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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05화 (205/317)

첫번째 사신 소환

그러나 이곳에 ‘절망의 영혼’이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미 ‘절망’은 ‘흑왕’이 부활시켰다. 

부활의 전조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제는 완전히 부활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 또한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다면 눈앞의 저 ‘절망’의 형상을 한 영혼은 가짜란 걸까? 

‘···저만한 점수라면 가짜일 리가 없다.’ 

절망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점수다. 

위대한 달의 의지가 잘못 산정했을 리는 없으니, 이는 명확한 사실일 터. 

남은 문제는 ‘어떻게’ 황금 염소가 절망의 영혼을 구했냐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부활한 절망은 무엇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지?’ 

부활한 건 확실할진대. 

정작 ‘절망’의 영혼이 아닌 껍데기만 움직이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완전한 부활은 아닌 것 같았다. 

‘······ 황금 염소. 첫 만찬회에서부터 모두를 속인 건가?’ 

황금 염소는 첫 만찬회 때 빈손으로 왔다. 

아무런 영혼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게 거짓이라면? 

사실은 모두 알고 행동한 일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농락당한 것이다. 

저 황금 염소에게. 

그는 처음부터 ‘절망’의 영혼을 갖고 있었을 게다. 

첫 만찬회가 지난 이후 갑자기 저것을 구했다는 건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으니. 

“······.” 

황금 염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서있을 따름이었다. 

혹시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도 일부러인가? 

더 극적으로 후견자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하나만 꺼낸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일 터였다. 

하나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겠지. 

절망의 영혼 하나면 다른 영혼 수백, 수천, 수만을 가져와도 비교할 수가 없을 터이므로. 

‘모두를 농락했구나!’ 

황금 가면은 확신했다. 

저 염소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다. 

특별한 사신의 만찬회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한 존재임을 이들에게 알리고자! 

‘쉽게 봐선 안 될 놈이다.’ 

황금 가면은 인정하고 말았다. 

이 염소는 그저 우연히 12번째 후견자가 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었기에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태까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오늘 이후 완전히 시선을 바꿀 수밖에 없을 듯했다. 

“······ 규칙에 따라, 황금 염소의 정통이 가장 먼저 ‘만식’에 도전한다.” 

그는 두 번째 순번으로 밀렸다. 

허나 어쩔 수 없다. 

두 배가 넘는 점수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는 일. 

“또 다시 뱉어내는 거 아닌가?” 

“음······.” 

다만, 모두가 심려어린 소리를 꺼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또 뱉어냈다가 다음 차례가 사라지면 만찬회가 끝나는 셈이다.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황금 가면이 이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 직접 만찬에 불을 지피셨다. 이것을 뱉어낼 정통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정통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스으으읍! 

키하아아아······. 

모든 정통들이, 미칠 듯한 허기를 느끼며 만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일반적인 만찬이 아니었으니까. 

‘위대한 달의 의지’가 직접 피워내고 축복한 성찬이었다. 

달콤한 꿀이 발라진 저 위대한 영혼의 불길을 감히 어느 정통이 뱉어내겠는가. 

-캬캬캬캬캬캬캬!!! 

황금 염소의 정통이 성찬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것을 모든 정통들은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절망의 형상을 한 저 만찬은 조금만 입에 대는 것만으로도 정통의 격을 높여줄 게 자명했으니. 

“무엇보다, 성찬의 크기가 크기다.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만식’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황금 가면의 말마따나 후견자들도 동의했다. 

궁을 가득 채운 열기. 

저 거대한 크기의 성찬은 차례가 몇 번은 돌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꺼번에 먹어치우지 못한다면, 뱉어도 상관은 없는 일이다. 

입에 대지 못한 부위를 먹어치우면 그만이었으므로. 

‘하긴.’ 

‘빨리 먹어라.’ 

‘결국 얼마나 더 많이 먹느냐의 싸움이란 말이로군.’ 

그제야 후견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모두에게 차례가 돌아가긴 돌아갈 것 같았다. 

결국 누가 더 많이 먹어치우느냐가 쟁점인 상황. 

정통이 먹어치우는 양에는 어찌하였든 한계가 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다. 

위장의 크기 이상을 먹어치우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정통 역시 지닌바 그릇 이상의 영혼은 먹어치울 수 없다. 

······ 그래, 순서가 문제가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쩌어어억! 

헬이 입을 벌렸다. 

붉은 빛이 가라앉는다. 

궁 안을 가득 채웠던 그것은 이내 사그러들었다. 

이는 ‘특별한 만찬회’가 완전하게 끝났음을 의미했다. 

“······.” 

“······.” 

세상엔 적막이 가득했다. 

더 이상의 열기도, 소란도, 아무것도 없는 공백의 상태. 

그들은 그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만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파티 그 자체로군.’ 

그리고 그들의 눈길을 느끼며, 나는 여유로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농담삼아 ‘파티에 다녀오겠다’고 세아 성녀에게 말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진짜 ‘파티’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 

‘1등 당첨 복권일 줄은.’ 

저주받은 자의 영혼은 일종의 복권이었다. 

그런데 복권을 긁자마자 1등이 당첨됐다. 

설마 저게 ‘절망’의 영혼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절망의 뼛조각이 정화된 건가?’ 

아인하사르의 저주를 풀자 갑자기 내가 갖고 있던 ‘절망의 뼛조각’이 정화된 게 의아하다 싶었다. 

아인하사르를 저주한 영혼이 ‘절망’이었기에 뼛조각이 정화된 것이다. 

말하자면 흑왕에 의해 깨어난 ‘절망’은 정화되지 않은, 불순물 가득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 

더불어 그 영혼조차도 ‘절망’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지금 절망은 사왕의 영혼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사왕이 어째서 나한테 ‘절망의 뼛조각’을 전한 건지도. 

절망이 진짜 절망이 아니라는 뜻이었던 게다. 

나라면 그 사실을 밝혀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흑왕은 일종의 블러핑을 치고 있다. 

‘절망을 깨웠다는 사실 하나로 모두가 흑왕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까.’ 

물론 깨운 이상 절대로 얕볼 수 없는 괴물이긴 하겠지만, 진짜 절망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도 흑왕은 절망을 깨웠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도리어 은연중 소문을 부추기며 자신의 체급을 키우는 중이었다. 

··· 이런 사기꾼을 봤나. 

드디어 모든 퍼즐이 맞춰진 기분. 

‘소문으로 체급을 불리고, 손쉽게 백왕을 잡아먹으며 중앙대륙으로 진출하겠다?’ 

흑왕의 의도가 뻔히 읽혔다. 

하기야 절망을 깨우고 압도적인 전력을 지녔음에도 왜 백왕을 본격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건지 의아함은 있었다. 

여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흑왕과 백왕은 오래된 앙숙이자 라이벌 관계였다. 

기회가 있다면 당장에 물어뜯는 게 정상일 터. 

그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어금니를 전해줬으니 백왕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다. 볼만하겠군.’ 

물론 백왕의 열세는 맞다. 

그러나 백왕도 체급을 불리면 이 전쟁, 할만해보였다. 

나는 내심 피식 웃고는 가만히 헬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꺼어어어어어억! 

헬은 길게 트름을 내뱉고는 만족한다는 듯이 배를 퉁퉁 두드렸다. 

절망의 영혼도, 거인의 영혼도, 다른 후견자들이 준비한 모든 ‘영혼’을 헬이 지금 ‘만식’한 것이다. 

“······ 거짓말이다.” 

“저 크기를 어떻게 ‘만식’한다는 거냐.” 

“황금 가면! 입이 있다면 말해봐라.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후견자들은 현실을 부정했다. 

도리어 황금 가면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당황한 건 황금 가면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라고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저 많은 영혼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정통은 그도 본 적이 없었다. 

“······ 오늘의 승자를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 선택하신 거다.” 

그 외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다. 

황금 염소의 정통이 ‘만식’을 할 수 있도록, ‘위대한 달의 의지’가 도왔다는 것 외에는. 

그야말로 ‘승자독식’이었다. 

빠드드득! 

몇몇 후견자들이 이를 갈았다. 

아무리 승자독식이라지만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이전 만찬회처럼 아예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으니까. 

‘오호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의 상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내가 관심있는 건 오직 하나.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메시지’들! 

《펫 ‘헬’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펫 ‘헬’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펫 ‘헬’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 

《펫 ‘헬’의 레벨이 10에 도달했습니다.》 

《‘헬’이 ‘성장기’를 마무리하고, ‘성숙기’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헬’의 식사량이 늘어 하루에 명예 60을 필요로 합니다.》 

《식사를 하지 못하면 ‘헬’이 폭주할 수도 있습니다.》 

《‘헬’이 ‘사신 소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신 소환? 

여태까지 소환할 수 없었던 사신을 이젠 소환할 수 있다는 건가? 

아무래도 ‘성숙기’로 접어들며 사용할 수 있게끔 변한 것 같았다. 

그럼 다른 ‘정통’들도 ‘성숙기’를 넘어섰다는 건지. 

변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캬캬캬컄! 

날개가 솟아났다. 

도합 여섯 개. 세 쌍의 날개! 

《‘위대한 달의 의지’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달의 아이’의 축복을 받으시겠습니까?》 

잠깐. 달의 아이?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그것도 최근에 들어본 것 같았다. 

‘태고의 시대에 발을 들인 존재!’ 

······ 아아. 

분명히 그 이름은 ‘태고용신’이 내게 조심하라며 일러준 이름 중에 하나였다. 

그가 각별이 조심하라 말했던 이름 중에 분명히 달의 아이가 있었다. 

즉, 후견자들이 모두 경외하며 따르는 붉은 달빛을 쏘아내는 ‘위대한 달의 의지’가 바로 ‘달의 아이’라는 것이다. 

태고의 시대에 발을 들인 존재를 벌써 만나게 될 줄이야. 

《축복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엮여서 좋을 게 없다. 

헬이 성장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업적 ‘위대한 존재의 축복을 거절한 자’를 달성합니다.》 

《명예가 3,000점 상승합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 배(6,000)로 획득합니다.》 

《‘달의 아이’가 이맛살을 구기며 떠나갑니다.》 

······ 다행이다. 

아예 관심을 접어줘서. 

역시 이놈의 제국엔 뭐가 더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한시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되는 곳이다. 

“황금 염소여. 그대의 정통에게 궁금한 게 있다.” 

“말해봐라.” 

그때, 황금 가면이 말했다. 

내가 답하자, 그는 헬을 가리키곤 재차 입을 열었다. 

“그대의 저 사신은 정말 ‘정통’이 맞는 건가?” 

“인정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다. 모습부터, 정통이라면 모두 소환할 수 있는 ‘사신’조차 소환하지 못하는 정통이라니. 그대의 정통은······ 정통이라기보단 사신에 가까운 듯한데.” 

과연. 

작전을 변경한 건가. 

아예 정통이 아닌 쪽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첫 만찬회에서 먼저 인정한 건 그쪽일 텐데?” 

“오늘 변신한 모습을 보니 의문이 생겨서 말이다. 어째서 정통이 사신의 모습으로 변한 거지?” 

그걸 내가 알 리가 있나. 

확실히 다른 정통들과 헬은 다르다. 

다르지만, 그렇다고 정통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사신을 소환하면 ‘정통’임을 인정할 건가?” 

“인정하마.” 

황금 가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후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잘 됐군.’ 

다행히 헬은 사신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헬을 향해 심상을 전했다. 

‘사신을 소환해라, 헬.’ 

-캬캬캬캬! 

촤륵! 

헬이 동의하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동시에. 

《‘사신’이 소환되었습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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