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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03화 (203/317)

판을 엎다

사자탈의 남자가 선보인 영혼의 개수는 대략 20여 개. 

성각자를 비롯한 하나하나가 격조 높은 존재들의 영혼이었다. 

하지만, 19만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수치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보다 더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이전 만찬회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들이 오랜 기간 아끼며 모아둔 영혼들. 

그것들을 본격적으로 꺼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야 이들과 달리 후견자가 된 기간 자체가 짧으니 준비하고 말 것도 없었다. 

내가 준비한 영혼을 딱 두 개뿐이다. 

유니온, 그리고 저주받은 영혼. 

슈릅! 

툭! 툭! 툭! 

사자탈의 정통이 꺼낸 영혼들을 본 모든 ‘정통’이 입을 다셨다. 

침을 뚝뚝 흘리고, 눈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흥분하고 있었다. 

‘붉은 달의 빛이 헬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군.’ 

그리고 그것은 헬도 마찬가지였다. 

저 달의 빛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위대한 달’이 정통과 관련되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황금 사자의 ‘가치’를 넘어설 자신이 있는 자, 또 있는가?” 

황금가면이 진행을 계속했다. 

확실히 사자탈 남자가 준비한 만찬의 수준이 제법 되는 것인지 아무도 쉽사리 손을 들지 못했다. 

괜히 도전했다가 형편없는 가치로 취급받으면 창피만 살 뿐이니까. 

그러던 중, 한 명이 손을 들자 황금 가면이 의외라는 듯 던졌다. 

“황금 원숭이. 그대가 나섰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아아. 황금 사자의 만찬이 생각보다 더 별 볼 일 없어서 말이다.” 

명백한 도발. 

그 도발을 듣고 황금 사자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별 볼 일 없다?” 

“그래, 별 볼 일 없다. 그래봤자 고작해야 성각자와 떨거지들 아니냐?” 

“······ 우리가 사냥해야 하는 영혼 중에 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게 있던가?” 

그들은 플레이어를 증오한다. 

여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혐오했다. 

그러니 ‘성각자’만큼이나 가치 높은 영혼이 존재할 리 없다. 

황금 원숭이가 비웃었다. 

“편견에 사로잡혔구나, 황금 사자야. ‘특별한 만찬회’라고 하지 않았느냐? 굳이 ‘죄인’과 관계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가 덜 떨어져서야.” 

“원숭이. 진정 죽고 싶은 건가?” 

사자탈을 쓴 남자의 주변으로 모든 게 솟아올랐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일촉즉발의 상황. 

“··· 그만. ‘위대한 달의 의지’가 지켜보고 계시는 신성한 장이다. 싸움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 

뚝! 

그 순간, 위압적인 공기가 가라앉았다. 

위대한 달의 의지가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주효하게 통한 듯싶었다. 

그것을 보며 황금 가면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싸우는 건 오로지 ‘영혼의 가치’뿐이다. 가치가 높은 자가 승자이며, 낮은 자는 패자일 뿐. 이 간단명료한 규칙을 거부할 자는 만찬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 

“······ 오냐, 지켜보도록 하지.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도 원숭이 네놈의 의견에 동조하실지.” 

사자탈의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숭이의 질 낮은 도발에 응할 필요가 없다. 

놈이 내미는 영혼의 가치를 보고서 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확실히 비교가 안 되는군.’ 

방금 전 느낀 살 떨리는 살기. 

바깥에서 본 은가면을 쓴 초월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소 3성. 어쩌면 그 이상. 

하지만 이들의 ‘정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히든 특성, 혹은 또 다른 무언가에 의해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관찰 불가’ 대상으로 지정된 상태입니다.》 

그때 돌연히 떠오른 메시지 하나. 

이들 전원이 ‘관찰 불가’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몰랐으나 ‘진리의 눈’으로 격상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메시지대로라면 누군가가 이들을 관찰할 수 없게끔 만들어놓았다.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과 같은 기능이다.’ 

관찰 불가 옵션을 지닌 장비나 도구는 꽤 있다. 

하지만 착용자 자체를 ‘관찰 불가’로 만들거나, 누군가를 지정하여 관찰할 수 없게끔 만드는 장비나 도구는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다. 

바로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 말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절대자의 반지’도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게 아닐는지. 

그렇다면. 

‘이 궁 어딘가에 절대자의 반지가 있다.’ 

그리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최소 하나 이상의 ‘절대자의 반지’가 이곳 궁에 있노라고. 

후견자 중 한 명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후견자들은 아니야. 이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한다.’ 

이들 중 한 명은 아니다. 

이들을 중요시 여기는 자가 단체로 묶어놓은 것이다. 

예컨대. 

‘잠든 황제······ 라거나.’ 

잠든 황제가 ‘절대자의 반지’를 갖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터이니. 

그가 정통의 주인 열한 명을 관찰할 수 없게끔 지정해놓은 건지. 

“내가 준비한 가장 특별한 영혼은 ‘흑제’의 것이다.” 

“흑왕을 말하는 거냐?” 

남부의 흑왕. 

그는 ‘흑제’라고도 불리는 최강자였다.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면 성각자 따위의 영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비견할 수 없으리라. 

사자탈이 놀라 묻자, 원숭이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구제국 ‘육각’과 비견됐던 ‘육제’의 일인 말이다.” 

“육제······? 그 구대륙의 풍운아들?” 

“그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만,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흑제가 가진 영혼의 가치를.” 

원숭이탈의 등 뒤로 또 다른 사신들이 떠올랐다. 

50여 개의 영혼들. 

그중 가운데의 것이 ‘흑제’의 영혼이라는 말인데.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 곧이어 붉은 빛이 모여들며 점수가 나타났다. 

【120,105】 

···막상 나타난 수치는 사자탈의 훨씬 아래였다. 

점수를 본 원숭이탈의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예상한 수치보다 훨씬 낮게 나오자 원숭이탈의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쳐봤자 점수는 바뀌지 않았다. 

후견자들이 쯧쯧 혀를 찼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군.” 

“으음,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도 실망하셨겠어.” 

특히 사자탈의 웃음은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였다. 

“하하하! 멍청한 원숭이 녀석. 그렇게 자신하더니 고작 12만 점? 나 같으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게다.” 

“······.” 

“흑제? 이름이 아깝구나. 아아, 혹시 흑지렁이를 잘못 본 건 아니겠지?” 

“······.” 

상황이 역전됐다. 

승자는 사자였고, 패자는 원숭이였다. 

그리고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다. 

자신의 썩은 눈을 원망할 수밖에. 

“······ 계속해서 도전할 자, 있는가? 어차피 모두 선보여야 하는 자리다. 다만, ‘위대한 달의 의지’께서 먼저 도전하는 자를 더 좋게 보실지도 모르는 일이지.” 

용기 있는 자는 나서라. 

사자탈의 남자가 기고만장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네놈부터 나서지 그러냐? 황금 가면.” 

“그것도 그렇군. 알겠다.” 

황금 가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부터 나서야 모범이 될 것이었기에. 

이어 황금 가면의 등 뒤로 수많은 사신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준비한 영혼은 정확히 두 개. 

그런데 그 크기가 수많은 사신들이 떠받들어야 할 정도로 컸다. 

“······ 뭐냐, 저건.” 

“영혼의 크기가 저렇게 크다고?” 

후견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저처럼 커다란 영혼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황금 가면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먼 옛날 세계를 떠받쳤다는 두 쌍둥이 거인의 영혼이다.” 

“설마 ‘천락’과 ‘나락’······?” 

“아아, 황금 사자여. 그대도 아나 보군.” 

“······!!” 

황금 사자만이 아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후견자들 모두가 크게 놀랐다. 

천락과 나락. 

먼 고대, 신화의 시절 등장한 이름이었으니. 

정말로 세계를 떠받친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거대했던 쌍둥이 거인이다. 

거인들도 거인이라 칭할 수준의. 

몸은 하나였으나 얼굴이 두 개였고, 영혼 역시 그래서 두 개였다. 

“으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그 크기로 이름은 유명하다만 제대로 된 신화적인 업은 없지 않나?” 

사자탈의 남자는 애써 외면했다. 

【250,000】 

하지만 나타난 점수는 사자탈의 점수를 아득히 넘어섰다. 

“······!” 

“25만 점이라. 나쁘지 않군.” 

황금 가면이 어깨를 으쓱했다. 

반면, 사자탈은 아예 경직되어버렸다. 

탈의 안쪽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이어진 점수들. 

‘대부분이 10만 점 대로군.’ 

후견자들 중 딱 한 명을 제외하곤 20만 점을 넘기지 못했다. 

황금 사자와 비견되는 점수를 기록한 건 단 한 명. 

【245,000】 

아슬아슬하게 넘어서지 못한 ‘여우가면’뿐이었다. 

여우가면 준비한 영혼은 무려 ‘여신교의 추기경’과 ‘성자’였다. 

하지만, 신화의 시대를 살아간 쌍둥이 거인만큼이나 파격적인 영혼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런데도, 엄청나다. 

“허어. 이만한 만찬이 모인 만찬회는 처음 아닌가?” 

“만식만 할 수만 있다면 단번에 치고 나갈 수 있겠어.” 

한데 모인 영혼의 격에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11명의 검증이 끝이 나고. 

“이제 그대의 차례다, 황금 염소여.” 

······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황금 가면의 옆에 선 채로, 잠시 고민했다. 

‘헬은 사신을 소환하지 못한다.’ 

이들과 달리 헬은 사신을 소환할 수 없다. 

적어도 여태까지 소환한 적은 없었다. 

변신을 하긴 해도. 

하지만 다른 후견자들은 사신을 소환하고, 그 사신들이 영혼을 맡은 모습을 보여왔기에, 약간의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준비해 왔나?” 

“글쎄. 준비해봤자 별거 없을 테지.” 

“음.” 

저들과 달리 내가 ‘만찬’을 준비한 시간은 아득히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이 대놓고 무시하는 말과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컄캬컄! 

동시에, 헬이 낫을 휘둘렀다. 

그러자. 

쩌적! 

몸을 팽창하며 헬이 변신을 완료했다. 

그것을 본 후견자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냐, 저 흉측한 모습은.” 

“······ 사신을 소환한 게 아니라, 사신 그 자체가 되었다고?” 

“확실히 별종은 별종이다.” 

정통이 아닌 사신의 모습. 

정통이 사신의 모습으로 변하다니! 

흉측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별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헬은 검게 물든 영혼 하나를 꺼내 보였다. 

“고작 하나?” 

“음······ 이길 생각이 없는 거냐?” 

“마지막 차례면 기회조차 없을 텐데.” 

모두가 최소 두 개 이상의 영혼을 꺼냈다. 

심지어 백 개가 넘는 영혼을 꺼내 ‘물량공세’를 한 후견자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고작 하나라니. 

이는 아예 이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 그들의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을 보며,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준비한 영혼은 ‘저주받은 자’다.” 

“저주받은 자? 그게 다인가?” 

황금 가면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다.” 

정말로 그것 외에 아는 게 없었으니까. 

이름도 모른다. 

그저 ‘저주받은 자의 영혼’이라는 것 외엔 설명할 길이 전무했다. 

그래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멸망이 아인하사르를 타락시키고자 저주를 걸 때 사용한 영혼이라고는 하나, 그게 과연 황금 가면이 내보인 영혼들보다 더 가치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찬회에 참가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인가······.” 

황금 가면조차도 아리송하다는 반응이다. 

정말로 내가 만찬회에 참가하고자 ‘최소한’으로만 준비해왔다고 여기는 듯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디 한 번 보자꾸나. 황금 염소, 그대가 첫 만찬회와 마찬가지로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 빌어먹을 놈 같으니. 

‘처음부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를 배제할 생각이었다.’ 

황금 가면은 처음부터 나를 배제한 채 판을 짠 것이다. 

첫 만찬회에서 헬이 벌인 이변. 

모두의 기회를 강제로 박탈시킨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번엔 반대로 내가 기회를 박탈당할 차례라는 뜻이었다.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기다렸다. 

나 또한 별반 기대는 하지 않은 채로. 

곧이어 붉은 빛이 모여들며 숫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타난 점수는. 

【666,666】 

‘······?’ 

········· 판이,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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