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98화 (198/317)

진정한 원형의 보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니, 잠깐만.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맞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데. 시스템이 맛간 거 아님? 

플레이어 톡은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전쟁이 끝난 이후, 이세라가 죽자 나타난 기여도 창. 

대부분의 순위는 그들 모두 납득할 수 있었다. 

박태우야 두말할 것 없고, 다크스타도 도망치긴 했지만 어쨌든 세계에서 연합원들을 모은 것 자체는 그가 주도적으로 기여한 것이었기에. 

-전장에 참가 안 하지 않았어? 

-또 정체를 숨기고 참가한 거야? 

-아니, 참가했다면 알았겠지. 기여도 1위잖아! 

-그래. 용신 루카리아를 데려온 사람보다 더 압도적으로 기여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우리가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말 안 되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나타난 기여도 1위의 존재. 

그 존재를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전장에 참가했다면, 그들이 몰랐을 리 없을 테니까. 

아무리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한다고 해도 무려 기여도 1위다. 

용신 루카리아를 소환하고, 끝까지 전장에서 활약한 박태우보다 더 높은 기여도를 기록했다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 없어야 정상이었다. 

-차라리 란돌프라면 이해라도 하지! 

-팬텀이면 칼날 용신의 주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지 

-그러니까. 왜 란돌프가 아닌 거야? 

차라리 란돌프라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란돌프가 아니었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트초코맛있어요가 1위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민초단이여! 일어나라! 

-팬텀교에 핍박받던 민초들이여! 때가 되었다! 

-...미친놈들 

그라시아는 격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창 하나.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목격했을 ‘기여도 순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기여도의 전당 1위가 공개되었습니다!》 

《1위 ‘추가적인 침략을 저지한 게이트 파괴자, 민트초코맛있어요’》 

《축하드립니다!》 

먼 옛날. 

아득히 먼 태고 시절, 모든 게 ‘원형’으로 존재했던 그때. 

너무나도 긴 세월 동안 사라진 모든 것들의 ‘원형’을 모아둔 용신이 있었다. 

“왜 그런 것들을 모아는 거지?” 

“조잡하기 그지없는 물건들을······ 쓰레기더미가 따로 없군!” 

당연히 당시에 그것들은 보물이 아니었다. 

하여 태고의 다른 용신들은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물창고에 저런 쓰레기를 모아두는 용신이라니! 

별종도 그런 별종이 없었으니까. 

“멍청한 녀석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들의 가치는 빛을 발할 거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이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처음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그는 창고에 모아갔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형태의 검이나 창, 갑옷과 같은 장비들을. 

그러나 처음 만들어진 모든 것은 조잡하기 그지없을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진화하고 발전하여 ‘더 나은 것’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보석처럼 화려하거나 빛이 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같은 신격의 존재들이 사용하기에도 너무 조잡한 것들뿐.” 

“음. 이제 겨우 지능을 갖춘 필멸자들이 만든 걸 모아서 어디에다가 쓰려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그래서 비웃었다. 

가치 없는 것들을 모아서 대체 어디에다 쓰느냐고. 

“··· 너희의 자만이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을 날이 올 거다.” 

태고용신 또한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지닌바 신격만을 믿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보들이다. 

태생부터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 굳이 강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지만 필멸자들은 다르다. 

지능을 갖춘 그들은 생존을 위해 마치 창조주처럼 수많은 물건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신에게서 ‘불’을 훔친 이후 그들은 끊임없이 발전해나갔다. 

‘우리는 정체되어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작은 불씨 하나로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창조한다. 그러니 나는 그 원형을 모아두리라.’ 

태고용신 또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낼 창조력은 없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저주다. 

허나, 적어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안목은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최초로 만들어낸 원형을 수집하여 보관해두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원형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거든, 원형 자체에 지고한 ‘격’이 부여될 테니. 

‘······ 우리는 멸망을 막을 수 없다.’ 

멈춰버린 그들은 결국 ‘멸망’ 앞에 스러질 터. 

태고용신은 ‘멸망’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는 세계들을 마주하였다. 

막지 못하면 끊임없이 반복될 악순환의 고리를. 

‘먼 미래에 이 원형들이 지고한 격을 쌓게 되거든, 멸망과 맞설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나겠지.’ 

결국, 태고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태고용신은 자신의 영혼을 남긴 채 창고를 봉인했다. 

이후 아득히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에 ‘자격’을 갖춘 자들이 자신의 보물창고로 찾아들었다. 

하나같이 불세출의 영웅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강자들. 

초월적인 업적을 연달아 달성하여 태고의 시대에 발을 들이는 게 허락된 극소수의 괴물들이었다. 

‘태고의 시대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시대를 새로 쓰는 자들뿐이니.’ 

천년에 한 번, 혹은 만년에 한 번. 

아예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타나긴 했다. 

강제로 문을 열고 태고의 시대에 발을 들인 자들이 말이다. 

하늘을 떨게 만든 마귀. 

대륙을 제패한 유일 황제. 

태양신을 죽인 신살자. 

세계의 축을 뭉개버린 고래. 

수많은 신의 축복을 받은 태양의 아이. 

수많은 신의 저주를 받은 달의 아이. 

가장 많은 심연을 지배했던 심연왕. 

‘······ 전부 볼 줄 모르는 놈들뿐이로구나.’ 

그런데도 태고용신은 연신 혀를 찰 따름이었다. 

그들의 무력은 자신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강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전부 ‘원형’의 가치를 볼 줄 모르는 자들밖에 없었으니까. 

아무리 강하면 무엇하나. 

진정한 보물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두 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물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자가 가져야만 빛을 발하는 법. 

‘진정한 원형들은 아직도 내 창고에 남아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흘렀음에도, 그 누구도 멸망을 막지 못했다. 

그 누구도, 원형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다. 

물론 다른 보물들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창고에 있는 모든 게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일무이한 진짜배기들만을 모아놨으므로. 

하지만······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걸까? 

‘나만큼 보는 자가 정말로 없다는 말이냐?’ 

실망스럽다. 

이래선 자신을 비웃던 놈들과 보물창고에 들어온 이들이 다를 게 없다. 

······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 오랜만이로군.’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그의 영혼이 깨어났다. 

누군가가 자격을 만족한 뒤 문을 열어 젖혔다는 의미다. 

‘어디 보자. 이번에 들어온 녀석은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룬 거지?’ 

크게 기대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궁금은 했다. 

필멸자가 쌓는 ‘업’은 ‘격’이 되어 영혼을 키운다. 

정체된 신격들과 달리 필멸자들이 창조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이곳에 들어온 존재들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업을 쌓은 자들뿐.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그저 그게 궁금할 따름이었다. 

‘오호라······.’ 

과연. 

문을 열고 들어온 자를 살핀 태고용신의 영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전에 들어온 자들에 비하면 무력 자체는 형편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쌓아온 업이 많다. 

그것도 한 명분의 업이 아니다. 

‘쌓은 업 자체는 이전에 들어온 자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구나. 아주 작은 시련조차도 한계를 돌파해서 그 너머를, 끝을 본 게다.’ 

간혹 이런 자들이 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노력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 끊임없이 한계를 돌파하는 자들이. 

이런 자들의 영혼은 굉장히 숭고하고, 깨끗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마치 여러 인물로 살아온 듯한······.’ 

그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존재들 중에선 처음이었다. 

애초에 필멸자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으니, 여러 사람의 운명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 

한데, 눈앞의 인간은 다르다. 

확실히 달랐다. 

태고용신은 들어온 자들의 모든 업을 볼 수 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관찰불가’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보물창고에 들어오는 조건 자체가 그에게 ‘관찰’을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업을 살피던 태고용신은 끝으로 갈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을 죽이고, 멸망의 애완동물을 죽이고, 신격을 되살려내고, 신격을 만들어냈다. ······ 뭐 하는 놈이지?’ 

이런 종류의 업적들이 한 사람의 몸에 있는 건 처음 본다. 

보통은 이런 류의 업적 한 가지 정도만을 이루고 들어오기 마련이었거늘. 

완전히 반대였던 비슷한 입장자가 있기는 있었지만······ 특이하다. 아주 특이했다. 

확실한 것은. 

‘······ 그래봤자 보는 눈은 없겠지.’ 

그래봤자, 보는 눈은 없을 터다. 

여태까지 들어온 모든 자들이 그랬으니까. 

아무리 특이한 녀석일지라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결국에는 널리고 널린 ‘좋아 보이는’ 보물을 선택해가겠지. 

‘다시 한숨 자야겠군.’ 

아무튼 들어온 대상을 확인했으면 됐다. 

적당히 하나 가져가면 끝날 일이었다. 

그가 할 일은, 해줄 일은 없었다. 

애당초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보물창고의 입구에 널려있는 휘황찬란한 보물들. 

그 길을 따라 널린, 자신의 격을 뽐내는 무장들. 

그것들을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으므로. 

‘음······?’ 

하지만, 이번에 입장한 입장자는 조금 이상했다. 

태고용신의 예상과 달리 그는 그 ‘휘황찬란한’ 것들에 일절 관심을 주지 않았다. 

스윽 한 번 살피고는, 관심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설마?’ 

··· 아니다. 

그냥 전체를 살피는 것일 테다. 

태고용신은 다시 기대를 접었다. 

그러나 이내 한 장소에 남자가 멈춰 섰을 때, 태고용신의 영혼은 작게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볼 줄 아는 것이냐?’ 

남자가 멈춰 선 곳. 

그곳엔 모든 가치를 초월한 ‘원형’이 있었으니까. 

모두가 비웃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억겁의 세월 동안 창고에 방치되어있던, 오로지 태고용신만이 알고 있는 보물. 

검은 아니다. 

창도, 활도 아니다. 

그러한 장비들은 이곳에 썩어 넘쳤다. 

그것들 역시도 ‘원형’이었으나 이것에 비하면 진정한 ‘원형’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지금 남자가 서 있는 곳. 

그 앞에 있는 건 그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 보물들이 존재하게 만든 진짜 ‘원형’이었다. 

‘정말로 그것을 고르겠다고?’ 

허나 여태껏 아무도 못 알아차렸다. 

시대를 새롭게 열고 만든 그 괴물들도 못 알아본 것을 어찌하여 저 인간이 알아본단 말인가. 

더 강하고, 더 우월했던 자들도 결국 못 본 채 지나쳤건만. 

우연일까? 

아니면 잠시 그 앞에서 쉬어가는 건지. 

‘아아······!’ 

이윽고 태고용신의 영혼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이내 그 보물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의 시작. 

인간이 훔친, 

최초의 불. 

그 불을 담았던 최초의 원형! 

······ 새까맣게 그을린,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나무막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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