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26화 (126/317)

“검은 장벽이 사라졌습니다! 무려 38일만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들은 38일간 저 안에서 어떻게 생존해있던 것일까요?” 

“사흉 ‘바알’에 의한 침략이라며 ‘디맨션 워리어’가 입을 모아 말한 현장입니다! 

하지만 제주도 어디에도 공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헬기를 타고, 배를 타고서, 세계각지의 언론인들이 모여들었다. 

마스터가 확정하며 모두가 포기한 외로운 섬, 제주도. 

모두가 입을 모아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던 그곳이 38일만에 나타났으니까. 

“박태우! 그가 밤낮을 지새우며 제주도의 근역을 지키고 있었던 덕분에 빠른 구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구조 작전에서 영웅연합의 활약이 결정적이었으며, 한국 정부는······.”

당연히 구조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박태우와 영웅연합도 조명되었다. 

만약 박태우가 제주도 근역에 없었다면 족히 수만명은 바다에 수장되어 죽었을 것이다.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진정으로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라시아와 생환자들. 

하지만 그라시아는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한국 정부도 생환자들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개적인 인터뷰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6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모든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 안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한 미국 저널리스트가 공개한 인터뷰 영상은, 세계에 파격을 선사했다. 

한 남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한 내용이 전부였지만. 

“가장 먼저 그곳, 우리가 ‘심연’에서 본 것은 거대한 괴물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바알’이라 불리는 괴물과 불길한 까마귀 형태의 괴물이었죠.” 

“바알만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겁니까?” 

“예. 그렇게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 악마처럼 생긴 괴물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것들은 며칠 내로 전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바알이 흉조의 머리를 삼켰고, 함께 쓰러지며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이후 15일가량이 지나자 바알의 몸이 녹더니 배 안에서 ‘검은 알’이 나왔습니다.” 

“검은 알이요? 거기서 뭐가 나왔나요?”

 “예. ‘신의 사자’께서 모습을 드러내시어, 저희를 구원했습니다.” 

“······ 신의 사자라니요?” 

이어 인터뷰를 받은 남자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마치 부적처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부적과 같은 재질의 노란 종이의 위에는 낫을 든 ‘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프린트되어있었다. 

세 장의 날개와 염소와 비슷한 형태의 얼굴까지.

“이 그림은 뭡니까? 사신인가요?” 

“불경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분을 ‘검은 알의 수호자’라고 부릅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당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그림을 갖고 다닙니다.” 

“······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검은 알의 수호자라. 여러분을 탈출시켜줘서 수호자인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수호자께선 ‘검은 알’에서 새어나온 연기로 만들어지셨습니다. 검은 알의 안엔 우리 인류를 구원할 ‘신’께서 자리하고 계셨죠.” 

“아. 검은 알를 지키는 존재라서 검은 알의 수호자군요? 그런데 허, 신이라니. 그럼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신’을 목격한 겁니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신께선 저희를 구원하셨지만,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으셨습니다. 아직 저희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계는, 인류는 겸허히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합니다.” 

빠드득! 

마스터가 이를 악물고, 몸을 떨었다. 

“어떻게? 어떻게 심연에서 살아돌아올 수가 있지?” 

무려 38일이다. 그 시간이면, 그라시아를 포함한 전원이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살아돌아왔다. 

멀쩡하게. 

“이런 개같은······!” 

인터넷엔 마스터의 발언을 조롱하는 글들로 만연했다. 

그중 하나, 플레이어만이 가입할 수 있는 ‘플레이어 톡’도 마찬가지였다. 

-ㅋㅋㅋㅋ마스터 진짜 이 기회주의자 같은놈 

-설칠 때부터 마음에 안들었음 

-꼴 조오타! 

-괜히 오버하다가 밑바닥만 드러났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게 딱 이런거지 

-뭐? 제주도를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고? 푸하하하! 

-따를 사람을 따라야지 마스터를?ㅋ 

-차라리 그라시아를 따르고 말지 

-애초에 제주도 파견도 거부했다매? 

-분리수거도 안될 쓰레기ㅋㅋㅋㅋ 

-그래.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가 그라시아 급은 아니지. 그라시아는 ‘히드라곤의 핵’ 없어도 카르텔 가서 바알이랑 맞짱 떴잖아? 

-ㅇㅈ

-ㅆㅇㅈ 

지구인들에게도, 플레이어들에게도, 마스터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토벌을 위해 용병도시 카르텔 향한 것도 아니며, 제주도에 파견조차 거부한데다, 그런 주제에 ‘제주도를 포기하라’는 망언을 내뱉었으니. 

반면에 그라시아는 어떤가. 

-38일 동안 그라시아가 사람들 지휘한 내용 봤음? 

-지도력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마스터 따위랑 격이 다름 

-제주도 사람들 다들 똑같이 말하더라. 그라시아 없었으면 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상실했을 거라고 

-그런데 정작 그라시아는 뭐함? 이제 진짜 영웅 대접 받을 수 있을텐데 

-자기는 그럴 대접 받을 위인이 아니래 

-와, 개쩐다. 이게 진정한 영웅의 품격인가? 

-멋있네 

-마스터였으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을 듯ㅋㅋㅋㅋ

-아! 내가 구했다고! -세살배기 애들한테 가서도 내가 영웅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놈임 

-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평판. 

이러한 반응은 플레이어 톡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이제 마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마스터. 그의 책임감 없는 발언들.] 

[60만의 생명을 포기하라니, 그는 정말 영웅인가?] 

[마스터의 잘못된 말 한 마디 때문에, 박태우와 영웅연합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제주도에서 사망자 수만명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는 영웅인가, 아니면 영웅의 껍데기를 쓴 가짜인가?] 

그러니 이곳저곳에서 마스터의 비방과 조롱이 넘쳐나고 있었다. 

쾅!

마스터가 앉아있던 자리를 내리쳐 부수며. 

“으아아아아아아! 이런 빌어먹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심연의 지배자들. 

그들의 눈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쿠르르릉! 

그리고 이곳 ‘소생한 자들의 심연’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판게니아에서 함께 가라앉았던 모든 땅들과 함께. 

수련자의 산과 다섯 중립도시들. 

그 안에서 함께 가라앉았던 수많은 사람들. 

그것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돌아가거든, 준비해야할 게 많았다. 

다음 메인 퀘스트와, ‘버그’에 대처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마왕을 잡았을 때도, 바알을 벼랑 끝에 몰았을 때도, 법칙을 초월하여 나를 죽인 ‘버그’가 있었다. 

‘또 버그가 없으리란 법이 없으니.’

게다가 영원의 란돌프로 부활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지만, 다음에도 같은 ‘버그’에 죽으면 진짜로 끝이다. 

그러니 그러한 ‘버그’들에 당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나저나.’ 

나는 품을 뒤졌다. 

그러자 ‘인장’ 하나가 미칠 듯이 떨리고 있었다. 

바로 백왕이 오주력이 되자 건네준 인장이었다. 

‘··· 백왕이 다시 호출하고 있군.’ 

무슨 일일까?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닌 이상은 호출하지 않을진대. 

나는 고개를 털고, 눈앞에 열린 워프를 바라봤다. 

헬이 직접 연 워프. 

“가자.” 

-캬캬캬캬! 

헬과 함께 천천히 워프를 넘었다. 

그 순간. 

《히든 퀘스트 ‘흉신 바알 제거’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용을 정산합니다.》 

《1,250,000점! 규격외의 기여도입니다!》 

《보상의 규격을 초과한 기여도를 달성했습니다.》 

《당신을 지켜본 백성전의 성좌들이 보상등급을 올립니다.》 

《행운 주사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101단계의 보상목록 등급이 올라갑니다.》 

《새롭게 대두된 17명의 성좌와 기존 10명의 성좌, 도합 27명의 성좌가 빛을 잃습니다.》

《전례 없는 대참사에 남은 성좌들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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