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했던가. 한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휘아아아아아아아앙!!!
*
“······ 강해졌군.”
대토룡이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락투샤는 두 개의 창을 뚫고, 빠르게 다다라 마침내 자신의 가슴팍에 검강을 꽂아넣은 것이다.
“너는 크게 달라진 게 없군. 너만이 아니라, 다른 주력들 역시도.”
락투샤가 대토룡의 가슴팍에 박힌 흑천검을 쥐며 말했다.
이어 흑천검을 빼내자 푸른 피가 주르륵 흐르며 대지를 적셨다.
지상에 내려와 푸른 피를 털어낸 락투샤는, 대토룡을 작게 비웃었다.
“백왕 또한 그럴 테지. 크람델에 안주한 순간부터 너희의 패배는 정해진 거다.”
“크람델에서 버림받았던 네가······.”
“내가 떠난 거다. 버림 받은 게 아니라.”
락투샤의 표정이 굳었다.
옛적.
락투샤는 잠깐 크람델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어린 오크치고는 실력도 출중했기에, 주력의 자리에 욕심을 부렸다.
조금씩 세력을 일구자 이에 위협을 느낀 건지 강제퇴출을 당한 것이다.
이후 락투샤는 흑왕 산하에 들어가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너희들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내가 두려웠겠지. 하지만, 흑왕께선 평등하시다. 뛰어난 실력만 있다면 자신의 자리마저 내줄 생각을 하고 계시지.”
그릇이 다르다.
백왕과 흑왕은.
백왕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안주를 택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치고올라오는 자를 견제하거나 추방시킨다.
반면에 흑왕은 어떤가.
철저한 실력주의.
배경이 어떻든 간에 실력과 충성심만 있다면 모든 걸 감내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가 두려워서 퇴출 당한 것이라고?”
대토룡이 되물었다.
락투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크람델에서 퇴출 당해야 할 이유가 있나?”
“강해지려는 너의 욕심이 모든 걸 무너트리고 있었다. ‘금지된 개조’와 ‘약물’에 손을 대지 않았나? 크람델에 그것들을 유통시켜 질서를 마비시키려 했던 걸 잊었나?”
대토룡이 무겁게 말했다.
락투샤는 크람델에서 퇴출당한 게 맞다.
하지만, 단순히 락투샤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락투샤는 크람델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쌓아온 크람델의 질서를 무너트리려고 했기에 퇴출당한 것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냥 내가 무서웠다고 말해라. 겁쟁이들.”
그러나 락투샤의 입장에서 그러한 이유는 납득이 어려웠다.
오크는 투쟁의 종족이다.
이기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수를 쓰는 게 왜 나쁜 일인가?
그것들이 크람델을 도리어 강하고 부유하게 만드는 길이건만.
락투샤가 재차 외쳤다.
“지금 우리 둘의 상태를 봐라. 이게 내가 맞았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냔 말이다.”
“······.”
락투샤는 이겼고, 대토룡은 패했다.
머지않아 대토룡은 죽음을 맞이할 터.
“이제 네 주력 중에 둘 남았군. 궁귀와 메두사.”
사주력 중에 무려 둘이 해결됐다.
사왕도, 대토룡도 사라진다면, 과연 백왕은 어찌 나올는지.
또 꽁꽁 숨을까?
남은 주력들마저 모조리 죽이고 크람델마저 빼앗긴 뒤에도 숨어있을 수 있을는지.
그때 대토룡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오주력이 있다.”
“오주력? 그 새로 주력이 됐다는 까마귀 왕 말이냐?”
아아.
맞다. 다섯 번째 주력이 최근에 나타났다.
오주력 란돌프였던가.
심연 미궁의 주인이자, 백왕이 직접 선포한 자.
하지만 락투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다른 주력들과 비교하여 얼마나 강하겠나.
“오주력은 다른 주력들과는 다르다. 백왕께서 직접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라고 인정한 괴물이니······.”
“죽을 때가 되니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는군.”
“그래. 지어냈다고 생각해라. 말도 안 된다고 여기거라. 과연 ‘오주력’을 직접 마주하고도 그런 생각이 들지 무척 궁금하군.”
대토룡이 작게 미소 지었다.
오주력과 백왕이 마찰을 빚었을 때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 미친 까마귀가,
오늘따라 웬일인지 보고 싶었던 탓이다.
그새 미운 정이라도 든 건지.
매번 부딪히기만 했는데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조금 생각이 바뀌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 오주력도 곧 만날 수 있을 테니.”
서로 죽은 뒤 만나게 될 것이다.
대토룡도, 그 오주력 까마귀도.
다른 주력들과 백왕 모두가 나란히 만나게 될 것이었다.
대토룡은 침음을 흘렸다.
“락투샤. 마지막으로 알려다오. 사왕은 어찌 됐나?”
남부로 향한 뒤 소식이 끊긴 사왕.
죽었는지, 살아있는 건지 도저히 알 겨를이 없었다.
스읏.
락투샤가 흑천검을 쥐었다.
“사왕 말이냐?”
지이이잉!
찰나, 검강이 솟구치며, 대토룡을 죽일 준비가 완성됐다.
이후 바닥을 박차며 뛰어오른 락투샤가, 대토룡의 목을 향해 검을 뻗으며 말했다.
“사왕은 ‘절망’의 그릇이 됐다.”
쿠우우우웅!
*
울부짖는 군주 솔바렌을 뒤로한 채, 모든 ‘약점’을 공략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성배의 성수와 면죄부의 콜라보레이션.
파티의 악업 0을 달성한 후, 전투력이 -99.9%가 된 군주 솔바렌을 잡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럴 순! 이럴 순 없다! 탑이시여!”
구오오오오!
모든 약점을 공략당하자 군주 솔바렌의 전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타죽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군주 솔바렌의 존재감이 얕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존재를 지탱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주 솔바렌은 제 죽음보다도 더 원통한 게 있었다.
“이런 ‘이레귤러’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이 무능하기 그지없는 탑이여······! 네놈들과의 약속을 나는 후회하노라!”
이레귤러.
그야말로 버그 사용자다.
정해진 규칙이 아닌, 자신이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내는 자.
본래라면 이런 자는 탑이 알아서 걸러내기 마련이다.
아니면 탑이 알아서 처단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조차 못하는 건 무능하다는 증거.
무능하기 짝이 없는 탑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때였다.
군주 솔바렌이 ‘탑’에 대한 욕을 하자.
쉬이이이이-!
촤라라라라락!
하늘이 열리고, 수많은 ‘깃털’이 쏟아지며, 군주 솔바렌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솔바렌의 몸은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나뉘어 이내 증발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솔바렌이 소멸하자 다시 하늘이 닫혔다.
‘저건?’
······ 그리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찬란한 빛과 함께 열린 하늘.
저건 아마도 탑의 최상층일 것이기에.
마스터가 말했던 ‘엄청난’ 것의 정체가 바로 저것인지.
‘의지를 갖고 나타났다. 그리곤 직접 개입해 솔바렌을 소멸시켰다. 탑이 아니라 탑의 위에 있는 무언가다.’
탑의 주인은 결코 직접적인 개입을 해오지 않는다.
장난질은 칠 수 있을지언정, 저렇게 깃털을 쏟아내 죽이진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하늘을 연 존재는 ‘층수’와 관계없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존재라는 의미였다.
어쩌면 ‘탑의 주인’보다도 더 위에 있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념은 길지 않았다.
머지않아 떠오른 수많은 문장들.
《‘군주 솔바렌’의 공략이 완료되었습니다!》
《‘군주 솔바렌’을 완벽하게 공략했습니다.》
《파티원 전원이 10,000SP를 획득합니다.》
《파티원 전원이 ‘조각난 황금률의 조각(500h)’을 획득했습니다.》
《파티원의 레벨 최대치(Max Level)가 1레벨씩 잠금 해제됩니다.》
《파티에 참여한 종족은 인간, 드라이어드입니다.》
《모든 인간과 드라이어드의 레벨 최대치가 1 올라갑니다.》
《파티원 레벨 최대치와 종족 최대치가 더해져 ‘란돌프’는 현재 12레벨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군주 솔바렌’ 공략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한 ‘란돌프’가 추가로 50,000SP를 획득합니다.》
《‘군주 솔바렌’ 공략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한 ‘란돌프’가 추가로 업적점수 3,000점을 획득합니다.》
《업적 ‘균열 탑의 이레귤러’를 획득합니다.》
《명예 800점이 상승합니다.》
······.
《‘균열의 탑 2층’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균열의 탑 2층’의 입장 조건은 ‘5인 파티’, ‘히든 특성 보유자’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을 확인해주십시오.》
······.
《‘가장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당신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집니다!》
아이작
《균열의 탑 1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위 파티가 ‘군주 솔바렌’ 레이드에 성공했습니다.》
《균열의 탑 2층이 60일 뒤 개방됩니다.》
《균열의 탑 1층 클리어 효과 : 클리어 파티에 참가한 종족(인간, 드라이어드)의 최대 레벨이 1 상승합니다.》
《클리어한 파티는 추가로 1레벨이 더 상승합니다.》
모든 이들의 눈앞에 돌연히 떠오른 메시지.
단순히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판게니아에 있는 자들이라면 동시에 이와 같은 글귀를 읽게 되었다.
“최대 레벨 상승······?!”
“설마 진짜 최대 레벨이었다고?!”
균열의 탑을 오르지 않았던 자들도 경악할 만한 내용.
종족을 불문하고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껏해야 숙련도 레벨 같은 것일 줄 알았건만.
종족의 최대레벨 상승은 곧 종족 자체의 강화를 이야기했다.
하물며 클리어한 파티는 추가적인 +1이 주어졌다.
말인 즉슨.
“······ 잘하면 대륙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건······ 명운을 걸고 올라야할지도.”
현재 대륙의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주인’이라 칭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기엔 대륙 곳곳에 강자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인간이 진정한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제국이 움직인다면 지각변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최대 레벨이 상승했다고 당장 강해지진 않겠지만.
“2층은? 2층도 똑같이 최대 레벨 상승인가?”
“2층만큼은 반드시 우리가 클리어해야 한다.”
종족 자체의 강화를 시켜주는 탑이 나타난 건 여태껏 전례가 없는 일.
당연히 균열의 탑 2층에 대한 관심은 지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조건이다.
“히든 특성 보유자라.”
“히든 특성? 그게 뭐지?”
바로 히든 특성.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태반이었으니까.
그리고 설혹 알고 있더라도 5명을 모으는 건 힘든 일이었다.
“히든 특성 보유자를 어디서 구하라는 거냐?”
“설마 여러 종족이 함께 오르라는 건가?”
“1층도 인간과 드라이어드가 함께 클리어했다는 건데.”
“으음, 입장 조건부터가 쉽지않군.”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족 전체를 뒤져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가 아니라면 파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판게니아의 모든 존재들이 ‘균열의 탑’에 관심을 가질 때.
“······ 저희도 움직이도록 하죠.”
“여왕님. ‘결계’를 여시겠다는 말입니까?”
“예. 그전에 세계수의 인도에 따라, 바스락 숲의 하이 드라이어드와 자리를 가져봐야겠어요.”
태초의 숲.
외부와 단절된 신비의 땅.
그곳의 엘프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균열의 탑 1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모든 도전자는 강제로 퇴장됩니다.》
락투샤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토룡의 목을 내리치던 그 순간, 갑자기 배경이 바뀐 탓이다.
‘벌써 클리어했다고?’
도전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클러어됐단 말인가.
전투력이 낮아졌다한들 무적기는 그대로였을텐데.
한 번 부딪혀봤기에 확신할 수 있다.
전투력과는 별개로 군주 솔바렌을 잡는 건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라는 걸.
그런데, 레이드를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클리어 되어버렸다.
찝찝하기 그지 없는 결과.
게다가.
‘쯧. 숨통을 완전하게 끊지 못했군.’
대토룡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지만, 숨이 멎는 것까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아남긴 힘들 거다.’
허나, 그래봤자 생존은 불가하다.
흑천검에 당한 이상 재생할 수 없다.
게다가 목을 전부 쳐내지 못했을뿐, 반으로 갈라내어 치명상은 입혔다.
기껏해야 잠깐 숨 붙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때였다.
“마스터 녀석. 결국 아무런 도움도 안 됐군.”
“음. 갑자기 튕겨나갈 줄이야.”
탑의 입구로 속속들이 나타나는 흑왕의 측근들.
그들 역시도 지금 상황이 어이없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가 클리어한 거지?”
“··· 백왕은 아니다. 레이드가 시작될 때 대토룡은 나와 대치하고 있었다.”
다크엘프의 물음에, 락투샤가 답했다.
대토룡이라는 이름에 그들 전원이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오호라. 대토룡을? 죽였나?”
“흑천검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살아남긴 어려울 거다.”
“죽은 걸 확인한 건 아니다?”
“······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걸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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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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