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은 정해졌다.
남은 건 한 명.
마침 떠오르는 한 명이 있었다.
“제, 제가요? 균열의 탑을요? 예? 같이요?”
창잡이 발테.
이로서 제법 벨런스가 맞는 파티가 완성됐다.
정말 어벤져스가 따로 없었다.
*
균열의 탑에 들기 전, 마지막 준비가 남았다.
《‘업적상점’이 열렸습니다.》
《‘업적’을 통해 얻은 점수로 ‘업적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명예의 전당 순위에 따라 ‘업적상점’의 목록이 변합니다.》
《1순위, 란돌프님 ‘업적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란돌프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업적점수는 4,500점입니다.》
바로 업적상점.
메인 퀘스트 8을 밀며 새롭게 나타난 이권의 상점이다.
곧이어 상점의 목록이 떠올랐고.
‘······ 대박이로군.’
나는 다시 한 번 유레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완벽한 입장
“연합장님. 이번에 순위가 밀리면서 마스터의 손해가 클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영웅 연합.
연합장 박태우를 향해, 연합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제주도 소실 사건에서 마스터의 정치질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정부차원에서도 제주도에서 물러나라 할 정도였으니.
하여, 영웅연합의 대부분은 마스터를 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연합장 박태우도 마찬가지였다.
“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독점하고 있던 ‘워프석’을 이제 팔지 못하게 되겠지.”
업적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워프석’이다.
워프를 짓거나, 수리할 때 반드시 필요로하는 저 워프석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 한정적인 공급원 중 하나가 마스터였고, 업적상점 1위를 달성하면 구매할 수 있는 워프석을 플레이어에게 팔아 그는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이다.
“도시에 있는 유적도 급매하지 않았습니까? 마스터도 재정적으로 많이 후달리나봅니다.”
“이번 일로 크게 타격을 받은 건 확실하지.”
“연합장님. 팬텀이 워프석을 싸게 내놓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글세. 그걸 풀 정도로 업적점수가 충분할지 모르겠군.”
란돌프가 대단한 업적들을 세우긴 했지만, 메인 퀘스트 8을 밀며 쌓을 수 있는 업적점수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마스터는 메인 퀘스트를 밀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밀어서 여유가 있는 편이었고.
“그래도 500점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간 해온 행적을 보면 그쯤은 있을 듯한데······.”
500점보단 조금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점수로 굳이 워프석을 사서 플레이어들에게 팔 것 같지는 않았다.
팬텀의 행적을 보면, 돈보단 실리를 좇는 자였으므로.
박태우 연합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권 레벨을 올리겠지. 그게 가장 현명하니까.”
“아쉽군요. 싸게 팔아준다면 좋을 텐데.”
“설령 워프석을 산다고 해도, 싸게 팔지는 않을 거다.”
팬텀은 그런 자다.
절대로 손해를 보고서 워프석을 팔 자가 아니었다.
그러자 연합원이 눈을 빛냈다.
“······ 저희도 이제 슬슬 ‘도시’를 먹을 물밑작업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판게니아에서 도시를 갖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연합은 판게니아에 거점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
워프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모두 도시를 지배할 시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합장 박태우는 이것도 부정적이었다.
“2차 침략이 곧이다. 그 전에 ‘탑’을 오르는 정도가 최선이야.”
“균열의 탑 말씀이군요.”
그렇다.
균열의 탑.
모든 플레이어가 균열의 탑에 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
공지사항이 두 개나 나타날 정도면, 탑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의미다.
‘심연 미궁도 구제국의 땅이었지. 균열의 탑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박태우가 의지를 다졌다.
그러기 위해선 최강의 파티가 필요했고, 몇몇 ‘은둔자’들을 포함하여 거의 섭외가 완료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적을 낸다.
연합이 강해져야, 한국이 강해지므로.
다시 제주도 소실 사건 때처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만 했으니까.
‘··· 팬텀도 도전할테지.’
그리고 만약, 탑의 안에서 팬텀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일기에서 본 내용을 전해야 한다.’
김하나가 보여준 일기.
그 일기의 내용엔 묘한 내용이 몇 포함되어 있었다.
김하나는 일기를 쓴 자가 누구인지 절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박태우는 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하여 ‘추론’할 수 있었다.
‘민초. 그가 가장 위험한 자라는 걸.’
민트초코맛있어요가 팬텀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
《경이로운 점수로 명예의 전당 1순위를 거머쥐었습니다!》
《‘업적상점’의 판매목록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4,500점의 업적 점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불멸의 워프석(300)》, 《워프석(20)》, 《수호벽(11Lv) 레벨업(1,100)》, 《수호벽 지속시간 1초 증가(500)》, 《황금률 상점 목록 늘리기(1,000)》, 《황금률 상점 갱신 시간 단축하기(1,000)》, 《비밀경매장 동시 판매목록 증가(500)》, 《상태창 레벨업(10,000)》······.
목록을 보자 대박을 외친 이유.
업적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의 종류가 그 정도로 놀라운 탓이다.
‘얻은 이권의 등급을 격상시킬 수 있을 줄이야.’
필요한 점수가 높기는 하지만 구매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상점은 단언컨대 없다.
심지어는 내가 지닌 4,500점의 점수로 구매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상태창 레벨업? 상태창의 레벨이 올라가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상태창이 무엇인가.
내 상태를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화한 창이다.
그것의 레벨을 올린들 뭐가 달라진다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1만 점수를 필요로하는 걸 보아, 결코 중요도가 낮진 않아보였다.
‘안 그래도 수호벽의 레벨을 올리고 싶었는데 잘됐군.’
수호벽은 내가 판게니아에 있을 때, 지구의 몸을 지켜주는 이권이다.
11레벨이면 1성(星) 이하의 공격을 30초간 무효화시키는 기능이었다.
이 또한 대단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완전한 안전을 장담하긴 어렵다.
《‘수호벽’의 레벨이 12로 격상했습니다.》 -1,100점
《‘수호벽’의 레벨이 13로 격상했습니다.》 -1,200점
《‘수호벽’의 레벨이 14로 격상했습니다.》 -1,300점
《‘수호벽’이 강화되어 빛나기 시작합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당장 중요한 건 수호벽의 이권 레벨이니까.
입꼬리가 절로 말려올라갔다.
곧이어 내 앞으로 수호벽의 창이 떠올랐다.
【진(進) 수호벽(14Lv)】
★ 로그아웃 된 신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경고해줍니다.
★ 수호벽의 레벨에 따라 보호할 수 있는 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 14레벨의 수호벽은 4성(星) 이하의 공격을 30초간 무효화합니다.
★ 진(進)의 형태로 강화된 수호벽이 신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진 수호벽이라.
극진멸참의 사강화 중 진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진(進)은 그 기능 자체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주는 강화의 수식어.
‘추가효과가 붙어서 나쁠 건 없지.’
아마도 레벨을 더 올리면 나머지 강화의 수식어도 함께 붙으리라.
하여간 4성 이하의 공격을 무효화시킨다면 적어도 지구에서의 몸은 어느정도 안전이 확보된 셈이다.
‘남은 점수는 900점.’
문제는 남은 점수가 애매했다.
어지간한 이권들의 레벨을 올리는 데에는 최소 천 점이 필요했으니.
‘불멸의 워프석과 일반 워프석이라.’
마스터가 독점하여 판매하고 있는 물건이 바로 워프석이었다.
그런데 불멸의 워프석은 또 처음 들어본다.
이번 퀘스트를 압도적인 점수로 밀어서 추가된 목록인 모양인데.
턱을 쓸며 불멸의 워프석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았다.
【불멸의 워프석】
★ 불멸의 워프석을 머금은 워프는 파괴되지 않습니다.
★ 불멸의 워프석으로 연결된 워프는 강제로 해제되지 않습니다.
★ 한 도시당 하나의 ‘불멸의 워프석’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보자마자 어깨가 들썩였다.
“······ 이것도 대박이군.”
일반 워프석의 가격은 아무리 싸도 백만 골드를 훌쩍 넘는다.
하물며 여태껏 등장한 적 없는 불멸의 워프석.
이 기능을 확인한다면, 도시의 주인들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 것이다.
워프석의 업적점수가 20인데 비해 무려 300점을 필요로 하니, 단순 가격으로만 치환해도 천오백만 골드.
여기에 희소성을 더하면 가격은 배의 배로 뛸 것이다.
어쩌면 억단위가 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불멸의 워프석은.
‘심연에 가라앉는 걸 어느정도 방지해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심지어 워프를 강제 해제하여 가라앉히는 악질적인 수법도 방지해준다.
한 도시당 세 개를 설치 못하는 건 다소 아쉽지만.
‘미궁 도시에 한 개, 그리고 하나는 팔아야겠군.’
아무리 미궁 도시가 구제국의 땅이라 해도, 이전에 쓴 골드가 너무 많았다.
도시의 재정과 빛의 옥좌를 생각하면 골드가 더 필요한 상황.
결정을 내린 나는 업적상점의 목록을 재차 띄웠다.
《‘불멸의 워프석’을 두 개 구매했습니다.》 -600
《‘불멸의 워프석’ 한 개를 ‘비밀경매장’에 올렸습니다.》
《경매시간이 7일로 설정되었습니다.》
《시작가는 10,000,000G 입니다.》
이 가치를 못 알아볼 사람은 없을 테니, 알아서 잘 팔리겠지.
이제 진짜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
······ 딱 하나 빼고.
《‘황금률 상점’에 접속합니다.》
《온전한 황금률 2개와 황금률 조각 2,355시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갱신된 황금률 상점의 목록을 불러옵니다.》
*
세렝게티, 하이 드라이어드 롬멜, 발테, 앤드류, 그리고 나.
이하 다섯 파티원이 균열의 탑으로 향했다.
탑을 지척에 두고서, 앤드류가 침을 꿀꺽 삼키곤 말했다.
“······ 후계자님. 혹시 제 치유능력이 의심스러우십니까?”
돌연 듯 내가 ‘최상급 엘릭서’를 나누기 시작한 직후의 말이었다.
“믿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세 개씩은 챙기도록.”
앤드류는 믿는다.
그의 사제로서의 능력은 발군이었다.
허나 탑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상, 담보는 필요하지 않겠나.
황금률 상점에서 ‘최상급 엘릭서’는 30시간에 팔렸고, 그걸 정확히 15개 구매하여 나누고 있는 것이다.
“각자 최상급 엘릭서 세 개라니······.”
발테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엘릭서가 든 병을 받아들었다.
어지간한 토벌에서도 엘릭서를 챙겨가진 않는다.
한데, 세 개라니.
그야말로 호화스러움 그 자체.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것도 하나씩 챙겨가라.”
“이건······ 뭡니까? 호루라기?”
세렝게티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호루라기다. 오직 본인만 사용할 수 있으니 도난의 위험도 없지.”
이 역시 갱신된 황금률의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적어도 서로를 잃지는 않게끔.
잃어도 금방 찾을 수 있게끔 말이다.
“후계자님······.”
“감동입니다!”
“저희를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 줄이야······.”
“고맙다, 형제여.”
······ 징그럽게들 왜 이래?
이토록 만반의 준비를 한 건, 안전 때문만은 아니다.
균열의 탑에서 층을 오르면 ‘레벨 제한 해제’를 할 수 있다는 대목이 너무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모두가 그 혜택을 보는 건 아닐 터.
파티 자체가 높은 성적을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투자일 뿐이다.
“입장하지.”
“예!”
세렝게티가 우렁차게 외쳤다.
곧이어 균열의 탑으로 발을 들이자.
《‘균열의 탑’의 ‘입장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1층, 균열된 레벨의 탑.》
《레벨에 따라 들어가는 영역이 나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합산된 점수에 따라 마지막 ‘레이드 보스영역’이 열리고,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여부가 결정됩니다.》
······.
《‘영원군주의 심장’이 발동합니다!》
《‘균열된 레벨의 영역’이 해제되었습니다.》
《‘란돌프’는 1레벨 영역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균열의 주인’이 인상을 찌푸립니다.》
마혈왕의 권능
찬란한 영웅의 성좌.
모든 별빛을 담아, 유일등급의 보상을 완성시킨 그는 실로 만족하였다.
만족하였는데.
‘그래도 끝을 못 본 것은 아쉽군.’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건 진정한 ‘끝’을 못 본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공허함이 채워지며, 자신이 하지 못했던 선택을 보게 되었으니까.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대의를 위한 명분이라 포장했으나, 결국 나는 나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본디 그는 영웅이었다.
성좌이기 전에, 한 세계의 기둥이라 불리었던 자.
찬란하며 아름다웠던 진정한 영웅.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의 생은 언제나 후회뿐이었다.
결국 지키지 못했고, 패배하며 스러진 비참한 말로를 걸었다.
세계를 지키려는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만이 세계를 지킬 수 있으리라 맹신했다. 그 결과 나는 나를 대신해 다른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보고싶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실할 수 있는 영웅을.
하지만, 볼 수 없었다.
그런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