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다해서 변신과 스킬이 풀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
놈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으으음!”
몸에서 활력이 넘친다.
힘이 끓어 넘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 힘을 분출할 곳이 필요하다.
마스터는 거인화하여 있는 힘껏 놈의 얼굴에 ‘영역 파괴술’을 시전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
마치 세상 전체가 찢기고 부서지는 것 같다.
마스터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수이자 숨겨둔 비기.
이걸 정면에서 맞고 살아남을 자는, 단언컨대 없다.
쩌적!
쩌저저적!
주먹의 끝에서 시작된 균열은 순식간에 하늘 전체를 덮었다.
세계 전체가 깨진 유리창이 된 것만 같은 효과.
하지만 이 ‘파괴술’의 무서운 점은 대규모의 파괴가 아니다.
“······ 오호라.”
팔라딘이 작게 감탄했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강렬함에. 파괴력에.
균열된 조각들이, 검게 파괴된 영역이 한곳으로 모인다.
검은 선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터질 듯이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일점으로 모인 저 조각들의 파괴력은 배가되기 마련.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도망치길 포기한 거냐?’
마스터는 작게 비웃었다.
이만한 대규모의 파괴를 보고서 전의를 상실한 걸까?
하기야 자신이라도 그럴 것이다.
돌연히 나타난 거인이 세상을 부수려 든다면 누구든 당황하며 멈춰설 것이었다.
비록 반사적으로 검을 들기는 하였으나, 변신 상태로도 한계에 부딪힌 주제에 이 파괴술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분쇄되어 죽어라.’
대 영역 파괴술.
마스터는 파괴된 균열이 모인 곳에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벽을 치듯 허공을 때리자, 모여있던 균열된 선들이 놈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 개의 ‘검은 선’은 마구잡이로 지상을 쓸어버렸다.
쾅! 쾅! 콰아아앙!
닿는 족족 모든게 쓸려나간다.
반경 수백미터를 모조리 증발시키는 위력.
땅이 파이고 영역 자체가 삭제되니 인간 따위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다.
아무리 ‘놈’이 사신교에서 나온 강자라한들 결국 인간.
아니, ‘놈’이 신이라고 할지라도 버티지 못할 터.
“나는 마스터다. 네놈들의 머리 끝에 설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다!”
사방에 퍼진 흑먼지.
그 가운데에서 마스터는 포효했다.
감히 제국 따위가, 사신교 따위가 자신에게 그런 굴욕을 주었다.
그 굴욕을 이제 갚을 시간이었다.
“네놈을 시작으로 전부 쓸어주마. 아무도 내 위에 군림할 수는······.”
“아직 안 죽었다.”
그때, 팔라딘의 목소리가 마스터의 고막을 때렸다.
마스터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신조차 죽이리라 자신하는 대 영역 파괴술을 맞고 안죽었다고?
게다가 능력치가 급상승하며 파괴력은 더 올라갔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 미친.’
마스터는 경악했다.
있을 리가 없는데, 있었다.
정면으로 맞고도 죽지 않은 인간이.
아니, 맞은 게 아니다.
흑먼지가 걷히며 나타난 ‘놈’의 모습.
‘놈’의 검 앞에 검은 선들이 이리저리 꼬인 채로 뭉쳐져 있었다.
마치 둥그런 막 안에 갇힌 듯이 벗어나지 못한 채로.
대 영역 파괴술 자체를 가둬버린 것이다.
그 상태로, ‘놈’이 말했다.
“마스터. 나는 항상 궁금했다. 대원정에 참가하지도 않는 놈들이 어떻게 ‘영웅’이라 불리며 으스대는지.”
“······?”
갑자기 저놈은 뭐라는 거냐.
대원정? 영웅?
저놈은 제국 사신교에서 나온 녀석이 아니었나?
사신교와 제국은 대원정 자체를 참가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곳에서 나온 자가 입에 담을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의 위업을 가로채고, 자신이 한 일인양 떠들며, 모든 이야기를 왜곡시켰다. 그 판을 짠 게 누구인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위업을 가로채고 판을 짜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대원정. 영웅. 위업. 왜곡······.’
아.
순간, 마스터는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특히 대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도망치지 않았던 자들은 전부 죽었으니까.
그리고 도망쳤던 자들은 모두 대원정 초입에서 두려움에 등을 돌렸다.
그러니 ‘대원정의 이야기가 왜곡됐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마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는 일이다.
마스터가 대원정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플레이어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 플레이어였구나!’
부르르르!
그제야 마스터는 몸을 잘게 떨었다.
플레이어를 혐오하며 몰살시키려는 사신교의 중추에, 플레이어가 있었다.
하!
그러면서 플레이어가 아닌척 자신을 그렇게 내려다본 건가?
진심으로 웃기는 놈이었다.
그때, ‘놈’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너를 보니, 너는 그만한 그릇이 안돼. 이토록 정교하게 판을 짤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그럼 누굴까?”
“네놈······ ‘죄인’인 주제에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타차원 커뮤니티’의 주인인 너야말로 죄인 아닌가?”
“······!”
타차원 커뮤니티.
그것을 언급했다는 건 제스스로 플레이어라고 말한 거나 다름이 없다.
이 정보를 사신교에서 알게되면 저놈의 죽음은 확정이었다.
촤아아아악!
그 순간, 강력한 전기로 이루어진 장막이 ‘놈’을 덮쳤다.
“정신 차려라! 놈은 시간을 끌 생각이다!”
아.
팔라딘의 목소리에 마스터는 재차 각성했다.
그들은 모두 멸천뢰의 12중첩 버프로 과부화된 상태.
시간을 끌면 영구적인 능력치 손실과 함께 몸이 가루가 될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서 시간을 끈 게 분명했다.
“멸천의 망치여!”
꽈아아아아앙!
거대화한 팔라딘의 망치가 놈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전기의 장막도, 멸천의 망치도.
“······.”
모두 ‘놈’을 공격하지 못한 채, 허공에 묶여있었다.
“저건······ 무엇이냐.”
벌레술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태껏 모든 걸 파악해낸 그였지만, 지금 저 ‘검술’만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기에.
공격을 흘리는 것도 아니고, 피하는 것도 아닌, 그 자체로 묶어두다니.
마치 저 공간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일정 공간의 시간을 다루는 검술이라니. 그런 게 가능한건가?’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동시에, 벌레술사가 기겁하며 이맛살을 구겼다.
“아······! 피해라!!”
멈춰있던 시간이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쩌어어엉!
꽈아아아아앙-!
균열된 선들이, 전기의 장막이, 멸천의 망치가.
전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다가왔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컥······!”
“끄어억!”
“흐읍!”
시전자들에게 그대로 돌아간 것들을 닿은 즉시 폭발을 일으키며 그들을 날려보냈다.
말 그대로 반사였다.
자신이 사용한 무력을 그대로 돌려받은 게다.
당연히 막을 수도 없다.
‘내 공격을 튕겨냈다고?’
바닥에 처박힌 채, 거인화가 풀린 마스터는 도저히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 영역 파괴술.
전설의 거인이 되어 펼쳐낸 공격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돌려보냈다.
심지어 더 강화된 공격으로 얻어맞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한 플레이어가 있을 리가······.’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모조리 꿰고 있는 게 마스터다.
그라시아를 제외하면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
은둔자들?
물론, 명예의 전당 보상을 포기하며 은둔한 채 살아가는 강자들도 있기는 있었다.
마스터가 파악하지 못한 강자들 역시 상당수가 은둔자들이었으므로.
하지만 그 은둔자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심지어 모든 능력치가 급상승해있는 지금, 자신의 공격을 튕겨낸다?
‘4성 이상의 강자가 아니고서야.’
아무리 적게 쳐줘도 4성, 14레벨은 되어야만 한다.
판게니아의 미친 괴물들이나 달성할 수 있는 레벨이 14였다.
플레이어중에는 없다.
만약 있다면.
‘버그 사용자.’
······ 그야말로 버그 사용자.
마음대로 버그를 사용하며 모두를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버그 사용자라고만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너······ 운영자냐?”
마스터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선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영자.
그에 대한 소문이, 한때 돌았던 적이 있다.
게임 판게니아를 만든 운영자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소문이.
물론, 판게니아는 대륙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두 여신에 의해 떠받쳐진 이 세계는 결코 가짜가 아니다.
하지만, ‘게임 판게니아’는 다르다.
여신들이 어떻게 지구의 게임을 만들겠나.
그 구성을 창조해낸 ‘운영자’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게임과 판게니아를 엮고 이어낸 자가 있다.
그는 한 명일 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운영자’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판 전체를 읽고 있는 존재.’
운영자란 그런 존재다.
게임 중기까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던 ‘히드라곤의 혼’을 비롯한, 수많은 ‘등장한 적 없는 아이템’들을 두른 자.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들을 갖고 있는 자!
대륙 전체를 아무런 제약없이 돌아다니며, 심지어 ‘심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고도 알려진 자가 있었다.
판 전체를 꿰뚫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한 이적의 행위들.
당연하게도 플레이어들은 그를 ‘운영자’가 아니냐며 의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은 운영자가 틀림없다.’
마스터는 확신했다.
운영자라면 대원정에 대한 이야기도,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위력도 보이는 게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저놈이 착용한 것들.
특히 저 검.
얼음으로 이루어진 저 빙백의 검은 여태껏 등장한 적 없는 ‘유일급’ 수준의 검이 확실했으니.
게다가 ‘균열의 탑’이 ‘버그 사용자’라고 확정지을 정도다.
마음대로 층을 오르는 모습을 보라.
일개 플레이어가 가능한 수가 아니다.
“운영자가··· 어째서 ‘균열의 탑’을 오르는 거냐?”
만약 운영자가 개입했다면 ‘균열의 탑’이 등장한 것 자체가 ‘이벤트’일 터였다.
일전 심연 미궁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획한 이벤트라면 왜 탑은 그를 버그 사용자라 낙인 찍었을까.
왜 탑은 운영자를 제거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운영자라고?”
그러자 ‘놈’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아서일까.
아니면 가소로워서?
이윽고 ‘놈’ 몸을 숙이고, 고개를 낮췄다.
그리곤,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말했다.
“나는 ‘팬텀’이다.”
란돌프가 팬텀이다
······ 뭐라고?
순간 마스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운영자라고 철석같이 믿었건만.
‘팬텀?’
··· 팬텀이라니.
판게니아에서 그렇게 불리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캐릭터를 육성했으며, 모두가 불가능하다 확신한 신화적인 업적들을 두루 달성한 자.
대원정을 일으킨 기사왕 빌헬름마저도 팬텀의 캐릭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팬텀’은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으며 그가 육성한 캐릭터가 정확히 몇 개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럴진대.
“거, 거짓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내심은 부정했다.
그럴 수밖에.
눈앞의 남자가 팬텀이라면, 결국은 ‘란돌프’라는 소리.
빌헬름 캐릭터가 죽은 뒤 플레이어가 되며 이름을 바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자가 팬텀이라 할지라도 이 단기간에 ‘최강’이라 자신했던 넷을 이렇게 뭉개버리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메인 퀘스트를 밀며 명예의 전당 1위의 자리를 모조리 휩쓸고 있다지만 이건 ‘선을 넘은’ 강함이었다.
백 보, 천 보, 아니, 전부 양보한다 해도 3성을 넘어서는 무력임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