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31화 (131/317)

사막도시 파이살메르. 

위이이잉-! 

외부의 접근이 없는 그 사막의 워프에,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아리아였고, 나머지 한 명은······. 

“제가······ 여기까지 따라올 필요가 있습니까?” 

아리아가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오주력, 란돌프를 향해. 

파이살메르를 정복하는데 왜 자신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천빙검’이 너와 계약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까악.” 

두 부녀의 실수로 란돌프가 원한 건 북천빙검이었다. 

이 에고소드의 비밀을 파헤칠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천빙검은 이미 아리아와 계약을 끝낸 상태. 

북천빙검과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면, 아리아는 죽는다. 

결국 란돌프는 자신이 파이살메르를 정복하는 조건을 추가하여, 아리아를 함께 대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신경쓰지 마라, 까악. 너는 그저 검 받침대 같은 것일 뿐이니, 까악.” 

“······.” 

그것도 자신의 역할이 검도 아니고 검집도 아닌 받침대라니. 

그 표현이 너무 신경쓰였다.

사막도시 파이살메르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 백왕은 백왕전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크람델의 주민들과 주력들 역시도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이 본 광경은, 여태껏 ‘말’로만 전해지던 그저 그런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작게 소곤대는 자들은 있기 마련. 

“오주력에 대한 소문이 그럼······.” 

“전부 사실이었던 거지.” 

“음. 아직도 내가 본 게 믿겨지지가 않는군.” 

실제로 오주력의 무력을 본 자들은 없다. 

그저 신비의 관에서 백왕도 달성하지 못한 성취를 이루고, 망령왕 아흐람을 죽였으며, 심연 미궁을 그가 차지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뿐. 

그게 전부 오주력 본인이 ‘직접’ 이뤄낸 업적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부풀려진 것인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하여 오주력의 신화를 허무맹랑, 허황한 이야기라 치부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럴진대. 

“······ 백왕의 공격을 받아냈다.” 

“받아내기만 한 것도 아니지. 한순간이지만 분명히 ‘속박’했으니.” 

실제로 보고 말았다. 

백왕의 공격을 흘리고, 속박하여, 여유롭게 ‘훈수’를 두는 장면까지. 

천하의 백왕을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나. 

있기는 할까?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백왕이 사과를 할줄이야.” 

“······ 처음 있는 일 아닌가?” 

백왕이 그러한 모습을 보인 건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도 그럴 게, 백왕은 크람델의 실질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자신의 왕국에서, 그것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인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쯤되자 크람델의 괴물들도 오주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졌다. 

“오주력에게 줄을 서야 할 수도 있겠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줄을 설 걸 그랬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른 주력들도 전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 줄을 서서 따르냐에 따라 이건 엄청난 ‘공’을 세울 기회이기도 할 터.” 

주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왕은 사라졌고, 나머지 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를 따르냐에 따라서 혁혁한 공을 세울 수도 있을 터. 

신분상승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크람델에서 관리자 등급만 되어도 받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하물며 주력이 된다면? 

“오주력이 나타났다면 육주력, 칠주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주력이 된다면 크람델의 지배계층이 된다. 

인간들로 따지면 왕가, 왕족의 일원이 되는 게다. 

그래서 수많은 괴물들이 새로운 주력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주력들의 세력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들을 따르는 탄탄한 세력에 낄 자리는 없다. 

‘먼저 오주력에게 붙는 쪽이 승자다.’ 

‘다른 놈들에게 양보할 순 없지!’ 

괴물들의 생각은 대동소이하였다. 

어차피 전쟁을 준비하려거든, 인재풀은 필요할 것이다. 

백왕을 물린 오주력의 옆에 붙는다면 이건 약속된 승리와 같았다. 

옆에서 공을 세운 뒤 주력의 자리까지 노려볼 수도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수많은 자들이 오주력을 찾아 나섰지만. 

“······ 없어?” 

“이미 떠났다고?” 

오주력, 란돌프는 이미 크람델에 없었다. 

다른 주력들보다도 빨리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직 아리아만을 대동한 채로. 

오주력 란돌프가 떠났다. 

아리아. 자신의 딸과 함께. 

백왕은 백왕전의 안에서, 차가운 대리석에 앉아 상념에 잠겨있었다. 

-이 검을 원한다, 까악. 

무엇을 원하냐 물었을 때, 오주력은 지체없이 ‘북천빙검’을 원한다고 말했다. 

북천빙검은 북방에 오랫동안 봉인되어있던 무기 중 하나. 

백왕이 직접 관리할만큼 위험하고, 강력한 검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백왕도 북천빙검의 기원은 모른다. 

언제 만들어져서 왜 북방에 봉인되어있었는지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북천빙검을 포함한 그 무기들은 하나같이 인세를 초월한 비밀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무기들은 주력들의 레벨조차도 상승시켰다.’ 

흑왕이 자신을 노린다는 걸 깨닫고, 백왕은 봉인된 무기고를 풀었다. 

주력들에게 걸맞은 무기들을 나눈 결과 그들의 격은 한단계 상승했다. 

고작 무기 따위가 본질적인 ‘격’을 드높인 것이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백왕은 잘 알고 있었다. 

‘북천빙검은 그 무기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었지.’ 

그리고 그 봉인된 무기고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존재하던 게 바로 ‘북천빙검’이다. 

다른 무기들과도 멀리 떨어진 채로 혼자 봉인되어있던 검. 

일체의 고민없이 그 검을 선택한 오주력의 혜안에 감탄이 일 지경이다. 

그때였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상념을 깨는 목소리. 

궁기가 찾아왔다. 

백왕은 천천히 눈을 뜨곤 말했다. 

“괜찮지 않을 게 무엇이냐?” 

“오주력 말입니다. 그대로 놔둬도 괜찮겠습니까?” 

백왕은 피식 웃었다. 

“그대가 웬일로 대토룡과 같은 말을 하는군.” 

궁기와 대토룡은 성격이 완전히 딴판이다. 

궁기는 신중했고, 대토룡은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었다. 

당연히 둘의 의견이 일치한 날이 없건만, 오늘은 웬일로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놀리는 듯한 말투에도 궁기는 진중하게 답했다. 

“위험한 자입니다.” 

“위험하지. 실로 불길하기도 하고.” 

백왕이 긍정하며 고개를 한차례 끄덕였다. 

백왕의 입장에서 오주력은 ‘한없이 불길한 존재’였으나, 이제는 진정한 ‘위험’의 요소로 자리잡아가는 중이었기에. 

“아무리 내가 ‘본체’의 형태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용오름’이 통하지 않았다. 아마도 특정한 속성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피해갈 수 있는 것 같더군.” 

직접 손을 나눠본 것은 처음이다. 

한데, 오주력에겐 자신의 공겨이 통하지 않았다. 

무적은 아니나, ‘무시’의 효과를 지닌 스킬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궁기가 다소 놀란 어조로 입을 열었다. 

“··· 백왕님의 격은 마땅히 모든 ‘속성’을 꿰뚫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이다. 

백왕의 격은 모든 방어를 관통한다. 

속성과 내성을 가리지 않고 뚫어버린다. 

그런 백왕의 공격을 어찌 흘려낸단 말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대의 말이 맞다.” 

“그럼······ 오주력의 속성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예컨대 빛의 속성이 초월하면 ‘광명’이 된다. 반대로 어둠 속성이 초월하면 무엇이 되는지 아나?” 

“······ 모르겠습니다.” 

빛은 빛이고, 어둠은 어둠이지, 그 이상가는 게 더 있다니. 

적어도 궁기는 본 적이 없다. 

그럴줄 알았다는 듯 백왕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가장 깊은 어둠. 오주력은 심연의 존재다.” 

“······!!!” 

궁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가장 깊은 어둠, 심연. 

천공의 대륙 아래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땅. 

태초의 세계를 집어삼킨 그 어둠 속에서 오주력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물론, 크람델엔 심연에서 나온 괴물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괴물들은 고작해야 심연에 살짝 발을 담근 수준이다. 

반면에 오주력은······. 

“오주력 같은 자가 어디서 나타난건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이제 해결되었지. 심연, 그것도.” 

백왕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문의 안쪽’ 존재임이 분명할지니.” 

“‘문의 안쪽’······ 이 뭡니까?” 

처음 들어보는 표현에 궁기가 물었다. 

그러나 백왕은 어깨만 으쓱해보일 따름이었다. 

‘오주력이 문의 안쪽에서 나왔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백왕의 생각이 맞는다면 화가 도리어 복이 된 경우다. 

북천빙검을 가져가며 아리아 역시 함께하게 됐으니, 계속 같이 있다보면 둘의 사이가 진전될 건 물보듯 뻔한 일. 

그 불길함. 

그리고 오주력의 몸을 자신의 손이 관통했을 때. 

백왕은 전율하며― 확신했다. 

‘성혈(聖血)을 이은 자, 성혈자여.’ 

“뭐하느냐 받침대, 까악.”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 끅!” 

아리아가 차오르는 숨을 애써 삼키며 헉헉거렸다. 

사막도시 파이살메르. 

사막여왕의 통치하에 바바리안들이 설치던 곳.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이곳은, 예전과 같지 않았으니까. 

“이단자들이다!” 

“죽여라! 죽여라!” 

우리를 발견한 바바리안들이 단체로 실성을 했다. 

벌겋게 눈을 뜬 채로 공격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상당히 많다는 것. 

그리고 레벨도 생각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오염됐다.’ 

그 원인을 나는 즉시 알아차렸다. 

이 도시가, 이 사막이, 오염되어 있었다. 

오염된 땅 위의 사람들은 광기를 일으키며 미치게 된다. 

이후 육체의 모든 능력을 끌어내지만, 오래지나지 않아 생명을 다하곤 죽는다. 

‘이자벨라.’ 

사막여왕이 죽은 뒤, 사막도시를 정벌코자 떠난 이자벨라. 

오랫동안 소식이 없음을 궁금해 했었는데,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그럼 이자벨라는 어떻게 된 걸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8 : 오염된 도시 정화작업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의 오염원인을 찾아내어, 모두 제거하십시오!》 

《보상 : 내용에 따라 차등 지급》 

《실패시 : 사망 - 게임과 현실 양쪽의 육체가 모두 사망합니다.》 

메인 퀘스트 8이 시작됐다. 

오염된 도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간혹 나타나는 요소로, 도시 전체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이 세계엔 갖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 

메인 퀘스트 8은 그런 오염된 도시에서 오염원들을 제거하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 

오염원은 보통 한 도시에 5개에서 10개 사이로 존재하며, 그중 하나만 제거해도 퀘스트를 달성하게 되는데. 

‘오염원이 나타나는 원인은 스토리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무언가의 저주, 혹은 대륙이 천공으로 떠오른 탓 등등 추측만 난무하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 

판게니아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워프가 터져서 심연에 가라앉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 

“죽여라!” 

“다 불살라버려라!” 

미친 바바리안들이 아리아를 둘러싸고 몸을 던져대는 중이었다. 

아리아는 그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항전하는 중이었고.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턱을 쓸어보였다. 

‘문제는 시기다. 왜 하필 지금 오염됐을까.’ 

물론, 오염원은 예고없이 나타난다. 

오염원의 숫자가 많아지면 도시 전체가 오염되는 방식이다. 

하여, 도시의 지배자는 워프도 신경써야하지만 오염원을 제거하는 일 역시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어디보자. 사막여왕이 죽은 뒤 도시가 관리가 안 되어서?’ 

그러니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그 이유도 클 것이다. 

도시를 완전하게 통제하던 사막여왕은 심연 미궁에서 죽었다. 

그 상황에서 도시의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 

오염원이 늘어나도 방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왕님’을 위하여!” 

“이단자들을 쓸어버리자!” 

······ 한데, 바바리안이 지껄이는 저 말이 신경쓰인다. 

여왕님을 위하여? 

사막여왕은 틀림없이 죽였다. 

그 사이에 새로운 여왕이 나타났다고? 

그리고 ‘오염자’들이 그 여왕을 따르고 있다는 말인가? 

오염자들의 여왕이라. 

‘설마?’ 

내심 불안해진다. 

그 여왕이라는 게······ 설마 이자벨라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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