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겨야만 하는 존재
이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바사라의 말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곳에서, 새로운 ‘용맥’이 생성되었음을 느낀 탓이다.
그렇다면 바사라가 틀렸단 말인가?
이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예 새로 나타났다.’
추가로 능력이 약화됐음을 느낀다.
용맥과 용신은 ‘균형을 어그러트리는 존재’를 약화시키는 억제기와도 같은 것.
예컨대 판게니아에서 침략해온 마족들의 능력치를 대폭 낮추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세라가 가장 먼저 용신부터 처리하려고 한 이유다.
그런데 용신을 찾기 전에 새로운 용신이 태어나려 하는 중이었다.
‘새로이 잉태된 용신과 의식이 잠깐이지만 연결됐다. 용신을 품은 용맥이 확실해.’
처음에는 용맥만 나타난 줄 알았다.
용신들이 침략자를 약화하거나 속이고자 용맥만 생성할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 분명하게 잉태된 용신의 의식을 느꼈다.
이세라. 그 역시 용신에게서 태어난 존재였으므로.
‘게다가 평범한 용신은 아닌 것 같은데.’
이놈은 정상적인 용신이 아니다.
자신이나, 바사라와 같은 돌연변이가 분명하다.
찰나이지만 연결된 의식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용신이 탄생하게 둘 수는 없었다.
용맥이 완성되고 새로운 용신이 탄생하면 마족의 전력은 눈에 띄게 약화될 터.
하물며 돌연변이 용신이라면 더욱 까다롭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한 침략이 실패할 수도 있다.
기존의 용신을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저걸 완성되게 둘 수는 없는 노릇.
‘용맥이 완성되고 용신이 탄생하기까지 7일.’
7일간 외부로 드러난 용맥을 부수지 못하면, 용신이 탄생하며 추가적인 약화를 걸 터였다.
특히 용신은 침략자들에게 천적과도 같았다.
돌연변이인 용신의 ‘타격 조건’을 알아내는 건 훨씬 더 까다로울 터이니.
자신처럼 말이다.
이세라는 자신의 ‘조건’을 수정할 수 있지만 약점이 있었다.
한 번 수정하면 일정 기간 고정되며, ‘조건’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입는 것이다.
‘······ 그러니 지구의 전력을 전부 파악하기 전까지, 내 조건을 들킬 수는 없다.’
과거 빌헬름에게 패배했을 때처럼.
다신 떠올리기도 싫은 그 괴물 같은 놈.
설마 ‘모든 버프가 5초 아래로 남았을 때 공격해야 한다’는 조건을 찾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조건을 들키자마자, 이세라는 뭔가를 더 해볼 것도 없이 죽어버렸다.
한데 지구에 빌헬름 같은 놈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자신이 나서는 건 모든 게 확실해진 이후였다.
생각을 정리한 이세라가 군단에 명했다.
“전 병사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용맥의 완성을 저지한다.”
병사들의 총동원령.
절대로 새로운 용신이 탄생하게 놔둘 수는 없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
문제는 시간이었다.
마혈종의 여왕이 완전한 ‘용신’이 되기까지 7일.
외부로 드러난 ‘용맥’을 지키지 못하면 용신은 완성될 수 없다.
‘이세라는 필사적으로 용맥의 완성을 저지할 거다.’
놈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듯 뻔했다.
어떻게든 완성을 막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용맥의 외부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왕은 용맥과 내 기운을 동시에 흡수하고 있다.’
용맥을 벗어나면 흡수하던 기운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없으면 용신의 완성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어찌한다.’
용맥을 지키라는 문구는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과연 인류가 나 없이 7일을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마족들이 추가로 약화되었다지만, 솔직히 다크스타가 이끄는 연합은 그렇게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그렇다고 내 의사를 누군가에게 전하기도 어렵다.
외부에서 용맥의 내부로 들어오려거든 용신의 허락이 필요한데, 용신은 아직 완성조차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능할 수도 있겠군.’
허나 일말의 가능성을 읽었다.
바로 신앙신언.
공간을 넘어서 의지를 전하는 그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어떤 신앙신언을 남겨야 할까.
잠시의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
용맥이 한국에 생성되었다는 말.
그 문구를 읽은 즉시, 박태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한국에 용맥이 나타나다니!’
처음엔 희소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비극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마족의 모든 움직임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이다.
‘아아, 신이시여.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한국을 대표하는 전사, 박태우는 절망했다.
연합 역시도 한국에 총동원령을 내렸으니 다행일 수도 있지만, 한국 자체가 가장 큰 전쟁터로 탈바꿈했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을 터.
‘남은 건 멸망뿐이다. 한국의 모든 게 박살 날 거다.’
전쟁이 끝나면 그 장소는 황무지가 되기 마련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수많은 인명이 죽고, 모든 건물은 폐허로 바뀔 것이며, 한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태우. 그는 이 연합에서 가장 힘없는 자 중 하나였으므로.
그렇게 절망하며 한국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당신은······?”
누군가가 조용히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멀끔하게 생긴 외국인.
그의 소개를 들은 박태우는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 허드슨이라고요? 자, 잠깐, 허드슨이라면 미궁 도시에서 오주력의 오른팔로 있는 사람 아닙니까? 당신 플레이어였습니까?”
*
본디 마혈종의 여왕에겐 지식이 없었다. 지혜가 없었다.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혈종들의 번식을 위한 염원에 따라 탄생했기에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런 고민도, 의심조차도 없이 본능만 따르는 삶.
그것이 급조된 마혈종의 여왕에게 주어진 운명.
‘초월. 한계를 뛰어넘어 그 너머에 닿는 것.’
하지만 ‘초월한 진화의 핵’으로 말미암아 마혈종의 여왕은 처음으로 ‘의식’을 가졌다.
의식이 생기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거대하고 두툼한 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육체.
‘왕을 섬겨야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불가하다.’
이 형태로는 왕을 섬길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어 변화해야만 했다.
그러한 의지가 갖추어지자 곧이어 여왕의 모습이 변해갔다.
마치 인간의 형태처럼 두 다리가 생기고, 외형이 갖춰지며 등 뒤로 날개와 같이 뼈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그녀가 자신의 ‘주인’을 생각한 결과였다.
마혈종을 이끄는 왕.
그는 인간의 형태였으니.
또한, 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정신과 생각 역시 인간처럼 깊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뿌리.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변화가 끝난 즉시, 세계수의 뿌리가 가진 ‘진리’에 대해 그녀는 학습해나갈 수 있었다.
‘뿌리는 시작이다. 근원이며 모든 것이다.’
의식은 더욱 넓어져 간다.
지식은 깊어졌고, 두 눈엔 현기(玄機)가 머물렀다.
태초의 나무. 세계수의 뿌리는 우주의 진리마저도 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본능만을 좇는 마혈종의 여왕이 아니었다.
‘더 알고 싶다. 더 강해지고 싶다. 욕망과 갈증. 이는 본래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극적인 변화.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의 성장은 모든 마혈종의 성장일지니.’
그녀는 여왕이며 군주이다.
수많은 마혈종을 다스려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녀가 성장할수록 마혈종들 역시 성장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천상의 깨진 알
무엇을 품었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알.
비록 깨져있으나 현묘하다.
강렬한 신성이 어려있었다.
진리를 깨달은 그녀의 눈으로도 그 가치가 파악되지 않을 만큼.
‘이건 고치로군.’
그러나 알의 쓰임새는 알겠다.
깨졌으나 아직 무언가를 잉태했던 거대한 기운은 남아있었으니까.
그 기운으로 말미암아 보다 높은 존재로 진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칼날여왕은 알의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동시에.
‘······!!!’
세상이 확장된다.
모든 의식이 한순간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마혈종들의 의식으로 시작하여 점점 확대되더니, 용맥 바깥의 벌레나 풀의 소리, 수많은 인간과 마족들, 심지어 세계 반대편에 있는 것들의 존재마저도 자신과 같이 느껴지게 된 것이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먼 옛날 신이 잉태되어 태어난 알이다.’
그리곤 깨달았다.
이 알은 신을 품었던 알이라고.
어떠한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운을 조금이나마 자신이 잇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용맥은 그녀에게 ‘용신’의 업을 입혔다.
용맥 자체가 일종의 ‘탑’이 되었다.
탑은 신격이 기거하는 장소이자 그 자체일지니.
‘허나 나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오롯이 용신이 될 경우 그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며 용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가 바라는 건 섬길 대상을 직접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습마저도 탈바꿈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그녀는 신이 될 수 없었다.
‘내게 유일한 신은 내가 섬겨야 할 분 하나뿐이다.’
란돌프.
신이 있다면, 오직 그뿐이다.
고로, 그녀는 신이 될 수 없다.
애당초 완벽한 신격이 되기에 그녀는 아직 부족했다.
여러 재료들로 말미암아 가파르게 격이 올랐으나 그게 전부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용신이 된들 과연 진정한 신이라 할 수 있을는지.
진리를 깨달은 칼날여왕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반쪽짜리다.
제대로 된 업의 이행은 불가할 것이다.
그때였다.
《‘온전한 황금률’이 ‘칼날여왕’의 격을 드높입니다.》
《‘온전한 황금률’이 ‘칼날여왕’의 격을 드높입니다.》
《‘온전한 황금률’이 ‘칼날여왕’의 격을 드높입니다.》
······ 아아.
이건 또 무엇인가.
이것은 영광이다. 기억이다. 과거였다.
고대 찬란했던 자들이 남겨놓은 발자취와도 같은 것.
대부분이 잘게 부서지고 조각나 흩어졌지만, 온전한 황금률은 그들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총아와도 같았다.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
그 보물을 선뜻 내놓은 게다.
‘이것이 왕의 의지시라면······!’
여왕이 감격하며 몸을 잘게 떨었다.
이토록 큰 은혜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란돌프밖에 없었기에.
반쪽짜리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려는, 보다 그녀가 완벽해지길 바라는 왕의 의지였다.
왕이자 신께서 그러길 바란다며 충실한 종인 자신은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법.
칼날여왕은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칼날여왕의 레벨 한계치가 13에서 16으로 해제됩니다.》
《칼날여왕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칼날여왕의 군단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부여됩니다.》
《칼날여왕이 지배할 수 있는 마혈종의 숫자가 1,000,000으로 격상합니다.》
《‘천상의 깨진 알’이 모든 기운을 소진했습니다.》
《‘천상의 깨진 알’이 ‘마혈종 산란소’로 변화합니다.》
《‘마혈종 산란소’에선 더욱 특별한 마혈종이 탄생할 확률이 상승합니다.》
《‘마혈종 산란소’에선 하루 최대 2,000개의 알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마혈종 산란소’에서 생성된 알의 부화 시기가 20% 단축됩니다.》
《칼날여왕이 ‘용신 - 추종자’의 업을 획득했습니다.》
《‘용신 - 추종자’는 추앙의 대상인 ‘란돌프’와 연결됩니다.》
《‘용신 - 추종자’는 오직 ‘란돌프’가 공격당할 때만 타격을 입습니다. 그 외의 모든 공격에 면역됩니다.》
《‘용신 - 추종자’는 추앙하는 자의 명령에 따라 ‘용맥’을 벗어나 움직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