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91화 (191/317)

# 진짜 무적(無敵)

이세라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짙어졌다.

정말 보물이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니까.

‘막 태어난 용신 주제에 용기는 가상하군.’

그 용기 하나는 칭찬할 만했다.

용과 마찬가지로 용신 또한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격을 쌓아가는 존재.

심장의 마력과 염원구슬의 능력은 ‘나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당연히 이제 막 태어난 용신이 영험한 능력을 지녔을 리 만무.

꼭꼭 숨어있어도 부족한 판국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용맥을 직접 파괴할 필요도 없겠어.’

완성된 용맥을 다시 드러나게 하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신을 죽이면 용맥은 자연스럽게 파괴되기 마련.

“그나저나······.”

좌아아악!

심장을 관통한 뼈의 칼날을 뽑아낸 뒤 이세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면역이 아닌 타격을 주었다는 건 이 공격이 자신의 약점을 꿰뚫었다는 뜻이다.

뼈의 칼날이 저 용신의 육체이기 때문일까?

단순히 그런 이유라 하기는 너무 깊다.

루카리아가 두 눈을 매개체로 사용해도 치명상은 주지 못했다.

그가 약점으로 설정한 ‘자폭’은 말 그대로 ‘생명’을 담보로 공격해야 통하는 것. 신체 일부뿐이라면 절대로 이만한 타격을 줄 수 없는 것이다.

“특이한 능력을 지녔나 보군.”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더 당해주지만 않으면 그만.

용신의 약점을 찾아내는 건 번거롭겠으나, 그래 봤자 시간문제다.

이세라가 사냥한 용신은 벌써 두 마리다.

당연히 용신의 사냥을 위한 모든 준비는 갖춰져 있었다.

‘우선 모든 자연 속성의 공격으로 시작해볼까.’

흔히 말하는 4원소.

물과 불, 땅과 바람.

일반적인 용신들의 경우 보통 자연 속성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용신으로 수호하고 있는 땅과 세계가 크면 클수록 더 번거로운 약점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이미 이 ‘지구’는 7용신 중 하나인 루카리아가 꽉 잡은 곳이었다.

하물며 작디작은 땅덩어리에서 태어난 저 용신의 약점이야 안 봐도 뻔했다.

기껏해야 4원소.

혹은 그 근처의 무언가이리라.

물론, 4원소가 아니어도 괜찮다.

“군단이여.”

아직 남아있는 수만의 마족들.

그들을 향해 이세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원, 공격하라.”

······ 각기 다른 속성을 지닌 마족들의 공격이라면 머지않아 약점도 들통날 터이니.

*

흐으읍!

박태우가 땅을 짚었다.

더 이상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모아둔 ‘황금률의 조각’도 거의 다 사용한 상태.

‘한 마리라도 더······!’

하지만 쓰러질 수가 없다.

믿었던 용신 루카리아마저 패배했으므로.

여기서 자신이 쓰러지면, 저 마족들은 한국으로 향할 것이다.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마침내 멸망시키리라.

느닷없이 나타난 새로운 ‘용신’으로 인해 루카리아의 죽음이 지연되고 있지만, 이세라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무적의 괴물이다.

그러니 그 전에, 저 새로운 용신에게 마족들의 시선이 쏠려 있을 때, 한 마리라도 더 줄여야만 한다.

“지금이다! 모두 후퇴하라!”

··· 뭐?

지금 저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박태우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다크스타를 노려봤다.

마족들의 공격이 새로운 용신에게 쏠리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크스타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크스타 님! 저 용신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이미 패색이 짙다! 여기서 전멸할 바엔 새롭게 정비할 시간을 갖는 게 나아!”

다크스타 역시도 새로운 용신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현재의 이세라는 대원정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

빌헬름이 다시 살아난대도, 지금의 이세라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실제 피해는 얼마 안 된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검은 알의 수호자께서 치명상을 당하거나 변신이 풀린 플레이어 대부분을 워프로······.”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이대로면 허무하게 죽는 사람만 늘어날 거다!”

다크스타의 변명에 박태우는 어이가 없었다.

현재 전장에 남은 플레이어는 천 명 안팎.

수만의 플레이어가 이미 전장을 이탈했다.

모두 ‘검은 알의 수호자’ 덕분이었다.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을 워프로 강제 송환시켜, 실제 피해는 훨씬 적은 수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크스타는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세라도 멀쩡하진 않을 겁니다! 지금이 놈을 죽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4일간 루카리아와 싸우며 이세라도 힘을 많이 소진했을 터.

새로운 용신과 함께 힘을 합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원! 후퇴하라!”

······ 그러거나 말거나 다스크타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줄행랑을 쳤다.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진 다크스타를 보며 박태우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런크스타, 저 개새끼.’

과거 ‘런크스타’라고 불리던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린 모양.

다크스타를 따라 절반에 이르는 플레이어가 전장을 이탈했다.

하지만, 박태우처럼 아직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우.

후우우우.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다.

타악!

이어 고개를 끄덕인 전사들이 재차 마족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

침략전쟁은 세계의 관심사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가 위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전쟁을 중계하고 있었다.

이 전쟁의 양상에 따라 인류의 존속이 달려있는 탓이다.

“저렇게 모여있을 때 핵폭탄이라도 투하하면 되는 거 아니야?”

“멍청아. 괴물들한테 현대의 무기는 아예 통하지도 않는다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긴장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계의 괴물들에겐 현대의 무기도, 핵 또한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미 수많은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디맨션 워리어, 이계의 전사들뿐.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안색은 굳어만 갔다.

“······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저 흰색 용 우리편 아니었어?”

“아아······.”

루카리아가 쓰러지자 탄식을 흘렸다.

이미 전사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

그때였다.

“다크스타가 도망친다!”

“왜 도망치는 거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거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크스타와 절반에 다다르는 전사가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패배의 확정이라는 뜻.

연합을 주도하던 사령관이 후퇴를 지시했으니, 저 괴물들이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김하나 기자님. 저 괴물들이 한국으로 건너오면······ 어떻게 될까요?”

CK 방송국.

중계되는 화면을 보며 기자들도 한데 모여있었다.

플레이어와 관련된 인터뷰나 이야기를 전담하는 김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나 김하나는 입을 꾹 닫았다.

어떻게 될 거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파멸. 한국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박태우 님을 믿어보죠.”

“박태우 님이 죽으면 더 답도 없는 상황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김하나가 강하게 쏘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사 박태우는 다크스타의 명령에 불복하고 계속해서 싸우는 중이었다.

감히 전사의 귀감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마저 죽는다면 한국을 지킬 사람이 없었다.

아니, 한 명 있기는 있었다.

‘그라시아.’

아직 한국에 그가 남아있지 않던가.

어째서 전장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접선하여 도움을 청한다면······.

마음을 먹은 김하나가 등을 돌려 방송국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아아아!”

“안 돼!”

사람들의 깊은 탄식.

쾅! 쾅! 콰르르릉!

다시 중계기를 바라보자, 수많은 마족들이 새로이 나타난 용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점사격.

검은 연기가 사방을 덮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걸까?

용신 루카리아도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내진 않았다.

새롭게 나타난 마지막 희망.

쓸데없는 희망이었던 건지.

“뭐, 뭐야?”

“멀쩡한데?”

“공격이 안 통하나 봐!”

이윽고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나타난 칼날여왕의 모습에,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작은 상처 하나 없었으므로.

‘이 틈에 그라시아를 찾아야 돼!’

김하나가 재빨리 방송국을 벗어났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라시아를 찾아야만 했으니.

마침 그가 어디 있는지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용맥이 생성된 곳.’

그곳에 그라시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은둔자의 일기’에서 관련된 내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

“흠······?”

이세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만의 대군이 한참을 때렸으나, 저 칼날의 용신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일반적인 속성이 약점은 아닌가 보군.’

자연속성만이 아닌 족히 수십여 가지의 속성을 전부 때려박았다.

그런데도 멀쩡하다는 건 ‘속성’ 자체가 조건은 아니라는 뜻.

‘돌연변이는 돌연변이라는 건가?’

과연.

자신 있게 나타난 이유가 있었던 듯싶다.

까다로운 조건을 지녔다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

“염원구슬이여.”

염원구슬을 사용하여 조건을 알아내면 그만이니까.

하물며 7용신 중 하나인 미르온의 염원구슬.

이제 막 태어난 용신 따위가, 미르온보다 더 격을 쌓았겠는가.

후아아아앙!

순간 눈앞으로 떠오른 거대한 염원구슬.

강렬한 빛과 함께 빛나는 염원구슬을 향해 이세라가 말했다.

“저 여자의 ‘약점’을 알려다오.”

후우우웅!

곧이어 빛이 사라졌다.

염원구슬이 이세라의 염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세라는 떠오른 글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 관찰 불가?

미르온의 염원구슬로도 관찰이 불가능하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저 반지. 저게 염원구슬의 관찰마저도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원인은 알아냈다.

칼날의 용신이 검지에 끼고 있는 반지.

저 반지가, 염원구슬의 ‘관찰’을 불가하게 만들었다는 걸.

‘대체 무슨 반지이기에?’

조건부 관찰 불가의 옵션이 아니다.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관찰’을 막는 반지였다.

그런 반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건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조건이라는 뜻이지.’

절대로 들켜선 안 되는 조건.

들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조건임이 틀림없었다.

용신의 조건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조건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신 역시도 ‘모든 조건’으로 설정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관통률 100%’로 설정하거나 ‘자신만 공격할 수 있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았을 것이다.

용신의 타격 조건은 현실성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저 칼날의 용신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 과연 언제까지 숨길 수 있나 보마.”

*

하루가 지났다.

이세라는 여전히 칼날 용신의 약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칼날 용신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게 무적의 조건이구나!’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만들면 그만이다.

“군단이여! 저년의 용맥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용맥이 드러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용맥이 파괴되면 용신 역시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쉬익! 쉬이이익!

그러나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허공을 걸으며, 칼날의 용신이 날개를 펼쳤다.

이윽고 수백의 칼날이 허공을 배회하며 마족들을 죽여나갔다.

“······.”

칼날 용신은 움직이지 못하는 척 이세라와 마족들의 힘을 빼놓은 것이다.

절대로 조건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자신이라도 하는 듯이.

그렇다면 생각보다 영악한 년이었다.

······ 다시, 삼 일이 지났다.

여전히 이세라는 칼날 용신의 조건을 알아내지 못했다.

마력도 조금씩 고갈 나고 있는 상태.

‘심장은 최대한 신선한 상태로 가져가려 했거늘.’

이세라가 봉인된 루카리아를 바라봤다.

루카리아를 먹는 건 심장을 마왕에게 건넨 이후였다.

지금 루카리아를 먹는다면 힘을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심장의 선도가 떨어질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조건인 거냐?’

슬슬 짜증이 났다.

도저히 조건을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조건을 퍼부었는데도 멀쩡하다.

그래도 아직이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 그리고 육 일이 지났을 때, 이세라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실험해볼 것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칼날의 용신은 남은 마족들의 절반을 혼자서 도륙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저 칼날이 자신에게도 닿으리라.

벌써 10일이 넘도록 이어진 전투.

이세라와 마족들 모두 진이 빠졌다.

이세라는 결국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네년······ 설마 ‘조건’이 없는 거냐?”

루카리아보단 약하지만 저 칼날의 용신은 진짜 무적이었다.

약점을 찾아낼 수 없다면 무적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약점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재정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모두 ‘방주’로 후퇴······ 하도록.”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저 칼날의 용신은 혼자다.

그들이 도망치는 걸 혼자서 전부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쩌어어어어억!

그때였다.

갑자기 칼날 용신의 발 아래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이어 그림자의 내부에서 하나, 둘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마혈종?”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건 마혈종이다.

그것도 족히 십만이 넘을 것 같은 마혈종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날개를 펄럭대며 모든 마족들을 에워쌌다.

‘이제 와서 병사를 소환했다? 그것도 마혈종을?’

저 빌어먹을 년.

설마 힘이 빠져서 도망치길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네년······ 도대체 정체가 뭐냐?”

하여,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대는 돌연변이 용신.

그것도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괴종이었으니까.

진짜 무적이었으니까.

이윽고 칼날의 용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짐은 군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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