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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58화 (158/317)

‘저 여자는 인간이 아닌데?’ 

아우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것과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괴물. 그것도 엄청나게 추악한 괴물.’ 

보는 즉시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저 여자는 인간과 거리가 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몇 개의 냄새가 섞여서 난다. 

그건 아주 위험한 존재의 냄새였다. 

‘감정이 없어?’ 

무엇보다 욕망이, 감정이 없었다. 

무색. 

허나 생명체라면 모두가 크든, 작든 욕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간은 그중에서도 가장 욕망적인 존재. 

그럼에도 욕망이 없다.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시체. 언데드!’ 

아우릴이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아우릴뿐만이 아니다. 

같이 온 ‘월계수의 전사들’ 모두가 저 여자를 보곤 공격 태세를 취했다. 

엘프는 언데드와 천적이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공간에 함께할 수 없다. 

혐오의 수준을 넘어선 적대감. 

보는 것만으로 강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들의 무리 안에 왜 언데드가 있는 거지? 

“성대한 환영식이로군.” 

······ 막 도착한 남자 한 명이 공격 태세를 취한 엘프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함께 온 다른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아루웬············?” 

엘프 장로의 이름을 부르며,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앤드류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지금 워프 앞에 서 있는 엘프. 

그녀는 분명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아루웬이었다. 

자신과 안다사르를 버리고선 태초의 숲으로 돌아간 여자. 

매정하게 편지 한 장만 남겨둔 채로 사라졌다. 

편지의 내용은 별게 없었다. 

그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 그게 다였다. 

한참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태초의 숲으로 가보려고 했지만 안다사르가 눈에 밟혀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생 다신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왜 이곳에?’ 

허. 

란돌프를 찾아온 엘프 장로가 설마 자신의 아내였던 아루웬일 줄이야. 

그러나 아루웬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안다사르에게 향해 있었다. 

‘아아.’ 

그와 동시에 앤드류는 세상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딸이 언데드가, 리치가 된 걸 그녀 역시도 알아차린 것만 같아서. 

만약 그렇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니. 

잠시의 소강상태. 

저 사제복을 입은 인간이 어떻게 장로님의 이름을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는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야 해.’ 

그보단 언데드가 더욱 거슬렸다. 

아우릴은 모든 언데드를 없애도록 교육받았다. 

엘프 여왕의 아래에서 직접 수업했으며, ‘월계수의 전사’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강의 전사. 

그렇기에 더더욱 언데드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다. 

아마도 인간인 척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는 것 같은데. 

아우릴의 양쪽 발에 날개처럼 월계수 잎이 돋아났다. 

“아우릴······!” 

쐐에에엑! 

장로가 말릴 틈도 없이, 바람을 타며 순식간에 달려 나간 아우릴이 허리춤에서 오래된 나뭇가지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나뭇가지 위로 거룩한 검의 형상이 입혀졌다. 

언데드는 이 검 앞에 단번에 스러지리······! 

까앙-! 

팔목이 순간 저릿하게 울리며 아우릴이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선 탓이다. 

“엘프들은 원래 이렇게 예의가 없나?” 

환영식을 운운했던 남자. 

그가 겨울처럼 시린 검을 들고 자신을 튕겨낸 것이다. 

‘검강?’ 

검의 주변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저건 분명히 검강이었다. 

세계수의 선택을 받은 자, 혹은 7단계 이상의 강력한 전사만이 사용 가능한 비기와도 같은 것. 

설마 인간 중에서 저 단계에 진입한 자가 존재할 줄이야! 

‘아.’ 

언데드에 정신이 팔려, 남자를 관찰하지 못했다. 

안일했다. 

월계수의 전사로서 저질러선 안 되는 실수였다. 

그런데. 

“뭐······ 야?” 

“저, 저건······ 저런 게 있을 수 있는 거야?” 

“아우릴······ 도망쳐!” 

겨울을 쥔 남자. 

인간들이 후계자라 부르던 남자를 본 엘프들이, 갑자기 몸을 벌벌 떨며 경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우릴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몸이 돌처럼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저 욕망은······!’ 

남자에게서 보이는 욕망의 형태. 

저런 건 정말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히든 특성, 대자연의 하이 드루이드

흑왕. 

전신이 새카만 흑색의 사자왕. 

백왕과 상당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으나, 색깔만은 확연하게 대비되는 그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어!” 

“다 쓸어버려!” 

“개미 새끼들한테 지지 마라!” 

“귀찮은 지네 놈들!” 

절벽의 아래. 

그곳에선, 거대한 벌레들이 서로 영역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남만에 서식하는 충류의 괴물들. 

본래 보잘것없었으나, 흑왕의 ‘은혜’로 말미암아 높은 지능을 획득한 뒤로 끊임없이 서로를 증오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흑왕이시여. 저놈들은 아직도 결판이 안 난 겁니까?” 

그 뒤로 다가온 다크엘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크엘프를 비롯한 균열의 탑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음, 최강의 벌레를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구나.” 

흑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고독(蠱毒) 

남만의 한 종족은 온갖 종류의 벌레들을 항아리 안에 가둬, 그중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은 벌레로 독을 만드는 관습을 지녔다. 

그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최강의 벌레 괴물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지능이 높아져서인지 전쟁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부여한 ‘은혜’가 문제인 모양. 

흑왕은 턱을 쓸며 말했다. 

“‘대현자’를 부여한 게 실수였나보다. 차라리 ‘돌연변이’를 부여해볼 걸 그랬나?” 

“그랬다간 다 죽어버리지 않겠습니까?” 

“한 마리쯤은 적응해서 살 법도 하지 않느냐? 물론, 그런 경우는 여태껏 없었다만······.” 

흑왕은 ‘은혜’를, ‘히든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까다로운 히든 특성 중 하나가 돌연변이였다. 

돌연변이를 부여하면 죄다 버티질 못하고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현자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결국 최강의 한 마리를 가리고자 한다면, 그만한 도박수는 던져야 하지 않았을지. 

흑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탑을 오른 건 다섯 명. 

그런데 지금 보이는 건 네 명뿐이다. 

“마스터는 죽었나 보군.” 

“예. 처음부터 그런 쓰레기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도움이 안 되는 놈이었다. 

놈의 감언이설을 믿고 같이 탑을 오른 게 최악의 선택이었다. 

결국 혼자 죽어버린 뒤 1위 파티에게 점수만 몰아주지 않았나. 

“어찌 됐든 실패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흑왕은 그들 전체의 실패를 이야기했다. 

결국 실패는 실패다. 

누가 잘못했든 파티 단위로 움직여서 나온 결과다. 

이건 그들 모두의 실패와 같았다. 

그러자 다크엘프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그, 그게······ 흑왕이시여. 알 수 없는 방해자가 있었습니다. ‘버그’를 쓰는 놈이······.” 

“버그라······.” 

“분열된 영역을 혼자서 이동하는 놈입니다. 탑의 관리자도, 1층의 군주도 상정하지 못한 존재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대토룡을 죽였습니다.” 

맨손으로 돌아온 건 아니다. 

1위 파티에 대한 추측과, 백왕 산하의 대토룡을 죽였다. 

흑왕이 그제야 조금 흥미로운 눈빛을 던졌다. 

“대토룡을? 누가 말이냐?” 

“······ 락투샤입니다.” 

“그래? 정말로 대토룡을 죽였나?” 

흑왕의 시선에 락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검에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절대로 살 수 없을 겁니다, 흑왕이시여.” 

“죽은 걸 본 것은 아닌가 보구나.” 

“······.” 

“쯧쯧. 대토룡은 살아있다.” 

“······ 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락투샤가 당황했다. 

검강을 입힌 흑천검에 당했다. 

생명체라면 절대로 살 수 없는 치명상과 함께. 

한데, 직접 본 것도 아닐진대 흑왕은 대토룡을 살아있다고 말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흑왕이 손가락을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거인. 

세계를 뒤덮을 것만 같이 큰 저것이 바로. 

“‘절망’이 보이느냐?” 

“······ 예, 흑왕이시여. 잘 보입니다.” 

절망. 

사흉 중 하나이며, 흉신 바알과 달리 이름 그 자체가 이명이었던 존재. 

다른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흑왕의 은혜를 입은 그들에겐 보기 싫어도 보인다. 

현재 사왕과 융화 중이며, 깨어나면 감히 흑왕 최고의 패가 되리라 확신하는 괴물. 

“백왕과 처음부터 함께한 네 명의 주력들은 서로 심상이 이어져 있다. 대토룡이 죽었다면, 필시 반응이 있었을 테지.” 

“아아······.” 

락투샤가 탄식을 흘렸다. 

살아있다니. 

자신의 공격을 받고,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살아 있을 리 없는 대토룡이 살아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버그’ 사용자가 관여했을 터. 그의 얼굴을 보았느냐?” 

“······ 못 봤습니다. 다만, 인간과 드라이어드의 파티였음은 확실합니다.” 

“그래? 그럼 엘프들이 접촉했겠군.” 

“태초의 숲속 엘프들이 말입니까?” 

흑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떠오른 균열의 탑. 

그 클리어 보상을 확인한 이상, 엘프들이 움직이지 않을 리 만무했다. 

특히 ‘드라이어드’라면 숲을 매개로 살아가는 존재. 

세계수의 가호를 받는 엘프들이라면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흑왕이시여. 엘프들은 외부와 접촉을 꺼리지 않습니까?” 

“세계수가 죽어가고 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을 거다.” 

“세, 세계수가······?!” 

태초의 숲 중심에 존재하는 세계수. 

이름 그대로 세계를 감쌀 듯이 뿌리를 뻗은 거대한 나무다. 

엘프의 상징이자 생명과도 같은 그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계수가 죽으면 창공의 대륙들이 심연으로 꺼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게 세계수이건만. 

흑왕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해주었다. 

“세계수와 엘프는 하나다. 세계수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엘프들도 죽어가고 있다는 뜻. 엘프들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태초의 숲에서만 수백, 수천 년을 살았다. 

고이고 고여 썩어버린 게다. 

오직 ‘맥스 레벨’을 올려, 한계 돌파를 시도해야만 연명할 수 있다. 

락투샤가 긴장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엘프들이 접촉했다는 건······.”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탑을 오르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버그 사용자’와 함께. 

흐음. 흑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재밌는 놈이 나타났나 보군.” 

탑이 인정하는 버그 사용자라.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애당초 관리자가 정해놓은 규칙을 깰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으므로. 

그런데, 규칙을 깨고 자신의 측근들을 재친 채 압도적으로 탑을 클리어한 놈이 있다. 

‘규칙을 깬다. 히든 특성······ 가능한 경우라면 그뿐인데.’ 

탑의 규격을 넘어서는 기능은 오직 히든 특성뿐이다. 

하지만, 흑왕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히든 특성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부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격을 넘게 해준다. 

하지만, 탑의 규칙을 깨는 히든 특성이라······. 

‘천상, 그도 아니라면 운영자.’ 

그나마 한 가지 가능성의 수는 천상. 

유일하게 부여할 수 없는 히든 특성인 그것. 

하지만 천상은 결코 몸에 익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조차 아니라면 정말 운영자뿐일 거다. 

대체 누굴까. 

고오오. 

그때였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전쟁이 끝났다는 뜻이다. 

흑왕이 다시 절벽 아래를 바라보았고, 언제 고민을 했냐는 듯 밝게 미소 지었다. 

“오호, 드디어 탄생했구나. 개미의 왕. 너희의 동료가 말이다.” 

“······ 아.” 

아우릴이 단말마를 흘렸다. 

왜 못 봤을까. 

저만한 ‘욕망’이라면 처음부터 보여야 정상이거늘. 

‘너무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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