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실······.”
“사실?”
허드슨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 죄인이야.”
“내 마음을 뺏어간 죄인?”
“아니······ 그게 아니고······.”
“걱정마. 식은 일주일 뒤에 진행될 거니까. 내가 다 준비해놨으니 허드슨은 따라만 와.”
“잠깐. 일주일이라고······?”
허드슨은 경악했다.
빨라도 뭐가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
결혼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거였나?
“허드슨은 부모님이 안 계시잖아. 상견례는 필요 없을거고, 몸만 오면 돼. 저주도 풀렸겠다, 더 시간 끌 필요가 없잖아?”
“아니······ 나는 아직 입을 옷도······.”
“그것도 이미 준비해놨어. 대원정 전에.”
“······ 대원정 전에 이미 준비해 놨었다고?”
미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대원정이면 반년도 더 전의 일이다.
살아 돌아오거든 그 즉시 식을 올릴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야 자신도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다.
“왜? 뭐가 걱정이야? 설마 나랑 하기 싫은거야?”
세렝게티의 표정이 급속히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두면 그녀는 끝없이 망상할 것이다.
숱하게 겪어왔기에 허드슨은 재빨리 양손을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난 너뿐이야. 너무 좋아서 그래.”
세렝게티의 표정이 언제 어두워졌냐는 듯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치? 그럼 우리 밥먹으러 갈까?”
“어······ 어어······.”
이게 아닌데.
‘그래. 오늘만 날이 아니니.’
허드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7일 후, 결혼식 당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나도 빠른 진행에 허드슨은 정말 눈코땔 새 없이 바빴다.
‘결국 제대로 말 못했다······.’
하물며 자신이 플레이어임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다.
말을 할 타이밍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날 이후 세렝게티를 볼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도 말이다.
‘이게 맞는걸까?’
이렇게 흘러가듯 결혼해도 괜찮은걸까?
가장 중요한 비밀을 숨긴 채로?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되었으니.
결혼식장.
모두가 모여있는 장소에서.
‘아······.’
드레스를 입은 세렝게티를 본 순간, 모든 고민이 한꺼번에 날아갔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말문이 막힐만큼,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행복도 잠시.
【‘세계의 침식률’의 진행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
【침식률이 20%를 달성했습니다.】
【지구로 마계의 2차 침공이 시작됩니다.】
【공격당했습니다!】
【30초 안에 로그아웃하지 않을 시, 사망합니다.】
2차 침공 시작
“허.”
집무실의 안.
와이저 후작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세렝게티. 자신의 딸아이 때문이다.
-후작님. 아니, 아버지. 저, 허드슨과 결혼하겠습니다.
당연히 결사반대했다.
세렝게티가 어떤 아이이던가.
하나뿐인 딸. 가문의 무남독녀가 아니던가.
아무리 허드슨이 란돌프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은 상인 나부랭이일 뿐이다.
고작 상인에게 세렝게티를 넘겨줄 순 없었다.
-허드슨과의 결혼을 계속해서 반대하신다면.
-반대한다면? 죽기라도 할 테냐?
고작해야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질을 부리려는 거겠지.
죽을 위기를 겪었으니, 다시 한번 생명을 건다면 허락하리라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와이저 후작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얻었다. 세렝게티의 어린 투정 정도야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다.
-빌마임 가에 시집가겠습니다.
-뭐······? 그건 죽어도 안 된다!
하지만 빌마임 가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빌마임. 빌마임이라니!
와이저 후작과 대립각을 이루는 천하의 쌍놈들 아니던가!
그런 천하의 버릇없는 놈들과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생각하니 벌써 속이 안 좋은 기분이다.
-이미 그쪽과도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여기.
-······.
편지 한 장.
빌마임 가의 가주 인장이 찍힌 그것을 보곤 와이저 후작은 사색이 됐다.
필체 역시 빌마임 가 가주의 것이 맞았으니.
내용은 당연히 혼인에 관한 것이었고.
-내, 내 허락도 없이······.
-빌마임 가의 가주는 대머리지만 야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머리지만 상인 나부랭이 따위보다는 낫겠지요.
-너······ 진짜로······?
-허드슨과 식을 올리지 못할 바엔, 빌마임 가에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평생 아버지 욕만 들으며 살겠군요.
상상을 초월한, 생각지도 못했던 수.
자신이 도망갈 길 자체를 없애고 승부수를 띄웠다.
그제야, 와이저 후작은 세렝게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허허.”
어이는 없지만, 와이저 후작에 한정하여 기가 막힌 발상이다.
빌마임 가와는 백 년이 넘도록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관계.
그곳에 가겠다는 건, 단순히 생명을 던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검밖에 모르는 녀석인 줄 알았거늘.’
성장했다.
검밖에 모르던 무식이가 이제는 제대로 된 협박도 할 줄 안다.
심지어 협박만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허드슨 이력서라.’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해왔을까?
수많은 종이들.
그 아래 적힌 허드슨의 이력을 보며 와이저 후작은 다시금 경악하고 있었다.
「황금도시 아르카나 카지노 ‘허드슨’의 주인」
「‘아르카나 의회’ 명예 고문위원」
「정보상회 ‘별과 밤’의 실질적인 단장」
「‘블러드 폴’ 출신. 그중 10인 중 1인」
······.
「‘미궁 상단’ 발족」
「‘미궁 은행’ 출범」
「‘미궁 도시’ 재정, 재무담당 ‘허드슨’」
「‘란돌프’가 가장 크게 신뢰하는 자」
보고서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드슨.
‘이놈 정체가 뭐야?’
이력서에 적힌 대로라면 이놈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다.
어둠에 잠긴 채 시장을 조종하는 어둠의 손 그 자체.
정보를 사고파는 ‘별과 밤’은 그 업계에서 항상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곳이고, 심지어 ‘블러드 폴’의 출신이라면······.
‘이걸 알려줬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건 필시 허드슨이 이야기해준 게 아니다.
세렝게티.
녀석이 직접 알아낸 것이다.
세렝게티는 생각보다 허드슨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적힌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를 만큼.
‘란돌프가 가장 크게 신뢰하는 자.’
게다가 마지막 부분.
저것을 ‘이력’이라 할 수 있을까?
허나, 란돌프에 대해서 안다면 저 또한 이력이 될 수 있다.
‘함께 다니는 자들보다도, 허드슨을 신뢰한다?’
와이저 후작은 턱을 쓸었다.
란돌프는 기사형의 인간이다.
당연히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는 자들에게 더 정이 갈 터.
허드슨은 상인의 기질을 살려 도시를 담당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란돌프와 함께하는 시간은 적다.
그런데도 ‘가장 크게 신뢰한다’고 세렝게티는 확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일까?
‘사실이겠지.’
세렝게티는 란돌프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다.
녀석이 그렇게 보았다면, 그럴 터였다.
하물며 결혼식에 대한 세렝게티의 준비력에 와이저 후작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덧 미래를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성장해 있었다.
‘검을 제외하고 이 정도로 진심이었던 게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 아이의 몰랐던 부분을 이제야 발견한 것만 같아서.
“벌써 그 아이가··· 허헛.”
결혼.
결혼식이라.
허나 세렝게티는 이미 혼기를 넘겼다.
“시기는 아무래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그러니 식을 올리는 건 빠를수록 좋으리라.
나머지는 이제 누구를 부르느냐인데.
‘긴급으로 죄다 불러야겠구나.’
돈은 많이 들겠지만, ‘긴급’으로 호출한다면 모두 모이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모든 친인척들과 관계자들의 축복 속에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맞이하게 해주리라.
아비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뿐이었으니.
*
허드슨의 두 눈가가 미칠 듯이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렝게티의 모습에 넋이 나가 있었건만.
지금 떠오른 메시지들은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신랑이 신부를 보고 아주 넋을 잃었나 보군.”
“괜찮은 한 쌍이야.”
“세렝게티! 어미를 쏙 빼닮았구나.”
아아······.
식장에 모인 수많은 하객들.
그들은 모두 와이저 후작의 친인척들이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 200명이 넘는 하객들이 지금 허드슨과 세렝게티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허드슨이 부른 하객은 스무 명이 될까 말까 했지만 와이저 후작 덕분에 사람이 꽉 찼다.
그야말로 성대하기 짝이 없는 결혼식.
이보다 축복받은 결혼식이 어디 있을까.
【6Lv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수호벽(7Lv)’의 남은 시간 24초】
【24초 안에 로그아웃 하지 않을시, 사망합니다.】
문제는 그 와중에도 지구에서의 몸은 공격받고 있다는 것.
··· 허드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신이 지닌 수호벽의 레벨은 고작해야 7.
7레벨 이하의 공격을 30초 방어하는 기능이다.
만약 더 강한 공격이 들어오거나, 30초가 지나거든, 허드슨은 죽는다.
‘어떡해야?’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 결혼식장을 벗어나, 로그아웃 하는 것 말이다.
2차 침공이 시작되어 안전지대가 있을까 싶지만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다시 로그인 한다면······.
‘불가.’
불가능하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두가 자신을 ‘죄인’이라 확신하게 되리라.
세렝게티가 자신을 ‘죄인’으로 아는 것과, 와이저 후작과 그의 친인척들 모두가 알게 되는 건 하늘과 땅의 차이다.
결혼은커녕 사신교에 신고되어 죽을 운명이었다.
혐오하며 자신의 시체에 침을 뱉고 혀를 차겠지.
【7Lv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수호벽(7Lv)’의 남은 시간 19초】
【19초 안에 로그아웃 하지 않을시, 사망합니다.】
“왜 가만히 있지?”
“너무 굳은 거 아니야?”
“하하. 긴장했나 보군.”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그나마 화장으로 얼굴의 낯빛은 가렸지만, 표정이 너무 굳어버린 탓에.
···점점 공격은 거세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진짜 죽는다.
당장이라도 로그아웃 해야 된다.
세렝게티와의 결혼을 포기하느냐, 목숨을 걸고 진행하느냐.
허드슨이 겨우 고개를 들어, 란돌프를 바라봤다.
하지만 란돌프를 바라본다고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란돌프는 현재 한국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반면 자신은 영국에 있다.
그것도 고립된 외딴섬에.
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괜찮은 걸까?
【7Lv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수호벽(7Lv)’의 남은 시간 14초】
【11초 안에 로그아웃 하지 않을시, 사망합니다.】
“상인이라 기사 가문에 압박을 받은 건 아닐까?”
“하긴 여기 모인 기사 출신만 백 명이 넘으니.”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허드슨의 태도를 은연히 비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기사 가문 출신들답게 남자답지 못한 허드슨의 태도가 답답한 자들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7Lv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수호벽(7Lv)’의 남은 시간 8초】
【4초 안에 로그아웃 하지 않을시, 사망합니다.】
8초.
이제는 뒤가 없다.
답이 없다.
‘어떻게 해야······.’
콰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