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신 VS 용신
‘또! 또 빼앗겼다!’
빌어먹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크스타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 정말로 거지 같은 일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검은 알의 수호자와 유니온.
주인공이 돼야 했을 자신의 자리를, 모든 이의 이목을 그 둘이 가져갔으니까.
‘왜 저 둘이 같이 나타난 거지?’
하지만 그보다도 더 강렬한 의문이 들었다.
영웅회가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저 둘은 절대로 같이 있을 수 없는 존재.
특히 ‘검은 알의 수호자’는 제주도의 사람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심연에서 바알은 심연 그 자체인 자로 완성되었고, 느닷없이 나타난 흉조를 먹어치운 뒤 갑자기 죽어버렸다. 이후 바알의 뱃속에서 검은 알이 나타났으며 그 검은 알의 수호자가 사람들을 모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보냈다······.’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으니 틀릴 리 없는 내용.
하여 생존한 사람들은 ‘검은 알’을 신으로 여긴다지.
검은 알을 지키는 ‘수호자’를 ‘신의 사자’, 혹은 ‘신의 대리자’로 생각하며 그 모습을 그려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고.
하지만 다크스타와 영웅회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봐도 제국 사신교의 사신 아니냐.’
흰색의 날개는 조금 특이하지만 생긴 건 영락없는 사신이다.
워프를 강제로 닫아낸 능력으로 보건대, 심연에서 워프를 열어 사람들을 강제로 돌려보낸 것도 저 사신의 능력이 듯싶었다.
‘··· 광범위하게 워프를 조종하는 능력. 사신교의 여타 다른 사신들과는 궤가 다른 능력이야.’
그들이 아는 사신은 플레이어를 좇고 죽이는 악이다.
사신교가 ‘죄인’으로 점찍은 자의 영혼을 가져가는 일종의 추적자였다.
그런데 저건 ‘다름’의 수준을 넘어섰다.
여타 다른 사신과 비교해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저 사신은 사신교의 사신이 아닌 걸까?
“마족은 한동안 워프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세라는 그 성격상 마족들을 이끌고 직접 이곳으로 날아올 것이다.”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 유니온의 목소리가 모든 플레이어의 고막을 때렸다.
“이세라?”
“이세라라고 했어?”
“진짜 이세라라고···!”
적의 수장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추측은 했지만, 그 추측이 확실해진 순간.
다크스타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황금률의 마법사 유니온!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너는 마족들과 함께 지구를 침략한 적일 텐데?”
“나 역시 이세라에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듯이 나는 그대들과 같은 인간이며, 마족을 혐오하는 자다. 함께 싸우자.”
유니온이 능청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의 플레이어 몇몇이 말문을 열었다.
“수호자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래,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검은 알의 수호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무한한 신뢰!
워낙에 세계적으로 쟁점이 되었던 사건이라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도 ‘검은 알의 수호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다크스타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니온, 그대가 ‘검은 알’의 신인가?”
사흉 바알을 죽인 자.
만약 유니온이 ‘검은 알’에서 나온 자라면 그 무력은 상상을 초월할 터.
그라시아와 수많은 군대가 동원됐으나 실패한 일을 그는 혼자 해낸 것이었으니.
그런 자가 동료가 되어 싸운다면······ 인정하긴 싫지만 플레이어들의 사기도 한층 상승할 것이었다.
잠시 후 유니온이 입을 열었다.
“······ 그래, 내가 ‘검은 알’의 신이다.”
*
검은 알의 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사흉 바알을 죽인 자라면, 이세라 역시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오오오!’
‘엄청나군!’
처음 유니온이 인벤토리를 열어 마족들을 약화하자 플레이어들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가시거리로 들어온 것만 같아서.
휘황찬란한 아이템들을 수도 없이 꺼내며 여유를 보였으니까.
“이길 수 있다!”
“검은 알의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아아아아아아!!!”
지켜야만 하는 싸움.
황금률을 두른 플레이어가 아니면 타격조차 줄 수 없는 이계의 괴물들!
여기서의 패배는 곧 종말과도 같았다.
다시 이만한 숫자의 플레이어가 모이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므로.
【‘약점 포착’에 실패했습니다!】
‘······ 뭐?’
······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유니온은 적잖이 당황하는 중이었다.
구도자 세트의 효과가 제대로 발동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세라는 분명히 마족이다.
마왕의 산하로 들어가며 마족이 된 돌연변이 용신이었다.
한데 실패라니!
“타올라라.”
화아아아아악!
이세라의 한 마디가 끝나자, 유니온의 전신에서 지옥불이 타올랐다.
“커헉?!”
유니온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세라는 지옥의 불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그래서 그 대비책으로 ‘물의 은혜’를 꺼내었건만 발동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놈. 고작 ‘물의 은혜’ 따위로 나의 불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그럴 리가······!”
없다. 없어야 정상이다.
물의 은혜는 신화등급의 도구다.
모든 불을 막아주는 은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유니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설마 모든 속성이 약점에 기반을 둔다는 건가?’
이건 단순히 불의 속성이 아니다.
이세라가 설정해둔 ‘약점’을 찾아야만, 이 공격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직접 상대해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만무했다.
【‘구도자의 옷’이 내구도를 다했습니다.】
【‘구도자의 바지’가 내구도를 다했습니다.】
【‘구도자의 두건’이 내구도를 다했습니다.】
이세라의 불을 막아주던 구도자 세트도 타서 없어져 간다.
유니온의 마음이 급해졌다.
“인벤토리, 불굴의 갑옷!”
“인벤토리, 내성 증가의 물약!”
“인벤토리, 마비의 귀걸이!”
버티는 게 먼저다.
체력을 올리고 모든 내성을 증가시킨 뒤 고통을 없앤다.
이후 최대한 버티며 이세라의 약점을 찾아내야만 했다.
‘기꺼해야 30분이 한계다. 그 안에 찾아낼 수 있을까?’
경험치 물약만 있었어도 6시간은 너끈히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약해진 지금은 사력을 다해도 30분이 한계다.
이세라의 불꽃은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건 이세라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자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회복의 물약이나 힐을 사용해서 조금 더 버틸 수는 있겠으나 그걸 이세라가 가만히 지켜볼 리도 없었다.
“불의 정령들이여.”
화륵! 화르륵!
이세라의 주변으로 수십에 달하는 불의 정령들이 생겨났다.
화염으로 둘러싸인 불의 거인들.
모두 불 계통 최상위 계열의 정령이다.
이세라는 불의 정령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
하지만 그의 무서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령왕 아그니스여.”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
먼저 소환된 정령들이 서로 소용돌이치듯 한 지점으로 빨려들어가더니, 그 안에서 불의 왕관을 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유니온의 눈매가 살짝 뒤틀렸다.
‘정령왕 아그니스! 하지만 소환하지 못했을 텐데?’
유니온이 알기로, 이세라도 최상위계 정령 수십을 소환하는 게 한계였다.
정령왕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다.
하물며 콧대 높은 그들은 절대로 마족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
그럴진대 지금 눈앞에 정령왕이 있다.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
정령계의 신처럼 군림하는 근원 속성의 지배자 중 하나!
-······.
그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유니온을 바라봤다.
그 순간, 유니온의 전신에 소름이 좌악 돋았다.
‘도망쳐야한다······!’
이세라 하나도 버겁건만 정령왕 아그니스라니!
약점을 찾을 시간 따윈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세라는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놈의 권능이, 축복이.
쩌어어어어억!
정령왕 아그니스가 오른쪽 검지를 들어 유니온을 가리키자, 찰나와 같은 시간 태양과 같은 거대한 화염의 창이 생성되었다.
“인벤토리, 절대자의 방패.”
“인벤토리, 끝없는 바다.”
“인벤토리, 서리한 지팡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유니온이 모든 수를 동원했다.
그가 꺼낼 수 있는 최고 등급의 보물들.
특히 절대자의 방패는 3성 초월자도 뚫어내지 못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그 방패에 ‘끝없는 바다’의 축복을 깃들이면 불의 정령왕일지라도 한 번에 무력화 시키진······.
꽈아아아아앙!
쩌적! 쩌저적!
······ 미친.
정령왕 아그니스가 쏘아낸 화염의 창은 순식간에 ‘절대자의 방패’를 찌그러트렸다.
금이 가고, 깨지고, 이내 뚫린다.
‘이길 수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팡이를 휘두를 의지조차 상실했다.
그제야 유니온은 깨달았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있었노라고.
정통에게 눈이 멀어 만용을 부린 것이다.
이세라가 정령왕마저 부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그가 알던 이세라는 ‘한없이 까다로운’뿐, 공격 자체는 태우는 것 외엔 별게 없었으므로.
그런데 정령왕을 소환하며 약한 공격력을 보완했다.
‘무적······!’
공격과 방어가 모두 극에 달했으니 저 괴물을 어찌 잡는단 말인가.
막을 수 없다.
죽는다.
유니온이 눈을 질끈 감았다.
“불이여, 사라지거라.”
그때였다.
쿠릉! 쿠르르릉!
순간 하늘이 검게 물들며, 수많은 벼락과 함께 나타난 이가 있었다.
그는 등장한 즉시 정령왕 아그니스의 창을 증발시켰다.
-······?
이에 정령왕 아그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말 한 마디로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그만한 존재는 이곳에 없었다.
없는데 나타났다.
이윽고 ‘그’를 본 이세라는 작게 미소지었다.
“용신 루카리아.”
지구의 용신, 루카리아!
설마 그가 제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이세라가 시선을 던지자, 거대하기 짝이 없는 순백의 용 루카리아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 이세라.”
“이 세계의 용신이 너일 줄은 몰랐군.”
“하아아. 이전에는 눈감아줬다만, 더 이상 눈감아줄 수가 없구나.”
꽈릉! 꽈르르릉!
곧이어 하늘 전역으로 수많은 번개가 내리쳤다.
“꺼어억!”
“끄아아악!”
“카아아아악!”
번개는 한꺼번에 수천에 이르는 마족들을 증발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세라는 눈을 빛낼 뿐이었다.
“미르온도 내게 똑같은 말을 했지. 하지만 놈은 죽고 놈의 심장은 마왕님에게 바쳐졌다. 루카리아, 너는 어찌될 것 같으냐?”
“··· 어리석은 놈.”
루카리아가 쯧쯧 혀를 찼다.
이세라. 반쪽의 용신이자, 천상의 배신자.
용신들은 놈의 만용을 한 번 눈감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구를 침략한 이상 더 이상의 온정은 없다.
“염원구슬이여. 저놈의 ‘약점’을 내게 알려다오.”
동시에 루카리아의 앞으로 커다란 염원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용신의 염원구슬.
이 앞에서 이세라의 ‘약점’은 너무나도 쉽게 밝혀질 것이기에.
게다가 루카리아의 염원구슬은 용신이 지닌 것들 중에서도 최고의 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알아내지 못할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후 염원구슬이 빛을 잃자, 루카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곳에 나타나선 아니되었다, 이세라.”
찰나, 루카리아의 두 눈이 번쩍이며 빛났다.
꽈아아아아앙!
그 순간 두 눈에서 쏘아진 번개의 줄기가 이세라를 타격했다.
루카리아가 자신의 두 눈을 매개체로 삼아서 공격한 것이다.
이세라의 약점은 바로 자폭.
이는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여 공격하는 것!
상대가 다른 용신도 아니고 자신인 이상, 이세라는 절대로 그를 이길 수 없다.
*
나는 천천히 천상의 깨진 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