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신화의 완성
멸망의 저주를 해제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별 네 개를 보유하고, 마찬가지로 4성에 달하는 능력치를 지녀야 하며, 규격 외의 상태 이상 회복 능력도 사용할 줄 알아야만 했다.
‘규격 외라.’
내가 지닌 규격 외는 오직 신비 ‘영원의 란돌프’뿐이었다.
나의 전부, 내 존재 자체를 신비로 투영해놓은 것.
당연히 그러한 등급의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을 리 만무했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지.’
바로 레벨을 올리는 것.
레벨을 올릴 때 나타나는 ‘완벽한 회복 능력’이라면 충분히 규격 외로 논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이 레벨업의 효과는 오직 나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타인에게까지 효과를 전이시키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규격 외의 상태 이상 회복 능력만 갖추면 되는 일이다.’
그것을 상대에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즉, 갖추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마침 헬이 가져다준 ‘유니온의 저장된 경험치 물약’이 마련되어 있었으니.
‘유니온의 인벤토리에서 헬이 가져온 물약은 여덟 개.’
한 병에 무려 10%의 경험치가 올랐던 물약이다.
여덟 개라면 충분히 레벨을 올리고도 남을 양.
평범한 8레벨이었다면 10레벨 이상을 노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내 상태에선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가진 재능과 특성 탓에 남들보다 필요한 경험치가 최소로 잡아도 수십 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헬이 전부 털어올 때까지 유니온이 몰랐다는 게 더 놀랍다만.’
헬은 하루에 하나씩 유니온의 인벤토리를 털어왔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유니온이 눈치를 못 챘다는 게 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로써 세워볼 수 있는 가설은, 유니온 또한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물건을 전부 확인 못 하는 건 아닐는지.
적어도 수량은 못 보는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 레벨을 올릴 양으로는 충분하다.’
다 합하면 80%의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양.
꿀꺽!
나는 주저 없이 경험치 물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모두 털어넣자.
【레벨이 올랐습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짧고 간결한 문장과 함께 강렬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이전의 축복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기 그지없는 빛이었다.
‘확실히 레벨이 오를 때마다 축복의 효과가 강해지고 있군.’
둥지 전체를 감싸 안은 축복의 빛.
이쯤 되자 확신이 든다.
레벨을 올릴 때마다 축복이 강해지고 있다고.
이제는 회복의 수준을 넘어,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각성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혹,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필요 경험치가 너무 많아 그런 건지.
‘······ 드디어 9레벨.’
하지만 생각을 이어갈 겨를은 없었다.
그 효과만큼이나 벅차오르는 감정을 나 역시 주체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느덧 9레벨.
마침내 10레벨까지 한 걸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10레벨이 넘어가면 초월할 수 있고, 내게는 별이 벌써 4개나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 균열의 탑을 오르며 나의 맥스 레벨은 12까지 확장된 상태.
‘빌헬름보다 강해질 수 있는 기틀 자체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아직 빌헬름의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나, 빌헬름을 넘어설 기틀 자체는 완성된 거나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레벨에 따른 1.2배의 능력치, 12까지 확장된 맥스 레벨.
게다가 벌써 4개의 별까지 보유했다.
장비야 하나하나 맞춰가면 될 일이었고.
그 순간이었다.
《10레벨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 경험치가 10배 상승합니다.》
《10레벨 달성 시 ‘초월’이 가능해집니다.》
《10레벨 달성 시 ‘??’가 깨어납니다.》
《‘절망의 뼛조각’이 정화되었습니다.》
10레벨로 향하기 위한 고행이 시작되었다는 말과 함께 떠오른 다른 문구들.
원래부터 ‘마의 10레벨’이라 불리는 게임이었으니 경험치 상승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뭐가 깨어난다는 거지?’
그러나 세 번째 문구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10레벨에 도달했다고 무언가가 깨어난다는 건 들어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 음.
아무리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내 레벨이랑 상관이 있는 게 뭐가 있지?
설마 히든 특성 중 하나인가?
의아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절망의 뼛조각이 정화되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남부로 향한 사왕이 내게 전달해준 사흉 ‘절망’의 뼛조각.
그것이 레벨업과 동시에 정화되었다는 말.
하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이곳은 불친절의 끝판왕인 판게니아였으니까.
나는 잡념을 접고, 고개를 들어 아인하사르를 향해 말했다.
“시련을 승낙한다, 아인하사르.”
··· 너의 저주를 풀어주겠노라고.
별의 축복이 제시한 모든 조건은 완성되었다.
그러자, 아인하사르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아라.
천천히 얼굴을 바닥까지 떨어트렸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별의 축복.’
나는 주저 없이 별계승자의 주스킬 중 하나인 별의 축복을 사용했다.
그러자.
《‘별의 축복’이 ‘멸망의 저주’를 정화하기 시작합니다.》
《‘멸망의 저주’가 축복에 저항합니다!》
쩌어어어억!
아인하사르의 두 눈 사이에서, 입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어 시간이 멈춘 듯이 세상이 느려졌다.
어딘가 익숙한 현상.
나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버그······ !’
저건 마왕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을 때, 그리고 사흉 바알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때와 비슷한 ‘버그’였다.
잠깐. 설마 저게 ‘멸망의 저주’라고?
저항할 수 없는 버그로 인해 두 번 다 죽었지 않나.
비록 이전에는 ‘영원의 란돌프’로 부활했다지만, 그런 행운은 한 번뿐이었다.
‘······ 빌어먹을!’
욕지기가 절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입을 열 틈도 없었다.
아인하사르의 이마에 생겨난 ‘버그’는 순식간에 입을 벌려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입은 내게 닿지 못했다.
《‘멸망의 조각’이 ‘멸망의 저주’를 완화합니다.》
내 심장에 깃든 멸망의 조각.
그것이 저주를 내게 닿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도리어 저주를 약화시키곤.
《‘저주’가 정화되어갑니다.》
《‘멸망의 저주’가 완전히 정화되었습니다!》
《저주의 근원, ‘저주받은 영혼’을 획득합니다.》
《‘헬’이 ‘저주받은 영혼’을 포식할 수 있습니다.》
······ 증발하듯 ‘버그’가 사라져간다.
동시에 찬란한 황금빛과 함께 아인하사르의 두 눈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아.
이어 몸을 크게 떤 그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아아! 수호자의 업이 돌아왔도다.
용신이자 균열의 수호자라 불리었던 아인하사르.
그가 본래의 업과 격을 되찾았다.
그 찰나.
《업적 ‘멸망의 저주를 정화한 자’가 추가되었습니다.》
《명예가 1,000점 상승합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 배(2,000)로 획득합니다.》
《업적 ‘용신 아인하사르’가 추가되었습니다.》
《명예가 1,000점 상승합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 배(2,000)로 획득합니다.》
두 개의 업적이 더해졌다.
명예 4천 점과 함께 말이다.
‘위대한 위상. 진짜 미쳤군.’
찬란한 순혈자의 위상.
그 절대반지에 들어있는 ‘위대한 위상’은 명예를 두 배로 획득하게 해준다.
새삼 느끼지만 미쳐버린 능력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1만 점 달성이 머지않았다.’
이 속도면 머지않아 명예 1만 점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만 점이면 명예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수준.
또한 명예 1만 점에 도달하면 ‘왕국’을 선포하고 ‘왕’도 될 수 있다.
오직 이것만이 플레이어가 유일하게 세력을 넓혀 왕이 될 수 있는 길이었으니.
-······ 고맙다.
한참 전율하던 아인하사르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멸망의 저주는 내 영혼을 타락시켜 내가 가진 소명을 등한시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균형이 무너져감에도 외면하게 하였다. 그리하여선 안 되었거늘.
고오오오오.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빛이 아인하사르의 전신을 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진정으로 고맙다. 별을 이끄는 자여. 그대는 모든 시련을 완료하였다. 약속대로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하지.
후우우우욱!
찬란한 황금빛이 나를 감싸 안았다.
마지막 시련에 대한 보상.
그게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용신의 닳고 닳은 염원구슬’이 빛을 냅니다.》
《‘용신의 닳고 닳은 염원구슬’이 ‘용신 아인하사르의 염원구슬’로 진화합니다.》
용신의 염원구슬!
그것도 용신의 이름이 담긴 염원구슬이었다.
염원구슬이 무엇이던가.
용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값어치 있는 보물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심장보다도 말이다.
그러니 용의 급에 따라 염원구슬의 가치 또한 변하기 마련.
지금 아인하사르는 자신의 염원구슬을 내게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허.’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기에.
감히 누구도 가진 적 없고, 가질 수 없는 염원구슬이었으니!
-별을 이끄는 자여. 궁금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내가 아는 모든 것에 한하여 두 가지 답을 주도록 하마.
추가적인 시련과 업적을 완성했기 때문일까?
본래 한 가지만 조건부로 말해주던 아인하사르가, ‘두 개의 물음’을 입에 담았다.
‘유일 등급 도안도 구할 수 있겠군.’
아인하사르의 별명 중 하나가 ‘지식의 용’이다.
그는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고 했으니, ‘유일 등급의 도안’에 대해서도 필시 답해줄 터.
이건 기회였다.
“지구의 용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하지만 첫 번째 물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세라보다 먼저 지구의 용신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다행히 내가 답을 줄 수 있는 물음으로구나.
후우우우우우!
아인하사르의 황금빛이 재차 내 주변을 맴돌았다.
《‘텔레포트 북’에 새로운 좌표가 새겨졌습니다.》
《‘텔레포트 북’을 사용해 ‘용신 루카리아의 둥지’로 향할 수 있습니다.》
아예 좌표를 새겨줬다.
단순히 방법을 답변해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답’ 그 자체를 준 것이다.
-자. 두 번째 물음은 무엇이냐?
느긋하게 아인하사르가 물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 그 자체를 준다면······ 유일 등급 도안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유일급 도안의 위치를 찾는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었다.
물음에 따라 그 이상의 가치로 돌려받는 것 역시 가능할 테니!
‘그걸 물어봐야겠군.’
마침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식의 용인 아인하사르라면,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는 천천히 아인하사르의 둥지를 벗어났다.
물론 걸어서 나간 것은 아니었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인하사르의 등에 업힌 채.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아인하사르의 존재는 워프를 통하지 않아도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기에.
동시에 눈앞으로 수많은 문구가 동시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인퀘스트 10 - ‘광룡 아인하사르의 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누구도 도달한 적 없는 마지막 시련을 해결했습니다.》
《균형의 수호자, 아인하사르의 저주를 풀어낸 자여!》
《도전자가 새로운 신화를 완성했습니다.》
《점수를 정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