐라.’
황금 가면이 눈을 빛내며 황금 염소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다면 해보라는 듯.
······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앙!
바깥에서 들려오는 굉음(轟音).
거대한 운석이 지면에 처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쿠르르르릉!
땅이 흔들리고, 황궁 전체가 요동쳤다.
“무슨 소리야?”
“누가 황궁을 공격하는가?”
후견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누가 제국을, 제국의 심장인 황궁을 공격해온단 말인가!
아르혼 제국이 건립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애초에 황궁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만 했다.
당연히 공격해오는 적대자가 있다면 궁에 도달하기 전에 알아차려야 정상이란 의미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면 남은 건.
“······ 내부에서?”
“아니, 아니다. 공격이 아니야. 이건······.”
하지만 소란은 금세 잦아들었다.
대신 바깥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득한 긴장감을 그들은 모두 눈치챌 수 있었다.
누군가가 공격해온 게 아니라,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을.
머지않은 장소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다는 걸.
투툭! 투다다닥!
머지않아 바깥에서 달려온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구십도로 숙이며 헐레벌떡 말했다.
“마, 만찬회 도중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급히 확인하셔야할 듯하여······!”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냐?”
황금 가면이 묻자 은빛의 갑주를 착용한 기사가 고개를 들고 외쳤다.
“구, 궁의 정원에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괴물이?”
“그,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궁의 정원으로 괴물이 침입했다는 거냐?”
“아, 아닙니다! 갑자기 허공에서 솟아나듯이······”
“······ 어떤 괴물이지?”
허공에서 소환되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
아마도 정원에 소환되었다는 괴물과 연관이 있을 터.
하지만 이곳은 제국이다.
제국의 심장,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었다.
어지간한 괴물이 소환되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강자들이 즐비한 곳.
하물며 바깥에는 그들의 직속 병사들도 대기하고 있지 않던가?
‘인지를 벗어난 괴물이 출현한 게 아닌 이상에야.’
긴장한 기사의 표정으로 보건대 평범한 괴물은 아닌 것 같았다.
만찬회를 방해하는 죄를 저질러가며 보고를 해왔다는 건 ‘초월적인 괴물’이 출현했다는 방증이었다.
백왕이나 흑왕이 직접 쳐들어오기라도 했다는 건가?
황금 가면이 묻자, 기사가 숨을 크게 내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황금 가면과 모든 후견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바알’입니다······! 바알이 나타났습니다!!”
*
궁의 정원.
넓디 넓은 그곳을 가득 채운 괴물이 있었다.
모든 기사들은 긴장한 채 검을 빼어들었으며, 짐승의 탈을 쓴 사신교 간부의 부하들 또한 근처에서 괴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꿀꺽!
하지만 그 괴물의 위용과 위압감에 그들은 일제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저 괴물이 무엇인지, 그들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알이 왜······!”
“심연에서 죽은 거 아니었나?”
사흉.
먼 옛날, 대륙이 온전하던 시대에 구제국을 멸망으로 밀어넣었던 원흉의 네 괴수들.
그중 하나인 바알이 그들의 앞에 있었으니까.
······ 허나, 이해불가한 일이었다.
수련자의 산에서 소환된 바알은 끝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었으나,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소멸되었고 알려져있다.
적어도 제국은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소멸되었다 알려진 바알이, 지금 그들의 앞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곳에, 제국의 심장에!
“왜 안 움직이는 거지?”
“본래 소환물은 소환자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다.”
“······?”
그때였다.
달그락! 달그락!
말발굽 소리와 함께 나타난 남자가 대신 답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고, 모든 기사와 병사들은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온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파, 팔가 기사단······!”
“‘라이가’ 기사단장님······!!”
제국의 최강 기사단이라 일컬어지는 팔가 가시단의 라이가 단장!
그가 수십의 기사단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탓이다.
어깨에 팔(八)이 수놓인 갑옷을 입고서, 팔짱을 낀 채로 그가 바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오자마자 진귀한 것을 구경하게 되는군.”
설마 궁에 도착하자마자 바알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없는 것을 만들어냈으니, 그럼 가짜인가?
하지만 가짜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정교하다.
단순히 형태만이 아니라 마력의 회로마저 비슷했다.
그야말로 ‘진귀’한 상황 그 자체.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구분에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늦었군, 라이가 기사단장.”
이윽고 저 멀리서 기사들의 인파를 헤치며 나타난 자들이 있었다.
바로 사신교의 간부들.
그중 황금 가면이 나서서 말하자, 라이가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처럼 한가롭게 만찬이나 즐길 처지는 아니라서 말이다.”
툭!
라이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 새까맣기 그지 없는, 누군가의 새끼 손가락.
그것을 본 황금 가면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 세 번째 ‘파편’인가?”
“아아, 세 번째 ‘멸망의 파편’이다. 회수하는 데 애를 먹었지.”
멸망의 파편.
여신의 별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멸망의 별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꿈틀! 꿈틀!
심지어 멸망의 새끼 손가락은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어어······!”
“가까이 다가가지마라!”
불길함을 느낀 기사들이 다급히 발걸음을 뒤로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으니.
라이가가 피식 웃어보였다.
“너희도 조심하거라. 저 새끼손가락은 틈만 나면 입으로 들어가서 숙주로 만들려고 하거든.”
그는 대놓고 사신교의 간부들을 바라보며 도발하고 있었다.
팔가 기사단과 사신교의 사이를 보여주는 대목.
하지만 황금 가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서 멸망의 파편을 쥐어보였다.
“충고 고맙군. ······ 이건 내가 가져가도록하지.”
“그래. 그것이 너의 역할이니.”
쯧쯧.
라이가는 재미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재차 거대한 괴수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건 누구 작품이냐?”
“······.”
황금 가면은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역시도 누가 바알을 소환한 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라이가는 큰 흥미를 느끼곤 바알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진짜는 아닐 터인데······ 진짜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존재감이로군. 보아하니 소환자의 마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데······.”
라이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알이 죽은 이상 저 형태는 가짜일 것이다.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정교했다.
진짜를 옆에 두고 만들어도 저렇게 같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게다가 소환물임은 확실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건 마치.
“음, 이건··· 마력이 아니라 사신력이구나. 혹, 바알을 소환한 정통이 있는 거냐?”
그는 바알에게서 느껴지는 게 사신력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정통이 소환할 수 있는 건 ‘사신’뿐이다.
이에 라이가가 의아해하며 묻자.
‘설마?’
황금 가면은 내심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마력을 읽고 흐름을 보는 능력은 라이가 기사단장이 자신보다 위였다.
아니,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사실일 터.
사신력에 의해 소환된 소물이라면 의심되는 대상은 한 명밖에 없었다.
황금 가면의 시선이 닿자, 하나, 둘 다른 후견자들도 한 대상을 바라보았다.
라이가도 마찬가지였다.
라이가 기사단장은 그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 과연, 네가 그 ‘12번째’인가? 저 바알을 소환한?”
동시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12번째 후견자가 나타난 건 이미 그도 알고있는 상태.
누구인지 궁금했건만, 설마 바알마저 소환할 줄은.
“··· 그렇다. 바알은 내가 소환한 ‘사신’이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
팔가 기사단.
아르혼 제국의 시초, 여덟 가문의 정예가 모인 최정예들.
그들을 아우르는 기사단장 라이가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는 세계에 전면으로 나선 적이 거의 없었으니.
그러나, 본 순간 알았다.
‘······ 괴물이 따로없군.’
일견 평범해보이기 그지 없는 남자였다.
아무런 마력도, 냄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는 모든 기운과 신체의 능력을 갈무리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괴물이다.
여태껏 만난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
어쩌면······ 빌헬름만큼이나.
‘황제의 진짜 검. 그건 라이가 기사단장이다.’
팔가 기사단의 기사단원들 역시도 하나같이 강자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바로 저 남자, 라이가 기사단장이었다.
‘멸망의 파편을 모으고 있다. 왜?’
더욱 놀라운 사실은 멸망의 파편을 그가 직접 수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 번째라는 건, 이미 두 개의 파편을 회수했다는 소리.
하지만 ‘멸망의 파편’을 품은 존재는 마왕이나 바알과 같은 괴물뿐이었다.
즉, 팔가 기사단과 라이가 기사단장은 그러한 괴물들을 사냥하고 지금 막 황궁에 돌아왔다는 뜻이다.
‘내가 멸망의 파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알려선 안 된다.’
······ 그리고 ‘멸망의 파편’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으며, 또한 모으고 있다면, 현재 나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
라이가는 단번에 바알을 정통이 소환했음을 알아차렸다.
그의 눈이 범상치 않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내가 멸망의 파편을 품고 있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래도 관찰 불가를 뚫진 못할 거다.’
그러나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눈이 비상해도 ‘관찰 불가’를 뚫고 알아차리진 못할 것이다.
내가 직접 말할 리도 없으니, 누군가가 알려주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밝혀질 리 없다.
‘그런데······.
나는 라이가 기사단장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어서.
‘······ 네가 왜 거기 있는 거냐, 이자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