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가 되며 얻은 메인 스킬 중 하나.
별 할퀴기와 함께, 상대의 ‘한계 저주’를 지워내는 축복 스킬이다.
한계 저주란 말 그대로 ‘한계’를 두는 저주를 뜻한다.
사막여왕이 이자벨라에게 걸었던 ‘워프 이용 불가’의 저주나, 세렝게티를 영원히 잠들토록 할뻔했던 ‘마왕의 저주’가 그러하다.
이 역시 마찬가지.
다만, 만능은 아니라 ‘별의 축복’을 사용할 수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있는데, 다행히 지금은 전자의 경우였다.
모든 한계와 악업을 지운 안다사르를 잠식하긴 쉽지 않으리라.
《‘엘드리치의 저주받은 흑마법서’가 안다사르에게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흡수를 완료했습니다!》
《‘듀라한 안다사르’가 ‘아크 리치’로 진화합니다!》
······ 음?
나타난 결과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크 리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데미 리치, 마스터 리치는 들어봤어도 아크 리치라니.
그것도 아크(Arch)가 아니라 아크(Ark)다.
노아의 방주의 이름이 바로 아크(Ark)였다.
하지만 리치의 이름 앞에 붙을 종류의 것은 아니지 않나.
리치가 되면 필연적으로 악업이 쌓여, 성스러운 방주를 뜻하는 ‘아크’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설마 별의 축복과 앤드류의 무한 면죄부가 이런 변화를 만든걸까?
“아······.”
앤드류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서서히, 안다사르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진 목이 붙고, 창백하던 피부에 조금씩 생기가 일어나고 있다.
“안다사르······!”
생전 안다사르의 모습 그대로 변하자, 앤드류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곤 재빨리 달려가 안다사르를 안았다.
이윽고 앤드류의 품에 안긴 안다사르가 눈을 떴다.
“아··· 빠?”
“나, 나를 알아 보겠니? 아아, 여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긴······ 어디에요?”
“아빠의 집이란다. 이제 괜찮은거니? 오오, 맙소사!”
영락없는 죽은 자의 소생이다.
그렇게 둘은 한참이나 해후를 나눴다.
하지만, 나는 앤드류처럼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Lv. 12】
순식간에 12레벨로 격상한 안다사르는 이미 평범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탓이다.
물론 단순히 레벨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고종이자 고요한 요람의 주인인 ‘아크 리치’는 생전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전의 기억을 갖고만 있을뿐 진정한 생전의 인간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크 리치’는 인간의 기억을 가진 리치일 뿐이며, 인간을 연기할 수는 있으나 감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크 리치’가 존재하는 주변영역은 ‘고요한 요람’ 특성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정기를 흡수하지 못할시 형태를 잃고 폭주합니다.】
······ 그녀에 대한 설명이 계속해서 보인다.
‘진리탐구로 대현자의 기능이 추가됐다는 게 이건가보군.’
재능, 진리탐구.
필요한 포인트가 막대하여 3레벨까지밖에 못 올렸다.
그런데도 히든 특성 ‘대현자’에 기능이 추가됐다고 하였다.
그게 이건가보다.
그나저나 지고종에, 고요한 요람의 주인이라.
예사롭지 않은 설명.
곧이어 또 다른 문장들이 추가됐다.
【‘아크 리치’의 종족특성은 3~6개 사이의 무작위 히든 특성을 지니며, 최대레벨은 15입니다. 생전의 재능에 따라 관련된 ‘대마법사’의 클래스와 함께 모든 속성에 50% 면역을 갖습니다. 만약 ‘아크 리치’의 마스터가 ‘아크 리치’보다 약하다면, ‘종속’의 관계가 뒤바뀝니다.】
【현재 ‘아크 리치’의 마스터는 ‘란돌프’입니다.】
쿨럭!
이어진 설명을 보곤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진짜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살벌한 재능에 영역 특성까지.
히든 특성도 다수 지닌 데다, 최대 레벨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클래스도, 속성 면역도,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 미쳤군.’
그 모든걸 확인하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체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심지어 미래까지 확실하게 보장되어있는 절대 완전체!
투자한 보람 이상이다.
미궁 도시의 수호자로 이보다 더 적합한 존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나를 마스터로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다사르는 정상적으로 나를 마스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식은땀이 절로 나는 순간이었다.
만약 지금이 아니라 예전 황금률 상점을 막 열었을 때 안다사르를 아크 리치로 만들었다면, 영락없이 내가 종속될 뻔했으니까.
“······ 감사합니다, 란돌프 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요! 아아아!”
첫 번째 설명을 봐서인지.
차마 저 아크리치가 안다사르를 연기하는 리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저토록 기뻐하는데 찬물을 끼얹을 수가 있겠나.
그냥 묵묵히 들어만 줄 따름이었다.
그러길 오분여 즈음.
“후, 후계자님! 빨리 오셔야할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급하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등을 돌려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 무슨 일이냐, 허드슨?”
문을 열자, 허드슨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와이저 후작의 성에서 세렝게티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할 허드슨이 왜 이곳에?
이윽고 내 앞까지 미친듯이 달려온 허드슨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큰일이라니.
아이작을 해결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큰일이란 말인가.
허드슨의 큰일이라는 저 소리가 이젠 호환마마보다 무서울 지경이다.
내가 표정을 굳히며 바라보자 허드슨이 더욱 다급하게 외쳤다.
“에, 엘프 장로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후계자님을 데려가려고 워프 앞에 모여있습니다······!”
············ 잠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엘프 장로가 뭐?
나를 찾아왔다고?
월계수 엘프 아우릴
엘프.
판게니아에서 가장 신비한 종족이라 불리는 게 바로 그들이다.
어쩌면 제국의 황족들보다도 더욱 폐쇄적이며, 은밀하기에 엘프에 대한 정보 역시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이머 중에선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루고, 달성했다 생각하는 나조차도 엘프와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을 정도였으니.
‘엘프 장로가 왜 나를?’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바깥으로 나오는 일 자체가 없는 그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소리다.
심지어 워프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과 엮일 일이 없다.
‘엘프족의 장로라······.’
특히 엘프족의 장로와 엮일 일은 더더욱 없었다.
장로. 한 마을을 대표하는 장이다.
하지만 엘프는 마을 단위가 아닌 ‘태초의 숲’에만 뿌리를 내렸기에, 그곳의 장로라 하면 태초의 숲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권력자라는 말이었다.
그 정도의 지위를 가진 자가, 숲을 벗어나 혐오하는 인간의 도시로 왔다.
그것도 나를 만나기 위해서.
대체 왜?
“나를 찾아온 이유는 말 안 하던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묻자 허드슨이 답했다.
“바스락 숲을 언급하긴 했습니다. 바스락 숲에 있는 신록의 진짜 주인과 만나겠다고요.”
“바스락 숲이라면 롬멜이 있을 텐데.”
“롬멜이 신록의 주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흠.”
천천히 턱을 쓸었다.
신록의 진짜 주인이 나라는 걸 알고 찾으러 왔다는 뜻이다.
이미 한 번 바스락 숲에 다녀왔다는 의미고.
“엄청난 기세였습니다. 세렝게티도 한발 뒤로 물러날 정도로.”
“······ 세렝게티가?”
“예.”
이건 조금 의외였다.
지금 세렝게티의 무력은 압도적이다.
12레벨에 1성을 달성했으니, 인간계에선 적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세렝게티가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고요하다.
적어도 무력을 사용해 부딪히고 있지는 않다는 말.
“마스터. 적인가요?”
그때였다.
앤드류의 품에 안겨있던 안다사르가 나를 향해 말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슬픈 눈과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오뉴월의 눈보라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순식간에 돌변한 태도.
연기라면 정말 엄청난 수준이다.
감정 없는 인형. 고요한 요람의 주인, 아크 리치 안다사르.
《아크리치 ‘안다사르’가 ‘고요한 요람’의 적용을 요청합니다.》
《‘고요한 요람’을 ‘기사의 정원’에 적용하시겠습니까?》
《적용할 경우 안다사르가 ‘고요한 요람’을 이곳에 만들어냅니다.》
《‘고요한 요람’은 요람에 있는 자들의 정기를 빨아들이며, 안다사르를 강화합니다. 요람에 있을시 안다사르는 ‘고대종’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돌연히 그녀가 전투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고요한 요람.
그건 안다사르 고유의 영역 스킬이었다.
그 안에선 ‘고대종’의 모습으로 변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렝게티, 아이작, 안다사르, 그리고 나까지.
작은 소도시쯤은 간단하게 먹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만에 하나의 사태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은 아닌 것 같군.”
적대하며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도시가 조용하진 않았을 테니까.
세렝게티도 그냥 한발 물러나기만 했을 뿐이다.
만약 엘프에게 적의가 있었다면 세렝게티부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자 지켜야 할 장소이므로.
허드슨이 숨을 진정시킨 뒤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만나보도록 하지.”
“후, 후계자님. 저도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때, 앤드류가 불쑥 끼어들었다.
엘프들이 찾아왔다는 말.
어쩌면 아내가 그곳에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앤드류의 두 눈가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물론, 먼 과거에 떠나간 엘프 아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만.
“같이 가지.”
그래도 저 애틋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닌지라 가볍게 승낙했다.
*
“······ 장로님. 정말로 이곳에 ‘신록의 주인’이 있을까요? 그것도 드라이어드와 함께 탑을 오른?”
열 명의 엘프가 워프 앞에서 ‘신록의 주인’을 기다리던 중.
엘프 장로를 향해 아우릴이 물었다.
아우릴이 보기에 이곳의 인간들은 너무나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비단 이곳 인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스락 숲’의 롬멜 역시도 아우릴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여왕님께서 말씀하셨잖니. 필시 대단한 자들이라고.”
엘프 장로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하자 아우릴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돼요. ‘균열의 탑’을 오르는 게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저 혼자서도 오를 수 있었을걸요?”
“그 탑은 단순히 힘이 세다고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그냥 우리끼리 하면 안 돼요? 뭐 하러 더러운 인간을······.”
“쉿. 예의 없이 굴면 안 된다고 말했지?”
“칫.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나마 저 인간 여자는 조금 쓸만한 것 같지만, 나머지는 죄다 형편없는걸요.”
엘프들이 인간의 도시를 찾은 이유.
그것은 엘프 여왕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균열의 탑을 오른 자들과 접촉하라는.
그리하여 가장 먼저 바스락 숲의 롬멜을 찾았고, 여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인간의 도움 따윈 필요 없는데.’
하지만 백 번을 양보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의 도움을 받아 함께 탑을 오르라니.
더럽고 냄새나는 인간과 파티를 맺으라는 말인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올라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와아··· 엘프는 전부 여자인가?”
“아름답다······.”
“듣던 것보다 더 아름답군.”
“마,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정도로군.”
보라.
자신들을 지켜보며 침을 줄줄 흘리는 인간들.
풍기는 냄새도 코가 막힐 듯이 지독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씻지도 않는 걸까?
저런 것들과 대체 어떻게 엮이란 말인가.
두 눈에 가득 찬 욕망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넋을 잃은 채로 무방비하게 틈을 보이는 중이다.
‘더러워!’
아우릴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왕님의 명이 아니었다면, ‘월계수의 전사’인 아우릴이 태초의 숲을 벗어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바깥세상이 조금 궁금하긴 했는데, 이래서야.
특히 인간이란 종은 듣던 것보다 더 끔찍했다.
‘전부 덜떨어진 건 아니지만.’
딱 한 명.
덜떨어진 인간들 중에서도, 덜 덜떨어진 인간이 있었다.
세렝게티라고 했던가?
이곳 영주의 딸로 보이는 여자는 아우릴이 느끼기에도 제법 괜찮은 실력자였다.
다른 인간들과 달리 끔찍한 냄새도 풍기지 않고, 욕망을 감출 줄 아는 절제도 지닌 듯싶었다.
하지만.
‘절제일 뿐이지. 엘프의 눈에는 욕망이 보이니까.’
결국, 인간은 추악한 욕망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우릴의 눈에도 세렝게티의 욕망이 보였다.
다른 자들처럼 대놓고 드러내진 않으나 그들보다 훨씬 큰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욕망의 덩어리가 열 배는 더 컸다.
분홍색.
저건 색욕이다.
얌전한 척, 절제하는 척하면서, 엄청난 색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러워.’
아우릴은 쯧쯧 혀를 찼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후계자님.”
“후계자님이시다!”
그때였다.
사람들의 소란과 함께 나타난 인간이 있었다.
두 남자와 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