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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42화 (142/317)

오랜시간 ‘찬란한 영웅의 성좌’로서 수많은 이야기를 접했지만 연거푸 실망만 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보았다. 

‘란돌프.’ 

수상쩍을 정도로 모든 걸 초월하여 해내는 집필자가. 

자신의 죽음을 걸고 도박을 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오염원을 스스로 먹고 오염되어 ‘마혈왕’을 강림시키는 선택을? 

아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발상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자벨라의 마지막 뜻을 이어받아 도시를 심연에 가라앉혔겠지. 

‘더······ 보고싶군.’ 

그래서인가. 

채워졌다 여겼는데, 채워지지가 않는다. 

조금만 더 그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 

그가 앞으로 해나갈 영웅의 일대기를 함께 그려보고 싶었다.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더 불태워서라도. 

······ 그저, 보고싶었다. 

-더 내놓을 게 있나? 

별빛이 스러지며 사라지던 와중. 

어둠 속에서 입 하나가 나타났다. 

-보고싶다고 했지 않나. 그럼 더 내놓을 게 있어야지? 

무엇을? 

이미 모든 걸 바치지 않았던가. 

······ 아. 

아직 하나 있었다. 

바치지 않은 게. 

저놈에게 주지 않은 것이. 

-여태껏 쌓아온 이야기라. 재밌군. 

그가 보고 쌓아온 이야기가 책으로 휘감겼다. 

이후 ‘입’의 안으로 들어갔다. 

히죽! 

한참이나 맛을 음미하던 ‘입’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균열의 탑에 입장한 즉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1레벨의 영역.’ 

초원. 

보이는 것은 초원이다. 

잔디가 무성하며 나무가 곳곳에 자라있는. 

영원군주의 심장으로 말미암아 조건을 깨부수고, 혼자 1레벨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균열이라는 게 정말 흩어놓는다는 말이었나보군.’ 

파티원들을 레벨에 따라 균열시켜놓는 것. 

그래서 균열의 탑인 모양이다. 

하지만 파티원들의 점수가 합산되어 마지막 레이드가 진행된다. 

《5명의 파티원이 모은 점수가 500점을 넘어서면 ‘1층의 군주 솔바렌’과 격전을 치룰 수 있습니다.》 

《‘군주 솔바렌’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2층으로 향할 권리와 ‘레벨 제한 영역’이 한단계 해제됩니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시 ‘군주 솔바렌’의 전투력이 낮아집니다.》 

《더 많은 균열이 발생시 ‘군주 솔바렌’의 전투력이 높아집니다.》 

《현재 ‘군주 솔바렌’의 전투력은 999,999입니다.》 

전투력? 

능력치나 성급 따위를 종합해서 전투력으로 나타낸 걸까? 

확실한 건 여태껏 판게니아에 존재했던 탑들과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단순히 마혈왕을 제거해서 나타난 탑은 아니다. 마혈왕의 죽음은 일종의 방아쇠가 되었을뿐.’ 

생각해보면, 탑의 기원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판게니아에는 무수히 많은 ‘탑’이 있지만, 탑의 주인도 모두 다르며 그들이 내리는 시련도 제각각이었다. 

어쩌면 마혈왕과 같은 존재가 죽거나, 한 세계가 사라질 때 탑이 떠오르는 건 아닐는지. 

요르문간드가 경고할만큼 마혈왕은 엄청난 존재였으니 말이다. 

‘······ 확실히 1레벨 영역이라 그런가 사람이 없군.’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1레벨이 감히 탑을 오르려는 생각을 하겠는가. 

파티를 짤 때도 1레벨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자살 희망자가 아니고선 1레벨에 탑을 오를 리가. 

시이익. 

쉬이이익! 

그 순간 넝쿨이 길게 뻗으며 내 발을 묶었다. 

초원 전체가 이런 넝쿨로 가득하다. 

‘식육식물들.’ 

사람을 묶고, 끌어당겨, 잡아먹는 식물들이다. 

1레벨에겐 굉장히 위협적이겠지만. 

뚝! 뚜둑! 

걷는 족족 넝쿨이 찢겨나갔다. 

아무리 많은 넝쿨이 나를 감싸도 저것들로는 내 발길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식물들은 불과 냉해에 약하지.’ 

나는 ‘겨울’을 들었다. 

그리고. 

휘이이이이이이! 

‘겨울’이 찾아왔다. 

《영역 전체가 얼어붙습니다.》 

《진행률 100%》 

《3레벨의 영역 보스가 등장했습니다.》 

《3레벨의 영역 보스가 사망했습니다.》 

《총합 30 SP를 획득했습니다.》 

《황금률의 조각 10h를 획득했습니다.》 

《다음 영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립니다.》 

《파티원 전체 점수 합산 285점》 

《1위 - 란돌프(250)》 

《2위 - 세렝게티(20)》 

《3위 - 롬멜(15)》 

《4위 - 발테(5)》 

《5위 - 앤드류(0)》 

《전체 3,788 파티 중 단독 1위입니다.》 

3층까지 발견된 사람은 없었다. 

하여, 순식간에 치고 나갈 수 있었다. 

‘다들 분발하고 있군.’ 

앤드류야 사제이니 점수를 얻는 게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고선 다른 파티도 아직 제대로 점수를 얻지 못했으리라. 

‘13,788파티. 대략 육만 구천명 정도.’ 

정확히 68,940명이 균열의 탑에 도전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다.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판게니아의 존재들도 대거 도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레벨이 낮은 영역에선 보상도 적긴 하군.’ 

30 SP와 황금률 조각 10시간 어치. 

1층과 2층, 3층을 돌파하며 얻은 최종보상이다. 

하지만 이 레벨대에서 얻은 보상치곤 상당한 양이었다. 

저레벨 구간에서 어떻게 저만한 보상을 얻겠는가. 

‘레벨을 더 높게 치고 올라가면 보상도 커진다.’ 

허나 바로 올라갈 순 없다. 

아래 영역에서 샅샅이 훑으며 올라가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니까. 

‘SP는 쌓아둬서 나쁠 게 없지.’ 

빌헬름이 죽고 캐릭터를 생성할 때 160만 SP를 모조리 올랜덤으로 돌렸다. 

덕분에 모든 재능을 Max레벨까지 올렸고, 13개의 히든 특성이 생성됐다. 

심지어 ‘마혈족의 왕’을 얻으며 관련된 재능들도 Max가 찍혔다. 

사실상 재능 부분에선 SP를 쓸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SP는 ‘업적 상점’에서 업적 점수와 교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딱 두개, 찍히지 않은 재능이 존재했다. 

‘진리탐구와 차원 이해력. 이 두 재능은 하나도 찍히지 않았으니.’ 

예컨대 ‘검은 피’를 비롯한 ‘피의 각성’ 같은 재능들은 모두 찍혀있지만 저 두 개만은 하나도 찍히지 않은 상태였다. 

SP를 모아서 업적점수와 바꾸거나, 저 재능들을 찍으면 될 터. 

“사, 살려줘!” 

“으아아아악!” 

그때였다. 

멀리서 퍼지는 비명소리.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다. 

4레벨 영역부터는 도전자가 있는 듯싶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무언가에 쫓기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마스터 이 개새끼야!!” 

마스터? 

설마 마스터도 균열의 탑에 도전한 건가? 

하지만 그 두 사람보다도, 둘을 쫓고 있는 것들에 더 눈길이 간다. 

‘저건······?’ 

묘하게 익숙하게 생긴 형태의 괴물이었다. 

사람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져, 날개처럼 펼쳐지며 수많은 돌기 같이 이빨이 튀어나온 괴물. 

바로 마혈족이었다. 

하지만 사막여왕과는 달리, 돌기도 작고 크기도 훨씬 작았다. 

기껏해야 허벅지에 올까 싶을 정도. 

우뚝! 

조금 더 다가가자, 다수의 마혈족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곤. 

킁킁! 킁!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해서일까? 

“뭐, 뭐야?” 

“안 따라오는데?” 

도망치던 둘은 당황한 채 뒤를 돌아보다가 마혈족과 마찬가지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마혈족들이 우르르 내게 달려드는 걸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이봐요! 빨리 도망쳐요!” 

“이 새끼들 물면 안 놓습니다!” 

경고를 던졌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을 따름이었다. 

4레벨의 영역에 있는 마혈족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캬르르르! 

키이이이이이! 

마혈족들이 괴이한 목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좁혔다. 

이윽고 지척에 도달했을 때. 

‘······ 왜 이러는 거지?’ 

소형의 마혈족들이 나를 둘러싸곤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듯이. 

샤아아아! 

그리곤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마치 먹이를 원하는 아기새처럼. 

적의는 없다. 

다만 의아할 따름이다. 

내 냄새를 맡고 모여든 걸 보면 동질감을 느낄만한 건덕지가 있다는 건데. 

‘히든 특성 때문에 그러나?’ 

가능성은 있었다. 

나는 마혈족의 왕. 

마혈족들이 제스스로 나를 알아볼 수도 있는 일이다. 

허나, 무엇을 주라는 말인가. 

‘설마, 피?’ 

유일하게 떠오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피’다. 

관련된 재능으로도 ‘피’를 이용한 것밖에 없으므로. 

그 외엔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다. 

시험삼아 ‘겨울’로 손가락을 따 핏방울을 맺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선 녀석에게 한 방울을 먹이자. 

부르르르! 

내 핏방울을 먹은 소형 마혈족이 몸을 미친 듯이 떨더니, 점점 크기가 커지는 게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마혈왕의 첫 번째 가신’이 탄생했습니다.》 

《히든 특성 ‘비스트로드’가 발현됩니다.》 

《지배한 종이 한계를 돌파합니다!》 

쩌적-!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린 마혈족은, 일반적인 마혈족과는 모습이 달랐다. 

날개와 같이 펼쳐놓은 살점이 검은 망토처럼 변하고, 온 몸이 강철처럼 반질반질해졌다.

【Lv. 7】 

4였던 것이 7레벨로 격상까지 하였다. 

고작 피 한 방울에 말이다. 

‘피로 종속을 늘리는 게 마혈족의 왕이 가진 특성인가보군.’ 

마혈족만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피’로 이 괴물들을 강화시키며 나를 따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법 흥미로웠다. 

나는 남은 피를 소형 마혈족에게 먹였다. 

그렇게 스무마리의 마혈족이 내 피를 먹고 종속되자. 

“뭐, 뭐야 저건?” 

“설마 사람이 아니라 보스몬스터······!” 

그 장면을 처음부터 지켜본 두 사람이 경악하고 말았다. 

공격당하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피를 먹이더니 괴물들의 모습이 변하고, 심지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치 왕을 대하듯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왕이시여. 

허나, 나는 그 둘에게 관심이 없었다. 

돌연히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에게 더 많은 피를 하사하십시오. 

-서열을 정해야 합니다. 

-강력한 가신을! 동지를! 

-더욱 많은 피를! 

동등하게 한 방울씩만 먹이자, 이들의 서열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설마 더 많은 피를 먹이면 더욱 진화한다는 뜻인지. 

마혈왕의 히든 특성으로 나의 피가 지배의 권한을 지녔대도, 내 피로 진화하는 건 아마 마혈족만 그러할 것이었다. 

마혈족 자체가 마혈왕의 피로 강화되는 모양이었으니. 

‘나의 피로 진화하는 종족이라.’ 

실로 흥미로웠다.

희생 스킬

이십여가량의 마혈족들. 

녀석들은 나의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 사이의 ‘서열’을 원하는 중이었다. 

더 많은 피를 먹은 순서대로 나의 충직한 가신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피 한방울로 3레벨이 올랐다.’ 

4레벨짜리가 단번에 7레벨이 됐다. 

아무리 낮은 레벨의 구간이라도 3레벨을 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피의 종속. 

히든 특성 ‘비스트로드’가 발동되었다면 확실하게 내 ‘펫’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 

적어도 이 녀석들이 나를 배신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뚝! 뚝! 

첫 번째 녀석에게 두 방울을 더 먹이자, 녀석의 몸이 재차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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