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68화 (168/317)

산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우거는 벌써 3년 넘게 랭킹을 유지하고 있는 강자. 

그 이름처럼 거대한 체구로 상대를 압살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와 싸운 자들은 대부분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기에, 모두가 피하기 일쑤였다. 

이번에 지원한 신인은 총 30명. 

“10분을 버티거나, 오우거에게 약간의 생채기라도 남기면 합격이다. 그 정도의 이벤트는 해야 관객이 모일 것 같군.” 

“아······ 한 명도 못 살아남겠군요.” 

서류를 건넨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우거의 잔악함을 알고 있는 탓이다. 

30대 1의 대결. 

웬만한 경우 30이 질 수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상대는 오우거였다. 

어중간한 실력의 30명이 모여봤자 순식간에 살해당하리라는 걸 남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학살이다. 

학살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투신의 탑.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곳. 

“언제로 진행할까요?” 

“내일 당장.” 

“알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남자가 물러가자, 산샤가 미소를 지었다. 

‘오우거를 한 번 띄울 때가 됐지. 챔피언의 대항마로 키워 볼 만한 친구이니.’ 

이번 이벤트는 신인 발굴의 목적이 아닌, 오우거를 홍보하여 띄우기 위한 이벤트였다. 

오우거와 같은 중견이 커야 탑의 명성이 유지되는 법. 

게다가 현재 5년간 단 한 번도 챔피언의 자리를 놓친 적 없는 ‘녀석’에게도 꽤 괜찮은 자극이 될 터. 

‘5분은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10분이라 했지만, 오우거의 성격상 5분 내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게 산샤의 걱정이라면 유일한 걱정이었다.

챔피언

다음 날. 

이벤트를 위해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30명의 신인과 괴물 중견 오우거의 대결! 

이 파격적인 문구는 고작 반나절 만에 관람석을 매진시킬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9대 1?” 

“결과가 시작부터 너무 뻔한 거 아니야?” 

“뻔해도 학살을 보러 온 거지. 이런 이벤트가 흔한 건 아니잖아?” 

물론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무려 9대 1의 스코어로 오우거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으므로. 

그나마 1이 나온 것도 ‘역베팅’으로 대박을 노리려는 사람들이었다. 

대박의 심리가 아니었다면 100대 0의 스코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런 뻔한 경기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피와 살육을 보고 싶다!’ 

‘다 쓸어버려!’ 

오우거가 압도적인 무위로 신인들을 쓸어버리는 걸 보고싶었으니까. 

오우거의 잔학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투신의 탑에서도 이만한 규모의 경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탓이다. 

“오우거다!” 

“오우거가 나타났다!” 

이어 투기장의 문이 열리며 거인 오우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색으로 전신을 칠하고, 상아와 같은 거대한 뿔을 목에 목걸이처럼 건 채로 등장한 그의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야말로 오우거다. 

진짜 오우거보다 더 오우거같은 남자! 

그 거친 모습에 관객들은 단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오우거! 오늘도 화끈하게 부탁한다고!” 

“너한테 전재산 걸었다!” 

“오랜만에 복귀했으니까 제대로 보여줘!” 

무엇보다도 오늘은 오우거가 휴식기를 거쳐 복귀하는 날이었다. 

흥행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오우거의 복귀식! 

하물며 그 대상이 30명의 제물이라면 보는 즐거움은 따 놓은 당상. 

“괴물 오우거를 상대할 30명의 루키들을 소개합니다!” 

진행자가 외치자 반대편의 창살이 걷히며 하나, 둘 도전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30명. 

새로 들어온 신인 중, 오우거와의 대결을 단 한명도 피하지 않은 것이다. 

‘오우거를 이기면 슈퍼 루키로 이름을 날릴 수 있다.’ 

‘30명인데 설마 오우거 한 명 못이기겠어?’ 

그들의 심리 역시도 간단명료했다. 

괴물을 잡아 슈퍼 루키로 이름을 떨치는 것. 

30대 1이라는 스쿼드는 자신감을 붙어넣기에 충분했으니. 

“조무래기들뿐이로군.”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들을 보며 오우거는 혀를 찼다. 

투신의 탑 1층. 이곳에 자신이 온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루키들이 대결하는 장소로 8층에 있는 자신이 내려온 것이니까. 

‘그래도 뭐.’ 

나쁘진 않다. 

그간의 공백을 확실하게 메꿔줄 제물들로는. 

적어도 관람객들에게 확실한 ‘인상’은 심어줄 수 있을 터. 

‘그런데 뭐냐 저놈들은?’ 

그러다가 루키들 중 두 명에게 시선이 쏠렸다. 

오우거는 피식 웃고 말았다. 

‘펭귄이랑 토끼?’ 

투신의 탑이 아무리 보여지는 게 중요한 장소라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되고 층을 올랐을 때의 이야기다. 

1층에서 루키 주제에 저런 식으로 입고 나오는 놈은 거의 없었다. 

물론 간혹 있기는 했으나, 그런 놈들은 대부분 올라오지 못한다. 

그리고 올라오면 더욱 처참하게 찢어발긴 게 오우거였다. 

그런 자신의 앞에서 저런 광대짓을? 

‘토끼는 제법······.’ 

여자의 몸을 눈으로 훑고는 오우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펭귄은 양손으로 목을 뽑고, 토끼는 전라로 꿰어 죽여야겠다. 

살과 뼈가 분리되는 손의 촉감을 상상하자 오우거의 몸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과연 서른명의 루키와 괴물 오우거의 대결은 어떻게 진행될지! 그럼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가 검은색 깃발을 휘두르자, 양쪽 창살이 닫히며 경기가 시작됐다. 

오우거는 무식하게 커다란 몽둥이를 들었다. 

‘우선 가볍게 몇 놈만 박살 내 볼까.’ 

어중이떠중이들. 

자신을 상대로 나서는 놈은 역시나 한 명도 없다. 

패기라도 있을 줄 알았거늘. 

시시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슈웅! 

오우거가 몽둥이를 들고, 그대로 바닥을 박차올랐다. 

“아아! 나왔습니다! 오우거의 전매특허! 하늘 뭉개기!” 

거대한 체구와 달리 가볍기 그지없는 점프. 

그대로 몽둥이 째 바닥을 찍어내리는 평범한 동작이지만, 이 단순한 공격을 받아낸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로 지상과 직격하면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리며 대규모 폭사를 일으키는 오우거의 전매특허 공격법. 

시작부터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피, 피해!” 

“미친!” 

당연히 그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 루키들은 자리를 피하려고 애썼지만. 

이 공격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안 피한다고?’ 

황제펭귄과 토끼녀는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굳어버렸나?’ 

이대로 죽이기엔 아깝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오우거는 지상으로 직격함과 동시에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 순간. 

“어······.” 

“어어······?” 

함성을 내지를 준비를 하던 관람객들 전원이, 두 눈을 치켜뜬 채 입을 벌렸다. 

관람객뿐만이 아니다. 

진행자도, 심지어 경기장의 루키들조차도. 

모두가 할 말을 잃고선 오우거를 바라봤다. 

후두두두둑! 

··· 오우거의 신체가 수십조각으로 동각난 채 비처럼 바닥에 흩뿌려지고 있었으니까. 

“뭐, 뭐야?” 

“보이지도 않았어!” 

“이, 이게··· 루키라고?” 

9대 1의 압도적인 스코어. 

하지만 경기는 고작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끝나버렸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에 함성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두 대형 신인의 탄생이었다. 

오우거의 화려한 복귀식을 예상한 산샤는 경기의 결과에 눈을 비볐다. 

‘방금 그건 뭐지?’ 

펭귄전사와 토끼녀.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움직임.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며 낙하하는 오우거를 베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탑의 관리자인 산샤가 보기에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 초월자다. 그것도 최소 2성 이상의.’ 

초월자가 탑을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저런 식으로 요란하게 오르진 않는다. 

‘컨셉을 잡고 오른다는 건, 상층에 욕심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이곳은 투신의 탑. 

투신이라 이름 붙은 곳 답게 상층부엔 괴물이 득실거린다. 

특히 챔피언은 5년간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경쟁자들과 초월자들을 꺾으며 무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니, 오랜만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길 수도 있겠군.’ 

그러나 챔피언은 일 년 이상 아무런 도전도 받아주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압도적인 포인트를 지녀서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챔피언의 이빨이 빠져서 도전을 피한다고 욕하기도 하지만. 

‘그냥 녀석은 지루해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지닌 누군가가 1년 동안 나타난 적이 없으니.’ 

산샤는 알고 있다. 

챔피언은 결코 겁을 먹어서 도전을 안 받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저 자신의 격에 맞는 도전자가 없어서일 따름이라는 것을. 

하지만 저 슈퍼루키들을 산샤가 확실하게 밀어준다면? 

‘··· 그땐 눈을 돌리겠지.’ 

도전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더 이상 챔피언의 부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여 산샤는 결정을 내렸다. 

저 펭귄과 토끼를 한 번 제대로 밀어보겠다고. 

예상대로였다. 

투신의 탑을 관리하는 산샤가 ‘관종’을 찾고 있다는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빌헬름으로도 챔피언의 자리에는 못 올랐지.’ 

아무리 강해도 인기도와 산샤의 밀어주기 없이는 챔피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산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최상층에 올라서야 알았지. 모든건 산샤의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몰랐으니 그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챔피언이 되려면 우선 챔피언이 도전을 받아주거나, 혹은 경기를 계속해서 챔피언의 점수를 뛰어넘어야만 한다. 

그런데 둘 다 불가했다. 

챔피언은 도전을 받아주지 않았으며, 더 이상의 경기도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샤가 빌헬름이 챔피언이 되는 걸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파격을 보여야만 한다. 

복장은 기본이고 인기도 역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관람객들의 선택. 

끊임없이 만석을 유지하며 올라야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투신의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유리한 쪽에 베팅하며 아슬아슬하게 올라갔을 터.’ 

베팅으로 푼돈 벌겠다고 힘 조절 하면 산샤의 눈에 들 수 없다. 

관람객들도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은 산샤의 존재를 몰랐다. 

물론 이제는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황제펭귄! 황제펭귄!” 

“오늘도 박살 내 버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관람석은 오늘도 매진이었다. 

새로이 등장한 황제펭귄을 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본업을 내팽개치고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관람객 중 50명은 내가 고용한 ‘바람잡이’였다. 

‘재미도 군중심리에 따른 것.’ 

군중심리를 이용하고 움직이면, 사람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 수 있다. 

투신의 탑, 그 꼭대기에 오른 존재. 

챔피언이라 불리며 5년간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은 불패의 신화! 

그 남자가 탑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챔피언. 탑에 재미있는 녀석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를 수행하는 비서가 말했지만, 챔피언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로 별반 감흥이 없었으니.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그저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했을 뿐이다. 

자신을 떨리게 하는 강자를 아직 만나지 못해서다. 

아니, 딱 한 번 만날 뻔한 적은 있었다. 

‘빌헬름.’ 

그 강렬한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놈이 탑을 오르는 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의 경기를 볼 때마다 얼마나 전율했던가. 

빌헬름이라는 자가 탑을 오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챔피언은 단 한 번도 빌헬름의 경기를 직관 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머지않아 빌헬름은 최상층에 도달하여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을 땐 팔짝 뛰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맞붙는구나! 

하지만 자신을 향한 빌헬름의 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샤가 허락하지 않았으니.’ 

탑의 관리인 산샤. 

그는 빌헬름과 자신이 붙는 걸 내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내켜하지 않는 경기를, 자신의 마음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산샤에겐 평생 갚아도 부족할 은혜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아쉬웠다. 

그때 그 남자와 붙어보지 못한 게.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아쉬운 걸 보면, 평생의 한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1년 동안 아무런 도전도 안 받았지.’ 

산샤를 향한 일종의 항의다. 

빌헬름과의 대결이 불발된 이후, 챔피언은 갈증에 목을 태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맞붙으리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수련했다. 

다시 빌헬름이 탑을 오르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원정에서 빌헬름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빌헬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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