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온 VS 이세라
‘무언가가 잘못됐다.’
인벤토리를 확인한 유니온은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잘못됐다. 그냥 잘못된 것도 아니고 아주 많이 잘못됐다.
‘그 많던 경험치 물약이 다 사라지다니!’
현기증이 났다.
그게 어떤 물약이던가.
오랜 세월 쌓아둔 자신의 모든 힘을 담아둔 물약이었다.
차원을 도약할 때의 여파를 최소화하고자 행했던 일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대체 누가?’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디 인벤토리는 자신만 열어볼 수 있는 것.
다른 누가 자신의 인벤토리에 손을 댄 건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건 황금률의 마법사인 오직 자신에게만 허락된 일이니까.
‘경험치 물약만 사라졌다. 의도적으로 빼간 거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다른 것들은 놔두고 물약만 빼갔다는 것이었다.
유니온이 턱을 쓸었다.
혹, 자신의 영혼을 저당잡은 이세라가 범인은 아닐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세라가 영혼을 통해 권능마저 훔쳤다면 굳이 그를 지구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14일이라는 시간을 줄 필요조차도 말이다.
‘나만의 공간을 엿보고, 훔쳐가려면 당연히 내 근처에서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내 근처를 수시로 들락거린 건······.’
없다.
유니온은 마족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
독단적으로 움직이며 이세라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었다.
아니, 아니다.
있기는 있었다.
딱 하나.
느닷없이 자신의 앞으로 워프를 열고 나타난 존재가.
‘정통.’
······ 주인을 잃은 정통이.
-캬캬캬캬!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작은 사신은 예와 마찬가지로 우렁차게 웃어대고 있었다.
하여, 유니온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인벤토리에서 경험치 물약을 빼내 간 게······ 너냐?”
-캬캬캬캬캬!
······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정통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유니온은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그걸 왜? 누가 시킨 거냐?”
-캬캬?
도리도리.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누가 시켜서 한 짓은 아니라는 뜻이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애당초 ‘정통’들은 하나같이 단순했으니, 거짓말을 할 정도의 머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인벤토리의 물건에 마음대로 손을 댈 줄이야.
‘정통은 공간을 다룬다. 이 정통은 다른 정통들보다 공간계통에 조예가 깊나 보군.’
확실히 다르다.
다른 정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벤토리는 단순한 ‘이면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선택된 자만 사용할 수 있는 철저한 분리공간.
그것을 허락 없이 꿰뚫고 들어와 물건에 손을 댔다는 건, 공간을 다루는 능력이 신에 가깝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한 짓이 아니라면······.
“하하. 화내지 않을 테니 돌려주지 않으련? 어차피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도 없는 거란다.”
조용히 타이를 수밖에.
입안이 쓰지만, 찾아낼 방법이 없다.
정통이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내어 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디에다가 숨겨놨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물론,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경험치를 남이 사용할 수는 없으니.
물약은 봉인되어있고, 그 봉인 역시 자신만 풀 수 있다.
“착하지? 돌려주기만 하면 뭐든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마.”
-캬캬캬!
“그래그래. 갖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게 있니?”
-캬캬캬캬!
“그건 뭐니? 아아, 영혼이니? 그래, 정통들은 영혼을 좋아하지.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영혼이······ 어어, 어쩐지 익숙하게 생긴 영혼이로구나. ······ 그거 설마 내 거니?”
-캬캬캬캬캬!
*
“하.”
한숨을 내쉬며 유니온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죄인’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확실한 건 그 뒤로, 자신의 수난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졸지에 약점이란 약점은 다 잡혀버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통은 자신의 경험치 물약을 전부 훔친 거로도 모자라 이세라에게 저당 잡혀있던 영혼까지 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정통을 따라 별의별 일을 다 했다.
차에 치이려는 노인을 구해주거나, 개에게 쫓기는 아이를 돕거나, 도망치는 도둑을 잡거나······ 주로 ‘사람을 돕는 일’을.
‘마족과 적대해라. 그런 것이냐?’
정통이 이곳에 워프를 연 이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지구의 인간들을 도와라. 마족과 싸워라.
하지만 유니온은 세계를 파괴하려고 온 자였다.
지구의 인간들을 몰살시키려고 차원을 넘어왔다.
이곳 죄인들의 세계는 파멸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경험치, 나의 영혼, 그리고······.’
유니온은 시선을 돌렸다.
약점을 잡힌 건 그 두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앞서 저당 잡힌 그 두 개보다도 더 치명적인 게 있었다.
‘아름답군.’
정통.
온전한 사신의 형태로 ‘변신’한 저 존재가, 유니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워프를 강제로 닫아버렸다.
저만한 위용을 보이는 정통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통의 왕.’
그렇기에 갖고 싶다.
미치도록.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저 존재를.
이세라나 마족이나 유니온에겐 원래부터 별반 상관없는 자들이다.
목적을 위해 무릎을 꿇었을 따름이지.
그러니까 저 정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마족들을 적대할지라도 괜찮다.
계약이 마무리만 되면 그 뒤에 지구를 쓸어버려도 상관없을 것이므로.
*
펄럭! 펄럭!
20만 마족들과 함께, 이세라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직접 움직이지 않았을 터이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포탈을 닫은 존재가 있다. 내가 모르는, 강력한 힘을 지닌 자가.’
먼저 포탈을 넘어갔던 마족들은 전멸했다.
단 한 마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포탈을 강제로 닫은 존재가 있다는 것.
이는 상정하지 못한 큰 변수였다.
‘앞서 포탈을 넘어갔던 3만의 마족이 죽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이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선 그토록 욕했던 망자왕 아흐람과 다를 게 없다.
제대로 침략을 시작도 하기 전에 사라진 그놈과.
그러니 직접 확인하고,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세라의 목적은 머지않아 이루어졌다.
“인벤토리, 참회의 비.”
쏴아아아아아!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노란색의 빗방울.
마족들을 약화시키는 신성력을 품은 비다.
용맥에 닿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겠다는 건지.
저 멀리서 신성 영역을 전개한 자를 바라보며 이세라가 입을 열었다.
“······ 유니온.”
유니온이 있었으니까.
예상대로였다.
제국의 인간은 믿을 게 못된다는 바사라의 말마따나, 배신한 것이다.
“우리가 한 계약을 잊었나보군.”
이세라가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빛을 뿌리는 영혼 하나가 떠올랐다.
유니온. 바로 그의 영혼이다.
“내가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영혼이 꺼지고 그 즉시 유니온은 죽는다.
그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영혼에서 불길이 솟구치더니, 눈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뭣······?’
처음 겪는 상황.
이세라가 유니온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멀쩡하게 허공에 떠있었다.
영혼이 증발했는데도 멀쩡하다.
즉.
‘설마 영혼이 가짜라고?’
더미.
영혼 자체가 가짜라면 가능한 일이다.
허나 그럴 리가 없다.
계약은 절대적인 것이다.
가짜 영혼 따위로 계약이 진행될 리 만무했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역시 너도 당했나보군.”
당해?
유니온이 묘한 내용을 입에 담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순간 유니온이 태도를 바꿨다.
“인벤토리, 구도자 세트.”
“인벤토리, 신성한 마음가짐.”
“인벤토리, 정화의 촛불.”
“인벤토리······.”
끊임없이 나타나는 장비와 도구들.
그뿐만이 아니다.
지이잉!
지이이이익!
그 밑으로 하나, 둘 인간들이 워프를 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유니온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죄인들에 대한 복수심은 진짜인 줄 알았거늘, 혼신의 연기라도 한 것인지.
유니온이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정도의 분노는 무척이나 오랜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노보다도, 유니온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났다.
‘다시 되살아났는데도 똑같군.’
누님 바사라의 말대로다.
아직 자신에겐 보는 눈이 부족한 듯싶었다.
성장했다 생각했건만, 이래서야 과거랑 똑같다.
‘허나, 괜찮다.’
전과 달리 실수를 수습할 시간은 있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유니온이라면 도리어 우습다.
‘광역으로 워프를 닫는 물건이라도 있었더냐?’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상천외한 장비나 도구를 꺼낸들 결과는 똑같은 것이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제 3의 강자가 아니라 유니온이라면야.
“······ 오냐, 죽고싶다하니 죽여주마.”
이세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
유니온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마족들이다. 승산은 있어.’
직접 옆에서 보았기에 확신했다.
자신의 힘이 봉인된 것 이상으로 마족들은 약해진 상태다.
장기 비행에 적응이 안 되는 듯 날아오는 것마저도 빌빌거리고 있지 않나.
‘이세라도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한 상태이지.’
게다가 이세라는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하느라 거의 모든 마력을 소진했다.
그 많은 마력이 벌써 다 회복됐을 리가 없다.
하물며 이곳은 판게니아가 아닌 이세계의 지구다.
당연히 마력의 회복도 훨씬 더딜 터.
기껏 해봤자 3할 정도 회복했을 것이다.
하물며 유니온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검은 알의 수호자’님을 따르라!”
“‘수호자’께서 우리를 수호하신다!”
뭐지는 모르겠지만 저 수많은 ‘죄인’들이 정통을 ‘검은 알의 수호자’라 칭하며 따르고 있었다.
게다가 상태도 제법 쓸만했다.
‘3성의 초월자 다수라. 할만하겠군.’
마족 잔당을 처리하는 데에는 저만하면 충분하다.
마족의 숫자가 훨씬 많다지만, 약해질대로 약해진 놈들이니.
여기에 자신이 부여한 수많은 ‘마를 멸하는 도구’들이 더해지면 이 싸움, 절대로 질 수 없다.
‘이세라. 약점만 찾으면 별볼일 없는 놈.’
도리어 다른 마계의 군주들보다도 가장 별보일 없는 게 이세라다.
다른 군주였다면 일찌감치 물러났겠지만 이세라여서 더 할만했다.
누나인 바사라처럼 무력이 미친 듯이 강한 것도 아니거니와, 특별한 권능을 지니지도 못했으니까.
그저 약점을 찾기 까다로울뿐이다.
그러니까 약점만 찾아내면 한없이 상대하기 쉬운 놈이라는 뜻이었다.
‘구도자 세트. 마의 성질을 가진 적의 약점을 보여주는 숨겨진 옵션이 있지.’
그리고 유니온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데 도가 튼 자였다.
상대에 따라서 맞춤형으로 대비하면 그만.
구도자 세트의 숨겨진 옵션을 발동하면 마속성을 가진 자의 약점을 꿰뚫어보는 게 가능하다.
비록 레벨이 낮아지며 약해졌다지만, 유니온은 충분히 3성 초월자 이상의 면모를 보일 자신이 있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까지 못 쓰게 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여기에 신성한 마음가짐, 정화의 촛불, 물의 은혜로 이세라의 스킬을 원천봉쇄한다.’
전부 이세라가 사용하는 스킬에 상극인 것들이다.
처음부터 유니온은 이세라에게 굴종하는 척을 하며, 그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있었다.
그 분석이 이제 빛을 발할 차례였다.
‘보인다.’
유니온이 미소지었다.
예상대로다.
곧이어 그의 두 눈에 이세라의 진정한 약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