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40화 (140/317)

소드마스터이자 오크 마스터인 락투샤. 

그리고 그와 비견되는 동급의, 아마도 흑왕의 주측들. 

그들은 락투샤가 ‘수련자의 산’에서 한 실패를 나무라고 있었다. 

천하의 락투샤마저도 그들의 발언에 그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인간. 너는 분명히 이 ‘탑’과 ‘히든 특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것‘도. 제대로 도움이 되어야 흑왕께서 너를 높게 살 거다.” 

다크 엘프가 마스터에게 말했다. 

자신 따위는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위에서의 시선 그대로다. 

···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걱정 마라. 나보다 더 이 ‘탑의 정체’에 대해 빠르게 깨달은 자는 없을 테니까.” 

재능과 히든 특성만이 아니다. 

이 탑에는 더 깊숙하고 중요한 내용이 있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 탑은······. 

“그럼 입장하지.” 

락투샤가 앞장서서 균열의 탑으로 들어섰다. 

잡념을 떨쳐낸 마스터도 따라서 들어갔다. 

그러자. 

《‘균열의 탑’의 ‘입장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1층, 균열된 레벨의 영역》 

《레벨에 따라 들어가는 영역이 나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합산된 점수에 따라 마지막 ‘레이드 보스영역’이 열리고,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여부가 결정됩니다.》 

《한 번 입장하면 층이 클리어 되기 전까지 퇴장할 수 없습니다.》

유레카!

마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거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 바알이 제거되고, 이제는 걸어두었던 강력한 ‘저주’마저 해제된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계의 절반을 담은 저주다. 일반적인 축복으로는 절대로 해제할 수 없는.’ 

빌헬름을 죽이고자 준비해둔 함정. 

하지만, 그 저주에 당한 건 빌헬름이 아니었다. 

빌헬름을 대신해서 희생당한 기사가 있었다. 

분명히 그 기사에게 걸어둔 저주는 영원토록 지속할 예정이었다. 

한데. 

‘저주가 먹혔다.’ 

절대 해제될 수 없는 저주가, 무언가에 먹혔다. 

마계의 절반을 담은 저주는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것. 

그걸 지우고, 먹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멸망의 조각.’ 

바알에게 숨겨두었던 것. 

오직 그것만이 마왕의 저주를 먹어치울 수 있다. 

그 깊은 어둠만이. 

하면, 바알을 죽인 자가 자신의 저주를 해제했단 말인가? 

확실히 귀찮아지긴 했다. 

이는 또한 존재 모를 변수가 출현했다는 말이니.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거늘.’ 

마왕은 피식 웃고 말았다. 

예전이었다면 신경이 많이 쓰였겠지만. 

지금은 도리어 흥미롭기만 하다. 

더 강한 적수의 출현이야말로 이 ‘몸’의 한계를 실험해볼 기회. 

-네놈······ ‘천상’이 두렵지 않느냐? 

서광이 비치는 용. 

신수라 칭해지는 천공의 용도 지금은 빛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고대에 존재한 용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전해지던 ‘일곱 용신’ 중 하나가. 

-‘천상’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감히 ‘수호자’ 중 하나인 나를 건드리다니······! 그것도 죽은 인간의 몸으로! 

“마왕님. 끌려온 놈 주제에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두 번째 초열지옥의 왕 이세라. 

반월의 뿔과 붉은 인간의 신체를 지닌 반인반용. 

그가 쓰러진 채 힘을 잃은 용신의 몸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용신이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세라. ‘천상’과 ‘수호자’의 자식이었던 네가 나를 어떻게! 내가 너를 얼마나 어여삐 여겼거늘! 

“역시 시끄럽군.” 

이세라가 손을 들자 거대한 헬파이어가 맺혔다. 

촤아악! 

지옥의 불길을 손에 두른 이세라의 손은 곧장 용신의 몸통을 관통했고. 

두근! 두근! 

힘차게 뛰는 용신의 심장을 꺼내들었다. 

이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왕에게 그 심장을 건넸다.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마왕님.” 

“나는 한 번도 너의 충정을 의심한 적이 없다, 이세라.” 

“······ 침략의 때에, 남은 수호자의 심장들도 바치겠나이다.” 

“음.” 

고개를 끄덕인 마왕이 흡족히 웃으며 심장을 건네받았다. 

이후. 

어그적! 

어그적! 

용신의 심장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 순간. 

화아악! 

마왕의 새하얗던 전신에서 핏기가 돌며, ‘생명’이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훌륭하군.’ 

마왕은 흡족하게 웃었다. 

죽은 몸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 몸에 깃든 수많은 잠재력과 힘, 그리고 자신의 권능이 합쳐지며. 

또한 그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세렝게티는, 눈을 뜬 즉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쌍둥이 동생이 있었던가요? 아니면 언니?”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눈앞에 있었으니. 

눈도, 코도, 입도, 뭐 하나 빠짐없이 똑같은 얼굴. 

거울을 보고 있다고 의심할 정도로 빼닮았다. 

허드슨이 땀을 삐질 흘렸다. 

“그, 그게······.” 

“아니군요. 자세히 보니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저보다 조금 더 못생겼군요. 보아하니 저를 놀리려고 도플갱어라도 데려온 듯싶은데 이거 하급 도플갱어 아닙니까? 쯧쯧.” 

그리고 오랜만에 깨어난 세렝게티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도플갱어라니. 

아무래도 직접 밝힐 수밖에 없을 듯싶었다. 

“······ 나 허드슨이야.” 

“하하하. 웃기는 도플갱어입니다. 허드슨이 여자가 됐다는 말입니까, 그럼?” 

“이게 얘기하자면 긴데······.” 

“좋습니다, 도플갱어. 허드슨과 제가 처음 만난 곳이 어딘지 압니까?” 

허드슨이 지체없이 답했다. 

“성 내에서 장사하다가 처음봤지. 그때 너는 사기꾼을 쫓고 있었고······ 그게 나인 줄 알고 잡아갔잖아. 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지. 공범 찾겠다고 날 고문했잖아.” 

“······ 허드슨이 제게 처음 고백한 장소는?” 

허드슨은 작게 웃으며 말문을 텄다. 

“시내 옆에 작은 언덕 위. 거기 달망울꽃이 참 예쁘게 폈었지. 어스름한 저녁이었고. 그때 고백하니까 놀란 네가 날 밀쳐서 언덕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지 아마? 조금 더 높았으면 확실하게 죽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찔하네.” 

“제가 처음으로 준 선물은?” 

허드슨이 자신의 목을 손으로 훑었다. 

“뼈 목걸이. 처음으로 사냥한 괴물의 뼈로 직접 만들었다면서 줬었지. 피냄새가 덜빠져서 비린내가 좀 심하더라. 그래도 좋아서 잘 착용하고 다녔었는데, 덕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었지. 내가 뭐 아이를 납치하고 죽인 뒤에 그 뼈로 목걸이를 만들었다나······ 그 뒤로 거래가 거의 다 끊겨서 힘들었던 거 같네.” 

“············ 허드슨?” 

“응, 나야. 세렝게티.” 

“아아, 허드슨!” 

와락! 

몸을 일으킨 세렝게티가 허드슨을 와락 껴안았다. 

그런데 지금 들은 이야기가 전부 실화란 말인가? 

‘참으로 다난다사한 사랑이었군.’ 

나를 비롯하여 듣고있던 사람들 모두가 잠시 넋이 나갔다. 

저게 진정 사랑의 힘인가 싶을만큼 경이로운 이야기였으므로. 

한참 껴안고있던 세렝게티가 문득 생각이 나선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여자가 된 거야? 이제 남자가 아닌 거야, 허드슨?” 

“······ ‘외형 변형 물약’에 깊게 손을 댔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야.” 

“괜찮아. 그런 변명 할 필요 없어. 난 허드슨이 여자여도 사랑하니까.” 

“나도 네가 남자라도 사랑하겠지만······ 변명이 아니야. 믿어줘. 진짜야.” 

“괜찮아. 정말 괜찮아.” 

툭. 툭. 

세렝게티가 허드슨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 안 믿는 거 같은데. 

허드슨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말을 좀 해달라는 듯이. 

음. 확실히 이대로는 문제가 된다. 

하여 나는 확실하게 진실을 말했다. 

“세렝게티.” 

“아······ 예, 후계자님.” 

나를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린 세렝게티가 어흠! 헛기침을 내뱉으며 허드슨과 떨어졌다. 

“몸은 좀 괜찮나?” 

“예. 이젠 저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됐군.” 

남은 저주마저 ‘어둠’이 먹어치웠다. 

이제 세렝게티에게서 저주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강력한 전력이자 나의 최측근이었던 기사. 

그녀가 마침내 부활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릴 때. 

나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세렝게티.” 

“예.” 

“허드슨은 완전무결한 여자가 됐다.” 

“······.” 

“성을 전환하며 이름도 바꿨다. 앞으로 ‘세이지’라 부르도록.” 

“아아······.” 

살짝 충격을 먹은 듯, 세렝게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세이지······ 예쁜 이름이군요······ 이제 허드슨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세이지.” 

이름까지 바꿨다는 건 좀 심했나? 

그때였다. 

“세렝게티. 거짓말이야. 나 진짜 여자가 된 게 아니라고!” 

“······ 그럼 후계자님께서 거짓을 말하셨다는?” 

“어······ 아니, 그건······.” 

“실망이야.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고 거짓말을하는 사람이라곤 생각 안했는데. 우리의 미래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자.” 

“······.” 

허드슨의 얼굴이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변했다. 

겨우 오해를 푼 뒤, 허드슨과 세렝게티는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성밖으로 나가려던 도중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후계자님. 잠시 시간 되십니까?” 

“앤드류.” 

명예와 관련된 퀘스트를 주는 성직자 앤드류. 

안 그래도 ‘악업’의 수치를 낮추고자 찾아가려 했었다. 

앤드류는 ‘면죄부’를 무한히 복사할 수 있는 면죄부 담당이었으니. 

“무슨 일 있나?” 

“혹시······ ‘균열의 탑’에 오르시려거든, 저를 데려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균열의 탑을? 그대가 왜?” 

“계시인지 모를 꿈을 꾸었습니다. 그곳에······ 안다사르의 상태를 호전시킬 무언가가 있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제가 필요할 일이 있을 겁니다. 분명히.” 

안다사르. 

앤드류의 딸이자, 한때 저주받은 흑마법서에 의해 엘드리치가 되었던 소녀. 

이후 크람델의 사왕에게 흘러들어가 듀라한이 되었다. 

다시 앤드류의 품으로 돌아오긴 하였으나, 아마 숨기는 데 급급해하고 있을 터. 

여신교의 교단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즉시 앤드류는 파문이다. 

‘흠. 힐러 두 명은 필요없는데.’ 

필요한 인원은 다섯명. 

당연히 나는 성녀 세아를 데려가려고 했다. 

앤드류까지 끼면 힐러가 두명이 되는 상황. 

힐러 둘은 필요 없다. 

하지만, 묘하게 걸린다. 

계시이자 꿈이라는 말이. 

‘앤드류 역시 고위사제다. 그가 꿈을 꾸었다면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심지어 여신의 가호까지 일으켰던 자다. 

단순히 ‘계시’의 방향으로는, 세아보다 더 근접해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뭐, 뭐야!” 

“드라이어드가 워프를 넘어왔다!” 

돌연 듯 성 외부가 시끄러워졌다. 

이에 바깥을 둘러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형제여! 괜찮은가!” 

하이 드라이어드. 

그가 성을 찾아온 것이다. 

“여기 있음을 알고 있다! ‘신록’이 말해주었으니, 부디 얼굴을 보여다오! 괜찮은 걸 확인하기 전까진 떠나지 않겠다!” 

여전히 우렁찬 녀석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파티가 정해졌다. 

앤드류와 하이 드라이어드가 합류하며 두 자리가 채워진 것이다. 

남은 두 자리는 세렝게티와 이자벨라로 채우려고 할 때. 

“······ 제가 빠지겠습니다.” 

이자벨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참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맞는 건지 조차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후계자님께 그런 무리를 시키지 않았습니까? 하마터면······.” 

“결과적으로도 나는 죽지 않았다.” 

오염원을 대신 먹어치운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로 인해 나는 열 다섯 번째 히든 특성을 개화했다. 

따지자면 이자벨라는 내게 이득을 가져다준 셈이다. 

“······ 후계자님을 위험케한 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괜찮다는데도?” 

“죄송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자신의 감정을, 불현 듯 떠오른 기억들을 정리할. 

하기야 초월하며 떠오른 그 기억들이 지금도 이자벨라를 괴롭히고 있을 터였다. 

아무리 강인한 자라도 이겨내긴 힘을 테니까. 

지금 자신이 나서봤자, 이런저런 생각들로 도움이 안 되리라 여긴 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주마. 하지만 오래 기다려주진 못한다.” 

“아······.” 

“탑을 내려올 때까지, 정리해놓도록. 아직 우리가 계약한 시간조차 다 지나지 않았으니.”

“감사······ 감사합니다.” 

이자벨라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탑을 오르지 않아도 이자벨라가 할 일은 많았다. 

사막도시도 정비해야하고, 아이작이 돌아올 경우 맞이해줄 사람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미궁도시를 담당하는 허드슨과 연계로 해야할 일이 많을 터였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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