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59화 (159/317)

그렇다. 

세상을 휘어잡을 듯 거대하기 그지없었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주하며 대치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욕망의 크기를. 

그러나 그저 욕망이 크다 하여, 엘프들이 이처럼 경악할 리는 없었다. 

‘욕망이······ 살아있어······?’ 

움직인다. 

저 거대한 욕망이. 

수백, 수천 명의 욕망을 합쳐놓은 것만 같은 그것이. 

물결치며 마치 하나의 존재처럼 형상화하더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게 있다는 말은 엘프 여왕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우릴! 물러나세요! ‘욕망’에 전염되기 전에!” 

아루웬. 

엘프 장로인 그녀가 크게 외쳤다. 

엘프는 욕망적인 존재를 싫어한다. 

그들의 욕망이, 엘프를 더럽히기 때문이다. 

엘프를 전염시키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탓이다. 

예컨대······ 인간과 자식을 낳는 일과 같은 일들을. 

하지만 ‘월계수의 전사’가 욕망에 전염될 일은 없다. 

문제는 저 남자다. 

“먼저 공격해놓고 이제는 병균 취급이로군.” 

저 남자의 욕망은 다른 인간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건 무슨 욕망이란 말인가? 

얼마나 강렬한 욕망을 지녔기에 저처럼 거대하며, 마치 살아있는 듯 형상화까지 한다는 말인가! 

저 남자야말로 엘프의 천적이다. 

저 남자가 태초의 숲에 발을 들이면, 그 순간 엘프는 멸망하리라. 

빠드득! 

아우릴이 입을 강하게 물었다. 

그러자 입안이 터지고 피가 흐르며, 마침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월계수’의 주인이시여!” 

촤르륵! 

아우릴의 전신에서 월계수가 돋아났다. 

마치 날개처럼. 투구처럼. 갑옷처럼. 

진정한 월계수의 전사가 된 것이다. 

아우릴이 검을 들었다. 

검은 더욱 길고, 뾰족하게 다듬어져 남자를 노리는 중이었다. 

쐐에에엑-! 

“쯧.” 

작게 혀를 찬 남자가 ‘겨울’을 들었다. 

동시에. 

까앙! 

“······ ?!” 

단 한 차례의 검격에, 아우릴의 전신이 튕겨 나갔다.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손목이 저릿하다. 

월계수의 전사로서 완벽한 모습을 갖춘 자신보다, 저 남자가 강하단 건가? 

세렝게티라 불린 여자와 크게 차이도 안 나 보이건만. 

깡! 깡! 까아앙!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였으나 흠집도 내지 못했다. 

마치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모두 읽는 것만 같았다. 

아우릴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속 시간이······!’ 

각성과도 같은 기술. 

당연히 지속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30여 합을 더 나눴을 때, 아우릴의 각성은 풀려버렸다. 

‘말도 안 돼! 각성한 나보다 더 강한 인간이 있을 리가 없잖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여왕이 말하길, 인간 중에선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지금 버젓이 자신의 앞에 있었으니까. 

“아······.” 

자신보다 강한 인간이.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 무기를 다루는 기술 역시도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닿지 않는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곧이어 아우릴의 각성이 풀리자, 다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툭. 

그 상태에서 남자가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왔다. 

“머, 멈추세요!” 

“아우릴! 안 돼!” 

엘프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아우릴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남자의 손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제, 제발······ 멈춰······.” 

겨우 입을 열어 멈추라 빌었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툭! 

이윽고 남자의 손이 아우릴의 머리에 닿았다. 

그 찰나. 

스아아아아아아! 

거대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욕망’이 아우릴을 전염시키기 시작했다. 

진저리쳐질 정도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욕망이 해일처럼 아우릴의 전신을 덮쳐온 것이다. 

나는 가만히 아우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자지러지듯 엘프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내 취급이 너무하군.’ 

이래서야 병균보다 더 끔찍한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를 본 엘프들이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여 반 장난식으로 머리에 손을 얹은 것이다. 

그러자. 

【‘란돌프’의 욕망이 엘프 ‘아우릴’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합니다.】 

【히든 특성 ‘대자연의 하이 드루이드’가 엘프 ‘아우릴’의 ‘월계수’를 지배합니다.】 

···음? 

내가 엘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자, 욕망의 전염과 함께 진화한 히든 특성인 ‘대자연의 하이 드루이드’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신록의 주인

엘프 족장 아루웬. 

그녀는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그 탓에 아우릴이 달려나가는 걸 제지하지 못했고, 순식간에 둘이 격돌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욕망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저 남자에게서 보이는 욕망은 엘프에게 치명적이라는 걸. 

상극의 수준이 아니라, 치사량에 달하는 욕망이다. 

엘프들을 전염시키고 변형시키는 나쁜 욕망. 

하지만 저 정도 수준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살아 움직이는 욕망이라니!’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장로 역시도 처음 보는 것. 

새까맣기 그지없는 욕망이, 살아 움직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아.’ 

하지만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각성. 

월계수의 축복을 받는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가능하다. 

‘월계수의 전사는 여왕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전사들.’ 

엘프의 전사에는 단계가 있다. 

그중 월계수의 전사는 6단계. 엘프 여왕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로만 구성된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월계수의 전사 중에서도 아우릴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 

적어도 인간 중에선 적수가 없으리라 여겨지는 단계였다. 

‘검강. 7단계의 전사······!’ 

그럴진대. 

인간의 검에서 검강이 돋아났다. 

검강은 오직 7단계 이상의 전사들만 발현할 수 있는 비기. 

세계수의 선택을 받은 전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였다. 

7단계부터는 세계수의 전사라 칭해지며 당연히 엘프 중에서도 극소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 중에선? 

글쎄, 레벨 제한이 10에 불과한 인간들이 검강의 단계에 어찌 진입하겠는가. 

하물며 세계수와 같은 지고한 존재의 축복조차 받지 못한 인간이 말이다. 

오로지 그들이 더 강해질 방법은 여신의 시체를 이용한 한계돌파의 방식. 

토악질 나올 만큼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다. 

‘당연히 7단계에 진입한 전사는 인간 중에선 없을 줄 알았는데.’ 

저만한 욕망을 지녀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쟁취한 검강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실력의 대결로 향한다면 아우릴이 질 리가 없어.’ 

아우릴은 노력형의 천재다. 

같은 월계수의 전사 중에서도, 실력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만약 저 인간 남자가 그릇된 욕망으로 검강을 손에 넣은 것이라면, 아우릴을 상대하긴 벅찰 터였다. 

‘······.’ 

그럴 터였는데. 

··· 저건 뭐지? 

월계수로 각성한 아우릴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낸다. 

마치 아우릴의 공격을 전부 읽기라도 한 듯이. 

둘이 검을 나눈 지 채 30합이 지나지 않아, 아우릴의 각성은 끊겨버렸다. 

저게 아우릴의 유일한 약점이다. 

각성의 시간이 다른 엘프들에 비교해서도 지극히 짧다는 사실이. 

월계수의 잎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게. 

월계수의 축복을, 월계수의 재능을 제대로 지니지 못해서다. 

“아, 안 돼!” 

각성이 끊긴 아우릴은 다시 욕망의 영향권에 사로잡혔다. 

움직이지 못한 채로, 남자가 그대로 손을 뻗은 것이다. 

그 순간. 

구오오오오오. 

욕망이, 아우릴을 덮쳤다. 

입을 벌려 그대로 아우릴을 삼켜버렸다. 

“아우릴!” 

“안 돼!” 

엘프들이 깊게 탄식을 흘렸다. 

아루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 욕망을 아우릴은 감당하지 못할 테니. 

‘이럴 줄 알았으면 세계수의 전사를 대동했을 텐데······!’ 

실책이었다. 

하지만, 저런 인간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 인원으로도 충분하다고,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고 자신하며 태초의 숲을 나온 그 순간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오직 세계수의 전사뿐. 

그들과 함께했다면 이런 사태가 오는 건 막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건. 

“뭐, 뭐야?” 

“아우릴의 월계수가······!” 

“자, 자라나고 있어?” 

욕망에 먹혀버린 아우릴의 상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월계수의 어린잎이 갑자기 급속성장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고작 머리 위에 손을 올린다고 월계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존재는 세계수와 세계수의 수호자인 여왕뿐이다. 

그러나 여왕조차도 저 정도의 ‘급속성장’을 만들어낼 순 없었다. 

하물며 아우릴은······ 월계수의 성장이 극히 느렸던 부류. 

여왕조차도 어찌하지 못한 성장을, 어떻게 저 남자가? 

“신록의 주인······.” 

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바스락 숲’에 존재하는 신록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신들이 찾고 있던, 여왕이 직접 명하여 찾으라 하였던, ‘균열의 탑’을 오른 인물 말이다. 

대체 인간이 무슨 방법으로 신록의 주인이 되었나 궁금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저건······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신록이 직접 주인이라 인정할 정도의, 보다 상위의 존재였다. 

‘저런 걸 할 수 있는 종족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어······!’ 

드라이어드도, 엘프도, 인간조차도 아니다. 

전설 속의 종족. 

모든 자연의 주인이라 일컬어지는 그들 중에서도 보다 격이 높은 존재만이 저런 기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진 종족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오직 전설로만 화자 되는 종족이었다. 

대륙이 천공에 떠오르기도 전에 있었으나, ‘멸망’에 의해 전부 사라졌다고 알려졌다. 

“아아!” 

아우릴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월계수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오로지 재능의 영역이라 여기고 있었으므로. 

반쯤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건만. 

그러나 지금 아우릴은 기적을 경험하고 있었다. 

평생 자라지 않았던 월계수의 잎이 전신에서 자라나는 중이었다. 

누구보다도 화사하게, 아름답게. 

아우릴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천천히 머리 위에서 손을 떼었고. 

동시에 자라나던 월계수의 잎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안돼······.” 

탄식을 흘려낸 아우릴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평생 노력해도 닿지 못했던 잎의 성장이다. 

그것을 눈앞에서 보고, 경험했는데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갈망. 

그것은 어느 감정보다도 우선시되는 욕망이다. 

아우릴은 지금 욕망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엘프에게 있어선 금기시되는 일. 

언제나 자연과 함께 초연해야만 하는 것이 엘프인 탓이다. 

아우릴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욕망에 사로잡혀도, 성장할 때 느꼈던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서. 

평생을 염원했던 그 순간의 감각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 아우릴, 멈추세요.” 

하지만, 아우릴의 갈망은 닿지 못했다. 

아루웬. 

엘프의 장로인 그녀가 발을 떼어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손을 뻗어 제지한 것이다. 

이어 아루웬은 남자를 바라보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제 아이가 결례를 끼쳤습니다.” 

“자, 장로님!” 

“어떻게 저런 인간에게······!” 

엘프들은 경악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