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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64화 (164/317)

죄인들이 가진 클래스는 모두 원형이 존재한다. 

예컨대 저 검성의 클래스는 라일리를 흉내낸 것. 

하지만 이 고레벨 수호벽의 주인은, 필시 저 검성과도 궤가 다른 클래스를 이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자신이 오매불망 찾고 있는 ‘클래스’의 보유자일지도 모르는 일. 

그러니. 

“기다려볼까?” 

강제로 부수려면 부수지 못할 것도 없으나. 

억지로 깨부수진 않아도 될듯하다. 

앞으로 십여 초만 기다리면 어차피 수호벽은 깨질 테므로. 

기다렸다가, 수호벽의 주인과 마주하면 될 일이었다. 

그 찰나였다. 

쩌적! 쩌저적! 

유니온이 표정을 굳혔다. 

수호벽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듯했다. 

침략의 시작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붕괴의 소리. 

그 안에서 ‘균형 수호자’의 목소리 역시 들려온 탓이다. 

‘쯧. 레벨을 올렸더니 귀신같이 알아채는군.’ 

저장된 경험치로 힘을 수복하자 ‘균형 수호자’가 움직였다. 

차원을 넘어온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거라.’ 

아무래도 저 수호벽의 주인은 다음에 봐야겠다. 

그러나 유니온의 입가에 미소가 짙게 걸렸다. 

어찌 됐든 가장 맛있는 과실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됐으니까. 

이는 곧 언제든 원할 때 과실을 따서 먹을 수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인벤토리, 무한의 텔레포트 북.” 

지이이이잉! 

유니온이 여유롭게 열린 포탈의 안으로 발을 옮겼다. 

잠깐의 충돌. 

그라시아는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대는 걸 느꼈다. 

“미친······!” 

저런 놈은 판게니아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운석을 저렇게 미친 듯이 소환해대는 놈은. 

심지어 자신의 천검을 파훼하고, 비기조차 쉽게 막아냈다. 

처음 보는 가위와 방패로 말이다. 

마치 필요한 물건을 그때그때 소환할 수 있는 느낌. 

본인의 강함보다, 저 소환된 아이템들의 강함이 더 말이 안 된다. 

저게 정말 마족이라고? 

차라리 플레이어라고 하는 게 훨씬 어울릴 것 같건만. 

“··· 느껴진다.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내 잃어버린 ‘젊음’이 있다.” 

그라시아의 마음이 급해졌다. 

눈을 뜨자 집이었다. 

은평구. 

전과 달리 정리 정돈 되어 있는, 눈에 익은 나의 방. 

몰래 히드라곤을 소환하여 소란을 일으킨 뒤, 허드슨을 로그아웃 시킨 다음에야 나는 겨우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즉시 황금률을 사용해 바깥으로 향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나와 있는 걸 제외하면 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2차 침공은 1차 침공과는 확실히 궤가 다르다.’ 

망자왕 아흐람은 침략하기 전에 막았다. 

그러나 2차 침공은 다르다.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침략을 준비해, 침식률마저 당겨가며 침략을 시작했다. 

아흐람보다 훨씬 더 준비성 있고 치밀한 녀석. 

마침 떠오르는 지옥 군주가 딱 한 명 있었다. 

‘이세라가 침략해왔다면 더러운 싸움이 되겠군.’ 

잡종 이세라. 

놈이 지구를 침략한 게 분명하다. 

아주 더러운 싸움이 예상된다. 

‘그나저나.’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벽이 공격당했다는 글귀를 분명히 봤는데, 보이는 적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상대는 워프를 통해 도망친 건가?’ 

다만, 몇몇 워프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상태. 

수호벽을 뚫지 못해서 도망이라도 친 건지. 

‘별것도 아닌 놈이 설쳤나 보군.’ 

어깨를 으쓱했다. 

수호벽을 공격해온 상대의 레벨은 크게 긴장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에 보게 되거든 확실하게 죽여주리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그라시아?’ 

······ 저놈은 왜 또 한국에 있는 거지?

마혈종의 여왕

영웅 연합의 박태우 단장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없이 떨어지는 운석들. 

저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대한민국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최대한 요격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라시아가 나섰음에도 떨어지는 메테오를 전부 막아내진 못했다. 

‘저건?’ 

그리하여 절망하고 있을 때. 

하늘을 덮듯이 거대하기 짝이 없는 장막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순간, 박태우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수호벽이다!’ 

저 거대한 장막은 플레이어라면 거의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수호벽이라고. 

30초 뒤 사라지는 것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이는 곧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저 수호벽이 자동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저 거대한 수호벽을 지닌 사람이 한국에 있다.’ 

있는 것이다. 

이곳, 한국에. 

아마 눈치챈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리라. 

하지만······ 누굴까? 

‘수호벽의 최대 레벨은 10. 명예의 전당 1순위자에게 지급되는 한계 레벨이다. 그 이상은 이권상점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이권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나, 점수가 너무 많이 든다. 

이권 점수는 거대한 업적, 혹은 메인 퀘스트를 해결했을 때만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최소 13레벨. 어쩌면 그 이상.’ 

그 마법사가 쏟아내던 공격의 위용은 13레벨 안팎에 육박했다. 

3성의 초월자 정도면 실제로 작은 국가 하나쯤은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게 결론이었으니. 

그러한 공격을 막아낸 수호벽이다. 

그것도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한국 전체를 덮을 수준의 수호벽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바, 방금 그건 뭐였을까요, 단장님?” 

“마법사는? 도망친 건가?” 

연합원들도 하늘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박태우의 표정은 잔뜩 굳어버린 채였다. 

10레벨 이상의 수호벽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는 손에 꼽을 정도. 

그 중에서도 저만한 수호벽을 펼쳐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일명 명예의 전당 찬탈자. 

모든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최강의 존재! 

“······ 팬텀이 한국에 있다.” 

팬텀이, 이곳 한국에 있는 것이다. 

제주도 소실 사건 이후,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생명 유지장치를 써서 오랜 시간 로그인을 하는 게 내겐 크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드슨과 달리 나는 생명 유지장치를 쓰지 않아도 장기간 로그인해 있는 게 가능했으므로. 

‘가장 걸리는 건 2차 침공이었지.’ 

무엇보다 2차 침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영국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 

하여, 한국으로 귀국한 뒤 다시 은평구에 머물게 된 것이다. 

‘황금률의 마법사. 놈이 사용한 건 인벤토리다.’ 

그리고 현재. 

직접 부딪히진 않았으나 나는 정보를 종합하는 중이었다. 

메테오를 흩뿌리며 한국을 공격해온 마법사에 대해. 

마법사가 틀림없이 자신의 입으로 ‘인벤토리’라 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현시점에서 메테오를 쓸 줄 아는 플레이어는 없다.’ 

문제는 메테오가 애초에 소실된 스킬이라는 점이다. 

너무 위험해서 여신이 없애버린 스킬 중 하나가 바로 메테오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플레이어는 아니라는 소리. 

‘과거의 플레이어.’ 

······ 하지만, 먼 과거에도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아마도 메테오 스킬과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놈은 마족이 아니야. 확실하게 스킬과 아이템을 이용할 줄 아는 플레이어, 혹은 플레이어였던 자이지.’ 

가만히 턱을 쓸었다. 

이세라와 그의 군단만이 침략의 워프를 넘어올 수 있다. 

그런데 마족이 아닌 인간이 추가됐다. 

‘이세라가 받아줬다는 말인데.’ 

그 철두철미한 놈이 보안을 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고, 황금률의 마법사가 침략의 워프를 넘어 지구로 향하는 걸 이세라가 허락했다는 뜻이다. 

이는 즉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 

이해관계의 일치라는 것은 곧······. 

‘지구의 멸망.’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부합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플레이어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자. 그게 황금률의 마법사다.’ 

놈은 죄인을, 플레이어를 단죄하고자 이세라를 통해 지구로 왔다. 

어쩌면 사신교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제국과 사신교가 황금률의 마법사를 모를 리가 없지.’ 

단순히 밀접한 관계 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보낸 것일 가능성마저도 있었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는다면. 

“이용할 수 있겠군.” 

-캬캬? 

갑자기 소환하자, 공간의 이면에서 튀어나온 헬이 고개를 갸웃했다. 

“헬. 저 워프가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있나?” 

-캬캬캬! 

텔레포트 북을 사용하여 사라진 황금률의 마법사. 

일전 재능을 올리며 레벨이 오른 헬은 이제 워프의 추적마저도 가능해졌다.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됐다. 

‘남은 건 이세라로군.’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한국은 잠잠했다. 

하지만 이건 폭풍전야일 따름이다. 

상대는 이세라. 이대로 조용히 있는 게 더 불안한 놈이니까. 

‘초열지옥의 왕 이세라.’ 

이세라는 진흙탕 싸움의 귀재다. 

두 번째 초열지옥의 왕. 

반월의 뿔과 붉은 인간의 신체를 지닌 반인반용!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자이자 까다롭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놈이다. 

물론 그중 가장 까다로웠던 건 놈의 누나이지만. 

‘놈을 죽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망자왕 아흐람. 

두 번째는 초열지옥의 왕 이세라. 

아흐람은 긴고아에 봉인했다. 그러나 이세라에겐 그런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놈이 모르는 비밀의 패가 있었다. 

“아흐람.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니 어떻지?” 

-크아아아아아! 이 저주받을 놈! 빌어먹을 새끼! 

숨겨둔 머리카락을 꺼내 휘두르자, 펑! 하고 머리카락이 터지며 미니 아흐람이 나타났다. 

긴고아를 머리에 쓴 채로 작아진 망자왕. 

온갖 저주를 내뱉으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긴고아를 풀어주마.” 

-개소리이이이익! 끄아아아악!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 않나?” 

긴고아가 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흐람이 나쁜 마음을 먹을수록 고통은 배가되는데, 아직까지도 저항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고통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꺼허허헉! 이, 일단 들어나 보마. 

“이세라가 현재 설정해놓은 약점이 무엇이냐?” 

이세라는 일정주기로 자신의 약점을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건 지옥의 군주들과 마왕뿐이다. 

저 약점을 알아내려고 엄청난 희생이 따랐던 걸 생각하면, 미리 알아두고 가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리라. 

-그걸 내가 말해주리라 생각했느냐아아악?!! 끄아아악! 멈춰라! 

“날 못믿나? 풀어준다니까?” 

-저, 정말이냐? 

“내 모든걸 걸고 약속하마. 긴고아를 풀어주겠다.” 

-네놈의 뭘 믿고오오옥?! 아프다! 아프다!! 

아흐람이 다시 얌전해졌다. 

대체 얼마나 아프면 지옥왕이 아프다는 말을 저리도 서슴없이 내뱉는 건지. 

아니면 그간의 고통 탓에 머리가 망가진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예전과 달리 나름대로 고분고분해진 아흐람이었다. 

-자, 자폭이다! 

“자폭?” 

-그 이상은 말 못한다! 

자폭. 

스스로 달려들어 폭사하는 행위. 

역시나 이번에도 까다로운 약점을 설정해놓았다. 

아흐람이 소리쳤다. 

-약속대로 어서 풀어다오! 

“오냐.” 

쉬이잉, 펑! 

-이 사기꾼 새ㄲ······! 

긴고아가 다시 머리카락의 형태로 돌아가며 봉인됐다. 

그것을 눈치챈 아흐람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쯧. 순진한 놈. 

애초에 지옥왕과의 약속을 누가 지키겠나. 

‘자폭이라.’ 

어쨌든 이세라를 공략하려면 폭탄처럼 던져넣을 생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게는 마침, 적당한 인재들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의 안에는 내게만 보이는 수많은 ‘눈’들이 존재했으니. 

··· 바로 마혈족들이다. 

희생스킬이야말로 자폭스킬과 똑같은 말이었으니까. 

【마혈족의 규모 : 512】 

다만 일전 대규모 스킬을 사용한 탓에 규모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이세라를 공략하려면 마혈족의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균열의 탑을 올라야만 마혈족을 길들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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