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기여도
처음으로, 사람들은 환호했다.
“저 괴물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고?”
“와, 대박!”
“칼날여제 이겨라!”
“제발!”
칼날의 날개를 지닌 여제(女帝).
사람들은 앞다투어 여제의 승리를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그녀가 아니라면 더는 희망 따윈 없었으니까.
루카리아마저 먹어치운 이세라는 재해 그 자체의 괴물이었다.
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천재지변 말이다.
그런데 칼날여제가 변신하자 이세라는 아무것도 못 하고서 당하기만 했다.
공격은커녕 방어조차 할 수 없다.
이세라는 용신 하나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다만, 이세라의 생존 능력 역시도 발군이었다.
“저 정도면 ‘초재생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
“음, 모든 마력을 재생에 돌리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먼저 지치냐의 싸움인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몇몇 은둔자들이 둘의 싸움을 짧게 평했다.
칼날여제가 핏빛 손톱을 휘둘러 전신을 찢어발기면 이세라는 모든 마력을 총동원해 재생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태.
무한하게 재생하는 것 외엔 이세라도 방도가 없음을 느끼고 있는 건지.
아예 방어조차 포기한 채 육체를 재구성하는 데에만 총력을 쏟고 있었다.
그야말로 누가 먼저 지쳐 쓰러지냐의 대결!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뭐야 저게······.”
“끔찍해!”
“으으으으!”
“이제 그만······!”
몇 시간의 수준이 아니다.
하루가 넘어 며칠이 더 지나도록 잔혹한 장면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살점이 찢기고, 장기가 튀어나오고, 뇌수가 흩뿌려진다.
얼굴이 토막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짓이겨져도 이세라는 끝내 재생했다.
“······ 방송 꺼라.”
“중계 포기다!”
그 잔혹함의 정도가 선을 넘자 몇몇 방송사는 중계를 포기하는 사태에 다다랐다.
계속해서 저런 장면을 보고 있다간 멀쩡한 사람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장장 일주일.
무려 7일간이나 공방을 나눈 끝에, 결판이 났다.
“어떻게 된 거야?”
“우, 우리가 이긴 거야?”
“진짜지? 꿈 아니지?”
“만세!!”
“다들 고생 많았다!”
“으아아아!”
더는 이세라가 재생하지 않았다.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떠오른 ‘승리’의 문장들.
확정된 결과에 모두가 만세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전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우리 편 아니었어?”
······ 칼날여제가 전장에 남아있는 전사들을,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박태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세라의 죽음을,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두 눈에 새겨넣고자.
‘··· 더 강해질 거다. 아무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도록.’
이번 전쟁을 통해 힘의 중요함을 여실히 느꼈다.
약자는 도태되고 버려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아버렸다.
강해져야만 한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이런 굴욕을 다시 겪어도 되지 않을 만큼!
그때였다.
《업적 ‘용신을 깨운 자’를 획득합니다.》
《명예 500점이 상승합니다.》
《업적 ‘불굴의 영웅’을 획득합니다.》
《명예 300점이 상승합니다.》
《기여도에 따른 정산을 시작합니다.》
《기여도 1.634%를 달성했습니다!》
《전체 기여도 순위 2위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명예의 전당에 ‘용신을 깨운 불굴의 영웅, 박태우’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두근! 두근!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여도 2위.
이세라를 죽이는데 자신이 두 번째로 크게 관여했다는 뜻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확인했을 터.
용신 루카리아를 깨운 불굴의 영웅이 박태우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칭호는 알아서 정해지는 모양이군.’
이름을 올리자 시스템이 자동으로 칭호를 생성했다.
하지만, 박태우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1위는 누구지?’
플레이어 중에선 단연 가장 많은 활약을 했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2위다.
박태우는 이어서 떠오른 전당의 순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1위 ‘아직 공개 여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2위 ‘용신을 깨운 불굴의 영웅 박태우’》
《3위 ‘도망간 지도자 다크스타’》
《4위 ‘미공개’》
《5위 ‘마족을 학살한 바르무슈’》
······.
《기여도에 따라 ‘이세라의 보물창고’로 향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세라의 보물창고’에서 두 개의 보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세라의 보물창고라.
느낌이 좋다.
고르기에 따라 최소 신화 등급의 보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간의 노력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
‘이제 시작이다.’
허드슨이 약속을 지키면 유적도시 룬델라도 손에 들어온다.
한국의 거점, 한국의 스타팅 포인트가 생기는 셈이다.
거점을 갖게 된 국가의 저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도시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
콰득!
“아아악!”
“살려줘!”
순간 들려온 비명소리.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린 박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 태어난 용신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젠장할!’
철썩같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싸운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걸 지켜볼 순 없는 노릇.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나 박태우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스릉.
박태우가 달려나가며 검을 뽑아들었다.
지이이잉!
하지만 검을 휘두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거, 검은 알의 수호자님?!”
검은 알의 수호자, 헬이 워프를 열어 박태우를 강제적으로 이동시켜버린 탓이다.
-캬캬캬?
정작 워프를 연 헬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전장에 남아있던 이들을 간발의 차로 옮기긴 했으나, 란돌프와 의식이 이어진 칼날여왕 하나가 사람들마저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공격할 대상이 사라지자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
감정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눈빛으로.
이세라를 죽인 하나의 모습은 이전과 또 달라져 있었다.
죽이고, 포식하며, 지녔던 격을 한껏 초월해버렸다.
뼈의 갑옷은 이제 전신의 핏빛 갑주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쥔 상태였다.
한 자루는 용신 루카리아의 피와 살점, 심장으로 탄생한 순백의 검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자루는.
화르르르륵!
지옥의 불을 영원히 뿜어내는 이세라의 존재로 만들어진 지옥검이 되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수밖에 없는 미친 수준의 격.
【죽을 때까지 죽여라.】
【너의 아이들을 죽인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하지만 ‘광분’의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한 번 발동한 광분은 하나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이윽고, 시선을 옮긴 하나가 루카리아의 검을 헬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꽈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을 뚫어버릴 수준의 전격이 검을 타고 흘러나와 헬을 공격했다.
-캬캬캬캬?
빠르게 워프를 타고 피해간 헬은 식겁하고 말았다.
저건 닿는 모든 것을, 영혼까지 태워버리는 궁극의 공격이다.
맞으면 헬도 죽는다.
헬만이 아닌 모든 게 소멸해버릴 터였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캬······!
이번에는 이세라의 존재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지옥검이었다.
거대한 지옥불의 기둥이 하늘을 수놓았다.
쿵! 쿵! 쿠르르르르릉!
그 업화의 불은 열기만으로 지상을 녹였다.
순식간에 하나의 주변반경 수km의 지상이 녹고, 타오르며, 지옥을 만들었다.
하나는 집요하게 헬을 노리고 있었다.
-캬캬캬!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른 헬이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헬 역시도 저 전격과 화염에 타오르고 말 것이다.
결국, 헬도 전장을 벗어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
지옥.
저 모습을 달리 설명할 단어가 또 있을까.
하지만 미친 듯이 날뛰던 칼날의 용신, 하나가 갑자기 멈춰섰다.
“용신이··· 칼날여제가 멈춰섰습니다!!”
“··· 아무래도 반경 50km 내로 다가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움직이는 모든 걸 공격하는 듯합니다.”
“급히 대피명령을 내려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습니다만······.”
전세계가 비상상황이었다.
이세라를 죽이자, 새로 나타난 용신이 이번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관측은 반경 50km 내로 다가가지만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
수많은 슈퍼컴퓨터로 도출한 결과였다.
“그럼 반경 안으로 다가가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
“장벽을 쳐야겠군.”
“허어. 완전한 아군은 아니었단 말인가?”
전세계의 수뇌들은 탄식을 흘렸다.
이제 겨우 승리를 자축하나 싶었건만.
이세라보다 더 강력한 용신이 적으로 돌아서면 인류는 끝장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반경 50km 내에서만 움직인다면 위험성은 생각보다 적었다.
길게 장벽을 쳐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이내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 갑자기 칼날여제가 재차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반경을 벗어나서.
“반경 내로만 움직이는 것 아니었나?”
당연한 의문이다.
이에 다시 계산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 조금씩 인식하는 범위가 늘고있는 것 같습니다!”
“······ 뭐?”
“부, 분명히 어제까진······ 갑자기 범위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 이 속도면 3일 안에 미국본토에 닿을 겁니다!”
······ 초유의 비상사태였다.
*
《업적 ‘용신을 탄생시킨 자’를 획득합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배(4,000)로 획득합니다.》
《업적 ‘용신 살해자’를 획득합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배(4,000)로 획득합니다.》
《명예가 1만점을 돌파했습니다.》
《특수 능력치 ‘카리스마’가 추가됩니다.》
《카리스마는 곧 위엄과 직결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상대할 때 절로 움츠러들며, 알아서 속내를 털어놓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 하나, 말씨 한톨이 규칙이고 법이 됩니다. 도시의 주민은 굳이 당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당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세금을 과도하게 높여도 말이죠.》
······.
《10개의 도시를 지배하여 ‘왕국’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명예의 성소’에서 ‘명예의 자격’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명예의 자격’을 지닌 자는 어느 나라에서건 상급귀족 이상의 위상을 가집니다.》
《지배한 도시로 명예를 좇는 기사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늘어납니다.》
《최대 10명의 ‘정규기사’를 임명할 수 있습니다.》
《정규기사로 임명할 경우 ‘정규기사의 신비’와 함께 추가적인 능력치가 주어집니다.》
《추가능력치는 카리스마 수치에 영향을 받습니다.》
······.
《도시에 ‘명예로운 자들의 쉼터’, ‘생명의 샘’, ‘수도자의 회관’ 등 10여개의 특수건물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짓고 지정할 경우 특수한 효과가 자동으로 추가됩니다.》
《특수한 건물은 지배자의 명예를 필요로하며, 특수한 건물이 많이 지어질수록 강력한 모험가가 도시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더욱 많은 퀘스트를 발생시켜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
《기여도 91.356%를 달성했습니다!》
《전체 기여도 순위 1위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추가할 칭호를 검색하는 중입니다······.》
《해당하는 칭호가 검색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칭호를 파악합니다.》
······.
《가장 높은 등급의 보상을 획득합니다.》
《기여도가 현격하게 높습니다.》
《지정된 최고등급 보상으로는 이 기여도를 모두 해소할 수 없습니다.》
《기여도의 해소를 위해 보상이 초월합니다.》
《보상이 초월합니다.》
《보상이 초월합니다.》
《보상이 초월합니다.》
《보상이 초월합니다.》
《‘태고용신의 보물창고’로 향할 권리를 획득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