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96화 (196/317)

태고용신의 보물창고

바사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성장하질 않았구나, 동생이여.” 

외적으로는 강해졌으나 의식은 그대로다. 

빌헬름에게 죽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은 높이 사지만, 칼날 용신의 약점을 설마 ‘군단’ 그 자체로 여길 줄이야. 

멍청함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피가 이어진 동생이라지만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약했기에 죽었다. 그뿐인 것을.’ 

바사라는 티끌만 한 잡념을 털어버렸다. 

약자는 죽는다. 

당연한 일이다. 

설령 그것이 피를 나눈 혈육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이세라는 멍청했고, 잘못된 선택을 했기에 죽었을 따름이다. 

슬프거나 아쉬운 감정은 전혀 없었다. 

도리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을 줄 알았건만, 여전히 멍청하기 그지없어서. 

이래서야 언제가 되었든 결국 죽었을 터. 

‘······ 그나저나.’ 

바사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거리를 거닐었다. 

이세라는 실패했지만, 그녀는 소기의 목적을 이룬 탓이다. 

“봤어? 검은 알의 신이래!” 

“‘제주도 소실 사건’ 때 그거 말하는 거지?” 

“당시 그 일을 겪은 제주도 사람들은 ‘검은 알의 신’을 진짜 신처럼 따른다며?”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폭주한 용신을 한 번에 제압한 ‘검은 알의 신’에 대해서 말이다. 

‘검은 알의 신. 그게 빌헬름의 본체렷다.’ 

하지만 바사라는 그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용맥을 나서고, 다시 들어간 그것은 분명히 란돌프라고. 

빌헬름의 본체라고 확신했다. 

‘용신을 만들고 제어한다. 정말 생각도 못 한 발상이야.’ 

하물며 그가 이번에 이세라를 상대한 방식도 기상천외하다. 

용신을 만들어 무적의 이세라를 또 다른 무적으로 제압하다니! 

미리 이세라의 약점을 파악하고, 반대로 이세라가 칼날 용신의 약점을 찾아내도록 유도했다. 

발상의 전환. 

바사라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이다. 

아아. 

바사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빌헬름. 그대는 여전하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행동은 그대로다. 

항상 상상한 것 이상의 목표치를 달성하고 보여준다. 

여전히 사랑스럽다. 

정말이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다. 

바사라는 다시 한 번, 그가 자신을 죽일 날을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물론 다음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허나, 이세라의 심장에 깃든 독기는 아무리 그대라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칼날 용신의 광란 상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 데에는 이세라의 심장에 깃든 독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조차도 죽이는 독이며, 절대로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다. 

칼날 용신이 이세라의 심장을 취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마찬가지였다. 

영원토록 광란 상태가 이어지리라. 

‘포기하고 죽이는 수밖에 없겠지.’ 

이세라의 독기는 칼날 용신을 완전히 잠식하고, 주변을 파탄으로 몰고갈 것이다. 

용맥에 가둬둔들 결국 뛰쳐나올 테니. 

더 늦기 전에 죽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상대는 빌헬름이다. 

‘그대여.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나를 놀래킬 것이냐?’ 

과연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는지. 

그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비록 예전과 지금의 모습은 다르지만. 

물론 그 또한 ‘황금률’로 변신한 것. 

나머지 사항도 짐작은 갔다. 

란돌프는 필시 한국에 있는 남성이며, 용신 루카리아를 불러낸 박태우와도 꽤 밀접한 관계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특정 건물로 들어선 바사라가 데스크의 안내인을 보곤 씽긋 웃으며 답했다. 

“영웅연합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아······ 전사이신가요?” 

“예.”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안내자가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연합에 가입하려는 전사가 나타나다니. 

당황할 법도 하지만, 인력난에 시달리는 연합은 결국 받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많은 전사가 죽었으니까. 

‘이 세계에 조금 더 머물러야겠군.’ 

박태우의 옆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란돌프’와도 접하게 되리라. 

게다가 이 세계는, 그녀의 생각보다 재밌는 게 많았다. 

뚝! 뚝! 

전신에서 흘러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땀방울.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상태였다. 

《빈사상태입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체력의 손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용신의 심장을 분리하는 건 멀쩡한 상태에서도 힘든 일이다. 

그것을 나는 빈사상태를 유지하며 해내고 있었다. 

빈사상태가 풀리면 하나가 정신을 차린 뒤 ‘끔찍한 흉조의 눈’을 풀어버릴 것이 자명했으므로. 

‘마력회로를 뜯어낸다.’ 

심장을 직접 뜯는 게 아니다. 

심장에 새겨진 수많은 ‘회로’를 뜯어내는 것이었다. 

이전까진 보이지 않던 수많이 실선들이 지금은 뚜렷하게 보인다. 

그 마력의 실들을 하나하나 전부 풀어내야만 분리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마치 연주를 하듯이. 

《빈사상태입니다.》 

《감각이 30% 무뎌집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1 손실되었습니다.》 

후욱. 후욱. 

숨이 가빠져온다. 

하지만 숨소리를 의식할 틈도 없이 나는 집중하고 있었다. 

마력회로는 너무나도 예민하고 예리해서,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뭉친 실타래를 푸는 것과 비슷한 일.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잘못 풀면 다시 무작위하게 초기화된다. 

문제는 그렇게 작업해야할 실타래가 족히 수천 개는 된다는 점이다. 

《시야가 흐려집니다.》 

《감각이 50% 무뎌집니다.》 

《‘동상’에 걸립니다.》 

감각이 무뎌지고, 손과 발은 얼 듯이 차갑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식은 땀.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조금만 더······.’ 

그러나 포기하긴 이르다. 

실수를 바로잡을 유일한 기회. 

이 기회마저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시야가 흐려집니다.》 

《감각이 70% 무뎌집니다.》 

《주의!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긴 꿈을 꾼 기분이다. 

하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곳은······.’ 

용맥. 

자신의 보금자리.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을 모두 잃은 뒤, 하나는 광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죽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저주와도 같은 상태이건만. 

‘몸이 한결 가볍다.’ 

하물며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운 기분이다. 

꼬여있던 마력이 정리된 느낌.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건 곧 알 수 있었다. 

<상태창> 

이름 : 하나 

직업(Class) : 마혈족의 칼날여왕 

직업(Class) : 용신(추종자) 

<능력치> 

레벨 : 14 

힘 : 148 

체력 : 148 

민첩 : 148 

지능 : 148 

신력 : 148 

<부가 능력치> 

자연 재생력 : 2,710% 

전체 관통력 : 14.8% 

<특이사항> 

1 : 광란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2 : 마력회로가 안정화되어 모든 능력치가 8 상승했습니다. 

순간 눈앞에 떠오른 창. 

상태창을 확인한 하나는 높아진 능력치가 의아할 따름이었다. 

광란 상태를 대체 어떻게 해제시킨 거지? 

마력회로가 안정화됐다는 건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 너희는?” 

그러나 생각을 이어갈 겨를은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특이한 개체가 둘 있었으니. 

“여왕님을 뵙습니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두 아이는 무려 용의 비늘을 두른 마혈종이었다. 

마혈종이되 생긴 건 자신처럼 인간에 가깝다. 

한 명은 남성미 있는 외모와 함께, 붉은 피부를 지녔다. 

남은 한 명은 귀여운 소녀와 같았으며 새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그녀가 절로 긴장할 수준의 강자다. 

허나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의 ‘광란’ 상태가 해제된 이유. 

“너희는······ 나의 아이들이로구나.” 

바로 자신의 산란소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하지만 광란 상태에선 모든 게 멈춘다. 

··· 멈춰야 정상이다. 

당연히 새로운 아이도 태어나지 못할 터. 

“예. 여왕님과 주신 란돌프님의 은혜로 태어난 오버로드, 이세라라고 합니다.” 

“······ 루카리아라고 합니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보단 의문점을 해소하는 게 먼저였다. 

“어떻게 태어난 거지?” 

“저희의 주신께서 용신의 심장을 산란소에 먹이로 주셨습니다. 멈춰있던 산란소는 여왕님이 다신 슬퍼하지 않도록 초월체인 저희를 만들어냈습니다.” 

용신의 심장으로 말미암아 산란소는 아주 특별한 개체를 만들어냈다. 

오버로드. 

종을 초월한 초월체를. 

“왜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거냐?” 

“저는 이세라의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 저도요.” 

간단명료했다. 

하여 하나가 재차 물었다. 

“주신께서 허락하셨느냐?” 

“예.” 

“그럼 되었다.” 

주신 란돌프가 허락했다면 자신의 의견은 필요없다. 

어찌됐든 광란 상태가 풀린 건 이 초월체들 덕분이다. 

광란은 ‘거느리는 모든 마혈종’을 잃었을 때 발동한다. 

그러나 한 마리라도 남아있다면, 발동하지 않는다. 

용신의 두 심장은 멈춰있던 산란소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고, 오버로드를 창조하며 하나의 광란 상태를 풀어낸 것이다. 

‘의식이 다시 이어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주신, 란돌프와 의식이 재차 이어졌음을 느낀다. 

강력한 유대를 말이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않을만큼 끈끈해졌다. 

하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머지않은 장소에서 ‘그’를 발견했다. 

주신 란돌프. 

“아······.” 

란돌프를 본 하나가 짧게 탄식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체력이 다해 반쯤 기절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되지? 

잠시 안절부절하던 하나가 천천히 란돌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무릎을 꿇어,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란돌프의 뺨을 간질였다. 

본디 주신을 만지는 건 불경한 짓.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하나는 천천히 란돌프의 뺨을 쓰다듬으며 반쯤 몸을 포갰다. 

너무 추워보였으니까. 

이후 하나가 잠든 란돌프의 얼굴을 쳐다보곤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디 좋은 꿈 꾸시옵소서.” 

광란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 

나는 보상의 수령을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태고용신의 보물창고’로 이동합니다.》 

태고용신의 보물창고! 

황금빛 워프의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마자, 나는 내심 기함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허.’ 

눈앞에 반짝이는 수많은 보물들. 

문제는 보물들의 등급이다. 

‘······ 미친. 유일 등급 장비가 대체 몇 개인 거지?’ 

여긴 마치 별세계 같았다. 

유일 등급의 장비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태고용신. 

분명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용의 보물창고는 곧 그 용의 위세를 나타내는 것. 

이만한 위세를 떨친다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오직 한 개의 보상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태고용신의 영혼이 당신을 흥미로운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태고용신의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보물들. 

그것들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저건 뭐지?’ 

그중 하나. 

보물의 산더미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태고 등급?’ 

······ 처음 보는 등급의 장비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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