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영혼의 정체
달그락. 달그락.
백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말을 탄 채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마차의 안에서 와이저 후작은 잔뜩 굳은 얼굴로 반대편에 앉은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씽긋!
와이저 후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여인.
새하얀 백발, 긴 속눈썹, 티 없이 맑은 피부.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 미소를 본 와이저 후작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네.”
“그러니까······ 그렇습니까?”
“네.”
“······ 알겠습니다.”
“네.”
고정된 대화
적막이 흘렀다.
이후로 서로 간에 대화는 없었다.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는 상황.
와이저 후작은 급히 눈을 돌려, 그 옆에 앉은 세렝게티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분이 세아 성녀시라고?’
‘맞습니다.’
세렝게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저 후작은 입이 바짝 말랐다.
후계자 란돌프에게 도움을 요청했건만, 정작 도착한 건 눈앞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와이저 후작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 세아 성녀라니!
여신교 내에 존재하는 성녀 중에서도, 세아 성녀는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대원정에서 죽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세아 성녀가 살아있다는 게 알려지면 여신교는 난리가 나겠지.’
란돌프 후계자가 자신이 오는 대신 세아 성녀를 대동시켰다.
그 저의가 무엇일까.
발란 왕의 앞에 서면, 세아 성녀 역시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텐데.
‘······ 세아 성녀가 발란 왕의 옆에 있다면, 프리드릭 왕도 섣불리 나서진 못할 거다.’
아이언 왕국의 패자, 프리드릭 왕은 선을 넘었다.
그는 선전포고하고자 직접 발란 왕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그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은 조건 없는 항복이냐, 죽음이냐를 발란 왕에게 선택하게끔 할 셈이었다.
하지만 발란 왕의 옆에 세아 성녀가 있는 걸 보게 된다면 섣불리 미친 짓을 벌이진 못할 것이다.
정말 여신교가 개입할 수도 있으니까.
제아무리 동부의 패자로 우뚝 서고 있는 아이언 왕국이라 할지라도 여신교와 척을 질 수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씽긋!
“······.”
세아 성녀가 짓는 순백의 미소를 보며 와이저 후작은 재차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하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무리 그가 후작의 지위를 지닌 귀족이라고는 하나, 그래 봤자 변방 도시의 주인일 따름이다.
반면에 세아 성녀는 대륙의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희망’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그 파급이 얼마나 클지 예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란돌프는 자신에게 세아 성녀를 맡겼다.
‘후계자께선 나를 믿으신다.’
믿음이 없다면 성녀를 맡기지도 않았으리라.
좋다.
다 좋은데······.
“성녀님. 혹시 그분께선······ 뭘 하고 계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적막을 깨고자 던진 의미 없는 질문에 세아 성녀가 답했다.
세렝게티도 모르던 걸 세아 성녀가 알고 있다고?
와이저 후작이 다급히 물었다.
“호, 혹시, 그분께서 뭘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한바탕 놀다 오겠다고 하셨어요.”
“예······?”
“파티에 가신다고 하셨거든요.”
“······??
*
‘훌륭하다.’
황금가면은 만족했다.
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생각하고 예상한 것보다 더 값진 만찬들이 한곳에 모였다.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도 필시 만족하시리라.
‘하지만 천락과 나락의 영혼보다 값진 것은 없나 보군.’
조금 아쉬운 거라면 신화의 시대를 살아갔던 거인의 영혼보다 값진 만찬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계를 받치는 기둥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했던 존재.
단순한 크기만이 아니라 영혼의 격 역시도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감히 반신(半神)이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만찬의 취지는 그간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도 있지.’
준비한 영혼으로 말미암아 그간 후견자들이 움직인 동선 따위를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황금 여우의 경우 여신교를 지독하게 괴롭혀왔다.
추기경과 성녀의 영혼은 아무리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그 철벽의 수호를 뚫어내고 사냥에 성공했다는 건 감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쳤다는 뜻이다.
그리고 최근 여신교와 전쟁을 일으킨 곳은 한 곳뿐이었다.
‘발로그 교단을 움직이는 게 너였구나, 황금 여우.’
발로그 교단!
흑점을 일으키는 어둠의 성기사들.
그들을 움직이는 게 누구인가 싶었더니, 황금 여우였던 모양이다.
설마 여신교를 직접 두드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건만.
또한 황금 여우는 검술의 대가였다.
제국의 수많은 검이 그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을 수준이었으니, 말은 다 했으리라.
‘황금 원숭이······ 너는 구제국의 흔적을 좇고 있었군.’
흑제라며 꺼낸 영혼은 구제국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육각과 대립하는 육제의 존재에 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었으니.
필시 구제국을 탐사하던 도중 알게 된 것일 터.
하지만, 육각의 영웅들에 비해 저 ‘흑제’의 영혼은 너무나도 볼품이 없었다.
당장 심연미궁에 떠올랐던 육각의 일인인 ‘라일리’만 하더라도 얼마나 대단했던가.
‘가장 정직한 건 역시나 황금 사자······ 그대로군.’
황금 가면은 내심 웃고 말았다.
이곳에 모인 모든 후견자는 죄인을, 여신을 증오한다.
그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신병’이라 불리며 그들의 몸을 멋대로 제어한, 혹은 제어하게 만든 존재들!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린 그들은 탈과 가면을 씀으로서 존재의의를 되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세월은 증오와 분노를 엷게 만든다.
하지만 황금 사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후견자들의 영혼을 살피던 황금 가면은, 마침내 한 명에게 시선을 멈춰 세웠다.
‘······ 황금 염소.’
바로 황금 염소.
존재할 리 없는 12번째 정통의 후견자이자,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자.
‘확실한 건 그가 오주력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허드슨은 미궁 도시의 대리인이자 오주력의 수하였다.
그런 그가 경매 때 황금 염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으니, 깊은 연관이 있는 건 당연지사.
아니, 어쩌면 황금 염소가 오주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까마귀의 왕 오주력 역시 베일에 싸여있으니까.
‘허나, 첫 만찬회와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첫 만찬회에서 황금 염소의 정통에게 첫 시식을 맡긴 게 잘못이었다.
물론 그게 암묵적인 규칙이라고는 하나, 덕택에 결국 아무도 ‘만찬’의 주인이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설마 다 뱉어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러나 이번에는 결코 그런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준비할 시간도, 기껏 준비한 영혼도 모두 형편없을 터.’
첫 만찬회에서 아무런 영혼도 준비하지 못한 황금 염소다.
하지만 다른 후견자들은 오랜 시간 이날을 위해 준비한 영혼들이 있었다.
결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기껏 준비했다고 한들 마지막 순번을 벗어나진 못하겠지.
‘고작 검게 물든 영혼 하나라니.’
역시나.
너무나도 예상대로의 일이라,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인내했다.
황금 염소가 내놓은 영혼은 단 하나였다.
검게 물든 영혼.
일반적인 영혼은 아니지만, 혼의 색이 검게 물들었다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타락한 영혼이거나, 혹은 강력한 저주를 품은 영혼이거나.
둘 중 무엇이 되었더라도 볼품없는 영혼임은 분명했다.
‘타락했다는 건 그 자체로 격이 별 볼일이 없다는 증명과도 같지. 격 높은 존재가 타락할 일은 어지간해서 없으니.’
어지간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솔직히 없다시피 한다.
그도 그럴 게 스스로의 자격을 완성한 존재가 왜 타락하겠는가.
완성된 자는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타락할 일이 없다.
고로, 저 영혼은 완성되지 못한 자의 것이다.
후자 역시 마찬가지.
‘혹은 강력한 저주에 완전히 잠식되어버린 영혼이란 뜻이다. 영혼 자체가 저주에 잠식될 만큼 형편없다는 소리.’
이 또한 기대할 것도 없다.
황금 염소가 내놓은 영혼은, 형편없는 게 확실했으니까.
이곳에 모인 모든 후견자의 생각은 같았다.
그들은 정통을 다루며 수많은 영혼을 보았고, 잡았으며, 먹어치웠다.
당연히 저 ‘검은 영혼’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쯧쯧. 만 점도 안 나오겠군.’
‘이래서야 기회조차 없겠어.’
‘만찬회를 얕보고있는 건가?’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12번째 후견자, 저 황금 염소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라이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물며 이전 만찬회를 망쳐버린 당사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만점이나 나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 그랬을 터인데.
“뭐?”
“거짓말······!”
“··· 잠깐. 숫자 하나가 잘못 적힌 거 아니냐?”
그들은 눈을 치켜뜨며 나타난 숫자를 부정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666,666】
육십만 점이 넘는 점수라니···!
황금 가면의 두 배를 뛰어넘는 점수였다.
이는 곧 저 ‘검게 물든 영혼’의 가치가, ‘신화의 시대를 살아간 거인’보다도 월등하다는 의미였다.
‘······ 말도 안 된다.’
황금 가면은 침묵한 채 떠오른 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대한 달의 의지’가 산정한 영혼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불변이다.
그러니 틀릴 리가 없다.
······ 없을 터였다.
그럴진대 왜 이토록 부정하고 싶어지는 건지.
“대체 누구의 영혼이기에?”
모두가 궁금해하였다.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 검게 물든 영혼의 정체를.
화아아아악!
이윽고 달의 붉은 빛이 한층 강렬해졌다.
창을 뚫고 들어올 것처럼 선명하게 내부를 비춘 붉은 달빛은 선보인 모든 영혼들을 한데 묶어, 불로 피워냈다.
구오오오오오-!
거대하게 타오른 불빛은 이내 한 존재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내 그 형상은 비명을 내지르며 모든 영혼을 먹어치웠다.
아니, 아니다.
‘이건 영혼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다.’
모든 후견자들이 알아차렸다.
비명을 내지른 건 저 형상화된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에게 먹힌 ‘영혼’들이라고.
황금 염소가 내놓은 검게 물든 영혼, 그 압도적인 괴물의 존재에 감히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신화의 시대를 살아간 반신의 거인조차도.
그리고 그것을 본 후견자들은 동시에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저 불의 ‘형상’은······.”
“········· 그럴 리가.”
모두가 알고 있는 형상이었으니.
저 괴물을 어찌 모르겠는가.
허나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처음이지만, 확실했다.
이내 황금 가면이 입을 열었다.
“저 영혼을 어떻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것에 대한 경악성이다.
저 저주받은 존재의 영혼을 어찌하여 황금 염소가 갖고 있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게, 저 영혼은.
‘멸망’의 사냥개들.
그중 가장 많은 이에게 공포와 무력감을 선사한 괴물 중의 괴물!
‘절망.’
······ 사흉, ‘절망’의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