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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71화 (171/317)

휘이익! 

채엥! 

파고드는 검을 자연스럽게 빗겨 쳐냈다. 

촤아앙! 

찌릿하게 팔을 타고 들어오는 떨림조차 그녀는 잊어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토끼녀가 눈을 감고 황제펭귄을 상대합니다!” 

“와, 너 정도는 눈을 감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요?”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심상에는 오로지 검만이 있었다. 

“오호라.” 

란돌프의 감탄 어린 목소리 역시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쳐내고 나아갈 뿐. 

이전과는 다르다. 

이전의 그 일방적인 싸움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땐 몰랐으니까. 

그의 거대한 욕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술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이제는 란돌프의 검술이 무엇인지 안다. 

안다면, 이길 수 있다. 

“··· 뛰어나군.” 

칭찬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였다.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이걸 읽어낸 사람은 처음인데.’ 

······ 그도 그럴 게 정말로 놀랐으니까. 

빌헬름의 검술. 

천지개벽의 천. 

란돌프가 된 이후 이 정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검사는 아우릴이 처음이었다. 

‘천’은 단순히 공간을 장악하는 검술이 아니다. 

공간 내에 있는 자들의 의식을 읽는 고도의 검술이었다. 

아우릴은 단 한 번 나를 상대하곤 그 요지를 파악한 게다. 

‘천재.’ 

검의 영역에 있어서 아우릴은 천재였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욱하는 게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조차도 어느 정도 극복한 듯싶었다. 

부동. 흔들리지 않는다. 

모든 걸 차단한 채 오로지 한 자루의 검이 되어있었다. 

‘아직 발테의 영역에는 닿지 못했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테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창술사 발테. 

정신을 잃고 무의식에 영역에 들어서면 무력이 몇 단계는 상승하는 버서커. 

어쩌면 내 검술과는 가장 상극에 있는 게 바로 발테였다. 

‘······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아우릴의 무의식은 점점 더 짙어졌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강해진다.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다. 

이만한 천재를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비슷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이세라의 혈육. 일곱 번째 지옥의 군주 바사라.’ 

빌헬름으로 상대했던 지옥의 군주 중 가장 까다롭고 끔찍했던 존재. 

다시는 상대하기 싫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마왕보다 바사라가 더 어려웠다.’ 

솔직한 감상이었다. 

마왕은 온갖 잡기술 때문에 상대하기 힘들었지만, 바사라는 ‘순수 무력’의 면에서 말도 안 되는 여자였다. 

심지어 끊임없이 강해지고 벽을 넘으며 내 기술마저 흉내 내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조금만 더 길게 싸웠으면 패배한 건 빌헬름이었으리라. 

그리고 지금 아우릴은, 그 바사라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 빌헬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능.’ 

만약 그렇다면 아우릴은 빌헬름을 뛰어넘을 재능을 지녔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재능을 지녔다고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 

다만······. 

꽈아아앙! 

나는 발을 들어 강하게 지면을 때렸다. 

순간 지면이 튀며 거대한 지진과 진동을 만들어냈다. 

“아······?!” 

그러자 아우릴의 의식이 잠깐이나마 돌아왔다. 

아직 완벽한 무의식을 이루진 못한 것이다. 

아우릴이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무의식이 깨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칙성을 아예 생각할 수 없었겠지. 

태초의 숲에서만 수련한 아우릴은 아직 너무 정직하다. 

“내가 검으로만 상대하리라 생각했나?” 

그러나 무의식을 깨는 방법은 많다. 

발테와 같은 영역에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깨지게 되는 게 무의식이었다. 

하물며 이제 초입에 들어선 아우릴 정도야. 

그래도 바로 끝내기엔 아쉽다. 

‘더 덤벼봐라.’ 

나는 아우릴의 한계를 계속해서 시험해보기로 했다. 

챔피언의 두 눈이 짙게 떨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방.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다. 

‘천지개벽······ 빌헬름의 검술!’ 

빌헬름의 별에 새겨진 기억이 있기에, 확신했다. 

저자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눈에 익었다. 

‘아아.’ 

사라진 그의 검술을 사용하는 자. 

지난 1년간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사왕. 

빌헬름! 

분명히 빌헬름의 검술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빌헬름이 아니다. 

설마 빌헬름의 후계자일까? 

아니면 자신처럼 빌헬름의 기억을 흡수한 다른 계승자인 건지. 

‘완벽하다.’ 

하지만 단순히 기억을 훔쳐서 사용한다 하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검술이었다. 

검의 검로도 자세도 그리고 특유의 여유마저도. 

빌헬름이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기억 속의 모든 게 일치했다. 

전율하던 챔피언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산샤의 그림자들!’ 

보이지 않는 곳. 

볼 수 없는 영역에서 산샤의 그림자들이 황제펭귄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챔피언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약점을 찾으려는 거로구나.’ 

산샤의 가장 무서운 권능이다. 

탑의 관리자 권한을 이용하여 그림자들을 부리고, 그 그림자들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게 산샤였다. 

반신 카라스도 끌어내릴 만큼 그 권능과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만약 산샤가 카라스를 끌어내리지 않았다면, 현 챔피언은 자신이 아니라 아직도 카라스일 터였다. 

그래······. 

그가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건 결국 산샤 덕분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가, 투신으로 군림할 수 있던 모든 게. 

그래서 그 자체가 자신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한데, 산샤가 황제펭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필시 황제펭귄 역시도 자신이나 카라스처럼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일 터. 

‘막아야 한다.’ 

빌헬름의 제자일지도 모르는 자. 

1년간 오매불망 기다렸던 존재가 마침내 자신의 소원에 응하듯 나타났다. 

그러나 이대로 산샤의 음모를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저자의 모든 게 위험해진다. 

관찰당하고, 파악당해서, 수많은 것들이 약점으로 부상할 것이었다. 

‘이 모든 건 운명이다.’ 

빌헬름의 별을 가진 자신의 앞으로 빌헬름의 전인(前人)이 나타났다. 

이걸 어찌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어차피 자신이 이곳에 있는 한 탑의 운명은 머지않았다. 

그때가 되면 산샤의 욕망도 함께 스러질 터였다. 

하여, 챔피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산샤가 마음대로 하게 놔둘 수는 없었으니. 

‘엄청나구나.’ 

대결을 보며 산샤는 작게 감탄하고 있었다. 

대결 그 자체보단, 자신의 그림자들이 전해주는 정보의 양에. 

‘내 권능으로도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림자들은 모든 걸 파악한다. 

움직임을 보고 유래를 파악하며 모든 걸 계산해낼 수 있었다. 

황제펭귄이 넘어온 워프의 흔적을 찾고, 그 주변 모든 걸 읽어낼 수 있는 권한마저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황제펭귄은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워프의 흔적이 전부 지워져 있다. 이건 사신교의 일레븐즈와 비슷하군.’ 

황제펭귄이 지나온 워프들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제국 사신교의 일레븐즈들. 그들과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그들보다도 더 정교하다. 아예 읽을 수가 없다. 

뿐만인가. 

상태창을 비롯한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관찰을 막는 스킬이나 도구를 지녀서? 

유일급의 도구가 아닌 이상 그건 불가하다. 

‘관련된 히든 특성을 지녔구나. 내 권능을 막는 히든 특성들. 하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관찰을 막을 수 있는 건 히든 특성뿐이다. 

그 진리들만이, 탑의 관리자 기능을 저지할 수 있었다. 

허나 막는다면, 뚫으면 그만이다. 

자신이 보는 것조차 놈은 모르고 있을 테니. 

더 시간을 들여 관찰하면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을 터. 

특히 저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 곧 종합될 예정이다. 

특유의 움직임과 억양 따위로 하나씩 추정해내면 그만. 

그러나 머지않아 산샤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 그림자가 지워지고 있다.’ 

······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제거하는 중이었으므로. 

그게 누구인지 파악한 산샤의 표정은 더욱 악귀같이 변했다. 

‘챔피언. 네놈이?’ 

챔피언이 관객석에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며 돌아다니면서. 

탑의 가호를 받은 챔피언은 관리자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므로. 

갑자기 놈이 왜 저러는 거지? 

키우던 개가 뜬금없이 짖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내려와선, 항의라도 하는 걸까? 

‘······ 관심이 생겼다는 거냐?’ 

황당한 일이다. 

설마 황제펭귄에게 관심이라도 생긴 건지. 

그렇다면 카라스의 기권이 기폭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드디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무려 1년 만의 일. 

산샤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민을 이어 나갔다.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면서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이유를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붙어 보고 싶다는 말이냐?’ 

아. 

지금 챔피언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펭귄과 있는 그대로 싸워보고 싶다고. 

카라스 때와는 다르게 온전하게 붙어보고 싶다는 무언의 항의. 

산샤는 턱을 쓸었다. 

황제펭귄과 챔피언의 싸움. 둘 중 누가 이길지 저울질을 해봤다. 

‘··· 오냐. 이번만큼은 네놈 뜻대로 하게 해 주마.’ 

20층. 

아우릴과 19층의 수문장을 쓰러트린 뒤, 나는 마침내 20층에 도달했다. 

바로 챔피언의 영역에. 

“챔피언이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무려 1년 만 아닙니까?” 

“허어······ 은둔 중이던 챔피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행자들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 

모든 도전을 거절하던 챔피언이, 무려 1년 만에 황제펭귄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우릴의 대결 이후 모든 게 갖춰진 것이다. 

산샤의 허락과 챔피언의 흥미를 전부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챔피언과 마주하게 되었다. 

“······.” 

조용히. 

서로가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현 챔피언. 

더벅머리로 얼굴을 가려 인상을 확인할 수가 없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근! 두근! 

챔피언을 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이유를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네임드 ‘태양의 별’을 찾았습니다.》 

······ 빌헬름의 별 중 하나이자, 네임드 별인 ‘태양의 별’이 눈앞에 있다는 말. 

태양의 별은 여태껏 얻은 세 개의 별들과는 질이 다른 네임드의 별이었다. 

하지만 내 심장이 뛰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오오오오. 

마치 청룡(靑龍)과 같이 유형화 된 그의 기운과 기세가 무척이나 낯익었던 탓이다. 

‘설마······?’

저런걸 어떻게 이겨?

아우릴은 얌전히 투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여전히 이전의 싸움이 되새김질 되는 중이었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 부었어.’ 

비록 패배했으나, 후회는 없는 싸움이었기에. 

도리어 가르침을 받았다. 

란돌프는 자신의 검을 일부러 끝까지 받아준 것이다. 

반면 아우릴은 란돌프의 진심을 꺼내지 못했다. 

‘······ 란돌프 님에겐 배울 게 많아.’ 

인정하기 싫지만, 아우릴은 인정하고 말았다. 

태초의 숲에서 배운 검술은 꽉 막혀 있었다. 

반면 란돌프는 막혀 있지 않다. 

그와 검을 나눌 때마다 자신의 실력이 급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스승과 제자처럼 란돌프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였다. 

‘란돌프 님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니까.’ 

처음엔 영락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란돌프는 동시에 하이 드루이드였다. 

아마도 인간의 가죽을 쓴 채, 하이 드루이드의 자격을 지닌 자. 

족장인 아루웬은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 증거로 그의 옆에 있으면 월계수 잎이 빠르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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