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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29화 (129/317)

아리아. 

그녀는 좌선한 채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로 검 한자루가 은은한 한기를 띈 채로 조용히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북천빙검.’ 

북방에 잠든 고대신의 검. 

너무나도 위험하여 백왕이 직접 봉인했던 무기들 중 하나. 

닿는 즉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극한의 한기를 지닌 탓에 아무도 다룰 엄두를 내지못했던 그 검을, 그녀가 길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깨달음을 얻고 벽을 넘었으나. 

‘아직 부족해.’ 

그녀는 더욱 깊게 갈망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검을 넘어서려면 아직 멀었다. 

단번에 비석을 내지르던 검강. 

검선도, 소드마스터 락투샤도 자르지 못하던 그 비석을, 무자르듯 그냥 베어버렸으니까.

검선이 말하던 진정한 ‘검의 주인’은 그를 뜻하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닿을 수 있지?’ 

자신이 천재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오만이었음을 락투샤를 통해, ‘그 남자’를 통해 깨달았다. 

북천빙검마저 길들였지만 아직도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닿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기 위해선 멈추면 안된다. 

눈을 감은 아리아가 ‘관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 오주력.’ 

······ 머릿속에서 그녀의 집중을 방해하는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람델에서 혜성같이 떠오른 존재. 

오주력 란돌프.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름이나, 아직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백왕은 그와 자신을 어떻게든 엮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음대로는 안 될 겁니다.’ 

자신은 백왕의 의지에 따라 팔려가는 물건 같은 게 아니다. 

들어가자마자, 얼굴을 보자마자 분명하게 말하리라. 

시체 까마귀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흉물스럽고, 못생긴 자와 엮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도리어 오주력이 기겁하게 하여 먼저 자리를 뜨게 만들어주겠다. 

“······.” 

그리 마음 먹은 아리아가 굳은 의지와 함께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곧 오주력과의 식사 시간이었기에. 

수많은 보석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너른 방. 

만찬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아리아는, 재차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막 나가는 거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이상 엮일 일도 없을 테니.’ 

백왕의 의지를 정면에서 반하는 짓이다. 

백왕이 마음 먹는다면, 고작 그 정도로는 불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오주력이다. 

백왕은 묘하게 오주력과 관련된 일이면 한 발자국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말인 즉슨, 오주력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천하의 백왕이라 할지라도 이 이상의 진전을 마음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먼저 도착해있군.’ 

아직 약속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오주력으로 보이는 자가 이미 만찬실에 도착하여 앉아있었다. 

크람델의 주민들은 ‘약속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건만. 그래도 오주력은 개념은 있는 자인 듯싶었다. 

‘얼굴을 보면 바로 말하는 거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다. 

백왕의 억지로 만든 자리에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굴을 보면 바로 본론부터 말하리라. 

그대 같은 자는 질색이라고, 시체 까마귀는 더더욱 싫다고. 

큰 결례지만 이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마음 먹고 상대의 반대편에 마주앉자. 

“······!!!” 

아리아는, 마음먹었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작심하여 독한 말들을 쏟아낼 예정이었지만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왜냐하면, 오주력의 모습이. 

그 얼굴이······. 

“어, 어떻게······!” 

아리아는 전신에서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얼굴이 끔찍해서만은 아니다. 

물론, 끔찍하긴 했지만 아리아가 소름을 돋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 바알······.” 

왜 바알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 바알? 

아리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곤, 고개를 갸웃했다. 

‘어둠을 피우는 자’로 변하며 끔찍하단 반응들은 줄곧 봐왔지만 ‘바알’을 언급한 건 처음인 탓이다. 

하지만, 내 얼굴이 ‘바알’과 같았다면 백왕이 먼저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백왕도, 다른 주력들도 바알을 본 적이 없어서 못 알아본 건지. 

“왜 바알이 크람델에 있는 것이냐? 설마 크람델을 가라앉히려고?” 

쉬이이이이이! 

뒤에서 날아오는 묵직한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그러자 극한의 한기와 함께 귓불을 스치고 검 한 자루가 지나갔다. 

“여기까지 네놈 뜻대로 되게 놔둘성 싶으냐!” 

“나는 오주력······.” 

콰릉! 

아리아가 바닥을 박찼다. 

검을 든 그녀의 전신에서 빙결이 올라왔다. 

빙결의 갑옷과 투구. 이어 검을 쏟아내자 주변의 모든 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작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수련자의 산에서 봤을 때와 지금의 아리아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Lv. 11】 

다른 주력들이 레벨을 올렸듯 그녀 역시도 엄청나게 격을 올렸다. 

아마도 저 검. 

【북천빙검(???)】 

등급을 알 수 없는 저 검이 그녀의 무력을 몇단계나 상승시킨 듯싶었다. 

이만한 파격을 보여주는 검이라니. 

‘마검이로군.’ 

일반적인 검은 아니다. 

검의 주인이 약하면 잡아먹는 마검의 한 종류였다. 

탁! 

날아오는 검을, 그대로 낚아챘다. 

“멍청한······!” 

설마 북천빙검의 검날을 잡다니. 

순식간에 얼어붙어 산산조각날 것이다. 

스아아아! 

예상대로 북천빙검에서 한기가 솟아올랐다. 

한기는 빠르게 상대를 잠식했다. 

··· 하지만, 얼지 않는다. 

‘뭐?’ 

북천빙검이 얼리지 못하는 것은 없다. 

닿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얼어붙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북천빙검의 한기는 상대를 얼리기는커녕. 

‘이게 무슨······?’ 

······ 한바퀴를 돈 한기가, 도리어 아리아를 얼리기 시작했다. 

한 차례 길들인 북천빙검이 주인을 몰라보고서 물어뜯는 격이다. 

있을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검의 소유권이 넘어갔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북천빙검이 자신을 얼린 이유. 

그저 공격을 한 게 아니라, 저 존재가 검에 손을 대자 일순간 검의 ‘소유권한’이 넘어간 것이었다. 

허나,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게, 북천빙검은 ‘귀속’의 장비. 

오로지 귀속된 자만이 소유하고 다룰 수 있는 검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는 이상, 귀속의 상태를 푸는 건 불가하다. 

귀속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는 판게니아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아는 기본 상식 중의 상식. 

무엇보다 북천빙검이 저런 불길한 자의 손을 들어줄 리가. 

북방의 땅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백왕이 직접 관리하던 무기 아니던가. 

그 위험도는 두말할 것도 없다. 북천빙검이 인정하지 않는 자가 검을 쥐면 그 즉시 목숨을 빼앗긴다. 

저 자도 그러해야 정상이었다. 

······ 한데, 얼지 않는다. 

그럼 북천빙검이 저 자를 새로운 주인으로 인식한 걸까? 

‘······ 더 깊은 어둠······.’ 

아아.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북천빙검은 새롭게 인식한 것이 아니다. 

제압당한 것이다. 

더 깊은 어둠에. 저항할 수 없는 의지에. 

저런 건 처음본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봤을 리 만무했다. 

“일단 한숨 자거라.” 

쩌저적! 

아리아가 얼음덩이로 변했다. 

‘······ 이를 어찌한다.’ 

얼음 안에 갇힌 아리아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바알로 착각하곤 다짜고짜 공격해올 줄은 나 역시 예상 못했다. 

‘이걸 어떻게 풀지?’ 

어느덧 내 손에 잡힌 ‘북천빙검’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을 피우는 자.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북천빙검의 기능을 잠깐 빼앗았지만, 얼린 걸 어떻게 해빙시켜야 하는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툭. 툭. 

나는 북천빙검을 손에 쥐곤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본래 ‘대식가’로 변신한 상태에선 장비를 착용하는 게 불가능한데, 지금 나는 분명히 북천빙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역시 어둠을 피우는 자의 특성이리라. 

게다가. 

-무서워! 너 뭐야! 무서워! 

······ 에고 소드라니. 

북천빙검이 지금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신기했다. 

정말 너무 신기했다. 

유일급 검이었던, 마왕의 가슴에 박아넣은 ‘빛의 길’조차도 자아를 가지진 않았다. 

검의 의지 같은 건 있었지만, 이처럼 말을 하고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두려워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설명에 ‘에고 소드’라 적힌 검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말이 ‘에고 소드’이지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진 못했다. 

미리 입력해놓은 언어를 필요에 따라 말할뿐. 

그런 류의 검은 당연히 감정도 없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나도 이런 류의 검은 처음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별에 새겨진 빌헬름의 기억을 훑어도 마찬가지였다. 

“······ 오주력이여. 뭘 하고 있는 거지?” 

아.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백왕이 무거운 눈빛으로 나와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 안에 갇힌 아리아와, 아리아의 검을 빼앗아 휘두르고 있는 나의 모습. 

오해하기 좋은 장면이긴 하지만. 

······ 백왕은 정말로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백왕 vs 어둠을 피우는 자

서로가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알아가길 바란 자리다. 

억지로 상황을 만들었으나 둘이 잘 어울린다고 백왕은 생각했다. 

아리아도, 오주력도 둘 다 솔직한 성격이었으니까. 

조금만 밀어붙이면 충분히 서로가 호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 

······ 호감을 느끼리라고 여겼건만. 

지금의 상황은 자신이 바란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화기애애하지도, 그렇다고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조차 아닌. 

그냥 ‘참상’ 그 자체였다. 

얼음덩이. 그 안에서 얼어버린 아리아. 

그리고 오주력은 북천빙검을 들고서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어찌?’ 

하지만, 북천빙검은 ‘귀속’의 장비다. 

귀속된 장비는 귀속자가 죽어야만 다른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그렇다면 왜 오주력은 지금 북천빙검을 휘두르고 있는가. 

답은 하나뿐이다. 

아리아를 죽이고, 빼앗지 않은 이상에야. 

게다가. 

‘흉조의 눈.’ 

북천빙검은 강력한 마검이다. 

빼앗더라도 북천빙검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휘두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북천빙검의 검신 중앙에 ‘눈’이 새겨져 있었다. 

흉조, 까마귀의 눈이다. 

피눈물을 흘리듯 떠진 눈 하나가 북천빙검의 모든걸 제어하고 있음을 백왕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감히.’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그것도 백왕전에서, 자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곳에서 저따위 짓거리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감히······.” 

백왕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전신의 털이 삐죽대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그가 오주력을 편애한 건 사실이다. 

오주력이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으려 들 때마다, 다른 사주력들과 달리 자신의 ‘은혜’를 입지 않은 오주력을 나름대로 존중해주었다. 

불길하기도 했지만, 굳이 그 불길함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런데 그러한 자신의 양보가 오주력에게 자신을 얕보이게 만든 모양이다. 

“···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까악.” 

······ 백왕이 ‘본체’로 변하기 전에,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여태껏 백왕은 단 한 번도 내앞에서 본체를 내보인 적이 없었다. 

본체를 내보이면 둘중 하나가 죽어야 끝남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백왕은 본체를 내보이려 하고 있었다. 

아리아의 모습을 면전에서 확인한 그가 이성을 잃은 것이다. 

이걸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리아는 죽······.” 

꽈앙-!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왕이 나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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