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20화 (120/317)

그래서 오히려 더욱, 할 만했다.

“······?”

내 행동을 보곤 데몬 파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콸콸콸콸!

······ 성배를 들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수를 온몸에 적시고 있었으니.

*

콰릉!

콰르르릉!

쿠아아아아아앙!

쉴 새 없이 벼락이 몰아친다.

거센 태풍은 모든 걸 집어삼켰으며, 해일이 덮쳐 주변 모든 게 수장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붉은 워프’가 생긴 이후로 이상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워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영웅 연합’ 측은 이 현상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중앙재난 안전대책본부’를 1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했습니다.”

“현재 서귀포시의 주민들 모두가 대피한 상황이며······.”

공중파 TV의 모든 뉴스에선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긴급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허나 이게 평범한 기상 현상의 문제가 아님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꼈다.

실시간으로 커지고 있는 붉은 워프.

족히 10층 건물 수준으로 커진 그 워프를, 더는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 대체 저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오려는 걸까요?”

“종말! 종말입니다! 드디어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공중파 방송뿐만이 아니다.

지상파와 수많은 방송 매체들 역시도 이 대열에 참가했다.

전세계에 나타난 워프들과 비교해도, 비교가 안 되는 압도적인 크기.

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팽창 중이었다.

대체 저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건지 모두가 궁금해하자, 계속되는 압박에 결국 ‘연합장 박태우’거 직접 나서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세계’에서 ‘바알’이라 불리는 존재가 침공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서귀포시에 생성된 워프는 바알이 직접 문을 열고 나올 곳으로 추정되며······.”

“박태우씨! 바알이 뭡니까?”

“고대 시리아의 태양신인 그 바알을 말하는 겁니까?”

“솔로몬의 72악마 중 하나인 그 바알이요?”

“혹시 게임에서 나오는 바알 말하는 건가요?”

기자회견실.

박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젠장. 박태우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야 할지, 조금 순화해서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바알은 ‘사흉’이라 불린, 이세계의 고대에 존재했던 가장 흉흉했던 네 괴물 중 하나입니다. 현재 수많은 ‘디맨션 워리어’들이 바알의 침략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결국, 연합장 박태우는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로 했다.

‘카르텔 함락’이 의미하는 바는 곧 바알이 쳐들어온다는 뜻이었으니.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있는 대로 설명하고 경각심을 깨워주는 수밖에 없다.

“그라시아도 거기에 포함된 건가요?”

“··· 아마도, 예.”

“그, 그라시아가 죽었단 말입니까?”

“······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함락되고, 심연에 가라앉았다.

살아서 돌아온다면 기적이다.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을 믿고 기대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 말을 듣고 기자들 역시 충격에 휩싸였다.

그라시아가 사망하다니!

세계적으로 엄청난 위엄을 내뿜던, 수백 자루의 검을 방출해 수km 바깥의 괴물조차 도살해버리던 영웅이 그라시아다.

-그런 그라시아가 죽을 정도면 바알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이곳 지구의 사람들은 아직 이 정도 수준의 괴물을 겪지 못했다.

하여, 박태우는 덧붙였다.

“그라시아뿐만이 아닙니다. 바알을 저지하고자 수만 명의 전사가 희생되었습니다. 그중에는 강력한 ‘디맨션 워리어’들 또한 다수 포함되어있었습니다.”

“······!”

“연합장님! 그럼 대책은 없는 겁니까?”

대책.

······ 대책이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국의 좁은 땅덩이에서 모인 플레이어라고 해봤자, 천 명도 안 된다.

수만 명의 전사가 실패한 일을 고작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기엔 무력도, 조각도 부족했으므로.

그나마의 해결책이라면.

“········· 제주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버려야 한다.

썩기 전에 과감하게 절단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피해만 더 커질 테니까.

“제주도를······?”

“포기하다니요?”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도저히 정숙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발언.

박태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현실을 전했다.

“말 그대로, 포기입니다. ‘바알’은 공간을 먹어치우면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제주도를 먹으면, 모습을 감출 겁니다.”

······ 물론, 100% 확신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제주도를 심연에 가라앉힌 뒤, 제주도와 연결된 다른 워프로 향할 가능성이.

문제는 판게니아와 달리 이곳이 지구라는 점이다.

판게니아는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탓에 이동수단이 ‘워프’밖에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지구는 모든 공간이 연결되어있지 않은가.

바다로, 육지로.

‘그래도 세계 곳곳에 워프가 생성된 걸 보면 가능성은 있다.’

사실 희망 사항이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알은 그 정도의 ‘재해’니까.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은 어떡합니까?”

“풍랑이 너무 거세서 항공기를 띄울 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주민들이다.

제주도에 터전을 둔 사람들.

그들 전부를 포기하라는 말인가?

“······.”

박태우는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전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인구는 68만.

이중 제주도를 탈출한 건 소수다.

최소 수십만 명이 죽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닌 지구인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리라.

“마스터는요? 마스터는 살아있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만······ 거절당했습니다.”

그것도 단칼에 거절당했다.

도저히 제주도에 희망이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정부는 빠른 결단을······.”

“그게 연합의 공식 의견입니까? 제주도를 포기하라는?”

“······.”

“그럼 연합은 이번 일에 나서지 않을 생각인 겁니까?”

“그건······.”

맞다.

기자의 말 그대로였다.

제주도를 포기한 뒤 바알을 파악하고 싸우는 것.

그게 연합이 내린 결론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허나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해도 어쩔 수 없다.

제주도에서 전멸하면 정말 미래가 없으니까.

하지만 예상한 것보다도 시간은 훨씬 더 부족했다.

《‘흉신 바알’의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흉신 바알’이 ‘심연 그 자체인 자’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아······.”

박태우는 기자회견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손으로 얼굴을 쓸며 깊은 탄식을 뱉어냈다.

가장 찬란한 광명

흐릿한 시야.

흐르는 피가 눈을 가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글자’들.

《‘데몬 파멜’을 사냥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불가항력’의 차이를 극복했습니다!》

《업적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한 자’를 획득합니다.》

《업적 ‘데몬 슬레이어’를 획득합니다.》

《명예가 300 상승합니다.》

《기여도 1,500을 획득했습니다.》

《‘데몬 하트’가 남겨졌습니다.》

《백성전의 성좌 51명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후욱, 후우욱······.”

물먹은 솜처럼 온몸이 무겁다. 거친 숨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호기사 파멜.

13레벨의 괴물은 과연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성수의 보정 효과와 관통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지금 죽은 건 파멜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도리어 이것만으로 이긴 게 기적과 같았다.

다르칸 영주를 죽인 뒤 다른 기사들과 싸워 힘을 빼놓지 않은 상태였다면······ 역시나 불가능했을 터.

이걸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는지.

‘시간이 너무 끌렸나.’

입술을 깨물었다.

파멜을 상대로 생각보다 시간이 끌렸다.

그 사이, 바알은 진화를 끝마쳤다.

생존자가 줄어들어서?

아니, 그보단 다르칸 영주가 먹이를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다르칸 영주가 끌고 온 병사들이 전부 바알의 영양분이 되어버렸다.’

환장할 일이다.

물론 그만큼 자신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도 그만한 병력이면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다르칸 영주는 수호기사 파멜의 정체를 간과했다.

아니면 아예 모르고 있었거나.

‘······ 알았다면 같이 오지 않았겠지.’

진짜 머리가 모자란 게 아닌 이상, 파멜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저주가 만연한 고치 속으로 같이 왔겠는가.

영주도 그가 데몬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덕분에 바알과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와해했다.

‘이제 곧 지구로 침략할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움직이려던 찰나, 나는 파멜이 죽은 자리를 바라봤다.

도륙되어 죽은 데몬은 죽은 즉시 먼지로 화했다.

오직 ‘데몬 하트’만을 남기고서.

【데몬 하트(???)】

-최상질의 데몬 하트입니다.

-최대 13레벨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데몬과 계약하여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약하는 순간 육체가 완벽하게 회복, 재생되며, 종족이 ‘데몬’으로 구분됩니다.

-‘데몬’은 ‘추종자’에 따라 더욱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별’을 이용한 ‘초월’이 불가능해집니다.

······ 데몬 하트를 이용한 계약.

게다가 막심이 지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당장 계약하는 것만으로도 레벨을 몇 단계는 건너뛰는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회복까지 된다면 바알을 보다 쉽게 요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데몬 하트, 심장에 새겨진 악마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하겠느냐?

그것은 순수한 ‘악’이다.

오로지 인간의 탐욕을 시험코자 하는 악이었다.

지금의 몸 상태로 바알을 상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

쳐다도 안 보려고 했으나 눈길이 가는 건 본능에 가까웠다.

-바알을 죽여야 하지 않나? 고작 파멜에 쩔쩔매던 지금의 네가 진화한 바알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게다가 그 파멜조차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을진대?

악마의 속삭임.

녀석은 내 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

아니,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저건 내 생각 그 자체였다.

-내 손을 잡아라. 그리하여 힘을 얻어라. 내가 너에게 바알을 죽일 권능을 부여해주마. 너라면 파멜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약하면 생기는 힘.

데몬의 권능!

파멜을 뛰어넘는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알을 죽여라.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가능케 만들라는 말이다.

-뻔뻔한 놈. 모두 네가 자처한 일 아니냐? 네가 바알을 깨우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판게니아도, 지구도, 모두 너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될 터.

‘악’은 내 책임감을 부각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게니아와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건 전부 내 책임이라고.

-계약······.

콰직!

나는 그대로 발을 들어, 짓밟아, 부쉈다.

“시끄럽다.”

정말 시끄러웠으니까.

놈이 하는 모든 말들은 이미 내가 상기하고 있는 것들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사왕을 계승한 내가, 여신을 배척하는 이단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건 당장의 힘을 얻고자 미래를 포기하는 짓이니.

그 순간이었다.

《데몬 하트를 파괴했습니다.》

《업적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 자’를 달성합니다.》

《명예가 1,000상승합니다.》

《기여도 10,000점을 획득했습니다.》

《명예로운 자여! 백성전의 모든 성좌가 당신의 선택에 손뼉을 치며,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모든 성좌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유혹.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그들로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모양.

파멜을 죽일 때보다도 명예나 기여도의 상승이 훨씬 높은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처럼 보였다.

저 데몬 하트 자체가 본체였던 게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바알을 상대할 수 없다고?’

놈이 내게 속삭인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의 나는, 이 몸으로는 당연히 바알을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파멜을 상대로도 끝까지 사용하지 않은 게 있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익-!

요동치는 워프.

심연을 나아가자, 그곳에 바알이 보였다.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어 워프를 넘으려는 바알이.

‘절대로 못 넘어간다.’

넘어가게 놔둘 수는 없다.

오직 저놈 하나를 위해 아끼고 아껴둔 것.

그것을 사용할 때가 됐다.

내 전부를 쏟아부을 때가.

《‘가장 찬란한 빛의 옥좌’가 발현합니다.》

《‘가장 찬란한 빛의 옥좌’에 새겨진 접두사 스킬 ‘가장 찬란한 광명’을 사용했습니다.》

《접두사가 소멸하여 60초 이후 ‘가장 찬란한 빛의 옥좌’의 기본유지 기능이 사라집니다.》

《‘온전한 황금률’을 소모합니다.》

*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익-!

바알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된 이후, 제주도의 상황은 급변했다.

“저, 저게······.”

“저게 지금, 무슨 상황인 겁니까?”

기자들은 당황했다.

기자들만이 아니라 지금 저 장면을 보는 모든 이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워프는 사방으로 넓어지며, 제주도 전체를 벽처럼 둘러싸 버린 것이다.

그리곤 이내 제주도가 있던 곳은 ‘암흑공간’처럼 변해버렸다.

“제주도가······.”

“사, 사라졌다!”

공간 전체가 암흑에 먹혔다.

정말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설마 제주도 전체가 벌써 먹혔다고? 바알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여, 연합장님!”

“박태우씨!”

“무슨 말 좀 해보십시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모두가 해명을 요구하며 박태우를 바라봤다.

“······.”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로, 지금 저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까.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저 안의 사람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4