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84화 (184/317)

# 칠군주 바사라

약속한 14일이 지나자, 이세라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유니온이 사라졌다?”

“예, 군단장님!”

“갑자기 성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니온을 감시하던 마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감시와 추적에 특화된 마족들. 그들조차도 난데없이 사라진 유니온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세라의 미간에 그늘이 깊어졌다.

‘시간을 끌고 사라졌다. 다른 속셈이 있었던가?’

이세라는 유니온이 강제로 힘을 봉인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속셈이 있었더라도 굳이 힘을 되찾지 않고 숨어버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세계, 지구를 향한 복수심만큼은 진심이라 보았거늘.

허나.

‘처음부터 놈을 믿지 않고 따로 진행하길 잘했군.’

처음부터 믿음은 없었다.

하여 용신을 찾는 작업을 온전히 유니온에게만 맡기진 않았다.

이세라 역시도 다른 루트로 용신을 불러들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나인 바사라의 말마따나 제국의 인간은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

“어차피 오래 숨어있진 못할 거다. 놈의 ‘영혼’은 내가 저당 잡아 놨으니.”

무엇보다 확실한 보증도 있었다.

유니온의 영혼은 이미 이세라가 쥐고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죽이는 것 역시 가능했으므로.

당장 죽이지 않는 건 보다 확실하게 이유를 알고 싶은 탓이다.

절대로 배신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유니온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이유를.

그 또한 중요한 정보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자신이 영혼을 쥐고 있는 이상 놈은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혀를 찬 이세라가 말했다.

“‘용맥’은 찾았나?”

“예상되는 지점 여덟 곳을 찾았습니다!”

지근거리에서 로브를 쓴 고위 마족이 답했다.

용신을 찾는 방법은 균형의 일그러짐만이 아니다.

용맥. 용의 둥지와 이어지는 그 맥을 부숴도 용신이 나타난다.

그나저나 여덟 곳이라.

최대한 전투 없이 용신부터 제거하려 했건만.

‘이틀이면 되겠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고개를 끄덕인 이세라가 명했다.

“예상되는 지점들을 전부 파괴하도록.”

*

후루룩!

선글라스를 쓴 여인이 느긋한 자세로 뜨거운 커피를 넘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음, 이 세계는 참으로 평화롭구나.”

그녀는 바사라였다.

이세라의 혈육이자 일곱 번째 지옥의 군단장.

처음 지구를 넘어올 땐 하급 마족의 몸을 지녔지만, 지금은 인간 여자의 의식을 빼앗아 몸을 차지한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 인간의 의식을 거치며 ‘기억’을 습득하고 있었다.

‘손가락질 한 번에 모든 걸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세상이라.’

이곳, 지구의 편리함마저도 학습했다.

그녀가 보기에 지구는 매우 신기한 곳이었다.

문명의 고도화. 판게니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간단하게. 최소화하며 빠르게 진행하는 방식.

덕분에 바사라 역시도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았다.

“···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있으렷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도 말이다.

지금 바사라가 있는 곳은 한국이었다.

은평구의 한 카페.

과거 히드라곤이 소환되었던 장소가 정면에서 보이는 곳!

빌헬름의 기술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습득 직전까지 간 존재는 그녀뿐이었기에, 히드라곤을 소환한 남자가 ‘그’라는 걸 그녀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물론, 그 장면을 보고 ‘빌헬름’을 떠올리는 건 이 세상에서 그녀뿐일 것이다.

오직 그녀만이 ‘그’의 의식을 눈치챌 수 있으니.

이 몸으로는 찾아봤자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나를 죽인 유일한 인간의 본모습을.’

바사라가 씽긋 웃어 보였다.

생각만으로도,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섬세하며 유려하기 그지없던,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던 아름다운 자는.

더 강해졌을까?

약해졌으려나?

아니면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을까?

그때였다.

휘이이이잉!

쿠르르르르르릉!

멀리서 날아오는 수많은 화염구들.

“아아악!”

“뭐, 뭐야!”

“피해!”

수백 개의 워프가 열리고, 그곳에서 마족들이 출현하며,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건물이 차례대로 무너지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흠.”

바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용신을 찾아서 죽이는 게 먼저 아니었던가?

유니온. 놈이 배신이라도 한 건지.

“아, 아가씨!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어서 피······!”

카페의 창가에 앉아 아직도 여유를 부리는 바사라를 보며 한 남자가 외쳤다.

하지만, 외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모든 인간을 죽여라!”

입구로 모습을 드러낸 마족들.

마족들은 등장 즉시 사람들을 도륙해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바사라에게 도달했을 때.

“멈추거라.”

바사라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

그 모습에 다가온 마족은 인상을 찌푸렸다.

“겁을 상실했군.” 

“쯧,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들이여.”

결국 바사라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인간의 몸으로 갈아탔다 할지언정, 마족이 자신을 못 알아볼 줄이야.

하지만 마족이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자 상황은 바뀌었다.

“넌······?”

“꿇거라.”

쿵!

동시에 그녀의 눈을 본 모든 마족이 두 무릎을 강하게 꿇었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이세라가 계획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더냐?”

“요, 용맥을······ 찾기 위함입니다······.”

“용맥?”

“예!”

대답 역시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지와 의지가 그녀에게 종속되는 느낌.

이러한 느낌을 주는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다, 당신은······ 혹시······?”

바사라.

용신용언의 힘을 지닌 절대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차마 이름을 입에 담지 못했다.

바사라의 이름을 정면에서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모든 세계에 한 명뿐이었다.

동생인 이세라.

이세라를 제외하고 이름을 부르면, 절대로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없다.

마왕조차도 바사라의 이름을 정면에서 담지는 않았을 정도였다.

‘이세라. 계획이 변경됐구나.’

용맥을 언급했다.

용맥을 직접 부수겠다는 건 유니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용맥은 가장 인구가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들 중에 숨겨져 있지.’

아마도 한국은 그 후보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 특히 서울 쪽의 인구 밀집도는 세계적으로도 순위권이었기에.

‘전부 몰살시키면 혈맥이 열리고 용맥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용맥마저 부숴버리면, 용신은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말인즉.

후보지로 정해진 곳의 인간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어 용신을 찾고 죽이면, 차원을 넘어온 마족들이 더 온전하게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세계의 침략과 지배가 훨씬 쉬워진다는 뜻.

인간들은 감히 반항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리라.

생각을 정리한 바사라가 입을 열었다.

“이세라에게 전하거라. 이곳엔 용맥이 없다고.”

“하, 하지만······! 군단장님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침략을 실행한 군단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본체조차 아닌 바사라의 명령 순위는 이세라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군주도 아닌 바사라였다.

‘이세라 녀석. 용맥의 형성조건조차 잊었나 보군.’

게다가 평소와 다르게 흥분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세라답지 않았다.

뭐가 녀석을 흐트린 거지?

유니온의 배신인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그게 아니면 자신의 책무에 잡아먹힌 걸까?

“두 번 말하지 않으마. 이세라에게 전하거라.”

“아······ 예!”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행태는 실망이었다.

성장을 덜 한 건지.

그래서 강하게 말하자, 마족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침략을 강행했던 마족들이 전부 워프 안으로 사라졌다.

“무, 무슨 일이야?”

“괴물들이 물러간다!”

“사, 살았다! 살았어!”

이세라가 바사라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러나 이내 바사라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메인 퀘스트 10’의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광룡 아인하사르의 시련’이 ‘용신 아인하사르의 시련’으로 변경됩니다.》

······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떠오른 글귀.

생각해보니 이 여자의 몸은, 플레이어의 것이었다.

비록 레벨은 낮으나 바사라는 분명히 관련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인하사르가 멸망의 저주를 풀었다?’

느닷없이.

아무런 예고조차 없이.

푸는 게 불가능한 그 저주를 풀어냈다.

혼자 풀었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풀어냈다는 뜻인데.

놈이 용신의 격을 되찾았다면 마족으로선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다만, 그런 건 그녀에게 별 관심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오호라.”

다른 것에 더 흥미가 생겼다.

그녀의 눈이 순간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황금색의 기류.

저건 분명히 ‘용신의 염원구슬’이 사용될 때 내는 특수한 기류였다.

이곳에 용신이 있을 리 없건만 용신의 염원구슬이 사용됐다.

그리고 그게 나타났다면.

“······ 이곳에 용맥이 형성되었구나?”

아인하사르가 수호자의 격을 되찾고, 용신의 염원구슬이 지구에 등장하며 용맥의 형성조건을 만족시켰다.

이 모든 게 그저 우연일 리는 없었다.

연결고리. 그 모든 걸 가능케 한 자.

‘빌헬름. 아니, 지금은 란돌프라지?’

그가 저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등장 즉시 용신의 염원구슬을 사용해, 용맥을 형성화시킨 것이다.

왜?

무엇을 위해서?

‘나의 동생, 이세라를 잡을 생각이로구나. 그렇지?’

용맥은 용신의 거처이자 세상의 중심이다.

균형 그 자체인 것.

그것이 존재하는 한 이세계를 침략해온 마족들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걸 만들어냈다는 건 한 마디로, 이세라를 잡겠다는 의지였다.

한데, 과연 혼자서 이세라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용맥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세라 역시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게다가 란돌프는 이곳의 플레이어들을 이끌지도 않는다.

묵묵히 혼자서만 움직이는 자.

빌헬름과 전혀 다른 행보다. 그는 대원정을 일으키며 어찌 됐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상대했으므로.

이세라를 상대할 때도 수많은 인원이 장기간 약점을 알아내려 희생하지 않았던가.

대체 혼자 어떻게 상대하려는 건지.

‘빌헬름. 벌써 그렇게 성장한 것이냐?’

확실한 건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운. 아인하사르의 염원구슬을 물려받은 게 틀림없었다.

용신이 자신의 염원구슬을 남에게 양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함께 성장한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

그것을 주었다는 건, 그 정도의 격을 쌓은 인물이라는 뜻.

하물며 멸망의 저주까지 풀어냈다면?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로다.’

바사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빌헬름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게.

그녀에게 이만큼이나 흥미와 재미를 주는 존재는 오직 그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세라를 잡을 만큼 성장은 못 했을 줄 알았거늘.

바사라가 강렬하게 흥미를 보이며 두 눈을 빛냈다.

툭. 투욱.

그리고 발을 옮겨, 새로이 형성된 용맥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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