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이 죽은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1년이 뭐냐.
이제 반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거늘.
설령 1년이라고 해도 믿지 못했을 텐데 그걸 반년 조금 넘는 시간에 다 따라잡고, 넘어섰다고?
3성이 넘는 무력을 이 단기간 만에?
치트키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그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란돌프일 리 없다.
눈앞의 남자는, 절대로 팬텀일 리가 없었다.
“믿지 못하는군.”
“네놈이 팬텀이라면······ 빌헬름의 ‘그 별’만큼은 반드시 찾아내서 가졌을 거다. 하지만, 너는 ‘그 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레벨 10을 못 찍어서.”
“······?”
“내 레벨은 8이다.”
“············ 뭐?”
마스터가 기함했다.
지금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레벨 8?
아직 10레벨을 찍지도 못했고, 그래서 초월하여 별의 능력도 쓸 수 없다?
“농담도 작작······.”
“‘성운을 마시는 별’, 10레벨에 도달한 뒤 특수한 성각자를 통해야만 찾을 수 있는 그 별. 10레벨을 찍지 못해서 찾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
마스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성운을 마시는 별. 그 이름마저도 놈은 알고 있었다.
마스터가 가지려고 했지만, 빌헬름에게 빼앗겼던 그 별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단 두 명밖에 모르는 별의 이름을 눈앞의 남자가 알고 있었다.
······ 그럼 정말로 팬텀이라고?
빌헬름의 전신이며, 수많은 캐릭터를 육성한.
셀 수 없이 많은 빌드를 짜고, 자신보다도 더욱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이 세계 유일의 게이머가, 이 남자라고?
《‘마스터’의 ‘지배자’의 능력이 발동합니다.》
《‘마스터’가 상대에게 정보공개를 요청합니다.》
그래. 자신있다면 어디 한 번 보여봐라.
마스터는 괜히 마스터인 게 아니다.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상대가 동의해야 하지만,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면 보여줄 수도 있을 터.
‘보여줄 리 없겠지.’
지금 말한 모든 게 거짓말일 테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을 다 믿어주는 것도 힘든 일이다.
놈도 자신이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을 테지.
어디 한 번 거절해봐라. 실컷 비웃어 줄테니까.
《상대가 일시적으로 ‘마스터’에게 ‘정보공개’를 허용했습니다.》
······ 동의했다고?
정보공개.
평소에는 비공개이나, 마스터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오픈하게끔 동의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 짓이다.
서로가 플레이어인 것도 감추는 판국이니.
게다가 정보를 공개하여 보이는 건 바로 ‘상태창’이기 때문이다.
모든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창.
그것을 보여주는 경우는 상대를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예컨대 마스터가 길드원을 길드로 받거나, 누군가를 굴복시킬 때.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가 그 ‘정보공개’에 동의한 것이다.
동시에.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별의 계승자
직업(Class) : 지고의 검성
<능력치>
레벨 : 8
힘 : 127(102+25)
체력 : 125(100+25)
민첩 : 126(101+25)
지능 : 125(100+25)
성력 : 138(113+25)
<부가 능력치>
자연 재생력 : 315%
전체 관통력 : 12.8%
저주 관통력 : 15%
저주 반사 : 30%
저주 유지시간 증가 : 30%
<특이사항>
1 : ‘별의 계승자 - 별 3개(모든 능력치+15)’ 보유
2 : ‘초월한 바알 세트’와 육체가 융합되어 관련 능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다시 해당하는 부위에 새로운 장비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3 : ‘영원의 란돌프’ 효과로 순수능력치가 보정되었습니다.
4 : ‘바알의 핵(멸망의 조각)’을 심장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5 : ‘망자의 왕’ 스킬로 힘(2)과 민첩(1) 성력(3)이 오른 상태입니다.
6 : 지고의 유일급 ‘겨울’ 사용자(모든 능력치 + 10)
······.
“이게······ 무슨······.”
절로 목소리가 떨린다.
마스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상태창이 정말 존재하는 상태창인지 자체가 의심스러웠던 탓이다.
란돌프라는 이름부터,
두 개의 클래스.
레벨 8.
레벨의 한계를 한참 웃도는 능력치.
별을 이미 세 개 보유하고 있으며, 저 ‘바알’관련 문구까지도.
‘바알의 핵?’
모든 의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의아한 건 바알의 핵이다.
괴물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게 핵이었다.
그것을 왜 란돌프가 갖고 있지?
그것도 심장에?
‘설마······.’
아니다.
아닐 것이다.
수련자의 산에 나타난 바알.
그 바알은 끝내 심연에서 완성되며 제주도를 침범했다.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알’의 존재에게 먹혔다고 알려져 있었다.
‘검은 알의 수호자.’
··· 또한, 살아남은 제주도민 대다수는 다 ‘검은 알의 수호자’라 불리는 존재의 그림이나 사진을 꼭 품에 한 장씩 갖고 다녔다.
그 수호자는 마치 사신과도 닮아있었다.
그리고 사신을 다루는 자들은 제국의 사신교뿐.
‘아······.’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놈은, 란돌프는 분명히 사신교의 간부다.
사신교의 간부는 사신을 다룰 수 있다.
그렇다면 바알을 해치운 ‘검은 알의 존재’가 바로 란돌프란 뜻이다. 저 상태창에서 보이는 글귀들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
상식을 넘어서는 강함.
특히 8레벨에 순수능력치가 100을 넘는 게 말이 되나?
캐릭터의 단일 능력치는 1레벨당 최대 10으로 정해져있었다.
특수한 경우로 더 올릴 수는 있지만, 20이나 차이가 나진 않는다.
두 개의 클래스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저런 상태가 될 수 있는 거지?
잠시 후, 마스터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란돌프’의 히든 특성이 ‘마스터’에게만 일시적으로 공개됩니다.》
히든 특성.
만약 이러한 변수를 창출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히든 특성뿐일 것이다.
마스터가 알고 있는 히든 특성은 총 7개.
여기에 탑을 오르며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는 있다.
‘하지만 히든 특성은 하나를 갖는 것도 어렵다.’
존재를 알고 있는 건 8개이지만, 마스터가 갖고 있는 히든 특성은 고작 두 개일 따름이었다.
허나 상대가 팬텀이라면 한 다섯 개 정도는 갖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내 떠오른 창을 보며.
“이, 이게 무슨······?!”
마스터는 전례 없는 경악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활성화된 히든 특성(15)>
【허무】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하이 드루이드의 대자연】
【영원군주의 심장】
【비스트 로드】
【황금의 은총】
【천상(天上)】
【돌연변이】
【대식가】
【대현자】
【영원의 란돌프】
【마혈족의 왕】
······ 말도 안 되는 개수였으니까.
란돌프에게 적용된 히든 특성이, 무려 15개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의 두 배가 넘는 숫자.
현실감이 결여된 상태창의 상태에 마스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거짓일 리는 없다.
자신의 능력.
‘정보 공개’를 통한, 상대가 허락하여 보이는 상태창에 거짓은 있을 수가 없으므로.
‘괴물······.’
이해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저 히든 특성들로 인한 것이라면.
란돌프는 상식 밖의 괴물이었다.
누구도 재단할 수 없는 존재.
법칙을 벗어난 이레귤러 말이다.
“이제 좀 믿음이 가나보군.”
“······.”
마스터는 전의를 상실했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능력치 자체는 예상보다 낮았지만, 저건 단순히 능력치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괴수가 아님을 깨달았다.
바알을 죽였다면 그 이상의 강자라는 의미.
······ 팬텀.
오직 팬텀만이, 이런 이적을 가능케 하리라.
그리고 팬텀이 자신에게 ‘상태창’을 보게 허용했다는 건.
“······ 살려다오.”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팬텀은 결코 남에게 자신의 정보를 오픈하지 않는다.
절대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의 상태창을 본 자신을, 살려둘 리 없었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자의 최후는 모두 같다.
팬텀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었다.
“몇 번이나 고민해보았다. 한데, 이해할 수가 없더군. 너 역시도 내가 짜고 올린 ‘빌드’를 이용했을 텐데. 왜 나를 배신한 거지?”
“배신······ 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왜 대원정을 실패하게 만들었냐는 말이다. 마왕을 죽여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는 건 너도 알고 있었을 거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도.”
필사적으로 도와줘도 부족한 판국에, 대원정의 실패를 바랐다.
마스터를 포함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어왔다.
마스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린······ 중독자니까.”
“중독자?”
“게임이 클리어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게임 중독자들이니까······.”
판게니아의 플레이어가 되며 그들은 힘을 손에 넣었다.
현실과 판게니아를 오가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왕을 죽여 게임이 클리어되면 어떻게 될까.
다시 판게니아로 못 오게 되는 건 아닐는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재차 돼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여, 대원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마왕에게 정보를 건넸다?”
“······ 마왕에게 정보를 건네다니. 나, 나는 그런 짓은······.”
하지만 참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마왕에게 정보를 건네?
대체 무슨 정보를 말하는 건가.
쯧. 그가 작게 혀를 찼다.
“역시 네놈은 아닌가보군. 처음부터 느꼈지만, 그럴 만한 그릇이 안 돼.”
“······.”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의 뒤에서 이 모든 판을 짠 게 누구냐?”
스으으.
목 끝에서 느껴지는 한기.
그 한기에 마스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란돌프는 자신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대로 침묵한 채 죽을 것이냐, 아니면 실낱같은 희망에 걸어볼 것이냐.
마스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건······.”
민트초코맛있어요
“그, 그건······ 팬텀······.”
팬텀?
마스터의 말을 듣곤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저들이 나를 ‘팬텀’이라고 부르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이머 시절 이미 팬텀이라 불리며 유명했으니.
하지만, 마스터가 말하는 건 내가 아닌 다른 팬텀을 의미하는 것일 터.
“나를 사칭한 자가 있다는 말인가?”
“모, 모른다. 놈은 플레이어이면서 플레이어가 아닌 존재였다. 그 외엔 아무것도······.”
“거짓말이로군. 너는 정체 모를 자의 말만 듣고 움직일 놈이 아니야.”
쩌적!
겨울이 마스터의 목을 살짝 베었다.
동시에 목 주변의 피부가 얼기 시작했다.
조금씩 ‘겨울’이 마스터를 좀먹어가고 있었다.
마스터는 나름대로 신중한 놈이다.
어느 정도의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확신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뒤로 미뤄두더라도, 정체 모를 자의 말만 믿고서 얼굴마담을 할 놈은 결단코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놈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말해라.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