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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01화 (201/317)

특별한 사신의 만찬회

마왕. 

만마(萬魔)의 지배자이자, 여덟 지옥을 다스리는 절대자. 

마계의 옥좌에 앉아 전쟁의 진행 상황을 전해 듣던 그는 인상을 와락 구길 수밖에 없었다. 

“이세라가 패배했다······.” 

그나마 이세라는 침략이라도 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망자왕 아흐람은 지구로 침략도 하기 전에 증발해버렸으니까. 

하지만 실패는 실패다. 

‘멍청하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것들.’ 

워낙에 자신하여 어디 한 번 지켜보려 하였거늘, 이래서야 죽기 전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물론 처음부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7군주 바사라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2군주 조차 되지 못했을 터이니. 

고작해야 특이한 형식의 조건을 무적으로 가진 게 전부인 그 형편없는 놈을 군주의 자리에 앉힌 건 바사라의 후광을 등에 업은 덕이었다. 

그나마 용신의 살점을 뜯어먹고 정령왕 아그니스와 계약해서 조금 달라졌나 싶었건만······. 

“정령왕과 계약하고도 실패하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마왕님.” 

마왕의 심기를 읽은 한 남자가 옆에서 조용히 조언했다. 

마치 원시 부족의 부족장과 같은 탈을 쓴 채 창을 들고 있는 마족.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마몬?” 

그는 3지옥의 주인이자 원시정령의 계승자라 불리는 ‘마몬’이었다. 

마족 중에서도 특이하게 원시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이며, 이세라가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와 계약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도운 존재가 바로 그였다. 

“예. 이세라는 아그니스의 힘을 20%밖에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명색이 초열지옥의 주인이라는 자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자질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정령왕의 힘을 끌어내지 못해서 패배했다?” 

“그렇습니다.” 

마몬은 자신했다. 

정령왕 아그니스의 힘을 온전하게 끌어냈다면, 지구의 침략 따위는 순조롭게 진행됐으리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구에 새로운 용신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용신의 탄생에 광룡 아인하사르가 관여했다.’ 

용신을 탄생시키는 법을 아는 건 하나뿐이다. 

먼 옛날 지혜의 용이라 불렸던 아인하사르, 

멸망의 저주로 미쳐버린 그가, 돌연히 용신의 업을 되찾았고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용신이 탄생했다. 

그것도 돌연변이 용신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악마의 장난인가?’ 

최근 탐욕의 악마가 출현했다는 사실 또한 마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들의 움직임이야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대의 악마들은 장난이 심할지언정 그와 부딪히는 일은 없었으므로. 

부딪히려 들었다간 진즉에 목숨줄을 끊어버렸을 테니까. 

허나 만약 이것들이 악마들의 작품이라면, 이는 명백히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이다.

‘신격들은 우리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마왕. 

그는 ‘멸망’의 유일한 혈육이다. 

‘멸망’은 멸망시킨 세계들로 말미암아 ‘마계’와 ‘마왕’을 탄생시켰으며, 수많은 신격을 살해하거나 저주하여 미치게 했다. 

멸망을 약화하는 게 신격이기 때문에. 

그 멸망으로부터 탄생한 마족과 마왕의 천적 역시 신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그는 태생부터 침략자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었다. 

‘······ 누가 무슨 의도로 움직이고 있든, 발악일 따름이지.’ 

그러나 마왕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이미 완성의 경지에 거의 다다랐으니까. 

빌헬름의 몸을 차지한 뒤, 현재는 빌헬름의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차갑게 식었던 피부엔 혈색이 돌았고, 더욱 강화된 심장과 육체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만 같다. 

고대의 악마들이 장난질을 치는 것이라면 하나하나 멱을 따주면 그만이다. 

“저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왕님.” 

마몬은 자신했다. 

아흐람, 이세라와 마찬가지로. 

굳이 비교하기에 그 둘과 마몬은 질적으로 다른 강자이긴 하였다. 

두 번의 잇따른 실패. 

이쯤 되면 차라리 총력을 기울여 침략해도 괜찮을 듯했으나. 

‘피아 그년이 내게 저주를 남겼다.’ 

천공의 여신 피아. 

빌헬름의 영혼을 구출한 그 빌어먹을 여신은 별만을 남긴 채 죽은 게 아니다. 

저주도 함께 남겼다. 

마계가 총력을 다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자신의 발에 족쇄를 단 것이다. 

덕분에 마계와 군주들 전원이 완전하게 부활하긴 했지만, 그 병력을 통째로 쏟아붓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그 저주도······.’ 

결국엔 풀린다. 

지옥의 군주들이 침략에 실패하여 죽을 때마다, 그들의 마력이 자신의 몸에 흐르게끔 조처를 해뒀으니. 

이 몸이 강해질 때마다 피아의 족쇄 역시 약해지게 되어있었다. 

“······ 으음?” 

그때였다. 

돌연, 마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왕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마왕의 변화에 마몬이 묻자, 마왕은 더욱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몬··· 너는 느껴지지 않느냐?” 

“무엇이 말입니까?” 

“지금 판게니아의 대륙 어딘가에서 거대한 운명이 탄생했다.” 

“······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아. 

정녕 이 거대한 파동을 마몬은 못 느꼈단 말인가? 

마몬만이 아니라 모든 마족이 마찬가지였다. 

마왕. 멸망의 후손인 오직 그만이, 이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 심장이 뛴다. 손에선 땀이 난다.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고?’ 

지금 막 탄생한 거대한 운명이, 그 소용돌이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설마 ‘멸망’조차도 위협할 존재라도 된다는 건가? 

‘······ 그럴 리가.’ 

강하게 부정한다. 

신격이 부활하고 탄생했을 때조차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던 그다. 

그러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최초의 불을 지펴 그 안에서 제련된 갑옷. 

그건 그 이름처럼 투박하기 그지없는 생김새였으나, 절대 투박하지만은 않은 내용을 가진 무구였다. 

“불에서 갑옷이······?” 

“뭐, 뭡니까?” 

아우릴과 허드슨이 제련된 태고의 갑옷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불에 재료를 집어넣자 느닷없이 갑옷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최초의 불’이 지닌 기능 중 하나였다. 

최초의 불은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감히 ‘역대급’이라 칭할 수 있었다. 

‘재료만 있으면 도안 따윈 필요 없다.’ 

······ 도안 없이 제작해버리는 기능. 

재료만 충분하다면 유일급 그 이상의 작품도 탄생시키는 절대적인 불! 

‘········· 미쳤다.’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는 나오지가 않는다. 

재료를 구해도 도안이 없어서 제작하지 못했던 물건이 얼마나 많던가. 

특히 ‘유일등급 도안’은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특정 장소와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게 수두룩했다. 

가뜩이나 재료도 구하기 힘든데 도안까지 그 난리이니 유일등급의 장비가 세계에 몇점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불’로 말미암아 도안이 필요 없게 된다면······. 

‘유일등급 제작이 훨씬 쉬워진다.’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는 쉬워진다. 

심지어 당장 제작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황금률 상점과 경매장을 털어오면 말이다! 

단순히 도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만 가능한 줄 알았더니. 

하지만, 그러한 전율조차도 지금 내 앞에 떠오른 ‘태고의 갑옷’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허.’ 

이건 더 미쳤다. 

진짜··· 말이 나오지도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태고의 갑옷(태고등급)】 

-‘창조의 어머니’, ‘최초의 불’을 머금었던 나무막대기로 제련된 갑옷. 

-최소 물리 내성 50% 

-최소 물리 내성은 ‘관통력’에 뚫리지 않음 

-자신이 입은 물리 피해를 210%로 반사 

-탈리스만 홈(6) 

-장착한 탈리스만이 1.5배 증폭한 능력을 지님 

-레벨 비례 추가 ‘전체 관통력’ 획득 

-‘태고의 절망’ 사용가능 

-파괴 불가 

-귀속 

-형태 변형 가능 

-‘태고의 마석’으로 강화 가능 

········· 이걸 미치지 않았다고 하면, 무엇이 미쳤을까. 

처음 옵션부터 그랬다. 

‘관통력보다 상위의 옵션이라니.’ 

관통력은 모든 내성의 상위에 있다. 

지금 그 ‘관통력’을 무시하는 옵션이 나타난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판게니아에 갖고 있던 상식을 무시하는 장비. 

‘최소 내성’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물리 피해를 50% 경감하고 그 피해를 다시 두배넘게 반사하는 것만으로도 사기적이라 불릴 만했다. 

‘탈리스만 홈이 여섯 개. 옵션증가. 미쳤다.’ 

동공이 흔들렸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좋은 장비도 보통 두 개에서 세 개의 홈이 있는 게 전부다. 

게다가 장착한 탈리스만의 옵션을 증폭시켜준다. 

이런 옵션 역시도 처음보았다. 

처음보는 것 천지였다. 

‘전체 관통력 9%증가······.’ 

레벨에 따른 추가 관통력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내 레벨은 9. 

추가된 전체 관통력은 9%였다. 

이것만으로도 현재 내 전체 관통력 수치는 20%를 훌쩍 넘겼다. 

거기다가 강화 가능까지. 

‘태고의 마석은 뭐지?’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니까 적혀있는 것이리라. 

형태도 변형할 수 있으니 숨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남들은 이게 무슨 갑옷인지 관찰조차 하지 못할테니까. 

“라, 란돌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허드슨이 자처하여 물었다. 

그만이 아니라 모두가 궁금해 미치겠다는 눈빛이다. 

아우릴도 아이작도, 발테와 안다사르도. 

“그전에 이곳에 모인 모두를 ‘정규기사’로 임명을 할 생각이다.” 

“예? 커헉! 서, 설마······? 명예 수치가 1만을 넘기신 겁니까?!” 

허드슨은 알고 있었다. 

정규기사 임명은 명예 1만이 넘은 자들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정규기사로 임명되면 추가 능력치와 함께 신비를 수여받고 ‘직속 기사’가 된다. 

마치 왕의 수호기사와 마찬가지로. 

이는 무척이나 명예로운 일이었으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 아니면 어떻게 ‘정규기사’로 임명을······?” 

“1만이 아니다.” 

“예?”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그것을 본 허드슨이 두 눈을 치켜떴다. 

“잠깐. 설마 3만이라는 건 아니시겠지요?” 

“넘겼다.” 

“······ 쿨럭!” 

허드슨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1만은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다. 

2만은 황제도 가능한 수치였다. 

그런데 3만은······ 명예 3만이 가능한 수치던가? 

“30명까지 임명할 수 있다더군.” 

“······ 예에??” 

정규기사 30명이라니! 

제국, 황제의 직속이라는 팔가 기사단 역시 모두가 ‘정규기사’로 이뤄졌지만, 그 숫자가 30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수치만으로 보면 팔가 기사단보다 더 많은 숫자. 

허드슨의 두 눈이 거칠게 떨렸다. 

‘······ 어디까지 올라가실 작정이시지?’ 

란돌프의 한계가, 끝이 보이지 않아서. 

이런 분을 따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허드슨이었다. 

아니, 허드슨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 란돌프가 적이었다면 정말 끔찍했을거라고. 

제국, 사신교. 

정통의 후견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이 바로 ‘만월’의 날이다.” 

모두가 모인 곳. 

황금 가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이야말로 만월의 밤, ‘특별한 존재’가 깨어나는 날이었으므로. 

“가장 특별한 만찬을 준비한 자가 ‘만식’에 도전한다. ‘위대한 달’의 의지가 지켜보는 자리인만큼 이번 만찬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위대한 달. 

그 이름을 들은 후견자들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대들 모두 준비는 되었겠지?” 

황금가면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한 지점에 멈춰섰다. 

······ 정확히 나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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